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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통일신라실] 해상세력의 성장과 바다를 통한 교류

younghwan 2011. 6. 1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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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신라는 바닷길을 이용하여 중국, 서역, 일본과 교류하였다. 해상왕 장보고의 청해진과 최치원, 혜초 등으로 대변되는 당나라 유학생, 당나라세 소재했던 신라방 등 역사 기록에는 수많은 대외교류의 기록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실제 남아 있는 유물이나 유적지는 그리 많지는 않으며, 유적으로는 완도의 청해진만이 당시의 활발한 대외교류의 유적으로 남아 있다. 중앙박물관에 전시된 통일신라의 대외교류 흔적들은 고대국가나 삼국시대에 비해서도 유물이 빈약해 보이며, 당시에 크게 성행하였던 차문화, 중국 당나라 월주요에서 생산되었던 청자 등 도자기 일부만이 통일신라시대 대외교류를 나타내는 유몰로 전시되어 있다.

 바다를 통한 교류
통일신라는 드넓은 바닷길을 이용하여 중국, 서역, 일본과 교류하여 한자문화, 차문화, 불교, 도자기 등의 문물을 도입하였다. 이 과정에서 통일신라는 동북아시아의 해상을 장악하면서 이 지역의 문화교류에 이바지한 해상왕국으로 성장하였다. 특히 9세기에 동북아시아의 바닷길을 장악하여 삼국 사이의 무역을 주도한 것이 장보고와 청해진이다. 바다를 통한 문화교류 중에서 대표적인 예가 도자기와 차문화으 수입이다. 통일신라에서는 왕경과 지방에서 중국 월주요에서 생산한 도자기를 널리 사용하였고, 귀족과 스님을 중심으로 차를 즐겨 마시게 되었다. 또한 바다를 통하여 신라의 승려들이 당으로 유학을 가서 새로운 선종을 도입하였다. 이러한 문화교류를 통하여 신라는 독자적이면서도 국제적인 문화를 향유하였다.


청동 향합과 철 다연, 창녕 화왕산성에서 출토된 것으로 당시 차문화와 여유로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청자해무리굽완과 백자해무리굽완, 익산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것이다.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풍로로 차를 끓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 위에 녹유바리가 얹혀 있다.


토기와 목걸이, 울릉도 천부리에서 출토되었다.


완도 청해진에 출토된 청동 병과 황해도 평산에서 출토된 청동접시. 통일신라시대 해상세력을 대표하는 청해진과 황해도 지역에서 출토된 것으로 의외로 당시 세력에 비해서 유물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외국사신맞이 그림(복제품), 중국 산시성 시안시 건릉 장희태자묘. 통일신라시대 국제교류의 모습을 보여주는 신라사신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다.



청자뼈단지, 9세기, 경주 배리. 청자로 된 뼈 단지이다. 특히 뚜껑은 중국 월주요 계통으로 당시 중국과의 교류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뼈단지, 경주


발걸이, 황해 평산. 말을 올라타기 쉽게 만든 발걸이, 금은을 박아 넣은 기법으로 다양한 무늬가 베풀어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화려한 것이다.


동물.포도무늬거울, 부여 관북리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 탁본

이 탑비는 봉암사를 세운 신라말의 고승 지증대사 도헌(824~882)을 기리기 위해 제작되었다. 비문은 헌강왕의 명령을 받은 당대의 문장가 최치원이 8년에 걸쳐 지었는데, 신라 말의 혼란 때문에 30년이 지난 924년에야 탑비가 세워질 수 있었다. 탑비의 머릿돌과 받침돌은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으며 그 조각 역시 뛰어난 편이다. 받침돌은 머리가 용이고 몸은 거북모양으로 머리 위에는 뿔이 솟아 있고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비몬 위에 올려진 머릿돌에는 연꽃무늬와 8마리 용이 얽힌 형태로 장식되어 있다. 비문은 불교의 연원과 한국 고대 불교의 역사를 정리한 후, 지증대사의 행적을 12항목으로 나누어 서술했다. 특히 지증대사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선종 승려들이 다수 등장하여, 신라 하대 선종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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