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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 46

[중앙박물관 불교조각실] 삼국시대 금동불상, 반가사유상 (국보78,83호)

불교가 고구려 소수림왕(372년)때 처음 우리나라에 전해진 이래로 국가와 민간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 신앙의 대상은 원래 스투파라 불리는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탑이 중심이었으며, 점차로 서방이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불교 이래로 부처와 보살의 모습을 구체화한 불상이 신앙의 중심이 되었으며, 사찰에서도 탑보다는 불상을 모신 금당이 중요해졌다. 삼국시대에도 많은 불상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이지만, 황룡사 장륙전의 거대한 불상처럼 금당에 모셔졌던 불상은 많이 남아 있지 않는 반면에 개인들이 소장했던 것으로 보이는 금동불상들은 지금도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 중 국보 78호, 83호로 지정된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 불상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불상이라고 할 ..

중앙박물관 2012.08.22

[중앙박물관 불교조각실] 석조불상, 철조불상

국립중앙박물관 3층에 전시된 대표적인 불상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 가장 아름다운 불상이지 석굴암 본존불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불상인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반가사유상도 이 곳에 전시되어 있다. 불상은 크게 그 재료에 따라서 석조불상, 목조불상, 철조불상, 금동불상 등이 있으며, 새겨진 부처님의 모습에 따라서 석가모니불(여래상),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약사불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성격에 따라서 대표적인 불상들을 박물관에 전시해 놓고 있다. 보통 사찰 불당에 모시는 불상들은 대부분 유명 사찰에서 대대로 전해내려 오기때문에 박물관에 있는 경우는 많지 않고, 주로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크게 융성했다가 조선전기에 폐사지가 된 절터에서 발굴된 불상들이 대부분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개인들이 소장했..

중앙박물관 2012.08.21

[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 석불 입상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석불 입상이다. 왕릉을 구성하던 석물들과 부처상인 석불 입상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장면이다. 깊은 산중에 있어야 할 석불입상이 어떤 경유로 해서 이 곳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자연석을 깍아서 만든 것 같은 전형적인 우리나라 석불입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석불입상들은 대체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조각수법의 섬세함이나 조형미 등이 뛰어난 편은 아니며, 단순하면서도 간략한 서민적인 모습의 불상이라 할 수 있다. 평범해 보이는 석불입상. 신체의 표현이나 옷주름 등에서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닌 정형화된 형태를 하고 있다. 비로자나불로 보이는 석불입상. 2012년에 본 모습 원래는 각기 다른 장소에 있던 석불입상이 박물관 정원에서 왕릉을 지키..

[경주박물관]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 석조불상

불상은 부처의 형상을 표현한 것으로 좁은 의미로는 석가모니를 비롯한 여래의 모습을 표현한 것을 말하지만, 대체로 보살상.신장상 등을 포함하여 일반적으로 불상이라 일컫는다. 원래 불교에서는 신앙의 대상이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신 탑이나 보리시, 금강보좌 등이 중심이었으나 이집트와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지방과 인도의 마투라에서 처음 만들어져 대승불교의 전파경로를 통해 한국에 전해졌다. 사찰의 가람배치에 있어서도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초기까지는 부처의 사리를 모신 탑을 중심으로 가람이 배치되었으나 후대에 들어서면서 탑보다는 불상을 보신 금당이 사찰의 중심이 되었다. 불상은 만든 재료에 따라서 석조불상, 목조불상, 철조불상, 금동불상 등이 있다. 불상이 처음 만들어진 인도나 서역에서는 진흙으로 빚어서 만든 ..

[경주박물관 안압지관] 안압지 출토 통일신라 금동불상과 판불(보물 1475호)

삼국을 통일한 통일신라는 신라 금관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금속공예 기술과 고구려, 백제유민들에 의해 화려한 불교조각예술을 꽃피웠다고 할 수 있다. 석굴암 불상으로 대표되는 통일신라 불교 조각은 서역의 간다라 미술의 사실적인 묘사가 절정을 이루던 시기로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석탑을 중심으로 많은 불교조각예술품들을 남겨 놓고 있다. 불상은 부처의 상을 표현한 것을 말하지만 그 의미를 넓게 해석하여 보살상, 신장상 등을 포함한 것을 말한다. 불상은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졌는데, 불교가 전파경로에 있었던 인도나 서역에서는 흙으로 빚어서 만든 소조불상을 많이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이며,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을 거치면서 석조불상, 목조불상, 금속으로 만든 금동불상, 철조불상 등이 많이 만들어졌다. 신라 궁궐의 후원이..

지역박물관 2012.07.04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보물 63호), 경주 남산에 흩어져 있던 석불들을 옮겨 놓은 삼존불상

경주시 배동 경주 남산 등산로 입구에 옮겨져 있는 보물 63호로 지정된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이다. 원래 경주 남산에 흩어져 있던 것을 모아서 현재의 위치에 옮겨놓고 있다. 본존불은 얼굴과 몸이 어린아이를 묘사하고 있으며, 조각수법이 투박하면서도 입체감이 있어 보인다. 왼쪽의 보살상은 보관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관음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며, 오른쪽 보살상은 투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석불들은 일제강점기에 여러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옮겼지만, 석불의 기본적인 양식이 같기 때문에 처음부터 삼존불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상의 조각솜씨는 다른 불상에 비해서 투박하지만 종교적인 느낌이 강조되고 있는 7세기 신라의 불상조각을 대표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금오산이라고도 부르는 경주 남산은 신..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보물121호), 백률사 언덕아래 남아 있는 통일신라 전성기 조각수법을 보여주는 불상

경주시 동천동 소금강산 기슭에 위치한 이차돈 순교 설화가 전해내려오는 백률사 아래 절터에 남아 있는 거대한 사면석물인 보물 121호로 지정된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이다. 이 불상은 거대한 돌에 불상을 새겨 놓고 있는데 서쪽에는 아미타삼존불, 동쪽에는 약사여래상, 남쪽에는 삼존불입상을, 북쪽에는 여래입상과 11면 관음입상을 새겨놓고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에 만들어진 석조불상으로 입체감과 생동감이 넘치는 표현을 하고 있어, 당시의 빼어난 조각수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다만, 전체적인 양식이나 내용에 있어서 통일성이 부족하여, 전체적으로는 조화롭지는 못한 편이다. 굴불사는 기록에 따르면 8세기 경덕왕이 백율사를 행차할 때 땅속에서 염불소리가 들려 땅을 파서 보니 큰 돌이 나와 이곳에 절을 세우고 돌에는 ..

[부여박물관] 충남지역의 석조불상

부여박물관 야외 정원에 전시된 충남지역의 석조불상들이다. 백제는 초기에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서산마애석불을 비롯하여 태안마애석불 등을 만들기는 했지만, 사찰에 모시기 위한 석조불상은 그리 많이 만들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불교를 도입한 초기에는 불상을 만들기는 했지만, 당시 불교 신앙의 중심을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탑을 중요시했기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백제의 도읍이었던 웅진과 사비성이 있었던 충남지역에는 백제시대의 석조불상보다는 고려시대 호족들이 만들었던 투박한 형태의 석조불상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 많이 남아 있다. 논산 관촉사, 부여 대조사, 논산 개태사, 예산 삽교읍, 아산 평촌리, 부여 정림사지 등 많은 곳에 석조불상들이 남아 있는 곳이며, 그 중 관촉사나 대조사의 불상은 고려..

[중앙박물관 인도.동남아실] 크메르미술, 앙코르와트로 잘 알려진 문화

크메르는 왕코르와트로 유명한 동남아시아 캄보디아에서 존속했던 왕조이다. 이 왕국은 당시 태국,베트남,말레이지아의 일부를 포함하는 대제국을 건설했고, 그 화려함은 힌두교사원인 앙코르와트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왕국의 수도 앙코르에는 앙코르와트를 중심으로 힌두교, 불교 사원과 궁궐 건물을 비롯하여 도시를 구성하였던 많은 유적들이 남아 있다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관에는 많지는 않지만, 크메르 문화를 간략게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크메르인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국교였던 힌두교와 민간신앙이었던 불교 유물들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힌두교 유물들은 말로만 듣던 앙코르와트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주며, 불상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아시아의 불상들고 다른 색다른 모습의..

중앙박물관 2012.05.18

[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실] 투루판 지역의 불교조각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는 기원전 3세기경 아소카왕에 의해서 인도는 물로 주변국까지 전파되기 시작하여 기원전 2세기경 중앙아시아의 박트리아를 비롯하여 실크로드 교역상 주요 거점에 있던 나라들을 통해서 중국 한나라에까지 전파되었다. 당시 불교가 크게 융성했던 지역으로는 대월지, 안식국이라 불린 파르티아, 강거라 불렸던 소그드, 쿠챠 등이 있다. 또한 서유기의 주인공인 현방이나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혜초 등 많은 학승들이 실크로드를 경유해서 순례를 다녀왔으며, 많은 불경들이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었다. 중국 신강 위그루 자치구에 위치한 호탄은 타림분지 남서쪽에 위치한 고대의 왕국으로 원래 옥의 생산지였던 고대국가 대월지가 있었던 곳으로 고대 이래로 동.서교역의 중요한 거점이었으며, 불교의 동진에 큰 역할을 한 지역..

중앙박물관 2012.05.14

[춘천박물관] 강원도를 대표하는 불상과 불교문화재

강원도는 백두대간의 이름난 명산들이 많고 남한강과 북한강이 발원하여 흘러가는 고장으로 삼국시대 이래로 이름난 사찰들이 많은 편이다.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등의 명산에는 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사찰들이 삼국시대 이래로 많이 세워졌고, 한반도 내륙지방의 주요 교통로인 한강수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원주 부근에는 고려시대 큰 사찰들이 들어섰다. 오대산 월정사, 상원사를 비롯하여 금강산의 고찰들은 조선시대에도 왕실과 관련되어 그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양양의 진전사와 선림원, 강릉의 굴산사와 한송사, 원주의 법천사, 흥법사 등 많은 사찰들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경제적, 사회적 요인 등으로 폐사되어 오늘날 그 절터만 남아 있다. 강원도를 대표하는 문화재 중 불상으로는 국보 124호인 한송사지 석조보살..

지역박물관 2012.04.05

안성 봉업사지 석조여래입상(보물989호), 고려초를 대표하는 석조불상

조선시대 죽산도호부가 설치되었던 죽산면 소재지에 위치한 봉업사 옛절터에 남아 있던 고려초 불상인 봉업사지 석조여래입상이다. 이 불상은 높이 1.57m로 불상과 광배가 같은 돌로 만들어졌다. 눈,코,입 등은 심하게 닳았으며, 옷주름은 여려겹으로 자연스럽게 잘 표현되어 있다. 고려초기에 만든 다른 석불입상에 비해서 전체적으로 신체비례가 적절한 편이다. 불상의 뒷면에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가 있다. 이 불상은 고려초기에 유행했던 이 지역의 불상양식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는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원래는 오층석탑, 당간지주와 함께 봉업사 옛절터에 있던 것을 죽산면에 소재한 오래된 사찰인 칠장사 대웅전 옆으로 옮겨 놓고 있다. 이 불상이 있던 봉업사는 고려시대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던 큰 사찰로 고려 태조의 진..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보물 218호), 은진미륵이라 불리는 국내 최대 고려시대 석불

'은진미륵'이라 불리웠던 논산 관촉사에 세워진 국내 최대의 석불이다.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할 때 민간에 크게 영향을 미쳤던 미륵불 신앙을 대표하는 불상으로 석굴암 본존불로 대표되는 간다라 미술의 영향을 받은 세련되고 정밀한 조각수법을 자랑하는 통일신라의 석불과는 달리 투박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토속적인 불상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불상이다. 고려초기는 이 석불을 비롯하여 파주 용미리석불,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안동 제비원 석불 등 지방세력의 힘을 자랑하는 많은 석불들이 만들어진 시기이다. 또한 지역 호족세력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거대한 철불 또한 많이 만들어졌는데, 대부분 세련됨을 추구하기 보다는 투박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불상의 모습을 하고 있다. 보물 218호로 지정된 관촉사 석..

[경주박물관 미술관] 신라의 불교조각, 금동불상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28호)

불상은 부처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좁게는 여래상, 넓게는 보살상과 신장상까지를 포함한다. 불상은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또는 마투라지방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불교의 전파경로에 따라 서역과 중국을 통해서 우리나라로 전해졌다. 불상은 석재를 조각한 석조불상, 금속에 황금빛 도금을 한 금동불상, 철로 만든 철불상, 나무로 만든 목조불상 등이 있다.금동불은 동과 주석,납 등의 합금에 금도금을 입힌 불상으로 동의 제련, 합금, 주물, 도금 등 고도의 숙련된 주조기술과 고가의 재료인 동과 밀납을 필요로 한다. 금동불은 상당한 비용과 기술을 필요로 하지만, 정교한 조각이 가능하고 내구성이 뛰어났기때문에 많이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금동불상은 그 용도에 따라서 수cm 작은 금동불..

지역박물관 2011.11.01

[경주박물관 미술관] 신라의 불교조각, 석조불상

불상이라 함은 부처의 형상을 회화.조각 등의 형식으로 표현한 것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조각상을 말한다. 불상에서 말하는 부처라 함은 여래의 상을 의미하는데 그 범위를 넓혀서 보살상, 신장상 등도 불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상은 불교가 탄생한 이래 수백년 동안 신앙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원래는 부처의 사리를 모신 탑(Pagoda)이나 보리수,금강보좌 등이 불교신앙의 대상이었으나 불교가 서역을 통해서 동아시아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그리스나 이집트 등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지역과 인도의 마투라라는 지역에서 거의 동시에 발생하여 전파되었다고 한다. 동아시아에서 보여지는 부처의 형상인 불상에서는 사실적인 면이 강조되지 않아서 그리스나 헬레니즘문화권의 조각상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불상이 처음 생..

지역박물관 2011.11.01

[경주박물관 미술관] 신라의 불교 미술

신라에 불교가 받아들여진 것은 고구려를 통해서 눌지왕때인 5세기 중엽이었으나 실제로 불교가 국가적으로 공인된 것은 법흥왕 때인 527년 이차돈의 순교에 의해서이다. 이전까지 신라인들은 고분에 껴묻거리와 경주 낭산으로 비롯하여 지배계층이 신성시 여겼던 숲 등을 통해서 고유의 신앙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가 불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신라에서 불교는 왕실과 지배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호국불교의 성격을 갖고 있다. 내물마립간 이후 찬란하게 꽃피웠던 황금문화는 불교가 국가적인 종교로 자리를 굳히면서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마립간시기에 대릉원 일대 고분을 조성하는데 쏟았던 노력과 열정을 경주 각처에 사찰을 건립하는 데 쏟음으로써 화려한 불교 유물들을 오늘날까지 남겨 놓고 있다. 당시 신라..

지역박물관 2011.10.29

경주 율동 마애여래삼존입상 (보물 122호), 통일신라때 만들어진 마애석불

경주시 율동 벽도산 자락에 바위를 깎아 만든 마애여래삼존입상이다. 태종무열왕릉을 비롯한많은 유적지들이 산재해 있는 경주시가지 서쪽편 선두산과 마주보고 있는 벽도산에 이 마애불이 위치하고 있다. 선두산과 벽도산 사이의 골짜기는 경주와 영천을 비롯한 경북 내륙지방을 연결해주는 주요한 교통로로서 건천읍의 금척리 고분 등 많은 유적지들이 산재해 있는 곳이다. 이 마애불의 원래이름은 두대리마애석불이었것으로 보아 이 불상이 있는 마을입구의 원래 명칭이 두대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삼존불 입상은 서방극락세계를 다스린다는 미래불로 여겨지는 아미타불을 본존불로 하고, 왼쪽에는 관세음보살상이,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이 있다. 후대에 세워진 마애불에 비해서 돋을새김을 한 형태가 입체적이고 세련된 느낌을 주고 있다. 통일신라..

제천 청풍 물태리 석조여래입상 (보물 546호)

청풍문화재단지에 있는 보물 546호로 지정된 제천 물태리석조여래입상이다. 이 불상은 원래 청풍도호부 관아가 있던 읍리에 있었던 불상인데,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전체적으로는 고려시대에 세워진 서민적인 모습의 미륵불상들과는 달리 통일신라 불상의 세련되면서도 힘이 있는 조각수법이 남아 있는 불상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비사실적인 손의 표현, 형식적의 주름 등의로 볼 때 통일신라 불상 조각수법의 영향이 남아 있는 고려초기의 불상이라고 한다. 삼국시대 이래 영남지방의 관문격인 죽령길에 위치해 있었던 청풍지역의 번성했던 과거를 잘 보여주는 유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주요 교통로나 경관이 좋았던 지역에는 큰 사찰들이 많이 있었는데, 청풍 지역에는 큰 사찰이 보이..

보령 성주사지 석불입상

보령 성주사지에 뒷편에 위치한 강당터 옆에 있는 석불입상이다. 현재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상당부분이 마모되어 있고, 코을 비롯한 얼굴부분은 특히 심하게 훼손되어 일부는 시멘트로 메꾸어 놓고 있다. 원래부터 성주사지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이 곳 성주사지로 옮겨왔다고 한다. 이 석불입상은 처음 만들때부터 크게 잘 만들어진 불상으로 보기는 힘들고, 어떤 연유로 인해 효험이 좋다는 미신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석불입상에 비해서 얼굴의 훼손이 상당히 심하여, 시멘트로 메꾸어 놓은 현재의 모습은 부처님의 얼굴이 아니라 만화에 나오는 인물처럼 변해버렸다. 이 또한 부처님이 변신한 모습이라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하여튼 희극적인 느낌을 주는 석불입상. 보령 성주사지 석불입상. 투박한 모습을 ..

양양 낙산사 해수관음상, 동해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는 관음성지의 상징

양양 낙산사는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이자, 기도도량으로 불리는 사찰이다. 이 사찰에는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고, 의상대를 비롯한 명승들도 많지만 그래도 이곳 낙산사를 상징하는 상징물로는 동해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는 해수관음상이 가장 대표적인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해수관음상은 낙산사 경내에서 바다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신성봉 정상에 자리잡고 있으며, 낙산사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1977년에 당시 동양최대 규모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는 이 관음상은 남해 보리암의 관음상과 함께 동해의 거센 파도를 다스리는 듯한 관음보살의 상징적인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관음보살은 기도를 하면 그 소리를 듣고 소원을 들어주려고 하는 존재로 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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