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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_정원

한국민속촌 한옥, 중부지방 농가 (선비계층 가옥)

younghwan 2011. 5. 2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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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인 한국민속촌에 복원되어 있는 중부지방 농가이다. 바깥쪽에 'ㄱ'자형 사랑채를 배치하고 안쪽에 'ㄱ'자형 안채를 마주 배치하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ㅁ'자형 건물 배치를 보이고 있다. 건물 동쪽편에는 별채를 따로 두고 있어서 초가지붕을 하고 있지만 상당히 규모가 큰 가옥이다. 이 건물은 농가로 이름 붙여졌지만, 지역에서 상당한 경제적 기반을 가지고 있는 선비계층이 살았던 집으로 보고 있다. 안채에는 조상의 제사를 모시기 위한 방으로 상청을 별도로 두고 있다. 이 가옥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쪽으로 사랑채를 두고 있어서 집주인이 주변사람들과 교류하기 쉬운 개방적인 가옥구조를 하고 있는데, 남양주 한강변에 위치한 다산 정약용이 살았던 집인 여유당과 약간 비슷한 구조이다. 가옥내부에는 여러개의 창고와 농기구, 방앗간과 마굿간 등을 잘 구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조선후기 지주계층으로 넓은 농지에서 농업 경영을 하던 선비계층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가옥이라고 할 수 있다.


중부지방 농가
안채와 사랑채를 'ㄱ'자형으로 마주 배치한 전형적인 중부지방의 민가이다. 대청이 넓으면서도 튼 'ㅁ'자형으로 배치한 것은 북부지방의 가옥배치와 남부지방의 가옥구조를 잘 절충한 것이다. 부속건물로 행랑채와 방앗간, 마굿간 등을 고루 갖춘 농가이다. 매우 큰 규모의 초가집으로 선비가 살던 집이다. <출처:한국민속촌>


이 가옥은 바깥쪽에 문간과 같이 있는 사랑채가 있고, 안쪽에 안채가 있는 구조이다. 사랑채는 앞면이 7칸이나 되는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이다. 문간을 제외한 4칸을 사랑채로 쓰고 있으며, 선비였던 집주인 거처하던 사랑방은 안팎으로 문이 있는 개방된 구조를 하고 있다.


사랑채 바깥쪽으로는 넓은 툇마루를 두고 있어서 오가는 사람들이 툇마루에 앉아서 집주인과 환담을 나눌 수 있는 구조이다. 남양주에 있는 다산 정약용이 살았던 여유당 사랑채에서 볼 수 있는 구조이다.


사랑채 서쪽편에 있는 대문.


대문을 들어서면 앞면 4칸 규모의 안채 건물을 볼 수 있다. 가옥 규모에 비해서 안채는 그리 큰 편은 아니다. 그래서 건물 동쪽편에 별채 2동을 두고 있다.


이 가옥이 선비가 살던 집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특징을 안채 건물에서 볼 수 있다. 안채는 3칸 정도의 넓은 대청마루가 있고 그 한쪽에 조상의 제사를 올리던 상청이라는 작은 방이 있다.


상청은 죽은 사람의 신주를 모시는 방으로 탈상이후 3년상을 지내는 동안 조석으로 상식을 올리며 곡을 하는 공간이다. 일반적으로는 별도의 방을 두지 않고 대청마루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상청
죽은 사람의 신주나 혼백을 모신 곳이다. 상청을 꾸미는 방식은 지방에 따라서 차이가 있는데, 마루를 광목으로 칸을 막아 상청을 이루는 곳도 있고, 방 하나를 비워 빈실을 만드는 곳도 있고 마당에 별도로 상막을 지어 빈소라 하는 곳도 있다. 치장이 끝난 후 탈상까지 이곳에서 조석으로 상식을 올리며 곡을 한다. <출처:한국민속촌>


대청마루 또한 일반 가옥에 비해서 상당히 넓다. 집안 행사가 많은 종손이나 장손이 살았던 집으로 보인다. 조선후기 장손은 제사를 비롯하여 많은 집안행사를 치러야 했기때문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많은 토지를 보유하고 농업경영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반면에 안채에는 생활공간으로 방이 2개와 부엌이 있는데 그리 크지는 않다.


안채 부엌 내부


사랑채는 마당쪽으로도 툇마루를 두고 있어서 가족끼리 환담을 나눌 수 있게 되어 있다. 사랑채 옆으로는 대문과 작은 문간방, 창고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옥의 주인은 상당히 넓은 농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가옥 내에는 많은 수의 광을 가지고 있다.


가족들이 걸터 앉아서 환담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인 사랑채 툇마루



대문 양쪽에는 광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 사이의 공간이 있다.


대문 옆에는 작은 문간방이 있다.


사랑채와 붙어 있는 광. 집안의 큰 재산인 농기구들과 손님 접대를 위한 술독을 저장하는 용도로 보인다.


조선시대 양반 가옥에서는 제사와 손님 접대를 위해서 집에는 항상 술이 있어야 했으며, 집안 여자들의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술을 담그는 일이었다.


별채에서 본 안마당


가옥 동쪽편에는 앞면 3칸 규모로 방과 부엌이 있는 별채 건물이 있는데, 아마도 결혼한 자녀들이 살았던 공간이 아닌가 생각된다.


별채 건물에는 툇마루가 없는 방이 2개 있고, 그 옆으로는 광이 있다.



별채 광에는 곡물들을 저장했던 쌀독들과 곡식들을 들어 있다.


별채에도 사랑채처럼 보이는 작은 건물이 있는데, 주인이 살았던 방인지, 머슴이 살던 방인지는 잘 구별되지 않는다.


안채 뒷마당


안채 뒷쪽 약간 높은 언덕에는 곡식들을 저장하던 창고인 부경이 설치되어 있다.

부경
농가의 저장시설에는 부경과 뒤주, 통가리 등이 있는데, 부경은 벼,보리 등의 곡물을 주로 저장한다. 부경은 대부분 높은 주춧돌 위에 마루틀을 짜고, 토벽이나 판벽을 쌓은 다음 널판으로 천정을 덮고 삿갓 또는 우진각 지붕을 덮은 형태이다. 이러한 구조때문에 곡물의 저장이 용이하며 통풍이 잘되고 쥐나 해조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출처:한국민속촌>

 


이 집 바깥쪽에는 독립된 건물로 마굿간과 창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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