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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조선의 경제 생활, 화폐 (상평통보,조선통보)

younghwan 2010. 2. 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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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농업중심의 경제 사회로 세금납부, 물물교환의 매개체로 경제활동의 중심이 되는 화폐의 역할을 곡물인 쌀이 대신했기 때문에 상평통보로 대표되는 화폐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크게 활성화되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보기는 얼려운 사회였다. 반면, 유럽이나 중국의 경우 은을 매개체로 활용했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고대 그리스  은화가 교환의 매개체가 되었고, 중국에서 은이 세금납부와 교환의 중심 매개체가 되어 왔다. 아마도 조선에서도 화폐로서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할려고 했다면 아마도 상평통보를 은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동전꾸러미와 도, 돈을 보관하던 궤짝인 돈궤

조선 최초의 동전인 조선통보

조선을 대표적인 동전인 상평통보. 당일전, 당오전, 당이전, 당백전이 있다. 그 중 가장 큰 동전이 구한말 대원군이 말썽을 일으켰던 당백전이다.

조선의 대표 화폐, 상평통보
상평통보는 조선 후기에 걸쳐 널리 사용된 동전이다. 만들어진 시기와 장소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크기와 재질 등에 관계없이 모두 같은 값으로 쳤다. 앞면에는 '상평통보'라는 문자를 새겼고, 뒷면에는 만든 관청과 주조 번호를 새겨 넣었다. 옆전 한 닢은 한푼이고, 10푼이 1전, 10전이 한 냥이다. 상평통보 가운데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발행한 화폐가 '당백전'이다. 당백전을 줄여서 당전이라고 하였는데, '땡전 한 닢 없다'는 말에 쓰인 땡전은 이 당전에서 비롯하였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은으로 만든 최초의 근대적 동전

신식동전

열쇠패. 옆전을 가공해서 열쇠패를 많은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열쇠를 매어 다는 물건이다. 시어머니가 열쇠패를 끌러 며느리에게 인계하는 날은 가정의 실질적인 경제권을 상속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곳간이나 방 이외에 옷장ㆍ반닫이ㆍ벽장ㆍ조그마한 상자 등에 달았던 자물쇠는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을 보호하는 목적 외에도 장식적인 효과를 주기도 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물쇠와 짝을 이루는 열쇠패도 박쥐와 연꽃 문양 등을 수놓은 괴불과 별전, 새 모양 등의 장식물을 화려하게 달았다. 수놓은 연꽃은 연밥이나 복숭아와 한 줄기로 된 복합문으로 구성되었다. 자수 기법은 문양의 테두리는 금사를 사용하여 징금수로 두르고, 면은 여러 가지 색실을 사용하여 평수로 메웠다. <출처:문화원형백과>

조선 정조때 토지거래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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