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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유적_고분

김해 수로왕비릉 (사적74호), 구지봉 아래 목부분에 자리잡은 수로왕비 '허황옥' 릉

younghwan 2012. 4. 17.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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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 북단에 자리잡은 김해 허씨의 시조이자 가야를 건국한 수로왕의 왕비인 '허황옥'의 능이다. 위치를 잘보면 가야 건국설 의 "구지가"와 관련된 구지봉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멀리서 보면 구지봉이 거북의 머리라고 보면 수로왕비릉이 자리한 위치가 목부분에 자리잡고 있으며, 남쪽의 수로왕릉과는 수백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면서 구지봉을 지키고 있다.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의 왕비는 성은 허, 이름은 황옥으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에서 배를 타고 왔다고 전해진다. 허황옥이 낳은 왕자 중 2명에게 왕비의 성을 주어 김해 허씨가 이들의 후손이라고 한다. 왕릉 앞에는 인도에서 가져왔다는 돌로 쌓은 파사석탑이 있어 전설이 신빙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무덤의 형식은 수로왕릉과 비슷한 형식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구지봉 아래에서 바라본 수로왕비릉. 뒤쪽 산을 거북이 몸통이라고 한다면 목부분에 해당하는 곳이라 생각된다. 목부분에 도로가 있어 목이 잘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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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왕비릉 정문인 구남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수로왕비릉. 가운데에 수로왕비릉이 있고 바로 옆 우측에는 인도에서 가져온 돌로 만들었다는
파사탑이 있다. 왕릉에 준하는 형식으로 들어가는 길에 삼도를 만들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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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왕비릉. 규모는 크지 않지만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가장 인구가 많은 성씨인 김해김씨의 시조인 까닭에 신라,고려,조선의 어떤 왕릉보다도 관리가 철저한 것 같다. 수로왕릉과는 달리 문.무인석을 비롯하여 석물들을 세워져 있지 않으며, 중앙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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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수로왕비가 가져왔다는 파사석으로 만든 파사탑이 있는 파사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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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왕비릉 우측에 있는 제사를 위해 제실 성격의 부속 건물들인 숭보재,고직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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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봉쪽으로 올라가는 구지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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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봉에서 내려다본 수로왕비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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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왕비릉의 정문격인 구남문입니다.




가야의 시조 수로왕의 왕비무덤이다.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왕비는 성이 허, 이름은 황옥으로 알려져 있으며, 원래 인도 아유타의 공주로 16세에 배를 타고 와서 수로왕의 왕비가 되었다고 한다. 9명의 왕자를 낳았는데, 그 중 2명에게 왕비의 성인 허씨 성을 주어 지금도 그 후손이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높이 5m 정도의 원형 봉토무덤으로서, 무덤의 밑부분에 특별한 시설은 없다. 무덤 주위에는 얕은 돌담을 4각형으로 둘러 무덤을 보호하고 있으며, 앞 쪽에는 긴 돌을 사용하여 축대를 쌓았다. 중앙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가락국수로왕비 보주태후허씨지릉(駕洛國首露王妃 普州太后許氏之陵)’이라는 글이 2줄로 새겨져 있다. 무덤에 딸린 부속건물로는 숭보제·외삼문·내삼문·홍살문이 있으며, 보통 평지에 있는 무덤과는 다르게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무덤 앞에는 인도에서 가져왔다고 전하는 파사석탁의 석재가 남아 있다. 세종 28년(1446)에 수로왕릉과 함께 보호구역이 넓혀졌으며, 임진왜란 때 도굴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비석과 상석 등은 인조 25년(1641)에 다시 정비하면서 설치하였다고 한다. 왕릉에 비해서는 시설이 소박한 편이고 수로왕비릉이라고 오래전부터 전해져 왔으므로 수로왕릉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본다면, 내부의 구조는 널무덤(토광묘) 또는 돌덧널무덤(석곽묘)일 가능성이 높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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