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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부 부석사는 백두대간 태백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오래된 사찰이다. 부석사가 자리잡고 있는 영주 풍기 지역은 깊은 산중도 아니면서 산물이 풍부한 곡창지대도 아니어서 오래된 고찰이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석사는 삼국통일 후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 주류 불교라 할 수 있는 화엄종에 속하는 사찰로 화엄십찰 중의 하나라고 한다. 현재 부석사의 형태는 고려시대에 갖춰진 것으로 보이며, 수덕사, 봉정사 등 오래된 국보급 불전을 있는 사찰들과 비슷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봉황산 중턱에 거대한 돌들을 이용해 석축을 쌓아서 터를 조성하고 그 위에 가람들을 배치해 놓고 있다. 이 절의 중심불전인 무량수전과 그 앞의 안양루에 올라서면 아래에서 보는 편안한 모습은 사찰 풍경과는 달리 상당히 웅장하면서도 날아갈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하는 사찰이다. 원래 이 사찰에는 중심불전과 요사채들만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무량수전 외에는 유서 깊은 불전은 없어 보이며, 통일신라 가람의 특징인 석탑 또한 대웅전 경내 마당 한가운데 있지 않고  오른쪽 언덕위에 있다. 다만 조사당은 사찰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건물과 그 안에 모셔진 벽화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부석사와 한국의 목조건축을 대표한 문화재인 무량수전. 부석사의 중심불전으로 앞면 5칸, 옆편 3칸으로 고려시대 건축물임에도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1. 일주문과 은행나무길

부석사는 계곡이 아닌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지만 올라가는 길은 어렵지 않고 평탄한 편에 속하며, 일주문을 지나서 걸어가는 호젓한 길은 가을 은행나무의 노란색과 더불어 가을 분위기를 물씬 풍겨주고 있다. 길 양쪽에 있는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 과수원의 사과와 함께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게 해 준다. 물로 봄에 핀 사과꽃도 상당히 아름다운 길이다.



부석사 일주문과 은행나무길. 길 옆으로 사과나무밭이 있다.

2. 당간지주


영주 부석사를 오르는 은행나무길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당간지주. 화려한 장식이 없는 아주 편안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3. 사찰입구인 천왕문


부석사 일주문에서 시작한 은행나무 가로수가 있는 언덕길을 걸어올라가면, 실질적인 사찰을 입구라 할 수 있는 천왕문을 만나게 된다. 이 곳 천왕문에서부터 단계별로 축대를 쌓아서 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4. 부석사 석축


부석사 석축은 천왕문을 지나서 시작해서 9단(혹은 10단)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며, 사찰 가람배치에 있어서 불교의 사상을 구현하고자 함이라고 한다. 현재 삼층석탑과 종무소가 있는 공간을 오르는 3단계 석축이 있고, 범종루을 오르는 3단계 석축, 안양루를 오르는 3단계 석축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인공적인 아름다움이 뛰어난 불국사 석축과 대비되는 크기에 맞는 자연석을 쌓아서 만든 자연미가 뛰어난 석축으로 우연이 아닌, 불교 사상의 구현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쌓은 석축이라고 한다.


부석사는 아주 큰 바위같은 돌에서 작은 돌까지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돌을 짜 맞추어 자연스럽게 석축을 쌓고 있다.

5. 인근 사찰터에서 옮겨운 삼층석탑


부석사 경내에서 첫번째로 볼 수 있는 문화재로 부석사 삼층석탑을 볼 수 있다. 보통 삼층석탑은 대웅전 앞 마당에 위치하여 불교 신앙의 중심이 되는 상징물인데 이 곳 부석사 삼층석탑은 종무원 건물과 같은 레벨의 공간인 범종각 아래 공간에 위치해서 의아해 했는데, 근처 다른 사찰터에 있던 것을 이 곳으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크리나 모양, 석탑을 만든 조각 기술 등을 고려해 볼때 통일신라 말기의 석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6. 범종루, 부석사의 중심을 잡아주는 누각

영주 부석사에는 뛰어난 목조 건축물이 많은데, 그중 하나인 범종루이다. 범종루는 3번째 축대을 오르는 출입문 역할을 하기도 하며, 다른 건물과는 달리 특이하게 측면을 향하게 지어 놓고 있어서 부석사 건물 배치에 있어 중심을 잡아주는 건물이기도 하다. 이름은 범종루이지만 범종은 서쪽편 범종각에 별도로 보관되어 있고, 지금은 법고와 목어만 그 위치에 있다.




부석사의 중심을 잡아주는 2층누각이 범종루, 범종은 왼쪽의 새로운 범종각으로 옯겼고 지금은 목어와 법고만 있다.


범종루 왼쪽편에 범종을 보관하고 있는 범종각

7. 안양루, 날아오르는 듯한 누각

부석사 중심 불전인 우리나라에서 오래된 목조 건축물 중의 하나인 무량수전 경내로 들어가는 출입문 역할을 하는 안양루이다. 안양루에서 보는 소백산맥 줄기의 넓은 산하를 보는 경치는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명장면 중의 하나이다. 안양루는 축대 아래에서 보면 웅장해 보이지만, 무량수전에서 보면 아담하며,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




8. 중심불전인 무량수전, 배흘림기둥과 주심포양식의 대표적인 고려 건축

수덕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로 알려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이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불전으로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는 불전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그 역사가 오래되어서 유명한 점도 있지만, 건축사적으로도 고려시대 주심포계 목조건축물을 가장 잘 구현한 건축물로도 의미가 있다고 한다.


부석사 무량수전 전경. 무량수전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규모가 상당히 큰 목조건축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배흘림 기둥을 사용한 주심포계 건물로 상당히 간결하고 안정감 있게 보이는 건축물이다.


 부석사의 또 다른 특징으로 '무량수전'이라는 편액이 중국식으로 적혀있고, 뒷편 조사당의 편액또한 글씨를 세로로 쓰는 중국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부석사 편액을 고려 공민왕이 썼다고 전해지는데, 공민왕은 원나라에 자란 사람으로써 원나라 양식으로 글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부석사 무량수전 건축의 특징인 주심포와 배흘림 기둥

9.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있는 석등은 국보로 지정된 대표적인 통일신라시대 석등이다. 하지만 부석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무량수전을 열심히 살펴보고, 뒷편의 부석을 보거난 안양루에서 본 경치에 취해서 이 석등을 놓치기 쉽다. 이 석등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많은 석등 중에서도 아름다움으로 손꼽히는 석등이다.

10. 안양루에서 내려다 본 풍경

부석사 무량수전에 관심을 집중하다가, 뒤를 돌아보면 백두대간 태백산에서 뻗어나간 수많은 작은 봉우리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경이로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부석사를 두번 이상 찾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 아름다운 광경을 다시 한번 보기 위해서 이 곳을 찾게 되고, 그 이후에는 부석사에 있는 많은 유물과 사찰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 일 것이다.


안양루에서 내려다 본 풍경

11. 부석사 삼층석탑, 무량수전 동쪽편에 세워진 석탑

부석사를 창건한 시기인 통일신라 문무왕때 세워진 석탑이다. 당시에 경주에 세워진 감은사지 석탑을 비롯한 여러 삼층석탑에 비해서 규모가 작고, 당시에는 보통 사찰 경내에 동.서 2개의 탑을 세우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부석사 삼층석탑은 언덕에 세워져 있다. 통일신라시대 초기에 세워진 석탑이라 그런지 조형미는 양호한 편이고 매우 안정적인 느낌을 주고 있는 석탑이다.


부석사 삼층석탑

12. 조사당, 의상대사 초상을 모신 곳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 초상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불전인 부석사 조사당은 중심 불전인 무량수전이 있는 경내에서 숲속길을 따라서 조금 올라가면 볼 수 있다. 조사당 바로 앞에는 의상대사 지팡이를 꽂은 곳에 핀 꼿인 어사화가 있으며, 동쪽편으로는 사명대사가 수도했던 곳으로 유명한 취현암이 자리잡고 있다. 부석사 조사당은 앞면3칸, 옆면1칸의 작은 건물로 맞배지붕과 주심포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조사당 내부에는 국보이자 고려시대 대표적 회화작품인 조사당 벽화(복제본)가 있다.


부석사 조사당

13. 웅진전, 자인당, 단하각

부석사 중심 불전인 무량수전을 지나 숲속길을 따라가다 보면 의상대사 초상을 모신 국보인 조사당이 있고, 숲속길을 조금 더 들어가면 마지막 건물인 웅진전, 자인당과 조그만 단하각이 자리잡고 있다. 웅진전은 부처님의 제자를 모신 불전으로 보통 사찰의 경우 대웅전 옆에 위치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부석사 웅진전은 무량수전 뒷쪽편 숲속에 자리잡고 있다. 자인당은 원래 스님들의 선방으로 사용했던 건물인데 인근 사찰터에서 옮겨온 삼존여래 좌상을 모시고 있다.


부석사 웅진전

14. 북지리 석조여래좌상(비로자나불)

 자인당 내부에는 원래 부석사 인근 절터에 있었던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했던 비로자나불 석상 2구와 석불좌상 1구가 자리잡고 있다. 원래 같이 있던 불상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3구의 불상을 한데 모아서 삼존불상으로 모시고 있다.


자인당 내부의 비로자나불상

15. 부석바위, 부석사의 유래가 된 바위

부석사 무량수전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부석사의 유래가 된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부석바위이다. 큰 글씨로 '부석(浮石)'이라는 글자를 새겨 놓고 있는 이 바위는 자연의 조화에 의해서 마치 공중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부석바위

16. 삼성각, 지장전, 요사채

부석사는 중심 불전인 무량수전을 제외하고는 부처님을 모신 불전을 많이 세우지는 않고 있는 반면, 작은 건물로 지어진 스님들이 기거하면서 수행을 하는 요사체들이 무량수전 아래 공간에 많이 자리잡고 있다.


부석사의 불전인 삼성각과 지장전, 그나마 지장전도 최근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부석사 요사채들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삼국사기〉·〈삼국유사〉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신라 문무왕의 뜻을 받들어 676년에 창건하고 화엄종을 널리 전했다고 한다. 〈송고승전 宋高僧傳〉 의상전(義湘傳)에는 의상과 선묘, 부석사 창건에 관한 설화가 자세히 적혀 있다. 고려시대에는 선달사(善達寺) 또는 흥교사(興敎寺)라 불렀는데 선달이란 선돌의 음역으로 부석의 향음(鄕音)으로 보기도 한다. 의상을 부석존자(浮石尊者)라 하고 그가 창시한 화엄종을 부석종(浮石宗)이라 하는 것은 이 절의 명칭에서 유래된 것이다. 의상 이후 혜철(惠哲)을 비롯하여 신라 무열왕의 8대손인 무염(無染)과 징효(澄曉) 등 많은 고승들이 배출되었다. 만년에 이곳에 머문 원융(圓融)은 대장경을 인쇄했는데 지금 부석사에 전하고 있는 화엄경판은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1372년(공민왕 21) 원응(圓應)국사가 주지로 임명되어 가람을 크게 중창했다. 경내에는 고려시대의 무량수전(국보 제18호)과 조사당(국보 제19호)을 비롯하여 원각전·응진전·안양루·선묘각·범종루·자인당 등 조선시대의 건물들이 남아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무량수전앞석등(국보 제17호)·소조불좌상(국보 제45호)·조사당벽화(국보 제46호)·3층석탑(보물 제249호)·당간지주(보물 제255호)·고려판각(보물 제735호)·원융국사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7호) 등이 있다. 이밖에도 이 절의 창건설화와 관련있는 석룡(石龍)·대석단(大石壇)·선묘정(善妙井)·녹유전(綠釉塼)·선비화(禪扉花) 등이 전해지고 있다. <출처: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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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 영주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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