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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사찰

강화 석모도 보문사, 서해 바다를 내려보고 있는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

younghwan 2013. 8. 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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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군 석모도에 위치한 보문사는 남해 보리암,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 여수 향일암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음성지로 손꼽히는 사찰이다. 관음성지는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곳'이란 뜻으로 이곳에서 기도발원을 하게 되면 그 어느곳보다 관음보살을 보살핌을 잘 받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곳으로 경치가 빼어난 바다를 굽이 내려다 보고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보문사는 삼국시대인 신라 선덕왕대인 635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며, 바다에서 건져올린 돌덩이를 부처로 석굴에 모시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대표적인 기도처로 관음성지로 불리어지고 있지만, 실제 사찰에 역사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많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재의 사찰은 조선후기 순조대에 크게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보문사가 위치한 석모도는 조선시대 서남 해안에서 출발한 세곡선을 비롯한 많은 화물선들이 강화도를 거쳐 수도 한양으로 연결되는 뱃길에 위치하고 있어서 뱃길의 안전을 바라는 선원들이 찾았던 사찰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보문사에는 역사적인 의미를 갖은 불전이나 문화재는 거의 없는 편이며,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을 주불전으로 하고 있다. 대표적인 관음성지이지만 관음전을 별도로 두지 않고, 낙가산 정상 아래에 마애관음보살상이 관음전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사찰의 유래가 되는 바다에서 건져올린 나한상을 모신 석굴과 1,000명이 앉아 법회를 열 수 있었던 공간인 천인대에 조성된 와불전과 오백나한상 등이 있다.


보문사 석실. 신라 선덕여왕 4년(635)에 회정대사가 처음 건립하고 조선 순조 12년(1812)에 다시 고쳐지은 석굴사원이다. 천연동굴을 이용하여 입구에 3개의 무지개 모양을 한 홍예문을 만들고 동굴 안에 불상을 모셔 놓은 감실을 설치하여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미륵보살과 나한상을 모셨다. 이들 석불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 어떤 어부가 고기잡이 그물에 걸린 돌덩이를 꿈에서 본 대로 모셨더니 부처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출처:강화군청>


보문사 석실은 거대한 바위 아래에 조성된 천연동굴에 나한상을 모셔두고 있다.


보문사 극락보전. 보문사의 중심에 자리한 극락보전은 정면5칸 측면3칸에 내부 60평의 규모로 1972년 정수스님이 중수하였습니다. 법당내부는 상단에 아미타부처님과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고 중단에 지장보살,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과 신중탱화가 하단에 영가단이 모셔져 있습니다. 또한 상단 뒤편으로 삼천 옥부처님이 법당에 장엄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삼존불 위로는 닫집이 조성되어 있으며 천정의 좌우로 각 하나씩 용상이 지나다니고, 또 다른 한 쌍의 용상이 전각의 안에서 밖으로 머리를 내미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전각의 출입문은 채색된 꽃 무늬 문살로 소박한 멋을 더하고 있습니다. <출처:보문사>


보문사 주불전인 극락보전. 앞면 6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불전인데, 외형과 규모로 볼 때 최근에 크게 중수한 것으로 보인다.


보문사 극락보전 내부. 지금은 개금불사인 관계로 탱화만 있고 불상은 잠시 다른 곳으로 옮겨져 있다. 극락보전에도 많은 나한상이 있는데, 이는 보문사가 관음성지로 대표적인 기도처이기는 하지만, 바다에서 건저올린 나한상을 모시면서 출발한 사찰의 내력처럼 수행도량의 의미가 큰 사찰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오백나한. 천인대는 길이 40m, 폭 5m의 큰 바위로 창건 이후로 법회 때 설법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는데, 그 크기가 넓어서 천명이 앉을 수 있다하여 '천인대'라 이름 붙여졌습니다. 오백나한을 2009년 와불전과 함께 천인대에 조성되었습니다. 진신사리가 봉안된 33관음보탑을 중앙에 두고 오백나한이 감싸는 형상입니다. 나한은 부처님의 제자로 아라한과를 증득한 존자를 말하며, 해탈하여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보문사의 오백나한상은 모습과 표정이 모두 달라 각각의 개성적인 모습을 자유분방하게 나타내고 있으며, 나한님의 좌대에는 봉안에 동참하신 분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출처:보문사>


이곳은 원래 천여명이 앉아서 설법을 들을 수 있는 공간으로 천인대라 불린다. 가운데 탑이 서 있고 오백나한이 원형극장에서 설법을 듣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와불전은 오백나한과 함께 천인대에 조성된 전각입니다. 열반 당시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습을 자연석에 그대로 조각하여 모셨으며, 전체 신장 10m, 열반대는 12m로 그 규모가 큽니다. 전각 내부는 부처님 뒤로 공간이 있어 주위를 돌면서 참배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누워 계신 모습과 손의 모양, 불의의 주름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운양이 새겨진 열반대는 구름의 모양이 수려하고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출처:보문사>


와불전에 모셔진 거대한 불상. 와불상는 대승불교에 속하는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형태의 불상으로 최근에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보문사 향나무, . 보문사 석실 앞 큰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는 이 향나무는 밑동 지름이 2.1m이며, 높이 1.2m, 부위의 둘레가 3.2m 정도이다. 나무의 생긴 모습이 용트림을 하고 있는 듯 기이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1.7m 높이에서 원 줄기는 동서 양쪽으로 갈라졌는 데 동쪽 것은 둘레가 1.3m이고, 서쪽 것은 둘레가 1.5m 이다. 한국전쟁 중에 나무가 죽은 것 같이 보이다가 3년 후에 다시 소생하였다고 한다. <출처:강화군청>


보문사 맷돌. 신라 선덕여왕 때 (635) 건립한 보문사에는 나한상을 모신 보문동천으로 유명하다. 한때는 보문사 승려와 수도사들이 300명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때 사용했던 맷돌이 아직도 남아 있다. 보문사 맷돌은 크기가 지름 69cm, 두께 20cm로 일반용 맷돌보다 두 배 정도 큰 화강암 맷돌이다. <출처:강화군청>


보문사 뒷편 낙가산 정상 아래 바위에는 관음성지를 대표하는 곳으로 마애관음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보문사 마애관음보살상


삼성각.


법고 등이 걸려 있는 법음루와 범종각


승려들이 기거하면서 수행하는 요사채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곳에 지어진 건물로 강당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보문사 입구 마을. 보문사는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관음성지로 많은 신도들이 찾는 사찰이라 할 수 있다. 입구에서부터 다른 사찰에 비해서 번창한 곳임을 알 수 있다.


보문사 일주문


일주문에서 내려다 보인 입구마을. 그 너머로 멀리 서해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보문사 오르는 길


사찰에 입구에 세워진 비석


보문사 입구 전경. 경사진 언덕에 축대를 쌓아서 조성하였는데, 그 규모는 꽤 큰편이라 할 수 있다.


사찰 입구 찻집


보문사 사찰 전경. 마당이 꽤 넓은 편이다.


마애관음보살상과 낙가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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