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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명시 소하동 옛 충현서원 자리에 있는 오리 이원익 선생의 종택이다. 오리 이원익 선생은 조선 선조에서 인조 때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던 분으로 '오리정승'이라는 별칭으로 후손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분이다. 원래 이 집터는 이원익 선생이 50여년간의 벼슬길을 끝내고 낙향하여 살던 초가집에 인조가 새로 집을 지어 하사했으며, 그 뒷편에는 그를 모신 충현서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현재의 종택은 일제강점기에 새로 지어진 주택으로 'ㄱ'자형의 안채와 'ㄱ'형의 문간채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경기지역 한옥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서울지역 개량한옥들과 비슷한 중정형태의 안마당을 두고 있는 튼 'ㅁ'형 건물 배치를 하고 있다. 종택건물은 조선시대 전통한옥이라기 보다는 일제강점기 경기지역 개량한옥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물이다. 선생의 영정을 모시기도 했던 종택 옆에 있는 정자인 관감당이 있는데 이 건물 또한 일제강점기에 중건한 건물이다. 관감당은 종택과는 달리 전통 한옥의 사랑채나 정자의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


관감정은 오리대감이라 불리웠던 조선중기 문신 이원익 선생이 만년을 보낸 누정이다. 앞면 5칸의 사랑채 건물처럼 생긴 현재의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그의 후손들이 중건한 건물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양반들이 세웠던 정자 건물 형태를 그대로 잘 유지하고 있다. 가운데 2칸은 문이 달려 있는 대청마루로 보이며,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관감당이라는 편액이 달린 이 정자에는 한때 오리대감의 영정이 모셔져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영정을 모신 영우라는 건물을 뒷편에 별도로 두고 있다.


이 건물에는 작은 툇마루를 달아내어 놓고 있는데 그리 잘 만들어진 것 같지는 않다.


관감정 앞 마당에는 키가 큰 고목이 우뚝 솟아 있고, 선생이 거문고를 즐겼다는 '탄금암'이라 새겨진 지석묘가 있다.


관감정 뒷편


관감정.


관감정 출입문

관감정
조선중기 인조 때의 문신이자 청백리로 이름높은 오리 이원익 선생이 50여년간의 관직 생활에서 물러나 만년을 보낸 누정이다. 선생은 명종, 선조, 광해군, 인조 등 4대에 걸쳐 평안도 도순찰사, 좌.우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했고 완평부원군에 봉해졌다. 대동법의 실시를 건의하여 전국적으로 실시케했으며 조세제도의 시정, 군병방수제의 개혁 등 큰 업적을 남겼다. 청백리에 녹선되고 문장에 뛰어났으며 서민적인 인품을 지녀 '오리정승'이란 이름으로 많은 일화가 전하는데 시호는 문충이다. 선생이 벼슬에 물러나 이곳 초가에 살 때 인조가 승지를 보내어 그 생활을 알아본 즉, 비바람이 새는 퇴락한 집에서 곤궁한 삶을 이어가므로 도 감사로 하여금 정당을 짓게하여 하사하였다. 선생은 청백리로서의 귀감으로 '모든 신민들이 보고 느껴야 할 곳'이라는 데서 '관감정'이라 했다고 한다. 그뒤 병자호란때 크게 훼손된 것을 후손들이 중건, 영정을 모시고 '관감당'이라는 편액을 달았다. 현재 뒷편으로 선생의 영정을 모신 영우와 제향을 받들던 충현서원 터가 있으며, 정자 앞에는 '탄금암'이라 새겨진 지석묘가 있다. <출차:광명시청>


관감정 입구에 있는 오리 이원익 선생의 후손들이 살았던 종택이다. 최근까지 사람이 살았던 집으로 보이며 지금은 관람객들이 볼 수 있도록 집을 비워놓고 있다.


종택은 'ㄱ'자형으로 된 안채와 'ㄱ'자형 문간채로 이루어져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경기지역 개량한옥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안채는 13칸반 규모의 큰 한옥으로 건넌방, 대청마루, 안방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개량한옥에서 볼 수 있는 유리 미닫이문으로 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안방 앞쪽으로 부엌과 온돌방이 있다.


부엌내부


부엌에 마루를 깔아두고 있다.


부엌옆에 있는 작은 방 내부


문간채는 방과 거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랑채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시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문간채 내부.


개량한옥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벽면

오리 이원익 종택 , 광명시 소하동
조선 선조.광해군.인조 때 영의정을 지내고 청백리로 이름 높던 오리 이원익이 살던 가옥으로 현재의 건물은 20세기 초에 새로 지어진 것이다. 인조 8년(1630)에 2칸 초가인 이원익의 집에 비가 새므로 왕이 새 집을 하사하였다. 효종 9년(1658)에는 그 집터에 사당이 건립되어 충현서원으로 사액되었는데 후에 서원이 췌철되었다. 1916년에는 옛 집터에 관감당이 다시 지었고 이듬해에는 안채가 건립되었으며 1940년경에는 문간채가 건립되었다고 한다. 소하동 오리로변의 주택가에 있는 충현서원 내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 집은 'ㄱ'자형 안채와 'ㄱ'자형 문간채가 안마당을 중심으로 튼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자형 사랑채인 관감당이 그 옆에 따로 떨어져 위치하고 있다. 안채는 13칸 반 규모로 소로수장집인데 건넌방, 대청, 안방이 일렬로 배열되고 안방 앞쪽에서 꺽이어 부엌과 온돌방이 있다. 지붕가구와 기둥이음, 부엌의 봉창과 다락의 완자창 등은 세련된 목수의 솜씨를 보이고 있다. 문간채는 13칸 규모인데 대문간 좌우에 온돌방과 부엌, 광이 있다. 이 집은 20세기에 건립된 경기지역 살림집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출처:광명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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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 오리 이원익 종택과 관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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