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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사찰

김포 금정사, 인조의 아버지 추존왕 원종과 인현왕후의 장릉을 지키는 원찰

younghwan 2013. 9. 1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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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포 금정사는 인조의 아버지 원종과 어머니 인헌왕후의 능인 장릉을 지키는 원찰로 장릉 남쪽편 금정산 자락에 있는 사찰이다. 삼국시대 진흥왕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이 사찰은 원래 고상사라고 하였는데, 인조가 부모의 묘를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능을 지키는 사찰이라는 뜻으로 봉릉사로 바뀌었다가 일제강점기에 다시 금정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장릉의 원찰로 정해진 이후 내력은 기록으로 많이 남아 있지 않으며 일제강점기에 김포현 관아건물 건축자재를 이용하여 중수하였다가 한국전쟁으로 불타버린 것을 1970년대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금정산 자락에 자리잡은 금정사는 주불전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요사채 건물 2동과 강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사찰내에는 건물이 많이 들어서 있지 않으며 대부분 최근에 크게 신축한 것들이지만, 전체적인 사찰 규모와 건물 배치 등으로 볼 때 장릉을 지키는 원찰로서 그 규모가 크고 짜임새 있는 건물 배치를 하고 있다. 금정사가 원찰로서 주변 넓을 땅을 소유하고 있어서 그런지 중앙승가대학이 사찰 뒷편에 세워져 있다.

김포 금정사, 김포시 풍무동
금정사는 신라 진흥왕때 창건되었으며, 창건 당시에는 고상사라고만 전하여 왔으며 달리 전해오는 기록은 없다. 조선 인조5년(1627)에 왕은 자신의 아버지를 원종으로 추증하고 어머니 역시 인현왕후로 추증하여 그들의 묘를 양주에서 김포로 이장하고 장릉이라고 하였으며 인근에 있던 고상사를 현재의 위치로 옮기려 장릉을 보호하는 사찰로 재건하면서 봉릉사라 칭하게 되었다. 일제 강압기인 1930년에 당시 주지 영송화상이 중수 하였고 다시 1938년에 주시 성화대사가 대한제국 말기 김포를 관장하던 현청을 일제가 강제로 헐어 낼 때 출입문중 목재와 주춧돌 등을 구입하여 사찰을 크게 중수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쓰러져 가는 사찰을 1974년 주지 정념과 고근이 다시 대웅전과 범종각을 새로 짓고 면모를 일신하였다. 이후 '능을 지킨다'는 '봉릉사'에서 절의 뒷산이 금정산이며 또한 법당 앞에서 에부터 좋은 물맛의 샘이 솟아나므로 인하여 '하늘우물'이라는 뜻의 '금정사'로 개명하여 김포지역 포교와 수행도량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의 건축양식은 앞면3칸, 옆면2칸의 단층맞배지중으로 된 기와집이며, 공포의 양식은 '다포계'를 기본으로 한 약식 공포이고, 창호는 빗살문으로 되어 있다. 대웅전 아래로는 범종각이 있다. 요사채 '본원'는 앞부분이 돌출된 형식이며 돌출된 전면은 누각양식으로 지어졌다. 7층석탑은 대웅전 앞 기단 아래에 있다. <출처:금정사>


김포 금정사는 인조가 이곳에 부모의 능인 장릉을 조성하면서 인근에 있던 사찰을 현재의 위치로 옮긴 원찰로 크게 알려져 있는 사찰은 아니지만 그 규모가 크고 짜임새가 있다.


금정사 주불전인 대웅전. 앞면 3칸, 옆면 2칸의 크지 않는 규모의 불전이다. 1981년에 중수한 것이라고 하며, 나머지 건물들도 대부분 그 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 앞 석등과 7층석탑. 기단 위에 원래 건물이 있었던 자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금정사 대웅전 앞 요사채. 한옥 형태로 지어진 건물로 앞쪽에 돌출된 누마루를 두고 있다. 사찰규모에 비해서 요사채 건물이 큰 편인데, 이는 장릉을 찾는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요사채 건물을 크게 지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왕릉을 지키는 원찰에서 볼 수 있는 건물 배치라 할 수 있다.


'ㅁ'자형 한옥 형태를 하고 있는 요사채.


사찰 입구의 'ㄱ'자형 요사채 건물. 금정사는 현재 비구니들이 수행하는 수량도량으로서 요사채 건물규모가 큰 편이다. 원찰로서 금정사를 이곳으로 옮길때 건물배치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정사는 사찰 출입문으로 천왕문이나 금강문 등을 두지 않고 사찰입구 요사채에 '금정사'라는 현판을 달아 놓아 출입구임을 알려주고 있다.


최근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강당 건물. 앞면 5칸, 옆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이다.


범종각


김포 금정사 경내 모습. 장릉의 원찰로서 마당이 넓고 건물배치에서 짜임새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금정사는 원찰로서 주변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불교를 공부하는 중앙승가대학이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김포 금정사 전경


금정사 맞은편 장릉산 자락에 위치한 인조의 아버지인 추존왕 원종과 왕비 인헌왕후의 능인 김포 장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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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풍무동 | 대한불교조계종 금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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