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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7월 중앙박물관에서 프랑스로부터 145년만에 돌아안 외규장각 의궤를 중심으로 전시되었던 "145년만의 귀한,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 이후, 2011년 12월 6일에는 일본으로 부터 또다시 조선왕조 의궤와 도서를 반환받아 "다시 찾은 조선왕실 의궤와 도서" 특별전이 열렸다. 이번 전시에서는 일제가 반환한 의궤와 서적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기록문화를 다시 한번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일본은 일제강점기에 많은 문화재들을 약탈해 갔는데 그 중 많은 부분이 총독부에서 공식적으로 관리하던 조선왕실의 문서와 서적들이다. 특히,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은 1913년에 동경제국대학으로 반출되었다가 관동대지진으로 상당부분 소실되기도 하였다. 일본에 반출된 조선왕실의 문서들은 1966년 한일협정 당시 일부가 반환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반환되지 않았던 일본 궁내청에서 소장하고 있던 이토히로부미가 빌려갔던 문서들이 작년 12월에 반환되었다. 이외에도 조선총독이었던 데라우치도 많은 문서를 반출하여 후손들이 소장하고 있다가 최근에 한국에 반환하기도 하였다. 이들 문서들은 대부분 대출의 형식으로 빌려갔던 것을 해방이후까지 반환하고 있지 않던 것이며,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문서나 문화재 또한 상당히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돌아온 문화유산
우리나라는 많은 문화유산들을 국외로 빼앗긴 슬픈 역사를 갖고 있다. 2011년 현재까지 파악된 국외소재 우리문화재는 14만여 점에 이른다. 대부분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의 외세침략과 일제강점기의 혼란스러운 시기에 일본, 미국, 유럽 등으로 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1965년 한일정상회담 합의와 그 이후 정부간 협상, 구입 등의 방법을 통하여 문화재 환수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영친왕 일가 복식 및 장신구류(1991년), 북관대첩비92005년) 등이 정부간 협상을 통해 다시 돌아왔고, 국민의 성금을 모아 환수한 김시민 선무공신 교서(2006년) 등 개인이나 민간 단체들의 노력에 의해 환수된 것도 적지 않다. 2011년에는 문화재 환수에 대한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과 정부 기관, 민간 단체 등의 노력으로 프랑스 외규장각 의궤의 장기대여, 일본 궁내청 조선왕실 의궤와 도서의 환수라는 큰 성과를 이룩하였다. <출처:고궁박물관>

이토 히로부미가 반출한 조선왕실 도서
초대 통감을 지냈던 이토 히로부미는 한일관계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77종 1,028책의 도서를 대출하여 일본으로 반출해 나갔다. 1909년 안중근 의사에 의해 이토가 죽은 후 이 도서들은 일본 궁내청에 보관되었다. 그 중 11종 90책은 1964년 한일 협정에 따라 1966년에 반환되었고 이번에 나머지 66종 938책이 모두 돌아왔다. 이토가 조선왕실 도서를 일본으로 가져간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반출한 도서 중에 1908년에 발간된 도서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908년에서 이토가 일본으로 돌아간 1909년 사이로 추정된다. <출처:고궁박물관>



정조 시문집, 정묘어제, 1814년(순조14), 정조지음
조선시대 역대 국왕들의 시문집인 '열성어제' 중 정조편이다. 1814년(순조14)에 김재찬, 김조순 등이 편찬하였으며, 총 2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묘어제'는 1814년 3월 정조의 문집 '홍재전서'(184권 100책)가 간행되고 3개월이 지난 6월 24일에 간행이 완료되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가져간 통감부 수집 도서목록 중 첫번째 도서이다. <출처:고궁박물관>


왕과 왕세자의 도장 제작에 관한 의궤(보인소도감의궤), 1876년(고종13), 오대산사고본
1876년(고종13) 11월 4일에 경복궁의 큰 화재로 인해 소실된 왕과 왕세자의 보인(도장)을 새로 만들거나 보수한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보인소'는 왕이나 관청의 보인을 제작하는 임시기관이다. 새로 제작된 11종의 보인에 대한 제작 과정, 형태 및 세부 규격, 제작에 필요한 물품과 경비, 기간, 인력 등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이인좌의 반란에 관한 기록(무신사적)
1728년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반란이 경상도 지역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경상도 각 군에서 해당 군을 지키기 위해 일으킨 의병 활동을 기록한 책이다. 조덕린과 황익재가 주동한 의병활동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있어 이인좌 세력에 반대하는 정치세력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지리지(읍지), 1875~1908년. 부.목.군.현 등의 지방 각읍을 단위로 하여 작성된 지리지이다. 규장각의 다른 이름인 '내각'과 '홍문관'도장이 찍혀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퇴계 이황 언행록(퇴계선생언행록), 1729년, 권두경 엮음


영남지역 유명한 인물에 대한 소개(영남인물고), 1798년(정조22), 채홍원 등 지음


역대 국왕의 덕과 업적을 찬술한 기록(갱장록), 1831년(순조31), 이복원 등 지음


간추린 외교관계 문건(동문고략), 1851년(철종2)과  어휘집(휘어), 김진 편찬


순조 대 경연에서 강의한 기록(강연설화), 182~1831년
1802년(순조2)부터 1831년(순조31)까지 시강원에서 열린 경연에서 강의한 사실을 적은 기록이다. 경연은 왕에게 유학의 경서와 사서를 강의하고 논의하던 조선시대 왕의 교육제도이다. 이시수 외 여러사람이 강의에 참여했으며, 중요 강서로는 '성학집요', '맹자', '국조보감' 등이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조선시대의 정치적 사건에 관한 기록 (청구만집),
조선 태조의 건국부터 인조 대까지 각 왕들의 일대기를 비롯하여 병자호란, 계유정난, 임진왜란, 인목대비 폐서인 사건, 이인거의 난 등 정치적으로 큰 사건들을 상세히 기록한 책이다. <출처:고궁박물관>


역대 국왕의 통치기록(국조보감), 1848년(헌종 14)
역대 왕들의 통치행위 중 후대 왕들이 본받을 만한 정치활동을 뽑아서 모은 역사서이다. 1458년(세조4)부터 1909년까지 여러 차례 편찬되었다. 사관 외에는 열람할 수 없는 실록을 대신하여 조선의 국왕들은 국조보감을 통해서 통치의 교훈을 얻고 실제 정치에 참고할 수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가져간 규장각 도서 목록 중 첫번째 도서이다. <출처:고궁박물관>


조선 역대 사적기(국조통기),
조선 역대 사적을 편년체로 쓴 사서이다. 왕명.왕의 언행.전교 등이 주요 내용이며 기타 왕실과 관계된 행사, 의식 및 서적편찬에 관한 사항도 기록하였다. 국내에는 필사본 제3권 1책만 전한다. <출처:고궁박물관>


일본 궁내청의 조선왕실 도서 양도 요청 문서, 1911년
1911년 4월부터 1912년 2월 사이에 작성된 규장각 도서의 인수.정리.보관과 관련된 여러 서류 중의 하나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왕실의 도서를 일본으로 가져갔다는 사실과 일본 궁내성으로 양도를 요구하는 내용, 반출 도서 목록이 기록되어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이토 히로부미는 어떤 책을 빌려갔을까?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으로 가져간 도서는 크게 '규장각 도서(33부 563책)'와 '통감부 수집도서 (44부 465책)'로 나눌 수 있다. 이 도서들은 주로 인물, 국왕, 역사, 지리 등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토가 초대 통감시절에 한일관계 조사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대출했던 것이다. 그가 조선 왕실 도서를 대출해 간 사실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총독부와 일본 궁내청 간에 주고 받은 1911년 공문서를 통해 확인된다. 공문서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일본 궁내청에서 조선총독부에 보낸 이토 도서 양도 요구 문서(1911년 5월15일)
2) 양도 요구를 받은 조선총독부 총무부가 취조국에 양도여부를 결정해달라고 요청한 공문(1911년 5월 22일)
3) 요청을 받은 취조국이 양도 가능 도서목록을 제시하며 나머지는 반려하도록 요구한 공문(1911년 5월 23일) <출처:고궁박물관>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공식기록(열성지장통기), 1758년(영조34), 홍계희 등 지음
1758년에 홍계희 등이 왕명을 받아 역대 왕과 왕비에 대한 행록, 행장, 교명문, 옥책문, 시책문 등의 기록들을 모은 도서이다. 기존의 '열성어제통기'에 변동사항을 보충하여 편찬하였다. <출처:고궁박물관>


1894년 갑오농민전쟁에 관한 기록(갑오군정실기)
1894년 2차 농민전쟁을 토벌한 양호도순무영에 관한 기록이다. 2차 농민전쟁에 출동한 중앙관곤, 지방 각 군의 행정 조직 및 군사조직을 비롯하여 농민군의 구성과 동선, 농민군 사상자의 인명, 농민군 피해 상황까지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조선왕실 족보(선원계보기략), 1883년(고종20)
1965년 <한일 문화재협정>에 따라 1966년 먼저 반환된 도서 163종 852점 중의 하나이다. '통감부 채수본'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왕실 족보 중의 하나로 1679년(숙종5)부터 1932년까지 약 250여 년 동안 114회나 간행되었다. 그 중 이 도서는 1883년(고종20)에 간행된 것이다. <출처:고궁박물관>

일제 강점기 도서정리사업
일제는 을사늑약 이후 통감부를 통해 본격적으로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던 도서정리사업 또한 일제의 식민지 지배 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되었다. 먼저 일제는 한일강제병합 직전 통감부를 통해 홍문관, 집옥재, 시강원, 북한산 이궁, 강화 정족산 사고 등이 보유하고 있던 도서들을 규장각으로 모았다. 그리고 원래 있었던 규장각 소장 도서들과 함께 '제실도서'로 명명하고 면밀한 도서 정리 작업을 실시하였다. 1911년에는 조선총독부 취조국에서 이를 강제로 인수하고 태백산 사고, 오대산 사고, 적장산 사고 등의 도서들도 점유하였다. 이로써 서울의 규장각과 지방의 사고, 외규장각 등으로 철저하게 관리되던 조선 전통의 왕실도서 관리 체계는 완전히 무너졌다. 1912년 취조국의 폐지 이후, 일제는 참사관분실 등에서 도서목록작성, 도서카드 작성, 일부 도서 해제 등의 도서정리사업을 수행하였으며, 이러한 작업을 통해 식민 정책 수립의 기초 자료를 구축하였다. <출처:고궁박물관>


중종대왕실록과 성종대왕실록
중종대왕실록은 조선 11대왕 중종의 재위 기간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1506년 10월부터 1544년  12월까지 중종 재위 38년 3개월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정식 이름은 '중종공희휘문소무흠인성효대왕실록'이다. 성종대왕실록은 조선 9대왕 성종의 재위 기간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1469년 11월부터 1494년 12월까지 성종 재위 25년2개월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정식 이름은 '성종강정대왕실록'이다. <출처:고궁박물관>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은 일제강점기인 1913년 약 788책이 일본 동경제국대학으로 반출되었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대부분 소실되고 74책만 남았다. 1932년 당시 서울의 경성제국대학으로 27책이 이관되었고 나머지 47책은 동경대에 보관하고 있었다. 2006년 '조선왕조실록 환수추진위원회'가 출범하여, 그 해 7월에 나머지 47책이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기증되었다. <출처:고궁박물관>


효명세자 세자시강원 입학의례 그림(정축입학도첩), 1817년(순조17)
1817년 3월 11일 순조의 세자인 효명세자가 9세가 되어 세자 시강원에 입학하는 의식을 기록한 6폭 도첩이다. <출처:고궁박물관>

데라우치문고
'데라우치문고'는 조선 3대통감과 초대 조선총독을 거쳐 일본 총리대신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한국.중국.일본 등에서 수집한 동양의 고문헌 1만8천여점이 소장된 개인 문고를 말한다. 데라우치가 사망한 후 그의 아들이 운영해 오다가 1946년 야마구치대학교에 기증한 것이다. 이후 야마구치대학교는 1996년에 자매결연을 맺은 경남대학교에 기증의사를 밝혔고, 전적류를 포함하여 총98종 135점을 기증하였다. <출처:고궁박물관>


영친왕비 진주두루주머니(진주협낭), 떨비녀(영락잠)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의 유품들이다. 반환된 영친왕일가의 복식 유물은 영친왕 내외가 1922년 4월29일 순종황제와 윤대비를 알현할 때 착용하던 것으로 크게 의복류와 장신구류로 나눌 수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영친왕 일가 복식 및 장신구류
'영친왕 일가 복식 및 장신구류'는 영친왕비가 일본 거주 당시 소장하다가 1957년부터 동경국립박물관에 보관하였던 것이다. 1990년 한일정상회담에서 합의하고 1991년 4월 체결한 '영친왕비에 유래하는 복식 등의 양도에 관한 협정'에 따라 영친왕과 왕비가 혼례식 때 입었던 예복 등 의류와 장신구, 홍룡포, 익선관, 옥대, 목화 등 총 227점의 궁중복식이 1991년 10월 반환되었다. <출처:고궁박물관>


경주 노서동 출토 금귀걸이(경주노서동금제이식)
경주 노서동 제215호 무덤에서 발견된 신라시대의 금으로 만든 귀걸이이다. 이 귀걸이 1쌍 중 한쪽이 일본에 반출되었다가 1966년에 반환되어 국내에 있던 다른 한쪽과 어울려 1쌍을 이루게 되었다. <출처:고궁박물관>

한일협정 반환 문화재
'한일 협정 반환 문화재'는 일제 강점기에 유출된 문화재 중 일부를 정부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반환 받은 것이다 1065년 6월 22일 한일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체결된 '한일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에 따라 1966년에 반환된 도자기.고고자료.석조 미술품 등 총 1,432점의 문화재가 돌아왔다. <출처: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다시 찾은 조선왕실 의궤와 도서
2011년 12월6일 일본 궁내청에 보관되어 있던 총 150종 1,205책의 조선왕실 의궤와 도서가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는 1965년 한일협정에 따라 1,432점이 일본으로부터 고국으로 돌아온 이래 두번째로 큰 규모입니다. 이 도서들은 조선왕조의 국가 운영을 위해 편찬.수집되어 왕실도서관과 지방 사고 등에 보관되다가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된 우리의 소중한 기록문화유산입니다. 지금까지 정부와 민간 단체들은 국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의 현황 파악과 불법으로 반출된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마침내 조선왕실 의궤와 도서 1,205책이 돌아오게 된 것은 이에 따른 중요한 성과입니다. 또한 이번 반환은 우리가 완전한 소유권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들이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기쁨을 온 국민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조선왕실 문화의 가치를 재발견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국외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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