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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 의상봉 아래 삼천사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전통사찰인 삼천사이다. 이 사찰은 삼국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라고 하지만 창건연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삼천사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으며 조선시대 기록에 따르면 한때 3처여명의 승려가 수도할 정도로 큰 절이었다고 한다. 원래 삼천사는 현재의 위치에서 계곡 상류쪽 부암동 암문 아래에 있었는데 임진왜란때 승병들이 집결지로 사용하기도 했으며, 이때 사찰이 불타버렸다고 한다. 현재의 삼천사는 임란왜란 이후 진영화상이 고려시대에 만든 마애여래입상(보물 657호)가 있던 작은 암자를 중장하였다고 한다. 이 사찰 또한 한국전쟁으로 불타버리고 현재의 전각들은 대부분 1970년대 중창하였다고 한다.

 삼천사는 북한산 계곡의 좁은 지역에 자리잡고 있어 사찰의 규모는 크지 않으며 주불전인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산령각과 요사채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찰입구에는 1970년대에 기존에 있던 석탑부재를 사용하여 쌓은 5층석탑과 최근에 조성한 석탑, 관음보살상, 지장보살입상 등이 있으며, 마애여래입상이 있는 사찰 뒷편 병풍바위 앞에는 최근 미얀마로부터 얻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석종형 사리탑이 있다.

북한산 삼천사
삼천사는 661년(신라 문무왕 1년) 원효대사가 개산하였다. 1482년(성종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에 따르면 3,000여 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하며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승병들의 집결지로 활용되기도 하였고, 임란 중에 소실되었으나 뒷날 이 절의 암자가 있던 마애여래길상터에 진영 화상이 삼천사라 이름하여 다시 복원하였다. 그리고 1970년대 현재의 주지 평산 성운 화상이 부임하여 경내에 위치한 마애여래입상이 천년고불임을 입증하여 보물로 지정받고 30여 년의 중흥 불사를 통해 대웅보전 외 30여 동의 건물과 세존진신사리탑, 지장보살입상, 종형사리탑, 관음보살상, 오층석탑, 중창비 등을 조성하여 현재의 문화재 전통사찰 삼천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수많은 참배객들의 기도도량, 참회도량, 수행도량으로서 확고히 자리하게 되었다. 그 밖에 사찰에서 2km 위쪽에 위치한 옛 삼천사 터에는 대형 석조와 동종, 연화대좌, 대지국사 법경의 비명이 남아 있는데, 그 중 동종은 보물로 지정받아 현재 국립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출처:삼천사>


북한산 의상능선 아래 삼천사계곡에 위치한 삼천사 전경. 입구에 최근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석탑이 있다.


삼천사 입구.


삼천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오층석탑


삼천사 오층석탑. 전통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 약간다른 라마탑의 영향을 받은 석탑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삼천사 입구의 샘물. 사찰을 찾는 신도들이나 등산객들이 잠시 목을 축이는 곳이다.


삼천사 입구의 쉼터


삼천사 출입문.


삼천사 입구 작은 연못


거북모양을 하고 있는 샘물


지장보살입상


삼천사 전경. 원래 작은 암자가 있었던 넓지 않은 곳으로 주불전인 대웅전을 제외하고는 건물이 많지는 않다.


요사채 입구. 관음보살상이 세워져 있다.


요사채 건물들


삼천사 주불전인 대웅보전


대웅보전 문살


대웅보전 앞 요사채


삼천사 옆 등산로


삼천사 뒷편 병풍 바위에는 보물 657호로 지정된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삼천사의 오래된 내력을 보여주는 유물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 미얀마로부터 얻은 부처님 사리를 모신 석종형 부도가 사찰 뒷편에 있다. 이런 연유로 이곳을 적멸보궁이라 부른다.


마애여래입상 옆에는 큰 규모의 불전인 산령각이 있다. 삼천사는 사찰규모에 비해서 북한산 산신을 모시는 산령각의 규모가 큰 편으로 북한산과 관련된 사찰의 내력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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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 | 삼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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