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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선종(禪宗)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동리산문(桐裡山門)이다. 통일신라 말 승려 혜철(惠哲, 785~861년)이 전남 곡성군 죽곡면 동리산 태안사(泰安寺)에서 동리산문을 열었다. 혜철은 경주 출신으로 영주 부석사에서 화엄(華嚴)을 배웠으며 813년 당나라에 유학하여 선법(禪法)을 배웠다. 귀국 후 곡성 태안사에 머물렀다. 고려 건국과 도참설(圖讖說) 등에 큰 영향을 미쳤던 도선(道詵)을 비롯하여 후백제 견훤의 추앙을 받았던 경보 등이 동리산문을 계승하였다. 혜철, 도선 등 동리산문 주요 승려들은 화엄을 먼저 배우고 선법(禪法)을 계승한 것으로 볼 때 화엄종과 긴밀한 관계였던 것을 보인다. 

동리산문을 대표하는 사찰로는 곡성 동리산 태안사(泰安寺)를 비롯하여 도선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광양 중흥사, 화순 운주사, 남원 만복사 등이 있으며 도선과 처음 출가한 영암 도갑사도 동리산문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태안사 적인선사탑(보물 273호), 승려 혜철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다>

곡성 동리산 태안사(泰安寺), 동리산문 중심 사찰

태안사(泰安寺)는 구산선문 동리산문을 열었던 통일신라 승려 혜철이 머물렀던 사찰로 구산선문 동리산파 중심사찰이 되었다. 고려가 건국 후 광자대사 윤다가 크게 중창하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로 자리잡았다. 송광사가 수선결사의 중심사찰이 되면서 위상이 축소되었으나, 조선초 효령대군이 머물면서 국가의 지원을 받는 사찰이 되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강당 건물인 보제루와 대웅전이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경내에는 석탑이 없고 아래쪽 연못에 삼층석탑이 있다. 불상을 모신 불전보다는 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인 요사채 건물들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입구에 광자대사탑(보물 274호), 탑비(보물275호)를 비롯한 승려들의 승탑들이 세워져 있으며, 대웅전 뒷편에는 혜철의 승탑(보물 273호)와 탑비가 있다. 

<곡성 동리산 태안사>
<태안사 일주문>

일주문을 들어서면 볼 수 있는 승탑들. 광자대사탑(보물 274호)를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의 승탑들을 볼 수 있다. 지역 중심사찰로서 뛰어난 승려들을 많이 배출한 것으로 보인다.

<태안사 입구에 볼 수 있는 승탑들>
<태안사 대웅전>

광자대사 윤다(廣慈大師 允多, 864~945년)

광자대사는 고려초 구산선문 동리산파 3대 종조(宗祖)로 태안사를 크게 중창하였다. 어려서 집을 나와 사방을 다니다가 동리산에서 선을 수행했으며 승려 혜철에게서 배웠다. 선승(禪僧)이면서도 율법을 중시여겼다. 시호는 광자대사이다.

<태안사 광자대사탑(보물 274호)>
<태안사 광자대사탑비(보물 275호)>

선각국사(先覺國師) 도선(道詵, 827년 ~ 898년)

도선(道詵)은 전남 영암 출신으로 출가하여 화엄종을 배웠으며 동리산문 혜철의 문하에서 선종으로 개종하였다. 이후 전국 산천을 돌아다니며 당시 선종과 함께 유행하던 풍수지리설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나라 풍수지리서의 고전으로 여겨지는 '도선비기', '송악명당기', '도선답산가', '삼각산명당기' 등이 도선의 저작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광양 중흥사, 남원 만복사, 화순 운주사 등 많은 사찰들이 도선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영암 도갑사는 도선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라 한다. 

<선각국사 도선 초상(복제품), 보물 1506호, 순조5년(1805), 선암사 소장>

광양 옥룡사(玉龍寺)와 중흥사(中興寺)

옥룡사는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이곳에서 머물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광양 중흥사는 신라 경문왕 때 도선이 운암사(雲巖寺)로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통일신라 때 지은 중흥산성 안에 있어 중흥사로 불려졌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절터만 남아 있었다. 절터에는 삼층석탑(보물 112호)와 쌍사자석등(국보 103호)가 남아 있었다. 

<중흥산성 쌍사자석등(국보 103호)>

영암 월출산 도갑사(道岬寺)

영암군월출산 자락에 있는 도갑사는 도선이 어린 시절 머물렀던 곳으로 전해지는 사찰이다. 조선초 세조 때 승려 신미와 수미가 크게 중건하여 966칸에 이르는 전각과 많은 부속암자를 거느린 큰 사찰로 번창하였다. 전란과 화재 등으로 큰 손실을 입어 해탈문(국보 50호)를 제외하고는 오래된 전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현재는 해탈문(국보 50호), 오층석탑(보물1433호), 석조여래좌상(보물 89호),목조문수.보현동자상(보물1134호), 도선국사.수미선사비(보물1395호) 등의 문화재가 남아 있다.

<영암 월출산 도갑사>
<도갑사 해탈문(국보 50호)>
<도선국사.수미선사비(보물 1395호)>
<도선의 영정이 모셔진 국사전>

화순 운주사(雲住寺)

운주사는 돌로 만든 석불과 석탑이 각각 1천구씩 있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현재는 절터에 석불 93구와 석탑 21기가 남아 있다. 통일신라 말 도선국사가 많은 석탑과 석불과 함께 창건했다고 전하나 옛기록이나 유물조사 등에서 밝혀진 것은 아니다.

<화순 운주사>
<운주사지에서 처음으로 보이는 구층석탑(보물 796호)>
<운주사 석조불감(보물 797호)>
<최근 중창된 운주사>
<운주사지 와불>

남원 만복사(萬福寺)

남원 만복사는 도선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읍치였던 남원읍성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전형적인 고려시대 평지사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초기 생육신 김시습이 지은 소설 ‘금오신화’의 다섯편 이야기 중 하나인 ‘만복사저포기’의 무대가 이 곳 만복사이다. 경내의 국가지정문화로는 오층석탑(보물 30호), 불상좌대(보물 31호), 당간지주(보물 32호), 석불입상(보물 43호)가 있다. 

<남원 만복사지(사적 349호)>
<불상을 올려 놓았던 석조대좌(보물 31호)>
<만복사지 오층석탑(보물 30호)
<만복사지 석불입상(보물 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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