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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 32

김제 관아 내아, 동헌과 함께 남아 있는 고을 수령 살림집

김제 관아는 조선시대 관아를 구성하는 동헌, 내아, 정자가 남아 있고 부근에 관아에서 관리하던 중등교육기관인 향교가 있는 조선시대 지방의 행정 중심지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으로 역사적, 사회적 가치가 높아서 사적 482호로 지정된 곳이다. 김제는 정4품이 군수가 고을 수령으로 있던 지역으로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넓은 평야지대로 풍부한 물산을 자랑하는 곳이다. 김제 내아는 고을 수령의 살림집으로 김제군 동헌 뒷편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는 'ㄷ'자형 안채 건물만 남아 있는데, 현존하는 관아 건물 중 동헌과 내아가 같이 남아 있는 흔치 않은 경우이다. 현재의 규모로 봤을 때는 고을 수령의 살림집이 작다는 느낌이지만, 실제로는 안채 외에도 여러동의 살림집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

조선 관아 2010.11.23

정읍 태인현 관아 동헌, 동학농민군이 마지막 결전을 벌이고 해산한 곳

태인현은 전북 정읍시 신태인읍과 태인면을 중심으로 주변은 면들을 포함했던 조선시대 고을 명칭이다. 지금은 작은 시골의 면소재지이지만, 통일신라시대 유학자 최치원이 이곳 태산군수를 지내는 등 유서깊은 고을이다. 태인현 관할 지역 중 칠보면에는 전북지역 유학의 중심지였던 신라의 유학자 최치원 선생을 모신 무성서원이 있고, 최치원 선생이 거닐던 연못에 세워진 호남제일의 누각이라는 보물 289호로 지정된 피향정이 있다. 태인지역은 넓은 호남평아와 동쪽의 산악지역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헌 뒷편 성황산은 동학혁명에서 동학군이 마지막으로 진을 치고 집결한 곳으로 동학혁명의 마지막 격전지이기도 하다. 태인동헌은 동학혁명당시 농민군이 점령했던 곳으로 전봉준의 농민군 주력이 태인동헌 뒷산인 성황산전투에서 패..

조선 관아 2010.11.21

김제군 관아, 동헌 근민헌

김제지역은 삼국시대 이래로 벼농사가 발달한 지역으로 우리나라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지역이다. 김제 벽골제를 비롯하여 논농사와 관련된 유적지가 있고, 구한말 동학혁명의 주요 무대였던 곳이기도 하다. 특이한 점은 넓은 평야와 풍부한 물산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에는 중요한 정치세력이 배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제관아는 넓은 김제평야 중심에서 가장 높다는 해발 40m의 성산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어며, 약 100m 거리 이내에 향교, 관아 건물이 몰려 있으며, 관아의 동헌과 내아가 온전히 남아 있어 조선시대 지방행정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하여 사적 482호로 지정되어 있다. 김제동헌은 김제군수가 업무를 보던 건물로 '근민헌'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앞면 7칸, 옆면 4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조선 관아 2010.11.19

천안 직산현 관아, 지방 수령이 근무하던 동헌

직산현은 조선시대 6대간선도로 중 하나로 호남과 충청지역과 연결된 도로상에 있는 주요 고을 중 하나였고, 경기지역을 벗어난 호서지역의 첫번째 고을로서 의미가 있었던 곳이다. 지금도 직산현 부근으로 1번 국도와 경부고속도, 경부선 철도 등 주요 교통수번의 얼굴이 되는 노선이 지나가고 있는 곳이다. 옛 직산현 관아가 있는 곳은 지금은 주요 교통로에서 약간 벗어난 까닭에 한적한 시골마을 읍소재지가 되는 곳이다. 이 곳에는 옛관아건물을 헐고 세워진 직산초등학교가 관아 건물터에 들어서 있다. 그나마 개발이 덜된 지역이기때문에 옛 관아건물 중 내동헌.외동헌.내삼문,아문의 4동의 건물이 남아 있다. 옛 기록에는 객사, 군기, 동헌, 내아 등 많은 건물들이 있었다고 하며, 그 내용을 보면 주요 교통로에 있었기때문 찾아..

조선 관아 2010.10.28

양주목 관아, 목사가 근무하던 동헌

조선의 수도 한양의 동북쪽 관문에 있었던 양주목은 양주시, 의정부시, 동도천시, 남양주시, 구리시와 서울의 강북구, 도봉구, 중량구, 노원구 지역을 포함하는 아주 큰 고을로 외관직인 정3품의 양주목사가 다스리던 지역이다. 지금은 경기북부의 도농복합시인 양주시의 작은 시골마을에 옛 양주목 관아지가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 양주군의 행정기관이 경원선 철도역이 있는 의정부로 옮겨가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옛 관아 건물들이 모두 불타버리고 그 옛터만이 남아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그 옛터에 양주향교가 제일 먼저 복원되고, 관아 건물로는 동헌만이 복원되어 있다. 양주시 유양동 불국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옛 양주관아터에 복원된 양주목 동헌을 보면, 비록 복원된 건물이지만 옛날 양주목이 얼마나 큰 고을이었는지를 잘..

조선 관아 2010.09.26

아산 온양군 동헌

온양온천으로 유명한 아산 온양 시가지에서 동남쪽 산너머에 있는 옛 온양군 동헌이다. 이 곳이 온양지역 행정의 중심지였으나, 장항선 철도부설로 인해 그 기능을 온양온천 부근 지역으로 넘겨주고 한적한 시골마을 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는 곳에 있다. 대부분의 조선시대 관아건물들처럼 온양군 동헌과 그 출입문인 온주아문 바로 앞에는 온양초등학교가 있다. 20세기초 전국에 초등학교가 세워지고, 근대적인 행정기관이 들어서면서 전국 대부분 관아의 동헌과 내아 등 은 시청,읍사무소,면사무소 등로 변했고, 객사는 초등학교 교사로 바뀌었는데 이 곳 또한 비슷한 경로를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아와 작청같은 건물들은 없어지 동헌건물만 변형되어 주재소,파출소,동사무소 등으로 사용하다가 최근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온주아문을 들어서..

조선 관아 2010.09.21

온주아문, 온양군 동헌 출입문

온양군은 옛날 온양역을 중심으로 아산시 동남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온양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다. 현재는 아산시와 통합되었지만 예전에는 온용이 있는 시가지에 온양시 중심부가 있었다. 원래 온양군의 중심지역은 현재 온양시가지 남쪽편 고개너머였는데 지금은 그 흔적으로 당시 관청건물인 온주아문과 동헌, 그리고 부근의 온양향교가 남아 있다. 지금의 온주아문이 있는 곳 주변에는 주민도 그리 많이 살지 않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처럼 보이지만, 옛날 기준으로는 홍성에서 천안으로 연결된 길과 공주에서 아산을 거쳐 서울 방향으로 가는 삼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방면에 넓은 벌판이 있는 지역이다. 온주아문은 옛 온양군사가 근무하던 동헌의 출입문으로 1871년에 고쳐 지어진 건물이다. 정면3칸, 측면2칸의 누각 건물로 아문의 ..

조선 관아 2010.09.21

인천도호부청사 동헌, 도호부사 집무공간

인천도호부 관청건물 중 도호부사의 집무공간인 동헌이다. 지방 관청 건물배치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객사의 동쪽편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동헌이라고 불린다. 인천도호부 부사는 종3품의 직급으로 지방수령 중에서 목사다음으로 높은 지위이다. 인천도호부 동헌은 앞면 5칸의 건물로서 가운데 3칸은 도호부사가 소송을 비롯한 일상적인 업무를 보던 공간으로 대청마루로 되어 있으며, 좌우에 응접실 용도의 온돌방이 있다. 동헌 앞 마당에는 민원인들이 재판을 받는 공간으로 우리나라 어디를 가던지 동헌마당에는 곤장대가 설치되어 있다. 현재의 동헌 건물과 마당사이에는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으며, 원래 이런 공간배치는 약간 드문 경우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이 곳 건물들이 복원된 건물들이라 원래의 모습과 다르게 지어진 것이 아닐까 ..

조선 관아 2010.09.21

[서산 해미읍성] 호서좌영 동헌, 해미 현감겸영장이 근무하던 곳

해미읍성은 조선초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읍성으로 조선후기 충청병마절제사가 청주로 이전하기 전까지 주둔했던 병영이었다. 이후에는 해미 현감겸영장이 근무한던 곳이다. 읍성내부에는 병마절제사가 근무했던 격에 맞추어 규모가 큰 동헌, 객사 등 관아 건물이 있었다. 지금의 동헌의 원래의 건물터에 새롭게 복원한 건물들이다. 충청좌영이란 편액이 걸린 동헌 출입문. 절제사가 근무하던 기준에 따라 동헌입구에 삼문과 누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지역의 동헌에는 없고, 관찰사나 절제사 등이 근무하던 지역의 동헌에만 이런 출입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호서좌영 동헌. 이 동헌은 병마절도사를 비롯한 현감겸영장의 집무실로서 관할지역의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이 행해지던 건물이다. 해미 현감겸영장은 인근 12개 ..

조선 관아 2010.09.21

[나주목 관아] 나주 동헌 출입문인 정수루

나주목 관청 건물의 중심이 되는 나주 객사 금성관 서쪽편에는 나주 목사가 근무하는 동헌이 있었던 자리가 있고, 그 뒷편으로 아직까지 나주목 내아가 남아 있다. 객사, 동헌, 읍성, 향교 등 지방관청을 구성하는 요소가 나주에는 많이 남아 있어 나주목 관아 전체가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다. 그 중 나주 동헌 출입문인 정수루는 객사 출입문인 망화루 앞을 지나는 도로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나주 객사인 금성관 정문을 나서면 서쪽편에 동헌 출입문인 정수루가 있다. 정수루는 2층 누각으로 전체가 개방되어 있다. 정수루 편액 동헌 안쪽에서 본 정수루 정수루 옆 도로에 있는 비석 정수루를 들어서면 나주목 내아에 있는 오래된 고목을 볼 수 있다. 조선 선조 36년(1603)에 나주목사로 부임한 우복용이 지은 것으로, 나..

조선 관아 2010.09.21

[고창읍성(高敞邑城)] 객사, 동헌 등 읍성내 관청들

고창읍성은 지역민이 거주하던 장소는 아니고 산성의 형태와 비슷한데 지방관청 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생각되는 곳이다. 남강변에 자리잡은 진주성이 고창읍성과 비슷한 형태이다. 읍성내 제일 높은 곳에는 중앙정부를 상징하는 객사가 있고 그 아래로 동헌, 작청 등이 있다. 읍성의 가운데에는 연못과 누각이 있어 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성문 입구에는 감옥이 있고 서쪽편으로는 지방토호들이 모여서 수령을 보좌하고 논의할 수 있는 향청이 자리잡고 있다. 대부분은 복원된 건물처럼 보입니다만 지방관청의 배치와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창읍성 내부 전경. 조선시대 관청에서 제일 중요한 건물인 객사. 임금의 전패와 궐패를 안치하고 문안을 드리는 주사(主舍)와 온돌방을 두어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한..

조선 관아 2010.09.21

동래부 동헌 - 부산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흔적

동래부 동헌은 부산 동래구 시장 골목사이로 남아 있는 조선 시대 관청 건물이다. 동래부는 조선시대 이 일대에서 가장 큰 고을이었으며, 사방이 성으로 둘러쌓여 있다. 지금도 동래부 동헌 주위로 기차역이 있고, 동래부사 송상현을 모신 충렬사가 있다. 왠만한 도시에는 동헌이 다 있었을 터인데, 지금은 별로 남아 있지 않은 것 같고, 동래부 동헌이 그 복잡한 동래시장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동헌은 일명 아헌(衙軒)이라고도 하며, 조선시대 수령이 직접 공무를 처리하던 곳으로 이청(吏廳), 무청(武廳), 향청(鄕廳) 등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건물이다. 동래부는 정3품 당상관(堂上官)이 부사(府使)로 임명되고, 국방 및 대일외교상 중요시되었던 곳이므로 관아시설도 위용을 갖출 필요가 있어 다른 고을에 비..

조선 관아 2009.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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