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0년 11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조선을 일으킨 땅, 함흥"이라는 제목으로 테마전을 하고 있다. 중앙박물관에서는 테마별로 특별기획전을 계속하고 있는데,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여러 유물들을 테마에 맞게 모아서 주제에 대해서 일관성이 있는 전시회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특별한 느낌없이 지나쳤었는데 최근에 박물관을 자주 들러다보니 각 테마에 따른 유물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상당히 알차고 가치있는 전시회가 되고 있다. 유물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도 되지만 박물관 나름대로 아주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주고 있다.
"조선을 일으킨 땅, 함흥" 특별전은 조선을 창건한 태조 이성계의 고향 함흥에 대한 여러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함흥에 남은 태조의 흔적은 주로 함흥본궁이 중심이 되고 있으며, 조선후기 숙종 때부터 영조, 정조 연간에는 태조와 4대조의 행적이 남아 있는 함경도의 조종 사적을 정비하거나 새롭게 발굴하여 현창하는 사업이 국왕의 주도로 시행되었다고 한다. 특히 현종때 함경감사를 지낸 남구만이 풍패지향으로서 함흥을 재조명하고 북방방위에 기여하고 많은 사업들을 시작했으며, 영.정조때 성역화 사업이 크게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함흥이 북한땅에 소재한 했고, 특별히 가시적인 유물이 많지 않은 까닭에 함흥을 그린 그림이나 지도, 기록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이번 전시는 조선창업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 유익한 전시회인 것 같다.
함경내외 십경도 중 함흥본궁 정전을 그린 그림이다.
팔준도첩 중 유린청. 이 말은 태조의 여덟준마 중 하나인 유린청은 황산대첩에서 대승을 거둘 때 탔던 말이다. 함흥에서 났으며, 태조가 가장 아꼈다고 한다. 갈기를 휘날리며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원래 그림은 세종때 많이 그려졌다고 하는데 이 그림은 조선후기에 그려진 그림이다. 실제 말의 모습과는 많이 동떨어진 이상적인 준마의 모습이라고 한다.
함흥본궁송. 정선화첩에 수록된 그림이다.
왜관 수도원 소장 '정선화첩'에 수록된 그림으로, 함흥본구에 있는 태조의 수식송을 그렸다. 본궁의 건물 위로 가지를 길게 내린 굵직한 고송을 표현했다. 화면에 감도는 그윽한 부위기는 유적에 깃든 건국의 오랜 역사를 드러내주는 듯하다. <출처:중앙박물관>
함흥본궁을 그린 그림
팔준도첩
태조가 탔던 여덟마리 준마를 그린 화첩이다. 여덟마리 준마는 고려말 뛰어난 무용으로 북방 이민족과 왜구를 몰아내어 백성을 도탄에서 건진 이성계의 공적을 상징한다. 특히 세종 때는 이들을 그림으로 그려 '팔준도'라 이름하고 집현전 학자들로 하여금 글을 짓게 하였다. 이 화첩은 세종때의 팔준도 전통을 계승한 조선후기 작품으로 생각된다. 화첩의 말들은 모두 비범하고 건장한 생김새를 자랑한다. 윤곽을 또렷이 그리고 저마다의 개성 있는 모습을 표현하였는데, 전쟁터를 누미던 거친 준마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황공 귀족들의 호사적이 취향을 반영하고 있다. 이성계의 일생을 칭송하려는 목적에 맞게 이성적인 명마의 모습으로 그려진 준마도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산이 감싸고 물이 휘돌아 신령한 곳이 되니
지세가 융창하여 도읍에 하당하여라
천년 왕업이 여기서 일어났는데
성조의 위풍 늠름한 것이 생전과 같네."
- 정온(1559~1641)의 '동계집' 중 -
함흥부 지도. 함흥부 북관여지도에 남구만이 정의한 함흥십경과 영조때 문신 위창조가 정리한 북도능전지, 기타 함흥의 명소들 위치를 표시한 안내판이다.
* 함흥십경
1) 함흥본궁: 태조가 왕이 되기 전 살던 집으로, '함흥차사'라는 말이 유래한 곳.
2) 제성단: 태조가 태백성에 제사를 지낸 곳.
도련포 목장에 있으며, 이 곳에서 태조가 타던 말 유린청과 현포가 남.
3) 격구정: 남구만이 태조가 왕이 되기 전 격구하던 곳에 지은 정자
4) 광포: 함흥 서남쪽 해안의 석호로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함.
5) 지락정: 남구만이 건립한 정자로, 함흥부 한 가운데 있음.
6) 낙민루: 함흥부 서쪽에 있는 누각으로, 만세교가 내려다 보임.
7) 일우암: 성천강 상류의 바위.
8) 구경대: 함흥 남쪽 바닷가에 높이 솟아 있는 벼랑으로, 일출이 유명함
9) 백악폭포: 천불산의 유명한 폭포.
10) 금수굴: 백운산에 있는 석굴
* 북도능전지에 실린 함흥의 왕릉들
11) 덕안릉: 태조의 고조부 목조와 효공왕후의 능.
12) 의릉: 태조의 조부 도조의 능
13) 순릉: 조조의 조모 경순왕후의 능
14) 정화릉: 태조의 아버지 환조와 의혜왕후의 능
15) 경흥전: 태조의 옛집으로 정종과 태종이 태어난 곳.
16) 독서당: 태조가 왕이 되기 전 초당을 짓고 독서하던 곳.
정조 21년 독서당구기비를 세움
* 함흥의 주요유적지
17) 함흥읍성: 반룡산 기슭에 성천강을 끼고 축성된 성으로 함흥부의 치소가 있음
18) 만세교: 성천강을 건너 함흥부로 들어가는 다리로 함흥의 명물
19) 황초령비: 신라 진흥왕이 568년 이 지역을 순수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
20) 문회서원: 이이, 성흔 등을 모신 함흥의 대표적인 서원
21) 치마대: 태조가 왕이 되기 전 말을 타며 무예를 연마하던 곳.
정조 21년 치마대구기비를 세움
22) 흥남항: 함흥 동남쪽에 있는 유명한 항구
풍패지향, 함흥
아름답고 풍요로운 도시 함흥은 함경남도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이다. 이성계의 4대조가 대대로 함경도 지역을 터전으로 하여 가계를 일구어 왔던 역사로 인해, 조선시대 이 지역은 왕조의 발상지, 이른바 풍패지향으로서 전에 없던 역사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선조의 왕릉을 비롯하여, 함흥본궁, 독서당, 격구정 등 태조의 발자취가 어려 있는 함흥의 사적들은 풍패지향으로서 함흥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각종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함흥을 칭송하는 글 또한 왕조 창업의 역사를 간직한 유서깊은 도시의 역사를 전해준다.
성진완월. 현종때 별시 감독에 참여한 관리들이 지은 글들을 모은 화첩이다.
현종5년 북관별시를 감독하기 위해 조정에서 판견된 사관 등 수행들이 길주에서 가졌던 모임을 그리고 이때 지은 시를 수록한 화첩이다. 17세기 중반은 함경도 변방에 대한 조정의 관심이 커져 나가던 시기이다. 수록된 시를 통해 함경도 변방에서의 관료들의 정서들을 살펴 볼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북새선은도권. 함흥에서 열린 과거 급제의식을 묘사한 그림이다. 의궤처럼 행사를 기록한 기록의 의미를 갖는 문서이다.
현종 5년(1664)에 함경도 백성을 위해 마련한 과거 시험인 북관별시를 기념하는 두루마리이다. 길주에서 치른 과거 시험 장면과 함흥에서 열린 과거 급제 의식 장면을 그리고 시험을 주관한 관료들의 명단과 시험문제, 합격자 명단 등을 기록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북관별과도. 함경도 길주에서 시행한 별과 시험을 보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함경도 별시
조선시대 함경도는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의 낙후된 지역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17세기 중반 무렵부터 북방 방어의 중요성과 함께 지역의 민심을 다스리고자 하는 조정의 관심이 커졌고, 여러 민생 정책이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현종 5년(1664)의 함경도 별시는 함경도 민심을 위로하기 위해 거행된 성대한 과거 시험이다. 과거 급제 의식 장면을 그리고, 참여한 관료의 명단을 수록한 '북새선은도권'을 통해 함경도에 대한 인식과 정책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함경내외 십경도 중 지락정.
함흥부 중앙에 자리한 지락정의 위치와 지락정에서 보이는 넓은 경관을 보여주기 위해, 성 밖의 함흥본궁과 멀리 해안가의 격구정을 포함하여 성천강과 함흥벌까지를 널게 조망하였다. 지락정은 물론 그 앞의 관아, 객사인 함산관, 뒷편의 향교, 성곽의 문루, 본궁, 격구정 등 글에 등장하는 중요한 건물은 노란색으로 강조하였다. 낙민루나 만세교 등 이미 알려진 함흥의 명소는 연운으로 살짝 가려 그림의 주제인 지락정에 시선이 집중된다. <출처:중앙박물관>
함경 내외 십경도
남구만의 '함흥십경도기'와 '북관십경도기'에 수록된 20경 중 함흥의 제성단을 제외한 19경의 그림에 남구만의 글을 붙인 화첩이다. 남구만이 처음 그리게 했던 함흥십경도와 북관십경도 원본에서 파생된 그림이지만, 그가 처음에 의도했던 경관을 충실히 계승했다고 여겨진다. 남구만은 1671년부터 4년간 함경도 관찰사에 재잭하면서 함경도 지도를 그리고, 현지 상황에 근거한 북방정책을 전달했다. <함흥내외십경도>의 그림에는 성벽과 주요 건물, 중요 행정 및 군사 시설 등이 적극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북방 지역에 대한 남구만의 지리적 관심과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남구만 초상(보물1484호).
남구만의 저서 '약천집'. 그의 문집 중에 함흥십경을 그리게 한 후 그 느낌을은 글을 그의 문집에 실었다고 한다.
남구만은 함경도 관찰사로 제직하던 시절 함흥과 북관의 명승을 10곳씩 선정하여, 각각의 장소를 그리게 한 후 '함흥십경도기'와 '북관십경도기'를 지었다. 이글의 그의 문집인 '약천집' 권 28에 수록되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남구만과 함흥십경
남구만은 효종, 현종, 숙종 때의 문신이다. 1671년부터 4년 동안 관찰사를 지내면서 얻은 지리적 경험과 인식을 바탕으로, 북방의 옛 영토 회복을 주장하며 조선후기 북방 정책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함경도 관찰사 시절, 함흥을 비롯하여 북관 지역에 있는 명승 사적을 대상으로 함흥십경과 북관 십경을 설정한 후, 이를 그리게 하고 각각의 장소에 대해 해설한 '함흥십경도기'와 '북관십경도기'를 지었다. 남구만의 글과 그가 창안한 경관은 이 지역을 대표하는 이미지로서 후세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북도능전지
함경도에 있는 왕릉과 본궁, 각종 전우 등 왕실의 사직과 관련된 기록을 두루모아 엮은 책이다. 영조 23년에 함흥출신의 문신 위창조가 지었다. 영조는 책을 받아 본 후 내용을 보완하게 하고, 어지 서문을 붙여 '북도능전지'를 간행했다. <출처:중앙박물관>
북도능전지
위창조가 지은 '북도능전지'를 보완하여 1758년 함경 감영에서 간행한 책이다. 모두 8권 3책으로 하여 차례대로 익조의 지릉, 익조왕후의 숙릉, 도조의 의릉, 도종왕후의 순릉, 환조와 왕후의 정화릉, 영흥에 있는 태조의 진전 준원전, 함흥에 있는 태종의 잠저 경흥전, 영흥본궁, 함흥본궁을 각 구너에 편차하였다. 각 권은 소항목을 두어 관련 사항을 상세히 기술하였고 각종 문헌에서 발췌한 기록을 실었다. 함경도 지역에 있는 왕실 관련 서적들만을 모아 간행한 책으로, 이후 왕실의 고향인 함경도 지역을 이해하는 기본 서적으로 알려졌다. <출처:중앙박물관>
함흥본궁 북도각릉전도형. 북도능전지에 실린 함흥본궁 그림이다.
태조의 4대 선조인 목조.익조.도조.환조와 왕후의 능을 그린 왕릉도 6점과 준원전.경흥전.영흥본궁.함흥본궁.흑서리.독서당 등 왕실 관련 전우의 그림 6점을 모은 화첩이다. 함경도 지역에 있는 왕실의 사적을 풍수도와 같은 길지 형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성역으로서의 의미를 강조하고 조종의 업적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영조 때 적극 추진되었던 함경도의 왕실사적 현장 사업을 배경으로 제작되었다고 생각된다. <출처:중앙박물관>
정조어필 독서당구기비명 탁본. 정조가 독서당 자리에 비를 세우면서 새긴 글이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옛날 우리 성조께서 북방에서 나라를 일으키시고
날마다 설봉 서당에서 독서하시면서
우리들 자손 만년 왕의 길을 터 놓으신 것이다.
그리하여 큰 비에 명을 새겨
큰 공로를 빛내고 그 경광을 뵈오려는 것이다."
함흥부에서 동쪽 15리쯤 되는 곳에 마을이 있는데 이름이 귀주이고, 산이 또 있는데 이름은 설봉이다. 거기서 바로 우리 왕업의 발상지로서 성조꼐서 시냇가 반석 위에다 초당을 지어 놓고 그 안에서 독서하시다가 왕위에 오른 후 경흥전을 지었는데, 전과 초당과의 거리는 약 3리 정도로 가깝다. 이 소자가 왕위를 이어받은지 21년 되는 정사년 10월에 비를 세워 독서당구기라고 삼가 쓰고는 이어 이상과 같은 명을 새긴 것이다.
- 정조, 홍재전서 권15 독서당구기 - <출처:중앙박물관>
풍패빈흥록. 정조때 치른 별시 합격자 명단과 우수답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정조 19년(1795)에 함흥본궁의 풍패루에서 치른 과거 시험의 합격자 명단과 우수한 답안을 모아 규장각에서 편찬한 책이다. 이때에 정조는 환조를 영흥본궁에 추향했는데, 이 시험은 환조 추향을 기념하기 위해 함흥과 영흥의 선비와 무인을 대상으로 거행한 것이었다. 책 서두에는 환조 재향의 사실과 함께 경하하는 연구시가 실려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정조어필 치마대구기비명 탁본. 정조가 태조 이성계가 말달리던 치마대에 세운 비석에 쓴 글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저 우뚝한 산
구불구불 신룡이 서리어 있는 듯
옥룡을 타고 삼한을 다스리다가
우리에게 억만년 태산 반석 같은 기반을 남기셨다네."
함흥부 북쪽에 반룡산이 있는데, 두 봉우리가 앞뒤로 맞보고 있고 그 가운데는 숫돌같이 평탄한 길이 나 있는데, 우리 성조께서 늘 그곳에서 말을 달렸으므로 후인들이 그곳을 치마대라고 이름하였다. 옛날 기산 남쪽에서 물가따라 말을 달렸던 태왕과 똑같이 빛나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 사실을 노래로 만들고, 그 가락을 관현에다 올려 영원히 전햐야 할 것이다. 이 소자가 왕위를 이어받은 지 21년이 되는 정사년 10월에 독서당 명을 쓰고 나서 이 대에도 비를 새겨 세웠다. 성조가 타시던 팔준마는 횡운골, 유린청, 추풍오, 발전자, 용등자, 응상백, 사자황, 현표인데, 그 산 이름이 반룡이니 여기에서 지령의 효험과 신기한 하늘의 조화를 징험할 수 있는 것이다. - 정조, 홍재전서 권15 치마대구기비명 -
<출처:중앙박물관>
함경도의 조종 사적현창
숙종 때부터 영조, 정조 연간에는 태조와 4대조의 행적이 남아 있는 함경도의 조종 사적을 정비하거나 새롭게 발굴하여 현창하는 사업이 국왕의 주도로 시행되었다. 영조 때 그려진 '북도능전도형'은 조종 사적을 시각적으로 기록하고 성역화한 화첩으로 주목된다. 정조는 영조를 계승하여 함경도의 조종 사적을 새롭게 발굴하고 기적비를 세움으로써 건국의 위업을 칭송하고 왕조의 위상을 드높였다. <출처:중앙박물관>
함흥본궁 정전
함흥본궁에 있는 태조의 활과 화살
함흥본궁에 있는 태조의 사립
"... 본궁에 들어가니, 궁전이 광할한데 분장으로 두루 싸고 백토로 기와용마루를 칠하고 팔작 위에 기와로 사람처럼 만들어 화살 멘 것, 공속하고 선 것, 양마지속을 다하여 앉혔으니 또한 봄직 하더라. 궁전에 들어가니 집은 그리 높지 아니하되 넓고 단청채색이 영롱하여 햇빛에 조요하더라..."
"... 다 보고 나오니 들 앞에 반송이 있는데, 키 작아 손으로 만져지고, 퍼진 것이 양산같고 약간 누른 잎이 있고 노송이로되, 새로웠으니 다 친히 심으신 것이 여러 백년이 지났으되 이리 신신하니 어찌 기이치 아니하리요. "
- 의유당 남씨, 동명일기 중에서 -
함흥, 또 다른 기록
현창 사업으로 인해 함경도의 조종 사적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함경도 지역이 눈에 띄게 성장함에 따라 많은 문인 관료들이 함흥을 방문하였다. 이들은 함흥 본궁을 비롯한 풍패의 사적을 돌아보고 다양한 기록을 남겼다. 이 기록들은 성역으로 여겨져 온 함흥의 사적이 객관적인 서술의 대상으로 점차 바뀌어 감을 보여준다. 함경도 역사.문화의 중심도시인 함흥의 유적.유물은 사진이라는 새로운 매체에 의해 기록되었으며, 함흥본궁에는 함흥역사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진흥왕 순수비 황초령비 탁본
황초령비는 568년 진흥왕이 이 지역을 순찰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한동안 소재를 모른 채 탁본이 전해지고 있었는데, 김정희가 1882년 함경감사로 부인한 권돈인에게 부탁하여 피편을 찾아냈다. 이후 1852년에 김정희 문하의 윤정현이 부임하여 황초령 아래 진흥리로 옮겨 복원하고 비각을 세웠다. 윤정현은 그 내력을 기록한 이건비를 함께 세웠고, 김정희에게 글씨를 부탁하여 "진흥북수고정"이라는 헌액을 걸었다. 현재 황초령비는 마운령비와 함께 함흥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관서관북도
함흥부 북관여지도
조선후기에 제작된 함경도의 군현지도책이다. 군사적 성격이 강한 지도로, 관에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국방 강화의 일환으로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출처: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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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위성사진으로 본 함흥본궁과 함흥읍성이 있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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