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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통일신라실] 불교조각과 십이지신상

younghwan 2011. 6. 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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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시대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종교였던 불교가 전래된 이래로 삼국은 다양한 불교 관련 예술을 꽃피웠다. 통일신라는 삼국시대의 전통에 이어서 불교 예술의 전성기를 이루었는데, 그 중 불교 조각은 삼국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세련되고 뛰어난 조각수법과 예술적인 완성도를 자랑했던 시대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불국사 석굴암으로 대표되는 통일신라의 불교조각은 서역의 간다라 미술의 사실적인 묘사가 그 절정을 이루었던 시기로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석탑을 중심으로 화려하고 뛰어난 유물들을 남겨 놓아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로서 자부심을 갖게 해주고 있다.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조각가로는 사천왕사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서역출신 사람으로 추정되기도 하는 양지를 들 수 있다. 신라의 조각은 석굴암 불상처럼 전신을 조각한 것도 있지만, 당시에 많이 세워졌던 삼층석탑의 기단부에 새겨진 팔부중상이나 사천왕상 들을 돋을 새김한 부조작품들이 아주 많이 남아 있으며, 그 조각 수법들이 후대에 만들어진 것보다 상당히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
통일신라시대는 (676~935)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대동강에서 원산만 이남지역을 차지하고 하나의 민족국가를 이룬 시기이다. 왕경인 경주는 시가지를 정비하여 도성의 면모를 갖추었다. 또한 서남아시아를 비롯하여 중국의 당, 일본 등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국제도시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왕경의 발달된 문화는 점차 지방으로 확산되어 동일한 영역 안에서 하나의 문화를 이루었다. 통일신라시대의 불교는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유교문화는 관료제의 성장과 함께 발전하였다. 화장의 유행으로 뼈 단지가 널리 사용되었으며, 대표적인 불교 건축물인 불국사와 석굴암이 세워졌다. 이러한 통일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문화를 통합하여 민족문화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동아시아 여러 나라와의 교류를 통하여 국제적인 문화를 이룩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사천왕상, 녹돌, 경주 사천왕서터. 사천왕사 목탑의 기단에 붙인 것으로 신라 최고의 조각가 양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사천왕은 불교 세계의 중심에 있는 수미산 사방에 머물면서 불법을 지킨다고 한다. 사천왕사 조각상은 우리나라 조각상들 중에서 아주 독특하면서도 이국적인 형태를 보이는 조각상이다. 조각수법이 상당히 섬세하면서 세련되었는데, 서역에서 볼 수 있는 조각상과 비슷하다고 한다.


이 조각은 녹돌에 그림을 새겨 넣은 것으로 다른 시대에는 잘 볼 수 없는 형태이다.


사천왕상 그림

십이지상
십이지는 방위와 시간을 맡은 12동물을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다. 처음에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 무덤 안에 십이지용을 넣다가 차츰 수호신으로 성격이 바뀌어 십이지상을 무덤 둘레에 배치했다. 십이지는 초기에 무덤 둘레돌에 돋을새김으로 새겼으나 성덕왕릉에서는 보다 입체감이 두드러진 독립된 조각상으로 나타났다. 이는 갑옷을 입고 큰 칼을 잡고 서 있는 형태로 불교에 보이는 사천왕상 복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왕의 무덤을 보호하고 왕권의 위엄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세워졌다. <출처:중앙박물관>


십이지상(말,뱀), 곱돌, 8세기


십이지상(토끼,말), 곱돌, 8세기, 경주 김유신 장군 무덤을 둘러싸고 있는 십이지신상이다. 곱돌에 조각한 것으로 십이지신상 중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십이지상(원숭이), 돌, 8세기, 경주 성덕왕릉. 십이지는 초기에 무덤 둘레돌에 돋음새김의 형식으로 새겨졌으나 성덕왕릉에서는 보다 입체감이 두드러진 독립된 조각상으로 나타난다. 갑옷을 입고 큰 칼을 잡고 서 있는 형태로 불교의 사천왕상 복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왕의 무덤을 보호하고 왕권의 위엄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경덕왕대인 8세기 중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중앙박물관>

불교문화와 불국토
통일신라의 불교는 초기에 화엄종과 법상종 등의 종파, 후기에 선종계통이 발전하였으며, 국가와 왕실을 보호한다는 호국불교와 온국토가 부처님의 나라라는 불국토설이 있었다. 통일신라시대는 불교조각의 전성기로서 삼국시대 조각에다가 당나라 불교조각을 결합시켜 얼굴과 몸에 살이 붙고 훨씬 섬세한 모습을 보인다. 이 시기의 세련되고 사실적인 조각은 8세기 중엽 무렵 석굴암 조각에서 절정을 이룬다. 후기에는 당의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독특한 경향이 부각되었는데, 약사불, 비로자나불이 유행하고 철불도 많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또한 팔부중상은 8세기 중반 이후 세워진 석탑의 위층기단에 새겨진 것으로 이 시기의 특징적인 조각상의 하나이다. <출처:중앙박물관>


팔부중상, 경주 담엄사터

팔부중은 석가모니의 설법 장소에 모여 감화를 받은 여러 무리 가운데 하늘,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 등을 가리키는 용어로 팔부신장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본래 인간이 아니라 인도의 신화에 등장하는 신적 존재 또는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였는데, 불교가 성립하면서 점차 불법을 지키는 신장으로 발전, 변모해 나갔다. 팔부중을 형상화한 팔부중상은 통일신라시대에는 석탑의 위층 기단 면석에 새겨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처럼 팔부중 전부를 석탑에 질서정연하게 새기는 모습은 같은 시기의 중국과 일본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팔부중상이 통일신라 불교 조각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경주 담엄사터에서는 팔부중상 가운데 아수라상과 건달바상이 출토되었다. 아수라상은 3면의 얼굴과 8개의 팔을 지닌 형태로 묘사되었다. 아수라는 갑옷 대신 천의를 두른채 구름 위에 앉아 있는데, 8개의 팔 가운데 위로 든 두 팔은 해와 달을 받쳐 들었으며 나머지 팔은 단검, 줄 저울 등을 쥐고 있다. 한편 건달바상은 역동적인 모양의 구름 위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있으며, 머리에 사자가죽을 뒤집어 쓰고 갑옷을 입은 모습이다. <출처:중앙박물관>


무구정광대다라니경(복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본으로, 1966년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을 보수할 때 여러 가지 사리장엄구와 더불어 발견되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석탑에서 다수발견되는 작은 탑과 관련이 있으며, 사리신앙에 영향을 주고 있다. 8세기 중엽 무렵에 만든 것이며, 당나라 측천무후가 집권하고 있을 때 만들어 사용했던 무주제자도 나타나고 있어 이채롭다. 통일신라 불교문화의 우수성과 한국 인쇄문화의 높은 수준을 증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출처:중앙박물관>


무구정광대다니경(국보 126호, 복제품)


금동 사리외함, 706년경, 경주 황복사터 삼층석탑에서 출토되었다.


사리외함 뚜껑에 새겨진 글씨


아미타불 좌상, 금, 국보 79호, 경주 황복사 터 삼층석탑


부처입상, 금, 국보 80호, 경주 황복사 터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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