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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주시 봉일천리에 위치한 삼릉(사적205호) 중 첫번째로 조성된 공릉이다. 공릉은 조선8대 예종의 원비인 장순왕후 한씨를 모신 능이다. 세조를 도와 계유정난을 일으킨 주역으로 지금도 역사소설이나 TV드라마 등을 통해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당대의 권력자였던 한명회의 딸로 세자빈 시절에 인성대군을 낳고 죽었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공릉은 원래 세자빈묘로 왕릉에 비해 간략하게 조성되었으나, 당대 권력자의 딸이었기도 했기때문에 웅장함을 갖추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장순왕후는 성종대인 1472년에 장순왕후로 추존되었다.

  사적 205호로 지정된 파주 삼릉은 예종의 원비 장순왕후를 모신 영릉, 9대 성종의 원비 공혜왕후를 모신 순릉, 21대 영조의 장자이자 정조의 양아버지인 추존왕 진종과 효순왕후 조씨를 모신 영릉이 있는 곳이다. 장순왕후와 공혜왕후는 당대 실력자 한명회의 딸로 자매지간으로 세자비와 왕비에 올랐으나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으며, 공릉과 순릉 묘역은 한명회가 직접 조성했다고 볼 수 있다.

공릉
공릉은 조선 제8대 임금 예종(1450~1469)의 원비 장순왕후 한씨(1445~1461)의 능이다. 장순왕후는 영의정이자 상당부원군인 한명회의 딸로 16세에 세자빈이 되었으나 인성대군을 낳고 산후병으로 17세의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장순왕후는 돌아가신 후 장순빈으로 불렸으며, 1462년 2월 파주에 모셔졌다. 장순왕후는 예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돌아가셨으므로 왕후의 능이 아닌 세자빈의 묘로 조성되었다. 따라서 공릉은 병풍석, 난간석, 망주석과 무석인이 생략되어 간소하게 배치되었다. 그러나 봉분과 석물은 조선초기 형태의 웅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1472년(성종3)에 세자빈에서 왕후로 추존되었으며, 이후 무덤의 이름도 왕후격으로 높여 공릉으로 부르게 되었다. 공릉의 비각 안에 있는 표석은 공혜왕후 순릉의 표석과 함께 1871년(순조17)에 세운 것이다. <출처:문화재청>


당대 실력자 한명회의 딸로 세자빈 시절에 요절했으며, 후에 왕후로 추존된 장순왕후의 능인 공릉이다. 세자빈묘로 간략하게 조성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웅장한 왕릉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공릉 입구 홍살문으로 들어가는 길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참도. 홍살문에서 출발하여 'ㄱ'자로 꺾여 정자각으로 이어진다.


왕릉의 제사를 모시는 정자각


정자각 내부


표석을 모신 비각. 표석은 19세기 순조대에 세워졌다고 한다.


정자각 옆 수라간 건물이 있던 자리


공릉 봉분


공릉 뒷편 숲속길


공릉으로 들어가는 길


공릉에서 순릉으로 연결되는 숲속길


파주 공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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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 파주삼릉 공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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