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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259

진천 연곡리 석비(보물 404호), 비문이 없는 석비

충북 진천읍 연곡리 만뢰산 아래 연곡계곡에 남아 있는 연곡리석비(보물404호). 전체 높이 3.6m로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이수)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비석이다. 비몸에는 글자가 없어 '백비(白碑)'라 불렸다. 처음부터 비문을 새기지 않았는지 지워져 버린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머릿돌에는 아홉마리의 용을 새겼는데 표현이 사실적이고 조각수법도 뛰어나다. 거북받침돌의 머리부분이 손실되었는데 말의 머리와 비슷해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나 조각수법 등으로 볼 때 고려시대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연곡리석비는 원래 계곡에 비석만 남아 있었는데, 최근에 보탑사라는 비교적 큰 규모의 사찰이 세워졌다. 지금은 보탑사 경내에 위치하고 있어 이 사찰과 관련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탑사와는 무관한 석비이다. 부근..

경산 팔공산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31호), 갓바위라 불리는 소원성취를 비는 대표적인 기도처

대구 갓바위는 대구 부근 명산인 팔공산 남쪽 자락에 위치한 해발 850m 관봉 정상부에 있는 석불좌상으로 머리에 갓을 쓰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갓바위라고 많이 불린다. 부처를 형상화한 불상이지만 기복신앙의 의미를 갖는 대표적인 불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이다. 특히, 수능을 앞둔 학부모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해마다 대입수능시험을 앞두고 뉴스에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갓바위는 해발 850m의 높은 봉우리에 있으며, 경주로 들어가는 길목인 넓은 경산과 영천지역 벌판과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갓바위라 불리는 불상은 보물 431호로 지정된 문화재로 정식 명칭은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이다. 통일신라시대 후기라 할 수 있는 9세기에 조성된 불상으로 머리에 넓적..

상주 복룡동 석불좌상(보물119호), 상주 도심 왕산공원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불상

상주시 구도심 옛 상주목 관아가 있었던 왕산에 있는 석조불상이다. 원래는 상주시 복룡동 마을에 있었던 것으로 1970년대에 공원이 조성되면서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석불은 높이 147cm로 중후하면서 투박한 느낌을 하고 있어 지방세력의 힘을 보여주는 많은 석불을 세웠던 고려초기에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머리를 비롯하여 전체적으로 훼손된 부분이 많으며 조각수법 또한 통일신라 전성기의 것보다 뒤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상주시 일대의 중심지가 되었던 도심 마을에 계속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부여 정림사지나 논산 개태사 등에서 볼 수 있는 도심에 있었던 사찰의 불상으로 보인다. 상주 복룡동 석불좌상, 보물119호, 경북 상주시 서성동 당초 석불좌상이 있었던 곳은 복룡동 358번지 마을 가운데..

서울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보물657호)

보물 657호로 지정된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는 북한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많은 계곡 중 하나인 삼천리골계곡에 남아 있는 불상이다. 계곡에 있는 큰 바위에 새겨진 이 불상은 고려초인 11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불상은 지금은 삼천사 대웅전 뒷편에 위치하고 있지만, 원래는 현사찰에서 2km 쯤 위쪽에 삼천사가 있고 마애불상이 있는 이곳에는 작은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바위에 새겨진 높이 2.6m의 이 불상은 얼굴과 윗몸은 돋을 새김을 하였으나, 하반신과 광배 대좌 등은 볼록한 선새김을 하고 있다. 불상이 조성된 바위 위에 다른 커다란 바위가 얹혀 있어 지붕이나 보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고려초기에 새겨진 불상으로 조각수법이 섬세하면서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으며, 전체적인 비례 또한 자연스..

서울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보물 215호), 사모바위 아래 바위에 새겨놓은 불상

서울 구기동 마애여래좌상은 북한산 봉우리들 중 진흥왕순수비가 있었던 비봉과 사모바위 아래 바위에 새겨진 거대한 마애불상이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마애불상으로 그 규모가 상당히 큰 편으로 고려초 지방의 호족세력이 그들의 권위를 표현하게 위해 대형 석불이나 철불을 조성했던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마애불상으로 평면적인 형태를 보여주지만 동시대에 만들어진 대형 석조불상들에 비해서는 조각수법이 뛰어난 편에 속하는 불상으로 전체적으로 석굴암 본존불이나 하남동 춘궁동사지에서 발굴된 철조불상을 참조하여 조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마애불상은 중국 당나라 고승은 승가대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찰인 북한산 승가사 뒷편에 위치하고 있다. 불상 아래에는 보물 1000호로 지정된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상이 있으며, 승가..

서울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좌상(보물 1000호), 당나라 고종대에 활동한 서역출신 승려의 조각상

서울 구기동 북한산 비봉과 사모바위 아래에 위치한 승가사는 통일신라시대인 756년에 창건한 사찰로 당나라 고종대에 활동한 서역출신 승려 승가대사를 기리기 위해 이름 지어진 사찰이다. 승가사는 한국전쟁 당시 불에 타 불전을 비롯한 전각들 중에 오래된 것은 없지만 사찰 뒷편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고려시대 승려의 조삭상인 승가대사 석좌상과 사모바위 아래 큰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상이 남아 있다. 사찰 뒷편 석굴 안에 모셔진 보물 1000호로 지정된 승가대사 석좌상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승려의 모습을 불상처럼 조각상으로 만들 것이다. 조각상은 고려초기 현종대인 1024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는 승려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상제는 길고, 하체는 넓게 표현하고 있어 당시의 불상 조각 경향을 잘..

문경 봉암사 삼층석탑(보물 169호)

문경 봉암사 옛 주불전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금색전 앞 마당에 세워져 있는 보물169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다. 석탑 조형미가 절정을 이루던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당시 일반적인 석탑과는 달리 기단부가 1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상륜부 머리장식이 온전히 남아 있어 동시대 석탑의 기준이 된다고 한다. 전성기때 만들어진 석탑답게 전체적으로 구성품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는 석탑이다. 문경 봉암사는 하얀 바위산인 희양산(해발999m) 남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로 통일신라말 호족의 지원을 받아 크게 번창했던 선종계열의 구산선문 중 하나인 희양산문의 종찰이었다. 이 사찰의 창건내력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통일신라말 지증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승탑(보물137호)와 탑비(국보 315호), 섬세한 조각상이 있는 승탑과 최치원이 글을 지은 탑비

문경 봉암사 경내에 남아 있는 지정된 지증대사 승탑(보물137호)와 탑비(국보 315호)이다. 지증대사 승탑은 통일신라말 승려의 사리를 모신 승탑을 대표하는 것으로 2층의 기단위에 탑신과 지붕돌을 올려놓은 형태이다. 승탑 각부분에 화려한 조각상을 새겨놓고 있어 통일신라시대의 뛰어난 조각기술을 잘 보여주고 있다. 2단으로 이루어진 기단은 8각형으로 각면이 밑단에는 사자를 조각하였으며, 기단 윗단에는 전설속 동물인 가릉빈가를 새겨 놓고 있다. 이 승탑의 가장 특징부분인 가운데 받침돌에는 당시 악기를 보여주는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을 새겨 놓고 있다. 8각으로 이루어진 탑신에는 앞.뒤로 문을 새겨 놓고 있으며, 사천왕상과 보살의 모습을 조각해 놓고 있다. 탑비는 비는 지증대사의 승탑을 세우면서 그 내력..

[대구박물관] 정도사지 오층석탑(보물357호)와 야외 전시장 석조유물

대구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정도사터 오층석탑은 원래 경북 칠곡군 정도사 절터에 남아 있던 석탑이다. 경복궁 야외전시장에 있는 많은 석조유물들처럼 이 석탑도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일제가 경복궁 마당으로 옮겼던 것을 1994년에 대구박물관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는 유물이다. 보물 357호로 지정된 이 석탑은 전성기때인 통일신라시대의 영향을 받은 고려초기의 석탑이라 한다. 2층 기단에 5층으로 탑을 쌓은 정형화된 양식의 석탑이다. 2층으로 된 기단 각면에는 안상이 새겨져 있고, 한면에 이 석탑의 조성 내력을 기록한 명문이 새겨져 있다.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진 탑신 1층 몸돌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이 새겨져 있으며, 탑안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석탑 조각기술의 절정기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에 비해..

영주 숙수사지 당간지주(보물 59호)와 절터 출토 유물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주세붕 선생이 세운 소수서원 들어가는 소나무 숲길에 위치한 당간지주이다. 이 곳에 서원이 세워지기 이전에는 숙수사라는 사찰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문화재이다. 서원과 마찬가지로 사찰도 대부분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기때문에 이 곳도 사찰이었다가 어떤 사연에 의해서 절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서원을 세운 듯 한다. 소수서원이 위치한 곳은 영주 순흥지역에서도 경치가 좋고 사람의 통행이 많은 교통의 요지로 통일신라시대부터 인근 부석사 못지않게 큰 절이었던 숙수사가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당간지주는 부근에 출토된 많은 유물들로 볼 때 숙수사는 상당히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숙수사 절터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부근 소수중학교 건립공사 중에 발견되었는데 모두 25구의 불상들이 출토되었..

고양 북한산 태고사 원증국사 승탑(보물 749호)과 탑비(보물 611호)

북한산성 계곡에서 중심이 되는 행궁터 아래에 위치한 태고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승탑과 탑비가 있다. 승탑의 주인은 고려말.조선초에 중흥사 머물면서 공민왕의 왕사를 지내는 등 큰 영향을 미쳤던 승려 보우이다. 그는 어린나이에 양주 회암사에 출가하여 여러 사찰에서 공부를 하였으며, 중국에 유학을 하기도 하였다. 공민왕때 신돈의 뒤를 이어 왕사가 되었으며, 고려 우왕때 이곳 태고사에서 입적하였다고 한다. 태고사는 원래 원증국사가 머물렀던 중흥사에 딸린 작은 암자로 지금도 불전과 요사채를 갖춘 사찰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한국전쟁으로 불타버린 것을 복구한 것이라고 한다. 원증국사가 머물렀던 사찰은 태고사 아래쪽에 위치한 중흥사로 고려말에 크게 중수하였다고 하며, 병자호란 이후 북한산성이 축조.보강되면서 승병들이 ..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앞 석등(보물231)

석등은 불상을 모신 불전, 사리를 모신 탑의 앞에 불을 밝히기 위한 석조물로 서양 기독교 등 각종 종교에서 다양한 촛불을 밝히는 것과 같은 기원을 두고 있는 보이는 대표적인 공양물이다. 불교에서는 불을 밝히는 것으로 공양 중에서 으뜸으로 여겼기때문에 불전, 탑 외에도 승려의 사리를 모신 승탑 앞에도 석등을 세워 놓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석등은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는 알져져 있지 않지만 백제 미륵사지에서 발견된 석등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석등은 승탑이나 석탑처럼 목조건물 형태를 하고 있음 기본적으로 4각, 5각, 8각형을 하고 있으며, 기단이 되는 하대석, 기둥인 중대석과 그 위의 상대석, 불을 밝히는 화사석과 지붕 보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물 231호로 지정된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앞 석..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보물228호)과 석종비(보물229호)

신륵사는 고려말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선사가 마지막으로 입적하면 그의 제자들이 크게 중창한 사찰로 세종대왕 영릉이 여주로 옮겨지면서 원찰로 크게 번창한 사찰이다. 조선초기 무학대사가 주지로 있으면서 왕실과 관련이 깊었던 대표적인 원찰인 양주 회암사와 관련이 깊은 사찰이기도 하다. 현재의 신륵사는 조선중기 성종대에 크게 중창될 때의 모습이 여러차례 중건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려말.조선초를 대표하는 승려인 지공선사, 나옹선사, 무학대사의 영정이 모셔진 조사당 뒷편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는 신륵사를 크게 중창시킨 나옹선사의 사리를 봉안한 승탑이 있다. 나옹선사의 승탑은 통일신라시대 이래로 정형화된 목조 건물 형태를 하고 있는 승탑과는 달리 인도의 승탑인 스투파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

여주 신륵사 대장각기비(보물 230호), 목은 이색이 대장경을 인쇄하고 대장각을 세운 내력을 적은 비석

여주 신륵사 경내 동쪽편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남아 있는 비석인 보물 230호로 지정된 '신륵사 대장각기비'이다. 이 비석은 고려말 유학자이자 조선의 건국에 반대했던 대표적인 충신이었던 목은 이색이 공민왕과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해 대장경을 인쇄하고 보관하기 위해 대장각을 세우면서 그 내력을 적은 비석이다. 비석은 연꽃무늬를 새긴 대석위에 대리석에 글씨를 적은 비몸을 세우고 양쪽에 기둥을 댄 다음 그위에 지붕을 놓은 형태로 조선초기 비석의 형식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대장경을 보관하던 대장각은 2층으로 지어진 건물로 아마도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경치좋은 곳에 정자처럼 지어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앞쪽에 세워진 다층석탑, 삼층석탑과 함께 신륵사를 대표하는 건물로 이정표 역할을 했던 건물이었던 것..

여주 신륵사 다층전탑(보물 226호)과 삼층석탑, 남한강 수로와 나룻터 이정표가 되었던 탑

신륵사 경내 동쪽편 남한강가 넓은 바위에는 다층전탑과 작은 삼층석탑이 자리잡고 있다. 벽돌로 쌓은 전탑은 신륵사를 찾는 사람뿐만 아니라 배를 타고 남한강을 오가는 많은 선박들에게 등대나 이정표같은 역할을 했던 탑이다. 다층전탑은 벽돌로 쌓아서 만든 전탑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 시대에 중건하면서 옛모습고 벽돌로 쌓은 전탑은 우리나라에서는 많지 않은 형태이고 많은 나람들이 오가는 남한강 나루터에서 눈에 띄는 이정표가 되었기때문에 신륵사를 벽절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전탑 아래 바위 위에는 고려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는데, 신륵사에서 입적한 나옹화상을 화장한 장소라고 한다. 신륵사 다층전탑 탑은 화강석으로 쌓은 기단위에 벽돌로 몸돌을 쌓고 그 ..

여주 신륵사 다층석탑 (보물 225호), 대리석으로 만든 조선시대 석탑

신륵사 주불전인 극락보전 앞 마당에 세워져 있는 다층석탑은 높이3m로 석탑으로서는 크지 않은 편이며 통일석탑이나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경천사지 석탑 등에 비하면 아담해 보이는 석탑이다. 고려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전통적인 삼층석탑 또는 오층석탑과는 달리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석탑으로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도교풍의 장식이 많은 경천사지석탑의 특징을 이어받은 석탑으로 보이다. 신륵사가 세종대왕 영릉의 원찰 역할을 부여받아 크게 번창했던 성종대에 중창된 다른 불전들과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서울 탑골공원에 남아 있는 세조대에 세워진 원각사지십층석탑보다 약간 늦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볼 때 원각사 석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성종대에는 세조의 며느리이자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가 불교를 크..

담양 객사리석당간(보물505호), 조선후기 중건된 석재로 만든 당간

담양군 담양읍 객사리 메타세콰이어 가로수로 유명한 순창.담양간 국도변에 남아 있는 보물 505호로 지정된 석당간이다. 고려시대 5층석탑과 함께 고려시대 절터에 남아 있는 유물로 당간과 당간지주가 함께 남아 있는 보기드문 유물이다. 당간은 높이 15m로 화강석을 다듬어 만든 긴석재 3개를 연결하여 당간을 만들고 있다. 절이 폐사되었지만 당간은 비교적 최근이라 할 수 있는 1839년(헌종5)에 중건된 것으로 석당간 옆 비석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청주 도심에 남아 있는 철당간과 마찬가지로 절이 폐사되었지만 지역에서는 큰 의미가 있었기때문에 구한말에 중건되면서 유지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담양 객사리석당간, 보물 505호, 전남 담양군 담양읍 객사리 당간이란 절에서 불교의식이 있을 때 내걸었던 '당'이라는 깃..

담양 남산리 오층석탑(보물 506호),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모방하여 만든 고려시대 석탑

담양의 명소 메타세콰이어길이 시작되는 담양 순창간 국도변에 위치한 남산리 오층석탑이다. 가장 오래된 석탑 중 하나인 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으로 모방해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고려시대 석탑으로 1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 놓고 있으며, 머리장식은 남아 있지 않다. 기단 1층이기는 하지만 탑을 구성하는 탑신과 기단의 비례가 적절하여 안정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석탑은 석탑자체의 독특한 조형미를 가지는데 비해 정림사지석탑처럼 석재를 이용하여 목탑처럼 쌓은 석탑이다. 석탑이 있는 이곳은 담양읍내에서 동쪽으로 빠져나가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는 이곳이 절터였음을 알려주는 당간지주와 오층석탑만이 남아 있다. 이 곳은 고려시대에 많이 세워졌던 평지사찰로 주요 교통로에서 여행객들이 잠시..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국보 307호), 중국 북제의 영향을 받은 백세시대 불상

한반도와 중국간 해상교역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태안반도에서 비교적 높은 봉우리에 속하는 백화산(284m)에 남아 있는 백제시대 석굴사원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국보 307호로 지정된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이다. 이 불상은 백제가 중국 남.북조와 교류하던 6세기경 중국 북제의 석굴사원 불상의 영향을 받은 불상으로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상(국보84)에 선행하는 양식을 가졌다. 이 불상은 마애불상 중에서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사각형의 감실안에 보살상이 가운데 있고, 양쪽에 여래상이 있는 특이한 배치를 하고 있는 삼존불상이다. 오른쪽에는 약사여래, 왼쪽에는 석가여래, 가운데에 작은 크기의 관음상이 새겨져 있다. 불상 아래쪽에는 백제시대 연화대좌가 확인되어 그..

담양 개선사지 석등 (보물111호), 가사문학의 산실 증암천 주변 옛 절터에 남아 있는 큰 석등

개선사지는 담양군 남면 학선리 광주호 서쪽편에 석등만이 남아 있는 절터이다. 석등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볼 때 그 이전부터 이곳에 사찰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절터는 오랜 세월 농경지로 사용되어서 옛 절이 있었던 흔적은 거의 찾아 보기 힘들다. 개선사지는 가사문학의 산실로 물이 풍부하고 경치가 좋아 조선시대 많은 선비들이 정자와 정원을 조성하여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던 증암천 주변에 위치해 있다. 지금은 광주댐 건설로 큰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주변지역이 댐건설로 수몰되지 않았다면 농경지가 풍부한 마을과 가까운 전형적인 통일신라 평지사찰의 입지를 갖추고 있던 사찰로 석등의 규모로 볼 때 꽤 큰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땅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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