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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_정원

아산 맹씨행단 (사적109호), 청백리 정승 맹사성 고택으로 가장 오래된 민간 주택

younghwan 2010. 10. 2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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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적 109호로 지정된 아산시 배방면에 위치한 아산 맹씨행단은 조선초기 세종때 청백리로 유명한 고불 맹사성 선생이 살던 고택과 고택 앞 수령 600년 이상된 은행나무를 지칭하는 말이다. 아산 맹씨행단이라는 이름때문에 아산 맹씨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안내표지판에 자신들은 신창맹씨임을 강조하고 하고 있다. 마당에는 고불 맹사성이 직접 심은 것으로 알려진 수령 600년된 은행나무가 있으며, 은행나무 아래서 맹사성 선생이 뜻이 맞는 사람들과 강학을 논의하던 자리라고 해서 맹씨 행단이라고 불린다.

 아산 맹씨고택은 고려시대인 1330년에 최영 장군의 부친인 최원직이 건축하였다고 전하며, 실제 최영 장군이 거처하였던 집이다. 고려말 위화도 회군으로 최영장군이 죽임을 당하여 비어 있던 집을 장군의 손주사위인 맹사성의 아버지 맹희도가 정란을 피하여 한산을 거쳐 이곳으로 옮겨서 거쳐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집은 고려시대에 처음 지어진 집으로 '工'자형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이런 구조의 집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도산서원 유생기숙사인 농운정사가 '工'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조선초기에는 이런 형태의 집이 많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482년, 1642년, 1814년, 그리고 1929년에 각각 중수한 기록이 있으며, 고택 가구부에 남아 있는 고부재와 창호 등이, 견실한 고법을 간직한 고려시대의 귀중한 건축물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민간주택으로 알려진 고불 맹사성선생이 살던 고택(사적109호). 현재 남아 있는 고택 중에서 '工'자형을 하고 있는 고택을 찾기는 힘든 것으로 보이며, 고려시대에 많이 사용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3칸의 구조를 하고 있는데, 추운 지방에 적합한 가옥구조인 듯 창호를 많이 두지 않고 있다. 가운데에는 대청마루를 두고 있으며, 양쪽으로 사람이 거처하는 방이 있다.


가운데 대청마루에도 분합문을 두어서 여름에는 시원하게 통풍이 잘 되게하고 겨울에는 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청마루 분합문을 걸어서 열어 놓고 있다.


양쪽 측면에는 창호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크지 않게 만들어 놓고 있다.


이 저택의 출입문. 정승을 지낸 고불 맹사성의 저택답게 솟을대문을 하고 있다. 대문은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솟을대문 양쪽에는 문간채를 두고 있다.


맹씨고택 뒷편에 있는 사당인 세덕사.


맹씨행단이라는 이름의 근원이 되는 수령 600년이 넘는 은행나무. 이 나무는 세종대왕때 좌의정으로 봉직하고 청백리로 유명한 고불 맹사성이 1380여년 경에 심은 것으로 당시 고불은 이 나무의 보호를 위하여 축대를 쌓고 단을 만들어 뜻있는  자들과 강학하던 자리라는 뜻으로 행단이라고 불린다. 옆에 있는 키가 비슷한 은행나무는 수령이 200~300년 정도 되는 것으로 이 은행나무에서 난 씨가 자란 것이라 한다.


고불 맹사성 선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은행나무 아래 행단.


고불 맹사성 선생이 은행나무를 심으면서 조성한 직접 쌓은 축대


아산 맹씨행단 입구에 있는 기념관. 창고처럼 보이는 건물이다.


입구에서 본 맹씨행단


맹씨행단 앞을 흐르는 개울물


아산 맹씨행단이 있는 마을. 공기가 맑고 깨끗해 보이는 지역으로 들판이 넓지도, 좁지도 않은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규모이다.


서울 북촌마을 가회동 31번지에는 고불 맹사성 선생이 정승으로 재직시 살던 초가집이 있던 집터가 있다.



조선 전기 청백리로 유명한 고불 맹사성(1360∼1438) 가족이 살던 집으로, 원래 고려 후기에 최영 장군이 지은 집이라고 전하기도 한다. 맹사성은 고려말 · 조선초의 문신으로, 최영 장군의 손주사위이다. 고려 우왕 12년(1386) 문과에 급제하여 춘추관검열, 전의시승 등을 지내고 조선 태조 때에는 예조의랑, 이조참의, 예문관대제학, 우의정의 벼슬을 했다. 사람됨이 소탈하고 조용하며, 효성이 지극하였으나, 조정의 중요한 일을 의논할 때는 과감하게 일을 처리하였다. ‘행단(杏壇)’이란 선비가 학문을 닦는 곳이라는 뜻인데, 이곳은 우리나라 일반 백성이 살던 집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집의 마당에는 600년이 된 은행나무 2그루가 서 있고, 뒷동산에는 느티나무 ·전나무·감나무 들이 넓은 숲을 이루고 있다. 또한 집 앞의 개울가에도 느티나무·버드나무 등이 많이 자라고 있으며, 담장 안 마당에는 채소밭도 만들어져 있다. 이 집을 통해 조선 전기 민가의 모습을 잘 알 수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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