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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사찰

안성 석남사, 서운산 북쪽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고찰

younghwan 2014. 7. 24.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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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시 금광면 상중리 서운산(해발538m) 북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고찰인 석남사이다. 사찰규모는 크지 않지만, 통일신라 문무왕대인 680년 석선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고찰이다. 고려 광종의 아들 혜거국사가 크게 중건하는 등 안성 일대에서는 중요한 사찰로 여겨졌다. 임진왜란 때 사찰 대부분이 화재로 소실되면서 현재는 대웅전과 영산전만 남아 작은 규모의 사찰이다. 고려시대 많은 고승들이 이 사찰을 거쳐가면서 많은 참선승이 머물렀던 수행도량이었다고 한다.  부근에 고려초 만든 것으로 보이는 마애석불과 고려말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석탑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 이래로 사찰이 존재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석남사가 있는 서운산 일대는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차령산맥 줄기가 있는 곳으로 만뢰산, 성거산, 칠현산 등 크고 작은 산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주변에는 칠장사, 청룡사 등 고찰이 남아 있고, 봉업사지, 천흥사지 등 유서깊은 절터가 많은 지역이다.

석남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용주사의 말사로서 사찰규모가 크지 않고, 대부분의 전각들은 임진왜란 이후 중건된 것들이다. 사찰 전각들은 경사진 언덕에 조성되어 있다. 주불전으로는 대웅전이 있으며, 그 아래에는 조선초기 건축 양식이 잘 남아 있는 영산전(보물823호)과 작은 요사채들이 있다. 대웅전을 오르는 계단에는 고려말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2개의 석탑이 남아 있다.

안성 석남사, 경기도 안성시 금광명 상중리
석남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용주사의 말사로서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 서운산 자락에 있다. 통일신라 문무왕20년(680) 고승 석선이 세웠고 고려초기에 혜거국사가 중수하였으나 임진왜란떄 불에 타 나중에 화덕이 중건한 절로 알려져 있다. 현재 석남사에는 대웅전과 영산전 두 불전을 중심으로 요사채, 누각, 탑, 부도, 마애불 등이 있다. 이들 유적과 유물은 거의 조선시대에 조성되었으나 신라 말 또는 고려 초기로 추정되는 마애불이 사역 근방에 남아 있고, 조선초기에 조성되었다고 추정되는 석탑 등으로 미루어 법등은 꾸준히 계승되어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출처:안성시청>


안성 석남사 전경. 서운산 계곡 경사진 지형에 전각들을 배치해 놓고 있다. 사찰규모는 크지 않지만, 오래된 불전인 대웅전과 영산전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고풍스러운 불전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산중 사찰의 고즈넉함이 느껴지는 사찰이다.


사찰 건물들은 조선시대에 중건한 것으로 천왕문같은 출입문을 별도로 두지 않고 '석남루'라는 누마루를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찰을 찾은 신도들이 잠시 쉬면서 계곡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누마루, 앞쪽에는 '석남루', 안쪽에는 '금광루'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누마루 내부. 문을 열면 게곡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주불전인 대웅전을 오르는 계단. 원래 대웅전 앞쪽에 있었다고 한다.


계단 오른쪽에는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불전인 영산전이 있다.

안성 석남사 영산전, 보물823호, 경기 안성시 금광면 배티로
영산전은 석가모니불과 그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도를 함께 모신 불전의 명칭인데, 이곳은 16나한을 함께 봉안한 것이 특징이다. 영산전은 정면3칸, 측면2칸으로 구성된 팔작집인데 칸수에 비해 규모가 작은 건물이다. 낮은 자연석 기단 위에 민흘림기둥을 세우고 지붕가구는 오량으로 구성하였다. 내부를 보면, 불단은 건물 뒷벽에 붙여 중앙에 불단을 설치하여 석가삼존불을 모셨고, 그 위에 부처를 보호하고 장식하기 위해 닫집을 매달아 장엄하게 꾸몄다. 중앙의 불단 좌우에는 ㄱ자형으로 불단을 구성하여 16나한상을 모셨다. 이 영산전은 1562년 처음 건립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을 면하였다. 조선 초기에서 중기 사이의 건축 양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출처:안성시청>


영산전(보물823호)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조선초기 건축양식이 잘 남아 있다.


대웅전에서 내려다 본 영산전

석남사 대웅전
석남사는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되었고, 고려초기 혜거국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해지는 유서깊은 고찰이다. 조선 태종 7년(1407)에는 국가에 복이 있기를 기원하는 절인 자복사로 지정될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영조1년(1725) 해원선사가 대웅전과 영산전의 기와를 갈았다는 기록으로 18세기경에 대웅전이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대웅전은 영산전 앞에 있던 것을 1978년에 옮긴 것이다. 대웅전은 정면3칸, 측면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의 건축물이다. 전면 귀공포의 형태로 보아 원래 지붕은 팔작형식이었으나 후에 맞배지붕으로 고쳐진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 중앙에는 석가삼존불을 모시고 있고 그 위에 보기 드문 2층 구조의 닫집이 있다. 이 불전은 내부에 휘어진 보 등을 사용하였으며, 건립된 후에도 여러 번 수리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안성시청>


석남사 주불전인 대웅전. 원래는 영산전 앞에 있던 것을 1978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앞면 3칸의 다포계공포를 하고 있으며,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건물의 형태로 볼 때 원래 팔작지붕이었던 것을 중건하는 과정에서 맞배지붕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대웅전 현판


경사진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 기단을 세우지 않고 건물을 올렸다.


옆쪽에서 본 대웅전. 맞배지붕을 하고 있지만 어색해 보인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에서 팔작지붕이었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 내부


대웅전 뒷편


대웅전에서 내려다 본 석남사 계곡

석남사 석탑
대웅전 앞, 영산전 좌측에 세워져 있는 이 석탑은 절 아래쪽에 있던 것을 1970년대에 현 위치로 옮긴 것이다. 쌍탑 중 우측의 탑은 1매의 판석으로 지대를 마련하였는데, 1단의 괴임이 돌출되어 있고 기단부를 받들고 있다. 상면의 갑석은 탑신부 괴임대가 없는 평평한 판석으로 이루어졌다. 1층 옥신석엔느 정방형의 감실이 마련되어 있다. 좌측의 탑은 하층기단 갑석에 3단의 괴임이 있고 1층 옥신에는 양우주가 정연하게 새겨져 있다. 이 쌍탑은 옥신, 옥개석의 조성수법과 그 형식 등으로 미루어 고려시대 후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는 우측탑이 232cm, 좌측탑이 225cm이다. <출처:안성시청>


영산전 옆 계단에 세워진 2개의 석탑. 조각수법 단순해 보이는 고려말 석탑이다.


영산전 옆 부모은중경이 새겨진 석탑


영산옆 작은 요사채


사찰 입구 오른쪽편 한옥 형태를 하고 있는 요사채


사찰 입구 왼쪽편 요사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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