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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이후에는 고분에 껴묻거리를 묻는 문화가 없어지면서 대체로 현재까지 전해내려오는 유물이 그리 많지 않은편이다. 조선시대의 경우는  진왜란 이후 많은 문서들이 전행기때문에 유물들이 풍부한 편이지만 고려시대는 유형적인 유물로는 고려청자를 비롯한 도자기, 여러 사찰들에 남아 있는 불상이나 불화, 승탑 등을 제외하고는 다양한 유물이 전해오지는 않고 있다. 이는 중국이나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대체로 고려시대 유물로는 각 박물관에서는 고려자기를 주로 전시하고 있는 형편으로 당시 역사나 생활모습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해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도자기
인류의 도자 문화는 신석기 시대 곡물의 저장과 조리용으로 토기를 사용한 것으로 시작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약 1만년전부터 토기를 만들었고 빗살무늬토기가 대표적이다. 청동기시대는 무늬없는 토기 그리고 붉은 색과 검은 색 토기를 사용하였고 원삼국시대 중국에서 물레와 높은 열을 올릴 수 있는 가마가 전해져 토기 제작기술이 발전하였다. 삼국시대 신라와 가야에서 금속같이 단단한 경질도기를 만들었는데 일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통일신라 시대 인화문 도기와 함께 초보적인 유약인 녹유가 입혀진 도기도 만들어졌는데 이는 자기 제작의 바탕이 되었다. 드디어 9~10세기 경 중국 자기의 영향을 받아 청자와 백자를 제작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의 일이며, 고려의 독자적인 비색 청자와 상감기법을 개발하기에 이른다.고려말 조선초 청자는 형태와 무늬에서 자유분방한 모습의 분청사기로 변모하게 된다. 조선시대 새로운 기술 혁신이 이루어져 청자보다 단단하고 실용적인 백자가 탄생하였고 우리나라 고유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더해져 형태와 무늬에서 격조높은 백자 문화를 이룬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천하제일 고려청자
고려 시대 청자는 불교와 귀족 문화를 바탕으로 세련되고 독창적인 모습으로 발전한다. 청자의 특징은 아름다운 비색, 세계유일의 상감기법 그리고 이들이 함께 어우러진 아름다운 형태와 무늬에 있다. 고려인들은 중국의 청자와 다른 독자적인 비색을 개발하여 12세기 그 절정을 이룬다. 송의 학자인 태평노인의 '수중금'이란 책에서 고려 비색을 천하제일이라 꼽고 있다. 13세기 활발하게 제작된 상감청자는 공예품의 상감기법을 도자기에 응용한 예로 세계 도자역사에서 유일할 뿐만 아니라 그 무늬에서 고려인의 순수한 심성이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청자의 형태는 매병의 당당하면서도 부드러운 선, 참외모양 주전자나 꽃모양 찾잔에서 보이는 세련되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특징이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처음으로 만든 자기, 해무리굽 완, 해무리굽 완이란 굽의 모양이 해무리처럼 둥글고 두툼한 것에 비유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청자가 처음 만들어지던 시기에만 보이는 특징적인 형태이다. 통일신라말 고려초 차를 마시는 풍습이 유행하면서 중국 절강성 월주요의 영향으로 청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경기도에서 해무리굽 완이 생산된 가마터를 찾아보면 용인 서리, 시흥 방산동, 여주 중암리 등이 있고 백자와 청자 두 가지로 만들어졌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청자의 시작, 용인 서리 가마터.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서리 중리마을에 위치한 고려초기의 청자.백자가마터이다. 좌우 6m 높이의 거대한 퇴석 사이에 길이가 83m에 달하는 대규모 가마이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청자 파도 물고기 무늬완(12세기), 파도에서 헤엄치는 세마리의 물고기를 음각으로 표현한 청자 찻잔이다. 고려시대 궁궐 안에 다방이 있었고 수도인 개경에는 찻가게가 있을 정도로 다도가 유행하였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에 고려인이 차를 마시는데 금화오잔, 비색소구, 은로탕정을 사용한다고 하였는데 비색소구는 고려에서 만든 청자완으로 추정된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청자 꽃 모양 잔과 잔받침(12세기), 고려시대 금.은으로 만든 반잔이란 술잔을 청자로 빚은 것이다. 잔과 받침은 꽃모양을 형상화하였는데, 받침의 천과 잔대 사이에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묘사하고 가운데 솟은 잔대와 잔은 연꽃이 되므로 연못을 상징하는 것이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청자 참외모양 주전자(12세기), 참외 모양의 주전자로 손잡이와 주구를 넝쿨로, 뚜껑은 참외 꼭지로 조화롭게 만들었다. 빙엽이 없는 비취색의 유색은 고려 청자의 아름다운 비색을 잘 보여준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청자 새꽃무늬 의자(13세기), 청자 톱니 넝쿨 무늬 병(11세기).청자 앵무새 무늬 주전자(11~12세기).
청자 새꽃무늬 의자(13세기), 의자의 윗면에는 한쌍의 봉황을 음각하였고, 몸체에는 공작과 모란, 매화.대나무와 학 그리고 버드나무가 있는 물가풍경의 모습을 4면에 걸쳐 상감기법으로 새겨 넣었다. 상감 무늬는 새와 꽃의 모습을 세밀하게 회화적으로 표현하였는데, 여기에 서정적이고 익살스러운 모습이 있어 더욱 아름답다. 특히, 공작과 태호석의 표현에서 회색 흙으로 상감을 넣은 점이 매우 도특하다. 고려시대 최고 신분이 사용하였으며 현존하는 국내 유일의 상강청자 의자이다. 청자 톱니 넝쿨 무늬 병(11세기). 고려 전기 유행한 입이 넓은 형태로 일명 광구병이라 불린다. 병의 어깨와 목부분에 특이한 톱니와 넝쿨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서툴러 보이는 톱니모양은 초기 상감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청자 앵무새 무늬 주전자(11~12세기). 호리병 모양의 주전자에 음각으로 비상하는 앵무새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런 앵무새가 등장하는 것은 11세기에서 12세기초 비색청자에서 보이는 특색이 있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청자 닥풀무늬 대접(12세기), 양각기법은 송대 요주요와 정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주로 고급 기종의 청자를 장식할 때 쓰인다. 대접 안쪽면에는 닥풀 무늬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으며 전라남도 강진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청자 풀꽃 국화무늬 대접(12세기), 그릇의 안쪽 면은 도범고 같은 틀을 이용해 찍어 풀꽃무늬를 새겨 넣었고 바깥 면에는 상감으로 국화꽃 줄기를 장식하였다. 이처럼 고려 전기에 양각과 상감기법이 같이 새겨진 경우가 드물며, 굽에는 규석을 받쳐 구운 흔적이 있어 양질의 청자임을 알 수 있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청자국화무늬 베개(13세기), 고려시대 청자는 왕실과 귀족의 전유물이었으며 이 베개를 보면 그 화려함을 느낄 수 있다. 베게의 가운데 부분이 오목하게 휘어져 있어 실용성이 있으며, 흰 국화꽃과 검은 잎사귀.줄기가 대조를 이루며 각면마다 배치되어 멋스러운 국화꽃 베개를 이룬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청자 구름 학 무늬 매병(13세기), 청자 모란넝쿨 무늬 항아리(13세기)
청자 구름 학 무늬 매병(13세기), 매병이란 용어는 18세기 청의 문인들이 매화가지를 꽃아둔 것에 유래하지만 원래 용도는 술병이다. 능화창 안에 영지버섯 모양의 구름과 그 아래 생각에 잠긴 듯한 학이 걷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청자 모란넝쿨 무늬 항아리(13세기), 항아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역상감의 넝쿨 무늬와 중앙에 배치된 모란 무늬가 조화를 이룬다. 상감기법은 청자토와 자토 그리고 백토으 수축률과 유약과의 밀착도가 서로 달라 만들기 어려우며 이렇게 그릇 가득히 문양을 새겨 넣는 것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며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청자 풀무늬 항아리(11세기), 백자 풀무늬 매병(12세기)
청자 풀무늬 항아리(11세기),고려시대 중앙 가마인 강진이 아닌 지방 가마에서 만들어진 청자이며 전체적으로 녹갈색 유약이 시유된 도기형태의 항아리이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맞는 항아리에 철화 풀무늬를 그려 넣고 나비모양으로 만든 장식을 양옆으로 붙여 놓은 모습이 조화를 이룬다. 백자 풀무늬 매병(12세기). 고려시대 만들어진 백자 매병으로 연질의 백자 태토에 연한 회녹색 유약이 입혀졌고 전면에 작은 빙열이 있다. 균형잡힌 단정한 형태의 매벼에 철화로 풀무늬를 그려넣어 세련됨을 더한다. <출처:경기도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