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성왕때인 538년에 현 부여지역인 사비로 도읍을 옮겨 새로운 중흥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백마강이라 불리는 금강 남쪽해안 부소산성을 중심으로 도성을 쌓았으며, 현재 부소산성 입구에 해당되는 관북리에 왕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백제의 옛 도읍이었던 부여에는 중앙의 정림사지와 도성 바깥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궁남지와 부소산성을 제외하고는 유적지라고 느낄만 곳은 실제로 많지는 않다. 하지만 도성 동쪽편 왕릉이 있었던 능산리를 비롯하여 도심과 외곽에 여러 절터들이 있으며, 이들 절터에서 상당히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사비기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인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의 높은 문화와 기술 수준을 잘 보여주는 유물로 백제는 물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유물이다.
웅진에서 사비로
무령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성왕(재위523~554년)은 538년에 사비로 도읍을 옮겨 국가 번영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사비 천도 이후에도 불교를 장려하고 중앙과 지방의 통치체제를 정비하여 왕권 중심의 정치 운영 체제를 확리하였다. 또한 신라와 고구려 사이에서 영토를 회복하고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사비기에는 한성기부터 축적되어 온 백제의 문화가 절정기에 이르렀는데, 예술과 종교에서는 불교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백제 금동대향로(복제), 국보 287호, 6~7세기,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1990년대에 출토된 이 유물은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에 진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 유물은 불교국가에 가까웠던 당시 백제에서 도교적인 사상과 이상향이 잘 표현되어 있는 섬세한 유물이다. 중국 북경 자금성에는 청대에 만들어진 이런 도교적인 이상향을 표현한 옥으로 만든 여러 유물들이 있는데, 이 향로에서 표현된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제작기술이나 표현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뛰어난 유물이라 생각된다.
백제금동대향로는 높이 61.8cm, 무게 11.85kg으로 뚜껑.몸체.받침으로 이루어져 있다. 뚜껑의 꼭대기에는 한 마리의 봉황이 장식되어 있으며, 받침은 연꽃봉오리를 입으로 받치고 있는 용이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이 향로는 백제 왕실에 의해 건립된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되어 왕실의 의례에 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뚜껑에는 12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연기가 빠져 나갈 수 있고, 74개의 산봉우리와 17명의 사람, 호랑이와 코끼리, 새 등 각종 동물, 나무, 바위 등이 마치 신기루 속의 세계처럼 묘사되어 있다. 몸체에는 연꽃이 표현되어 있고, 꽃잎과 그 사이에 두 사람과 날개달린 물고기.새 등 27마리의 동물이 뛰어 놀고 있다. 이 향로는 수중세계의 용과 땅 위의 이상세계를 옮겨 놓은 듯한 뚜껑, 하늘을 상징하는 봉황 등 우주의 삼라만상을 캡슐 속에 담고 있는 듯 하다. <출처:중앙박물관>
목단지.그릇받침, 5~6세기, 논산지역 무덤
굽다리접시(6세기, 논산 모촌리 무덤), 뚜껑접시(5~6세기, 공주 도천리), 세발접시(6~7세기, 충남지역)
합, 접시, 전 달린 그릇. 7세기, 옛 사비성 왕궁터로 추정되는 관북리에서 출토되었다. 궁궐터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서 무덤 부장품이 아닌 실생활에 사용되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뼈단지, 7세기, 부여 군수리 무덤. 군수리는 궁남지 서쪽편에 있는 절터이다.
사비도성
사비도성은 왕궁을 중심으로 남쪽에 동서-남북방향의 도로가, 방어성인 부소산성이 배후에 위치하며, 도성의 바깥은 나성으로 둘러싸여 있다. 도성의 내부는 중.상.하.전.후부의 5부로, 부는 다시 항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부의 존재는 '전부' 등 행정구역 명칭이 새겨진 돌과 기와.목간 등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왕궁은 부소산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관북리 추정 왕궁터에서는 대형 건물터.도로.저장고 시설 등이 확인된다. 이 곳에서 출토된 회백색의 토기는 크기가 일정하게 통일되어 있어 사비기의 규격화된 토기 생산 모습을 보여준다. <출처:중앙박물관>
금동 나무널꾸미개, 6~7세기, 부여 능산리 무덤과 익산쌍릉에서 출토되었다. 삼신산을 표현한 꾸미개는 꽃모양 판을 나무널에 부착하여 장식하는데 주인공의 신분을 상징한다.
금동 널못, 6세기, 공주 송산리 무덤
꽃모양꾸미개, 7세기, 부여 부소산성
햇빛가리개살 꼭지, 7세기, 부여 부소산성
손잡이 달린 유리공, 6~7세기, 부여 하황리 무덤
도가니(7세기, 익산 왕궁리), 도가니(6~7세기, 부여 쌍북리). 백제에서 자체적으로 유리세공품을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유리가공기술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슬.유리조각, 6~7세기, 부여 능산리 절터
백제의 익산경영
백제 무왕(재외600~641년)은 백제 문화의 전성기를 장식했던 왕으로 익산 지역에는 왕궁리유적.쌍릉.미륵사지.제석사지 등 무왕과 관련된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왕궁리 유적은 무왕의 천도설과 관련된 곳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이 유적은 처음에는 왕궁으로 조성되었다가 뒤에 사찰로 바뀌었다. 쌍릉은 7세기에 만들어진 돌방무덤으로 부장된 나무널은 무령왕릉 나무널과 같은 일본산 금송으로 만들었으며 널 꾸미개도 화려하다. 미륵사는 미륵신앙을 배경으로 세워진 사찰로 삼국 제일의 규모를 지닌 대가람이다. 백제의 마지막 도읍은 사비지만, 익산은 백제 왕실이 멸망하기까지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어 왔던 지역이다. <출처:중앙박물관>
백제의 불교문화
백제의 불교는 침류왕 원년(384) 중국 동진에서 전래되었다. 사비기에는 정림사.왕흥사 등 많은 사찰이 지금의 부여지역을 중심으로 세워져 불교문화가 융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백제의 사찰은 중문.탑.금당.강당이 남북 일직선상에 배치되는 1탑1금당식의 가람배치를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사비기에 이르면 3탑3금당식을 갖춘 미륵사가 건립된다. 백제의 불상은 세련되고 온화한 모습이 특징이다. 서산마애삼존불.태안 마애삼존불 등은 우리나라 마애불의 시원이 되며, 군수리 석조여래좌상 및 금동보살입상은 백제를 대표하는 불상이다. 백제금동대향로를 비롯하여 많은 금속공예품들은 백제 불교문화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백제의 불교문화는 왜에 전해져 일본 불교문화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사리기, 6~7세기, 부여 왕흥사지에서 출토된 청동제 사리함, 은제 사리호, 금제 사리 사리병으로 이루어진 사리기이다. 청동제 사리함에 새겨진 글자는 577년에 사찰이 이미 낙실되었거나 찰주가 건립되었음을 말한다고한다. 부소산성에서 금강 맞은 편에 위치한 왕흥사는 위덕왕이 죽은 왕자를 위해 세운 사찰이다.
금동 부처상, 6세기 서산 보원사터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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