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 세종대를 중심으로 조선은 천문학은 물론 수학, 도량형, 의약학, 농학, 화약과 무기제조 등 모든 과학 기술분야에서 괄목할만한 발전을 보였다. 그 중 가장 뛰어난 발전은 우리고유의 문자인 한글을 창제했다는 것이다. 표의 문자인 한자를 대신한 표음문자를 사용할려는 의도는 신라시대 이두를 비롯하여, 일본어, 북방유목민의 문자인 거란어, 몽골어, 만주어 등 다양한 시대가 있었고 실생활에도 많이 사용되기도 했지만, 한글만이 거의 유일하게 민가생활에 깊게 뿌리내리어 오늘날까지 공식적인 문자로 자랑할만한 발자취를 남겨오고 있다.
중앙박물관 조선실에는 조선 전기의 과학업적을 대표할 만한 여러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그런 유물이 희귀하다보니 상당수는 복제품을 전시하고 있다. 태종때 만들어진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관삼감 측우대와 측우기', '훈민정음언해본' 등은 대표적인 과학기술 유물이지만 그 원본의 가치가 워낙 높고 귀하다보니 중앙박물관에는 복제품을 잘 전시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복제품을 전시해 놓고 있다. 또한 군사유물로 서울시청 공사현장인 엣 군기감터에 발굴된 무기류들 또한 이 곳에 볼 수 있다.
조선 최초의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현재 전시되고 있는 것은 복제본으로 원본은 일본 류코구대학에서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일본을 비롯하여 당시에 알고 있던 지식을 총망라하여 만든 세계지도로 우리나라를 실제보다 크게 그려 놓고 있다.
이 지도에는 세계 여러나라의 지명 130여개를 표시하고 있는데, 실측 지도라기보다는 정보를 표현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는 지도이다. 중국의 자료를 많이 참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와 중국 중심부의 지역 및 하천 등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태종 2년(1402) 권근의 주도 하에 김사형, 이무, 이회 등이 제작한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지도이다. 중국과 일본의 지도를 바탕으로 세계의 영토에 대한 정보를 집대성하였다. 조선 초의 세계인식을 잘 보여주며, 세계 여러 나라의 지명 130여 개를 표시하는 등 당시의 지리정보를 충실히 담아내었다. <출처:중앙박물관>
관삼감 측우대와 측우기
측우대는 철로 만든 원통형의 측우기를 올려놓는 받침돌이다. 이 측우대는 세종 대 천문.지리.역수 등을 맡아 본 관청인 관상감에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을 복제한 것이다. 측우대 위에 놓여있는 측우기는 측우대의 구멍에 맞추어 복원한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세종 대에는 천문학은 물론 수학과 도량형, 지리학, 의약학, 농학, 화약과 무기제조, 인쇄 등 모든 과학기술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발전을 보였다. 이는 동양의 옛 제도에 대한 연구를 통해 조선의 특성을 반영한 세종 대의 유산이었다. 특히 천문학은 왕조의 권위와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학문으로서, 대표적인 성과로는 독자적인 역법인 <칠정산>의 완성과 자격루, 앙부일구, 간의, 측우기, 수표와 같은 천문.기상 관측기구의 제작을 들 수 있다. 무기 제조 분야에서는 조선식 총통완구와 다연발 로켓 발사대인 화차가 개발되었다. 2009년 군시시터로 추정되는 서울시 청사 부지에서 명종 18년(1563) 제작되었다는 명문이 새겨진 불랑기자포와 승자총통 등이 출토되어 16세기 이후에도 세종 대의 화약 무기 제조기술이 계승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조선서대 군사훈련서, 병장도설
성종 23년(1492)에 간행된 군사훈련서인 <진법>을 영조 16년(1742)에 개명하여 재차 간행한 책이다. <진법>은 군제와 군사의 조련에 관한 책인데, 영조 대에 선대의 유업을 널리 펴려는 목적으로 다시 간행하면서 <병장도설>로 이름을 바꾸었다. 조선 전기의 중앙군사 조직인 오위제에서 시행한 군사훈련법이 그림과 함께 설명되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화약이 담긴 청동그릇, 조선전기
쇠로만든 큰 화살의 촉과 날개
불랑기포에 실탄을 장전하는 자포인 불랑기자포. 조선후기 대표적인 화포로 서양(아마도 포르투갈)에서 전해진 것을 기본으로 만들어진 무기이다. 명중율과 파괴력은 높지 않으나, 운반과 사용의 용이성 등으로 인해서 육상에서 사용된 화포의 주력으로 구한말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청 공사현장에서 발굴된 유물이다.
불랑기포는 조선시대 서양에서 전해진 신형 대포의 일종이다. 서울시 신청사 부지에서 발굴된 것으로, 홈통에 명문이 새겨져 있어 1506년에 75근 8량을 들여 김석년이라는 장인이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보물 제861호 불랑기자포와 제작연대와 형태가 같다. <출처:중앙박물관>
휴대용화기인 승자총통. 서울시청사 공사터에서 발굴되었다.
서울 신청사 부지의 한 건물터에서 여러대의 휴대용 화기가 엉겨 붙은 상태로 출토되었다. 이로 미루어 이 건물터는 조선시대 무기의 제작을 맡았던 관청인 군기시의 부속 건물로 추정된다. 부속시설로는 야로소, 조갑소, 화약감조청, 궁전소 등이 있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빛나는 우리소리 한글
조선시대의 가장 획기적인 발명은 한글이었다. 표의문자인 한자 대신 우리말을 소리대로 표현할 수 있는 우리 글자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세종대 집현전을 중심으로 언어와 문자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배경속에서 세종 25년(1443)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이어 3년 뒤에는 이를 해설한 책 <훈민정음 해례본>을 반포하였다. 훈민정음 초성의 기본자음인 'ㄱ,ㄴ,ㅅ,ㅁ,ㅇ,'은 '혀,치아,입술,목구멍' 등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 떠 만들었고, 중성인 '.,ㅡ,ㅣ'는 각각 '하늘과 땅, 사람' 삼재의 모양을 본 떠서 만든 세 글자를 기본으로 하였다. 초성과 중성 모두 기본 글자에 획을 더하여 글자를 만들어, 음양오행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훈민정음은 그 원리와 조직이 과학적이고 어떤 소리든 원형에 가깝게 표현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출처:중앙박물관>
훈민정음을 풀이한 책, 훈민정음 해례본(복제품), 국보 70호인 이 책은 간송미술간에서 소장하고 있는데 일반에는 잘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이 박물관에서 복제본이라도 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뒤 세종 28년(1446) 백성에게 반포한 책이다. 세종이 지은 서문에 이어 해석과 쓰임법인 용례, 정인지의 서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이름은 '훈민정음'이며, 해석과 용례가 함께 있는 것이 특징이므로 보통 '해례본'이라고 부른다. <출처:고궁박물관>
조선왕조의 창업을 칭송한 노래, 용비어천가
훈민정음이 창제된 후 한글로 엮은 최초의 책으로 15세기 언어와 문학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조선왕조가 하늘의 뜻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읊은 노래 가사와 그 배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궁중 연회에서 연주되었으며 모두 125장이다. 집현전 학사인 정인지, 성삼문, 박팽년 등이 간행에 참여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오대산 상원사를 다시 세우며 쓴글(복제품), 월정사성보박물관 소장하고 있는 국보 292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반정에 의해 왕위에 오른 세조이지만 월인석보상절을 비롯하여 한글 사용에 가장 공이 큰 사람 중의 한사람이다.
세조10년(1464) 세조의 총애를 받던 신미스님 등이 상원사를 새롭게 단장하면서 임금의 만수무강을 빌고자 지은 글이다. 한글로 번역된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필사본이다. 신미스님이 부처님께 기도한 일을 전해들은 세조가 쌀, 무명, 베 등을 보내면서 쓴 글도 신미스님의 기원문과 함께 실려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금속활자에 담은 한글
<훈민정음> 반포 이후에 한글로 번역한 언해본의 간행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한글 금속활자도 제작되었다. 언해본은 충신.효자.열녀의 모범 사례를 모은 <삼강행실도>를 비롯하여 사서삼경 등과 같이 조선이 지향한 성리학적 가치를 백성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한 내용이 많았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한글 금속활자는 세조7년(1461) 간행한 <능엄경언해>에서 한자로 된 활자인 을해자(1455)와 같이 사용된 '을해자 병용 한글 활자'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을해자와 함께 사용된 한글 금속활자, 을해자병용 한글 금속활자
언해본이 지속적으로 간행되면서 이를 위한 한글활자도 제작되었다. 이 활자는 <능엄경언해> 등에서 을해자와 함께 쓰인 한글 금속활자라 하여 '을해병용 한글 금속활자'라고 불린다. 이후 <아미타경언해>, <두시언해> 등의 인쇄에 사용되었고, 선조 대 언해된 경서에도 사용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을해자로 찍은 능엄경, 능엄경 언해
세조가 직접 번역하고 세조7년(1461)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능엄경>의 한글 번역본이다. 온전한 불교경전으로 가장 먼저 언해된 것으로 15세기 국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한문 부분은 세조 1년(1455) 주조한 금속활자인 을해자를 사용하였다. 함께 사용한 한글도 금속활자를 사용하여 제작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생활에 스며든 한글
한글이 창제된 후 문맹 상태에 있던 많은 백성들이 한글을 익히면서 언어생활이 윤택해졌다. 대부분의 책과 문서, 편지 등은 한문으로 쓰였으나, 점차 왕실이나 사대부, 특히 여성과 일반백성들 사이에서 꾸준히 한글 사용이 확대되었다. 백성들은 한자라는 언어 장벽으로 막혔던 민원을 해소하고, 친지간에 서신을 왕래하는 등 일상생활에서 적극적으로 한글을 활용하였다. 사대부들이 향유한 한문 문학 외에도 한글로 쓴 시조나 가사, 설화와 소설들이 등장하였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농서나 의학서, 요리법을 적은 책 등도 한글로 간행되었다. 또, 사리기를 싸는 보자기나 여성들의 생활소품, 그릇 등의 뒷면에 한글을 써 넣는 등 생활주변의 집기에도 한글을 활용하였다. 이렇듯 한글은 창제 이후 꾸준히 사용되다가 조선후기 한글 문헌의 간행이 활발해지고 사용범위가 확대되면서 점차 문자생활으 주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원이 엄마가 죽은 남편에게 보낸 한글편지, 이응태묘 출토 간찰 -만사. 한글로 쓴 이 편지는 죽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구구절절 한글로 잘 표현하고 있다.
안동시 정상동에 있던 이응태의 무덤에서 출토된 한글편지이다. 그의 부인이 31세의 젊은 나이로 숨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적어 관 속에 넣어둔 것이다. 이 편지는 함께 출토된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와 더불어 조선시대 부부의 사랑을 생생하게 읽을 수 있는 자료이다.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시와 한문편지, 복식 등도 함께 출토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 한글편지 내용,
원이 아버지에게, 병술련 초하룻날 아내가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떠나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고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을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루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시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건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한글 '해안군'이 적혀 있는 청동병
'해안군'이라는 한글이 새겨진 청동으로 만든 병이다. 해안군이라는 칭호를 가진 인물은 중종의 아들 이회와 선조의 왕손 이걱 두명이 있다. 기형으로 보아 이 청동병은 중종의 아들인 해안군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중앙박물관>
어린이용 한자자습서.
1577년 최세진이 지은 어린이용 한자 자습서이다. 최세진은 당시 한자 학습에 사용된 책들이 실제 사용되는 글자를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고 비판하여 초목, 자리, 복식 등에 쓰이는 글자들 위주로 이 책을 편찬했다. 상.중.하 각권에 1,120자씩 총 3,360자를 수록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
허균이 지은 최초의 한글소설이다. 적서 차별을 타파하고 부패한 정치를 개혁하려는 그의 혁명사상을 저술하였다. 길동은 홍판서의 서자로 태어나 천대를 받고 자라다가 집을 뛰쳐나와 활빈당을 조직한다. 양반계급을 괴롭히고 가난한 양민을 돌보다 조정의 회유로 병조판서까지 되었으나 고국을 하직하고 율도국에 정착해 이상적 왕국을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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