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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민속촌은 우리나라 전통마을의 모습을 복원한 곳으로 마을 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민속신앙인 서낭당의 다양한 모습을 마을 입구에 잘 꾸며놓고 있다. 예날부터 우리나른 마을  입구에는 질병이나 재해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을 하는 장승을 비롯하여 선돌.돌탑.솟대.당나무.당집 등 다양한 형태로 신앙대상이 세워져 있었는데, 이를 매개로 신에게 마을 주민들의 안녕과 삶의 풍요를 기원하였다. 이는 만주,몽골,시베리아,일본 등 동북아시아 지역의 민족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물을 상징하는 물새를 장대위에 세운 솟대와 선돌 등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있다.

 마을을 수호하는 서낭당이 동아시아지역 토착신앙이라고 한다면, 조선사회 신앙의 중심은 조상을 섬기는 제례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유교식 제례의식의 모습은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지만, 대표적인 것이 조상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사당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일반 민가에 조상의 신위를 모시는 별도의 사당을 두고 있지는 않고, 삼년상 등의 기간 동안에 제를 올리는 대청마루를 비롯한 상청공간이 있고, 업적이 뛰어나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 불천위 사당을 유력 가문의 종갓집을 두고 있었다. 이와는 별도 학문적 업적이 뛰어난 분을 위한 제향공간으로 조선후기에는 서원이 널리 설치되었으며, 초기의 교육기능 중심이었던 서원은 후대에 들어서는 조상을 모시는 제향공간의 성격을 많이 갖게 되었으며, 사회적 폐단이 많아서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상당수의 서원은 없어졌다.

마을의 성역
마을의 성역은 안녕과 질서, 풍요를 관장하는 신앙의 대상물인 선돌, 돌탑, 솟대, 장승, 당 나무 등이 있다. 이는 마을의 경계와 수호, 풍농, 제액초복을 관장하는 마을신을 위한 제당으로, 마을 사람들은 정초 혹은 봄, 가을에 마을의 안녕과 질서, 풍요를 위해 이곳에서 공동으로 제사를 지낸다. 이 밖에 개인적으로 제액초복을 위해 굿을 하기도 한다. <출처:한국민속촌>


솟대는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장대나 돌기둥 위에 올려 놓은 마을 공동체의 신앙대상물로 선돌과 함께 서낭당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형태로 보인다. 장승.선돌 등 다른 형태의 대상물과 함께 세워지기도 한다.
 

솟대는 만주,몽골,시베리아,일본 등 동북아시아 지역의 민족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물을 상징하는 물새를 장대위에 세운 솟대와 선돌 등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있다. 아마도 시베리아 지역에서 동북아시아를 오가는 철새를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선돌은 입석이라고도 하며 고인돌과 함께 대표적인 한반도의 거석문화라 할 수 있다. 선돌은 성기 숭배에서 볼 수 있는 다산과 풍요를 바라는 기능과 액을 쫓아내는 벽사, 무덤돌의 기능을 함께 가지고 있으며, 고인돌과 같은 시기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선돌이 세워진 마을 입구


장승은 마을 입구에 세워진 사람의 얼굴모양을 새긴 기둥으로 이정표나 마을 수호신의 역할을 한다. 돌이나 나무로 만들었으며 남녀한쌍으로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 새겨져 있다. 장승은 남근숭배설이나 솟대.선돌 등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근거는 없다고 한다. 솟대, 선돌, 당집, 당나무 등과 동등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한다.


다양한 형태의 장승


장승을 비롯한 서낭당 주변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돌을 던져 쌓아 놓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장승은 나무로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돌로 만든 석장승도 많이 볼 수 있다. 제주도의 돌하르방 또한 일종의 석장승이라고 한다.


서낭당의 또다른 형태로 마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여기는 당 나무가 있다. 대부분 크고 오래된 고목으로 나무 밑에 제단을 만들거나 옆에 작은 사당을 세우는 경우도 있다. 이 나무를 베면 크 재앙을 입고, 천재지변으로 나무가 쓰러지면 마을에 재앙이 온다고 믿음이 있다.


서낭당의 나무를 보면 오색천으로 묶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음양오행사상을 기초로 하여 다섯방향에서 다가올 수 있는 재액을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황색은 중앙, 청색은 동, 백색은 서, 적색은 남, 흑색은 북을 뜻한다. 다른 서낭당에도 오색천으로 묶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서낭당
서낭당은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던 곳으로 지역에 따라 성황당, 할미당, 천황당, 국사당 등으로 불린다. 이러한 서낭당은 보통 당집, 신수, 돌무더기, 선돌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여기에 있는 서낭당은 서낭신을 주신으로 모시고 있으며 신체로서 위패와 신도를 갖추고 있는 형태이다. 서낭 신앙은 마을에 들어오는 액, 질병, 재해 등을 막아주는 마을수호와 기풍의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마을 사람들은 정초에 제물을 차려 놓고 제사를 올린다. <출처:한국민속춘>


대표적인 서낭당의 형태라고 할 수 있는 당집이다. 서낭신을 주신으로 모시고 있으며 신체로서 위패와 신도를 갖추고 있는 형태로 정초에 제물을 차려 놓고 제사를 올린다.


서낭당 당집.


서낭당 당집 내부.

부근당
부근당은 지방장관들이 백성을 위한 원할한 정무와 자신의 영달, 관내의 태평과 풍작 등을 기원하기 위한 신당으로 지방장관이 새로 부임을 해 오면 가장 먼저 이 신당에 들러 참배를 한다. 부근당에는 무신으로 승화된 역사적 인물이나 산신, 장군신 등을 모시고 있는 무속신앙과 결합된 관청내의 도특한 신앙형태이다. 무신도와 남근석, 제단이 구비되어 있다. <출처:한국민속촌>


부근당에는 무신으로 승화된 역사적 인물이나 산신, 장군신 등을 모시고 있는 무속신앙과 결합된 관청내의 도특한 신앙형태로 주로 관청에서 관내 안녕과 번영을 위해 만든 사당이다.


부신당 내부에는 무신도와 남근석, 제단이 구비되어 있다. 억울하게 죽었다고 여겨지는 남이장군, 최영장군 등이 무속신앙에서 많은 숭배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효자문은 정여라고도 하며, 효행이 뛰어난 사람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사람의 통행이 많은 위치에 세웠다.


내부에는 비석이 있는 비각이 있다.

상청
죽은 사람의 신주나 혼백을 모신 곳이다. 상청을 꾸미는 방식은 지방에 따라서 차이가 있는데, 마루를 광목으로 칸을 막아 상청을 이루는 곳도 있고, 방하나를 비워 빈실을 만드는 곳도 있고 마당에 별도로 상막을 지어 빈소라 하는 곳도 있다. 치장이 끝난 후 탈상까지 이곳에서 조석으로 상식을 올리며 곡을 한다.


상청은 민가에서 삼년상을 지낼때까지 조석으로 제를 올리고 곡을 하는 곳으로 주로 대청마루를 이용한 것으로 보이며, 조선후기에 들어서 별도로 빈실을 마련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보이며, 다양한 형태로 상청을 꾸몄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 들어서 경제력이 있는 집에서는 별도로 빈실을 마련하여 상청을 꾸미는 것을 여러 고택에서 볼 수 있다. 

사당
사당은 조상의 신위를 모셔 놓은 집안에 가장 신성스러운 공간으로 위치가 일정하지는 않으나 대체로 집안의 정침인 안방 후원에 위치한다. 어느 집안을 막론하고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일정한 규격으로 건립된다. 사당에는 종손을 기준으로 위로 4대까지 양주신위를 모시며 돌아가신 날 제사를 지낼 때 여기에 모셔진 신위를 제상에 모시고 지낸다. <출처:한국민속촌>


사당은 명문가문의 종갓집에서 4대봉사를 위해서 조상의 신위를 모셔 놓은 집안에 가장 신성스러운 공간이지만, 주로 업적이 뛰어난 조상으로 국왕으로부터 불천위를 받은 분의 신위를 모시기 위해서 세우는 경우가 많다. 불천위제사는 4대봉사의 대수가 넘어가도 영구히 사당에 모시 봉사하는 기제로 원래 예서는 규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원래는 국왕이 하사한 불천위만 있었으나 조선후기에 들어서는 문중이나 유림에서 임의적으로 불천위를 정해서 사당에 모셨다고 한다. 유명가문에서 이를 큰 영예로 여기고 제사를 성대하게 치렀다고 하며 상당히 중요시 여겼다고 한다.


집안의 사당은 주로 안방 후원에 위치하면 앞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집안에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고 하면, 서원에는 학문적 업적이 뛰어난 분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을 선생을 모신 소수서원이 세워진 이래로 서원은 교육기능이 중요시 된 일종의 사학성격이었으나, 후대에 들어서면서 유력가문에서 조상을 모시는 사당의 성격으로 변질되어 전국적으로 많은 서원이 세워졌다. 배향공간 중심으로 서원의 성격이 변질되면서 사회적으로 당쟁의 중심이 되면서 많은 병폐가 쌓이자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대부분의 서원들이 폐철되면서 전국적으로 서원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서원 사당 내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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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 한국민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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