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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불교 법상종(法相宗)

문화유산이야기 2021. 6. 4. 17:58 Posted by youngh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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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법상종(法相宗)은 <유가론(瑜伽論)>과 <유식론(唯識論)>을 주 경전으로 하는 한국 불교 종파로 통일신라 때 진표(眞表)가 금산사(金山寺)에서 신라 법상종을 열었다. 진표는 미륵신앙이 강했으며 이론적 성격이 강했던 중국 법상종과는 달리 실천적인 불교로 바꾸었다. 진표는 많은 제자를 가르쳤으며 통일신라 때 크게 번성하였다. 법상종의 대표적인 사찰로는 김제 금산사(金山寺), 속리산 법주사(法住寺), 팔공산 동화사(桐華寺) 등이 있는데 지금까지도 사찰 규모가 상당히 크고 불교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찰들이다.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은 인도 미륵보살이 지은 글을 당나라 현장이 번역하여 100권을 수록한 것으로 그중 15권에 해당한다. 

<초조대장경판으로 찍은 유가파의 기본 경전,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15, 고려 11세기, 종이에 인쇄, 국보 273호, 송성문 기증>

법상종 사찰은 중국 시안 대자은사(大慈恩寺)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불경을 보관하던 목탑을 크게 중요시했으며 미륵신앙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 거대 청동불상을 모신 장륙전 형태의 불전을 두고 있다. 또한 법주사와 중흥사에는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쌍사자석등이 남아 있다.

<시안 대자은사 대안탑(大雁塔, Wild Goose Pagoda)>
<법주사 금동미륵대불과 팔상전(국보 55호)>
<삼국시대 장륙전의 모습이 남아 있는 금산사 미륵전(국보 62호)>
<금산사 대장전(보물 827호)>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석등(국보 103호)>

 

김제 모악산 금산사(金山寺)

모악산 금산사(사적 496호)는 화엄종과 함께 통일신라 불교를 이끌었던 법상종 근본도량이다. 통일신라 때 진표가 미륵존불을 모시는 장륙전을 세우는 등 사찰을 크게 중창하였다. 이후 후삼국시대 견훤이 이곳에 유배되기도 했다. 고려 문종 때 왕사인 혜덕이 다시 중창하였는데 금강계단(보물 25호), 오층석탑(보물 26호) 현존하는 석조유물들은 이 때 조성되었다. 이후 임진왜란 때 사찰 대부분이 소실되었는데 승려 수문을 중심으로 다시 중창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옛 장륙전의 모습이 남아 있는 미륵전(국보 62호)를 비롯하여 목조건축물들은 이때 다시 지어진 것들이다. 

<김제 모악산 금산사(사적 496호)>

삼국시대 장륙전의 모습이 남아 있는 미륵전(국보 62호)은 정유재란 때 소실된 장륙전을 복구한 것으로 조선시대 건축양식이 반영되어 있지만 그 규모나 형태에서 거대한 미륵삼존상을 모시는 옛 장륙전의 웅장함을 느끼게 해준다.

<금산사 미륵전(국보 62호)>
<금산사 미륵전 삼존불상>

미륵전 맞은 편에 위치한 대장전(보물 827호)은 원래 미륵전 앞 불경을 보관하던 목탑건물이었는데 정유재란 때 소실된 후 1층 건물로 다시 지어졌다. 일제강점기에 현위치로 옮기면서 불전으로 바뀌었다.

<대장전(보물 827호)과 석등(보물 828호)>

금산사 주불전인 대적광전은 금강계단과 함께 사찰 중요 의식을 행하는 공간으로 원래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삼신불을 모시는 공간이었는데, 정유재란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복구하면서 극락전, 약사전에 모셨던 불상들을 같이 모시게 되었다. 

<대적광전>
<대적광전 앞에 있는 육각다층석탑(보물 27호)>
<석련대(보물 23호)>

금산사 금강계단(보물 26호)은 통도사 금강계단과 비슷한 형태이지만 그 앞에 오층석탑을 두고 있다. 왼쪽편 주불전인 대적광전과 함께 사찰의 주요 의례를 행하던 공간이었다. 대적광전은 불상을 모시는 불전으로 바뀌고 오른쪽에 불상이 없는 적멸보궁이 새로 지어졌다. 

<금산사 금강계단(보물 26호)은 과 오층석탑(보물 25호)>

속리산 법주사(法住寺)

속리산 법주사(사적 503호)는 신라 진흥왕 때(553년) 의신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통일신라 때 진표가 법주사를 크게 중창함으로써 대형 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법주사를 창건한 진표는 전북 완주에 금산사를 창건하면서 법상종을 열었는데, 법주사는 금산사와 함께 미륵신앙을 대표하는 사찰로 자리잡았다. 고려 초 숙종이 이곳에서 대각국사를 위해 큰 법회를 열었으며, 조선시대 태조와 세조가 직접 법주사를 찾았다고 하며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원찰(願刹)로서 높은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속리산 법주사>

법주사는 속리산 깊은 산중에 자리잡고 있기는 하지만 탑, 금당, 강당이 일렬로 배치된 삼국시대 평지사찰 형태가 잘 남아 있다. 정문인 천왕문, 목탑, 주불전인 대웅전이 일렬 배치되어 있다. 임진왜란 전까지 미륵장륙존상이 있었으며, 벽암이 중창할 때 다시 금동미륵불상을 크게 조성했는데 구한말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과정에 없애버렸다. 일제강점기 이후 시멘트로 미륵불상을 조성하기도 했으며, 최근에 금동미륵대불을 다시 조성하여 미륵신앙의 중심지로 그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 

<법주사 대웅보전(보물 915호)>
<대웅보전에 모셔진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보물 1360호)>

법주사 팔상전(국보 55호)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목탑을 중건한 것으로 5층 목탑의 형태를 하고 있다. 내부에는 사리를 모시는 공간, 팔상도를 모시는 공간, 예불을 드리는 공간으로 되어 있다. 사리를 모시는 목탑이지만 팔상도를 모시고 있어 팔상전이라 부른다.

<법주사 팔상전(국보 55호)>
<팔상전 내부>
<법주사 석등(보물 15호), 원래 팔상전 앞에 있었다고 한다.>

목탑 서쪽편에 우뚝 서 있는 금동미륵대불이 있는 자리에는 통일신라 때 진표율사가 조성한 금동미륵대불이 있었다. 정유재란 이후 법주사를 중창할 때 이곳에 용화전을 세우고 다시 중건하였는데, 구한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불상을 몰수해가면서 없어졌다. 일제강점기 조각가 김복진이 시멘트로 거대불상을 조성하여 1986년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금산사 미륵전과 비슷현 형태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법주사 금동미륵대불>

원통보전(보물 916호)은 벽암대사가 법주사를 크게 중건할 때 세워진 불전으로 대웅보전 앞 마당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앞면 3칸, 옆면 3칸에 사모지붕을 하고 있는 특이한 형태의 건물이다.

<법주사 원통보전(보물 916호)>
<원통보전에 모셔져 있는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1361호)>
<쌍사지 석등(국보 5호)>

석연지(국보 64호)는 통일신라 전성기에 조성된 것으로 다른 사찰에서 없는 특이한 형태의 유물이다. 돌로 만든 작은 연못으로 연꽃을 띄어 두어 극락세계를 표한하고 있다. 연지는 팔각형 받침돌 위에 버섯모양의 사잇돌이 몸돌을 받치고 있다. 몸돌은 큼직만한 연꽃모양을 하고 있으며, 표면에는 연꽃잎을 새겨 장식하고 있다.

<석연지(국보 64호)>

석조희견보살입상(보물 1417호)은 지대석 위에 큰 향로를 머리에 이고 서 있는 조각상으로 향불을 공양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받침돌, 몸체, 향로받침까지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그 위에 향로가 올려져 있다.

 <석조희견보살입상(보물 1417호)>

철솥(보물 1413호)은 지름 2.7m, 무게 약 20톤의 거대한 솥이다. 사발 모양을 하고 있는 단순한 형태이지만 높은 온도에서 주철로 주조되어 기술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 유물이다. 몸체에 문양이나 글자가 남아 있지 않아 제작연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법주사가 크게 번창했던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법주사 경내에 남아 있는 철솥(보물 1413호)>

법주사로 들어오는 옛길에 있는 마애여래의좌상(보물 216호)이다. 법주사 바깥쪽에 있는 높이 6m에 이르는 큰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상이다. 고려초에 조성된 불상으로 통일신라말 혼란기를 거쳐면 크게 쇠퇴한 불상조각 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마애여래의좌상(보물 216호)>

팔공산 동화사(桐華寺)

동화사(桐華寺)는 대구 북쪽을 병풍처럼 가리고 있는 큰 산인 팔공산(해발 1,124 m)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통일신라 흥덕왕 때(832년) 심지왕사가 크게 중창하였다고 한다. 김제 금산사, 속리산 법주사와 함께 법상종의 3대사찰 중 하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군을 지휘하는 본부로 삼으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화사는 금당암, 비로암 등 많은 부속암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건물은 앞쪽에 승려들이 머물면서 수행하는 요사채와 강당을, 뒷편에 대웅전을 중심으로 여러 불전들이 배치되어 있다. 

<팔공산 동화사>
<봉화사 강당인 봉서루>
<주불전인 대웅전(보물 1563호)>
<영산전>
<영산전 앞 삼층석탑>
 <1992년에 조성된 높이 33m의 거대한 통일약사대불>

동화사(桐華寺) 비로암은 동화사 중심영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작은 암자로 주불전인 대적광전과 작은 요사채 건물로 되어 있으며 마당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삼층석탑(보물 247호)이 있다.

<주불전인 대적광전>
<대적광전에 모셔진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244호)>

비로암 삼층석탑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 놓았다. 석탑에서는 민애대왕석탑 사리그릇(보물741호)이 출토되었다.  몸통에는 7자 38행을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신라 민애왕의 행적을 꼼꼼하게 적어 놓고 있다.

<비로암 삼층석탑>
<민애대왕석탑 사리그릇(보물741호)>

중국의 법상종

법상종은 인도에서 미륵(彌勒) · 무착(無着) · 세친의 유가유식파(瑜伽唯識派)에 기원한다. 당나라 태종 때 현장(玄裝, 600~664년)이 인도를 방문하여 유식설을 전해 받고 많은 경전을 번역하였으며 제자 규기(窺基, 632~682)가 법상종을 열었다. 신라 승려 원측(圓測, 613년~696년)은 현장의 제자로 규기와 함께 많은 불경을 번역했으며 당나라에서 입적했으며 제자 도증(道證)이 692년에 귀국하여 유식학을 신라에 소개했다.

<중국 시안 대자은사 앞 현장법사 동상>

시안 대자은사(大慈恩寺)

중국 시안시에 있는 대자은사(大慈恩寺)는 당고종이 어머니 문덕황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되었다. 당고종 때(622년)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과 불상 등을 보관하기 위해 대안탑(大雁塔)을 세웠으며, 이곳에서 신라 승려 원측을 비롯하여 많은 제자들과 함께 많은 불경들을 한문으로 번역하였다. 현장의 제자 규기(窺基)가 법통을 이어받으면서 법상종(法相宗) 중심 사찰이 되었다.

불교가 크게 번창했던 당나라 때 수도 장안에 있던 많은 사찰 중에서도 으뜸이 되었던 사찰로 대명궁에서 남쪽을 7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높이 64.7 m에 이르는 거대한 대안탑과 함께 수도 장안의 랜드마크가 되었으며 당시 장안사람의 신앙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시대 통일신라 경주 황룡사, 일본 헤이안시대 쿄토 도지(東寺)와 비슷한 위상과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안 대자은사>

대자은사는 크고 작은 자원(子院) 10개를 비롯하여 건물이 1,797칸에 이르는 큰 사찰이었으나, 북송 때에는 대안탑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전각들은 파괴되었다. 이후 명나라 때 대안탑을 7층으로 수리하면서 현재와 비슷한 형태로 재건되었다. 현재의 가람배치는 대안탑을 중심으로 앞쪽으는 대웅보전을 비롯한 불전들이, 뒷편에는 현장법사를 기념하는 현장삼장원(玄奘三藏院)이 배치되어 있고 사찰 남북으로 큰 광장이, 동.서에는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주불전인 대웅보전>

대안탑(大雁塔)은 현장법사가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비롯한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 세워졌다. 처음에는 5층으로 지어졌으나 측천무후(則天武后) 때 무너진 것을 수리하면서 10층으로 증축하였으며, 명나라 때 지진으로 손상된 것을 수리하면서 현재와 같이 7층으로 바뀌었다. 

<대안탑>

패엽경(Pattra-leaf scriptures) 은 고대 인도에서 종이대신 나뭇잎에 글씨를 적은 불경이다. 현장법사가 인도를 방문했을 때 인도에서는 종이가 없었기 때문에 나뭇잎에 불경을 적었다.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패엽경이라 부른다. 

<대안탑에 보관했던 패엽경(복제품)> 
<대안탑에서 내려다 보이는 시안 도심>

대안탑 뒷편에는 현장법사가 제자들과 함께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번역했던 번경원(飜經院) 등이 있었는데 지금은 기념관 성격의 공간으로 현장삼장원(玄奘三藏院)이라 부른다. 대편각당(大遍觉堂)을 중심으로 서쪽 광명당(光名堂), 동쪽 반야당(般若堂)의 3원(院)으로 구성되어 있다. 

<번경원이 있던 현장삼장원>
<대편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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