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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흥법사지는 원주시 문막읍에 여주방향으로 연결되는 교통로 중의 하나인 88번 지방도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 절터이다. 이 도로는 여주 고달사지로 연결되는데, 고려초 번성했던 남한강 주변 교통로에 있었던 큰 사찰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횡성에서 발원해 원주를 지나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섬강이 내려다 보이는 경치가 빼어난 곳에 자리잡고 있다. 기록상 고려시대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는 이 사찰은 고려초 태조 왕건의 신뢰를 받았던 진감선사가 마지막으로 머물던 사찰로 조선중기까지 사찰을 유지하다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관이 빼어난 곳이라 조선후기에는 도천서원이 이 자리에 있다가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고 한다.


 흥법사는 1탑 1금당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동쪽편에 중문이 있고, 서쪽에 금당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찰은 전체적을 동쪽을 향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흥법사 절터는 다른 큰 사찰의 절터와는 달리 그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는 않지만, 삼층석탑과 진공대사탑비의 이수와 귀부가 절터에 남아 있고,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돌아와 경복궁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던 진감대사탑이 있다. 지금은 절터 대부분이 경작지로 사용되고 있는데, 아마도 조선후기에 이 곳에 도천서원을 세우면서 옛절터의 흔적이 대부분 훼손되어서 그런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마도 서원을 세울때 절터의 석재들을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되며, 그 석재 또한 서원이 철폐되면서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흥법사 절터 가운데에는 삼층석탑이 가운데 남아 있어 이 곳이 절터임을 말해주고 있다. 석탑 주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경작지로 사용되고 있다. 아마도 원래는 밭 한가운데에 석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절터 뒷편에는 진공대사 탑비의 이수와 귀부만이 남아 있다.


삼층석탑 뒷편으로는 건물터에 사용된 석재들이 있기는 한데, 원래의 위치에 제대로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 곳에 흥법사 금당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흥법사 석탑 앞쪽으로는 원주를 지나서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섬강이 흐르고 있다. 강이 내려다 보이는 경관이 좋은 위치라서 조선후기에 서원이 세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흥법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보물 464호로 지정된 삼층석탑. 이 석탑은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몸돌을 얹어놓은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을 계승한 전형적인 고려초기에 세워진 석탑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많은 3층석탑에 비해서 조각수법이 떨어지는 편이며 정형화된 양식의 석탑이라 할 수 있다.


흥법사 절터에는 진공대사 탑비의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다. 귀부는 짧은목에 비늘을 새긴 용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거북 등에는 卍자와 연꽃무늬가 장식으로 새겨져 있다. 머릿돌인 이수는 구름무늬속에 얽혀있는 두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으며, 중앙에는 전서체로 '진공대사'라고 적혀 있다. 조각수법이 세밀하면서 빼어난 작품으로 고려초기 쇠퇴한 석탑에 비해서 통일신라시대에 비해서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흥법사 진공대사 비석. 비석의 글은 태조 왕건이 직접 지었다고 하며, 글씨는 중국 당나라 태종 행서를 집자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뒷면에는 진공대사의 글이 구양순의 해서체로 새겨져 있다.


진공대사의 사리와 유물을 모셨던 진공대사 탑은  일제 시대에 경복궁으로 옮겨졌다가 지금은 국립 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3층석탑에 비해서 화려하고 세련된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다. 고려초 크게 번성했던 사리탑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리탑과 같이 있었던 진공대사의 유물을 보관했던 것으로 보이는 석관이다. 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외부에 전신된 국보급 문화재인 전흥법사 염거화상탑이다. 원래 강원도 흥법사터에 있던 것이라고 하는데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없어 실제로 흥법사와 관련이 되어 있는지 확실한 근거는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리탑으로 화려한 편은 아니지만, 통일신라시대 느낌을 주는 사천왕상이 탑신에 새겨져 있다.


흥법사 절터에서 경작을 하는 집으로 추정되는 농가가 절터 뒷편에 있다.


흥법사지 전경


흥법사 절터는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축대를 세워서 절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멀리 삼층석탑이 보인다.


흥법사 앞을 흐르는 섬강. 건너편이 문막읍 시가지이다.


원주시를 지나 남한경으로 흘러드는 섬강


섬강은 흥법사지 부근을 지나면 농경지가 많은 들판을 가로지른다.



흥법사지
영봉산 아랫자락에 있는 흥법사가 언제 처음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다. 적연국사 영준이 932년에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것과 이 곳에 있었던 진공대사탑비에서 진공대사가 940년에 이 곳에서 돌아가셨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미 신라말에 거대한 규모의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절이 언제 없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조선시대 전기까지 절과 진공대사탑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1693년 이 곳에 도천서원을 건립하였다가 1871년에 폐지하였다. 이 절은 1탑식 절 배치를 하고 있으며, 유물로는 흥법사지 3층석탑과 보물 463호인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의 귀부 및 이수가 있다. 건물터로는 탑의 동쪽 10m 지점 축대 위에 중문으로 보이는 터가 있고, 탑의 앞인 서쪽에 절의 중심 건물이 금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샘과 여러 건물터가 주변에 있고, 절의 북동쪽 산기슭에는 서울 경복궁으로 옮겨 간 진공대사탑을 모셨던 자리가 남아 있다. 이 절은 고려 태조가 흥법선원을 만들어 진공대사에게 교화를 맡기자 많은 사람이 모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인근의 정산리 거돈사, 여주 고달사 등과 더불어 고려 전반기 선종계 절로 큰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원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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