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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가야실] 가야의 철제 무기

younghwan 2011. 4. 3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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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동남쪽 낙동강 중하류에 위치한 가야는 고대국가로 오랜기간동안 존재해왔으며, 연맹체국가로서 김해지역의 금관가야, 고령의 대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창녕의 비화가야 등 여러지역에 근거지를 두었고, 지배계층의 고분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기때문에 오늘날 상당히 많은 유물들을 남겨놓고 있다. 주로 고분의 부장품으로 묻어둔 유물들이 대부분인데, 그들의 사후세계관을 반영하는 많은 토기류와 철제무기, 장신구 등이 있다.

 가야지역은 고조선시대 이래로 중국.한반도.일본과의 해상무역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지역에서 생산되는 철을 기반을 상당한 부를 축적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배계층의 권위를 나타내는 무덤의 부장품으로 철제무기류들이 출토되고 있는데 상당한 수준의 금속가공기술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가야는 변한의 옛 땅인 낙동강 중하류에서 풍부한 철 자원을 기반으로 성장하였다. 전기의 가야은 경남 김해지역의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바닷길로 낙랑과 왜에 철을 공급하면서 국제 교역의 중심이 되었다. 3세기 후반에는 새로이 북방게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세력이 더욱 강해졌다. 후기에는 경북 고령지역의 대가야가 중심국으로 성장하였는데, '대왕'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와 화려한 금관이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 신라, 백제와 힘을 겨룰만큼 강한 세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가야 문화의 특징은 구덩식돌덧널무덤, 부드러운 곡선미의 다양한 토기, 많은 양의 철제무기류와 금.은 상감기법 등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김해 대성동, 함안 도항리, 합천 옥전, 고령 지시산리 등지의 가야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수준 높은 가야 문화를 보여 준다. <출처: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철갑옷과 투구, 철제 무기로 중무장한 무사. 지금 기준으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무장을 하고 있다. 연맹체 국가였던 가야는 여러곳에 지배층의 무덤이 고분군을 남겨 놓았으며, 부장품으로 많은 철제무기류들이 출토되고 있다.

갑옷과 투구
갑옷과 투구는 적의 공격에서 전사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장비이다. 가야의 갑옷은 넓은 철판을 연결하여 만든 판갑옷과 작은 철판을 물고기 비늘처럼 엮어 만든 비늘갑옷으로 구분된다. 비늘갑옷은 보병들이 착용하는 판갑옷과는 달리 몸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어서 기마병이 주로 착용하였다. 투구는 챙이 달린 모자형과 긴 철판을 이어 붙여 둥근 그릇모양으로 만든 복발형이 있다. 투구의 정수리 부분에는 새의 깃털처럼 생긴 여러 가지 장식을 붙이기도 하였다. 갑옷과 투구는 주로 큰 무덤에서 출토되고 있어 당시 지배자들의 상징물로 보기도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철갑옷, 5~6세기, 함안 도항리 무덤에서 출토된 판금갑옷으로 중세 유럽의 중무장한 기사를 연상시키는 갑옷이다. 갑옷에는 판금갑옷과 미늘갑옷이 있는데, 유럽의 기사와는 달리 주로 보병들이 판금갑옷을 입었다고 한다.


갑옷틀, 4~5세기, 경산 임당동 저습지에서 출토되었다. 갑옷의 제작에 사용된 나무틀로 갑옷에 사용될 철판을 이 틀에 맞추어 곡선을 조정하거나 다듬는 작업을 한 것으로 보인다.


판금갑옷을 만드는 공정


회장판갑옷과 앞이 각진 투구, 어깨가리개가 함께 있는 5세기경에 갑옷이다. 대가야의 수도인 고령 지산동 고분에서 출토되었다.


투구, 5~6세기, 고령 지산리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철판 50여개를 2단으로 배치하고 못을 박아 만든 투구이다. 둥근 형태의 챙에는 삼각형 구멍이 뚫려 있다.



투구, 5~6세기, 합천 반계제 무덤에 출토되었다. 작은 철판을 가죽끈으로 서로 이어 붙혀 만든 투구이다. 정수리 부분에 금동관모가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신분이 높은 사람이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합천 옥전동에서 출토된 투구를 복원한 모습. 철의 나라라고 불린 가야답게 금속을 가공하는 기술이 뛰어났던 것 같다.


지역별 가야의 투구

가야의 말갖춤
말갖춤은 말을 다루는데 필요한 재갈.굴레.고삐와 말을 탄 사람의 안정을 위한 발걸이.안장.가슴걸이.뒤걸이. 그리고 장식용의 꾸미개.말방울.기꽂이 등을 말한다. 가야의 말갖춤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지만 차츰 가야 특유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초기에는 장식적인 면보다 실용적인 면을 중시하였으나 5세기 이후부터 신라, 백제의 영향을 받아 화려한 무늬와 금.은 등으로 호화롭게 장식한 말갖춤을 많이 사용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말머리가리개, 5세기, 부산 복전동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고구려 철기병을 연상시키는 금속판금으로 만든 말머리가리개이다. 전투할 때 말을 보호하기 위해 말의 얼굴에 씌운 것이다. 얼굴 덮개, 볼 가리개, 챙으로 구성된다. 고구려의 무덤벽화에서 많이 보인다.


재갈, 4~5세기, 김해 대성동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말을 다루기 위해 입에 물리는 도구이다. 무덤에서 다양한 형태의 것이 출토되며 금.은으로 장식된 것도 있다. 가야의 기마문화와 관계가 깊다.


발걸이, 5~6세기, 고령 지산리 무덤


청동 방울, 5~6세기, 함안 도항리 무덤


얼굴모양 청동 방울, 5~6세기, 경상도 지역


금동 말안장 꾸미개, 5~6세기, 경상도지역, 말 등에 안전하게 앉아 있을 수 이도록 제작된 안장 앞.뒷면의 꾸미개이다. 정교한 용무늬가 뚫린 금동판을 부착하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은 말띠꾸미개(경남 의령 정상리 무덤), 금동 말띠드리개(함안 도항리 무덤)


금동 말띠드리개, 고령 지산리 무덤, 합천 옥전무덤, 부산 복천동무덤에서 출토되었다.


기꽂이, 5~6세기, 합천 옥전 무덤. 말안장의 뒤쪽에 붙여 기를 꽂는 것이다. 무사의 위엄과 화려함을 더해주며, 고구려의 무덤벽화에서도 보인다.

가야의 무기
무기는 기능에 따라 적을 살상하는 칼.창.화살.도끼 등의 공격용 무기와 적의 공격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갑옷과 투구.방패 등의 바어용 무구로 구분할 수 있다. 가야의 무기 가운데 용과 봉황을 장식한 고리자루칼과 세잎고리 자루칼은 지배자의 신분과 연맹 사이의 결속을 다지는 상징물로 추정된다. <출처:중앙박물관>


도끼(5세기, 부산 당감동 무덤)와 굽은 칼(김해 대성동 무덤)


고리자루칼, 5~6세기, 고령 지산리 무덤, 부산 반여동 무덤, 합천 옥전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칼 손잡이의 뒷부분에 둥근 고리가 달려 있고 금.은으로 장식한 용이나 봉황 등의 무늬가 표현되어 있다.

 
고구려을 비롯하여 삼국시대 국가들에서 주로 사용한 환두대도라고 불리는 고리자루칼이다. 다양한 형태의 고리장식을 하고 있다.


투겁창, 5세기, 김해 양동리 무덤


화살촉, 5~6세기, 경상도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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