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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변산반도 - 격포항, 변산반도 해안 관광의 중심지

변산반도 관광의 중심지인 격포항입니다. 이 격포항에서 서해안 앞바다에 있는 위도, 고군산도 등으로 출발하는 여객선이 있고 북쪽으로는 채석강, 적벽강 등 해안절경이 많이 있기때문에 많이 숙박지들이 이부근에 밀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곳 격포항은 변산반도 관광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격포항에는 관광객들이 많은 까닭에 상시적으로 해산물을 살 수 있는 어시장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채석강이 있는 '닭이봉' 남쪽에는 변산반도에서 가장 서쪽에 자라잡고 있는 작은 어항이 격포항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변산반도는 서해안 끝에 자리잡고 있기때문에 우리나라 서해안 대부분의 항구처럼 갯벌위에 있지 않고 남해안 항구와 비슷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래서 이 부근에서 임진왜란을 촬영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의 풍경 2009.12.29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 석기로 만든 농경 도구들, 반월형석도 등

농경을 위한 돌로 만든 유물들은 신석기시대 것부터 출토되고 있으나, 많이 출토되는 편은 아니고 청동기시대에 본격적으로 농경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돌로 만든 농기구들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농기로는 '반월형 석도'라고 불리는 반달모양의 돌칼이 많이 알려져 있고, 현재의 농기구와 비슷한 형태의 돌을 갈아서 만든 농기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표적인 돌로 만든 농기구인 반원형 석도. 벼농사에서 추수를 위해서 사용한 도구로 몸체에 구멍이 둟려있고 이 구멍에 끈을 꿰어 손에 걸어 사용했다고 한다. 벼농사의 흔적인 불에 탄 쌀. 부여 송국리에서 출토되었다고 한다. 신석기시대 농기인 돌로 만든 칼. 서울 암사동 선사유적지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 돌로 만든 농기구. 초보적인 농사의 형태를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 청..

중앙박물관 2009.12.28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 신석기인의 예술, 무덤, 대외교류

신석기인들이 정신세계를 표현한 것으로는 장신구를 들 수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조가비에 구멍을 뚫어서 사람의 얼굴 형태를 만든 것이 있고, 각종 팔찌와 발찌 등의 장신구 들이 있다. 신석기인의 사후세계관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무덤에 묻힌사람이 평소에 사용하던 물건들을 같이 묻어주는 부장품들이 있고, 당시의 대외교류를 보여주는 우리나라 동남해안지역에 출토된 일본의 조몬토기와 흑요석 등이 전시되어 있다. 부산 동삼동에서 출토된 것으로 얼굴모양 조가비 탈. 마을 공동의식이나 축제 때 의식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유물이다. 주술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발찌와 팔찌, 귀걸이 같은 장신구 기하학적인 상징이 들어간 덧무늬토기와 단순화된 여인상 신석기인의 무덤에 부장품으로 같이 묻힌 돌도끼, 토기 등의 유물..

중앙박물관 2009.12.28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 신석기 시대의 토기 (덧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인 빗살무늬토기와 덧무늬토기이다. 덧무늬토기는 토기 중에서 가장 연대가 빠른 유물로 부산 동삼동 유적지에서 발굴된 것이 대표적이며, 양양에서 발굴되었다고 한다. 이 덧무늬토기는 전국에 걸쳐서 발굴되는 것은 아니고 특정한 지역을 중심으로 발굴되는 토기라 한다. 후대의 토기인 빗살무늬 토기는 한반도 전역에 걸쳐서 발굴되는 유물로 지역마다 다른 특색을 보여주고 있는데, 동일한 문화라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부산 동산동에서 발굴된 덧무늬토기. 대표적인 덧무늬토기 양양 오산리에서 출토된 누른무늬 토기. 융기문토기(隆起紋土器)라고도 한다. 덧무늬토기는 토기를 만든 다음 그 기벽 위에 또다시 흙띠를 덧붙여 돋아오르게 한 것을 말한다. 토기의 바탕흙살을 세게 눌..

중앙박물관 2009.12.28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 신석기인의 수렵, 어로 생활과 도구

신석기의 생활을 모여주는 유물로 수렵, 어로를 위한 도구들을 전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신석기인 거주할 수 있었던 주요 원인중의 하나인 고기잡이가 있다. 이 유물들은 주로 강가에 위치한 집터나 바닷가 조개더미에 출토되고 있다. 또한 신석기 시대 도구의 특징은 숫돌로 재료를 갈아서 만든 마제 도구들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석기 시대 어로활동을 위한 작살. 돌이나 짐승의 뼈를 갈아서 만들었다. 신석기시대 이음낚시. 마찬가지로 돌이나 짐승의 뼈로 만들고 있으며, 부산 범방동 조개무지에서 출토된 것이 대표적이다. 그물에 사용된 그물추 돌을 가는데 사용한 숫돌 숫돌로 갈아서 만든 돌도끼와 돌칼 각종 화살촉 도구를 만드는데 이용된 동물뼈 암사동 유적지에서 출토된 갈판과 갈돌. 처음에는 도토리를 가는..

중앙박물관 2009.12.28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 구석기실, 전곡리 출토 주먹도끼 외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은 1층에 배치되어 있으며 역사순으로 할 수 있도록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고고관을 대표하는 유물로 백제의 산수무늬벽돌과 신석기시대 빗살무늬 토기가 전시되어 있다. 이 유물들을 지나면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인 연천 전곡리에서 출토된 주먹도끼를 비롯한 구석기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나라 구석기인 약 70만년 전부터 살기 시작했다고 하며 주로 강가나 동굴에서 살았다고 한다. 대표적인 구석기인 주거 유적지로는 임진강변의 연천 전곡리, 금강변의 공주 석장리 유적지가 있다. 대표적인 구석기 유물인 주먹도끼 구석기 유물들. 다양한 형태의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구석기실에 전시된 유물들 구석기 시대 도구의 사용방법 주먹도끼 구석기시대 전기의 대표적인 석기로, 끝이 뾰..

중앙박물관 2009.12.28

영덕 고래불 해변 - 석호가 형성되는 현상

석호는 아니지만 동해안에서 민물이 바다로 흘러들 때 파도의 힘에 의해 석호 비슷한 모습으로 모래톱이 형성되면서 호수가 형성되는 모습을 영덕의 고래불 해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워낙 바다에서 오는 파도가 세기때문에 민물이 바다로 잘 흘러들어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민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곳에 길게 모래톱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모래톱부분에만 파도가 생기고 있습니다. 민물이 바다로 흘러도는 곳입니다. 모래톱으로 가로막혀 매우 좁은 부분으로만 흘러들어갑니다해안가 안쪽으로는 호수가 형성된 것 처럼 보입니다.육지화가 많이 진행된 곳에서는 풀들이 자랍니다.호수처럼된 곳에는 수초들이 많이 자라고 있습니다.이쪽의 민물이 바다로 나가는 곳은 매년 변하고 있기때문 이 곳처럼 물이 갇히는 곳이 생기기도 합니다.

한국의 풍경 2009.12.28

[여주 고달사지] 석불좌, 거대한 석불이 놓여 있던 자리

여주 고달사지 경내에서 가장 중앙에 놓여 있는 석불좌이다. 통일신라시대까지는 사찰 경내 중앙에는 신앙의 중심이 되는 석탑이나 목탑이 서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곳 고달사지에는 석불좌가 자리잡고 있다. 아마도 거대한 석불이 이 곳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석불좌는 언제 만들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조각 수법 등으로 미루어 고려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고달사지가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의 가람배치와 약간 다른 면을 잘 보여주고 있는 유물이기도 하다. 고달사지 경내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석불좌. 통일신라시대까지의 가람배치에서는 석불좌가 있는 자리에는 석탑이나 목탑이 자리하고 있던 자리이다. 고달사지 석불좌는 보존상태가 아주 완벽하여 석불좌만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아래 ..

고려시대 대몽항쟁의 현장 강화산성 (고려성)

강화산성은 강화도 내에서 대몽항전을 수행했던 강화읍내에 있는 성입니다. 정식명칭은 강화산성입니다만 산성으로 분류할 수도 있고 읍성으로 분류할 수 있는 성입니다. 북쪽으로는 대몽항전씨 최씨정권이 개성을 생각하며 이름지은 송악산과 남쪽의 고려산을 연결하여 강화읍내를 둘러싸고 있는 성으로서 국방상 상당히 중요했던 성으로 여겨집니다. 지금 남아 있는 강화산성은 강화도를 둘러싸고 있는 성(城) 중에서 내성(內城) 역할을 했던 성이고 요지를 연결한 중성(中城)과 해안가의 외성(外城)으로 겹겹히 강화를 지키고 있었다고 합니다. 몽고와의 화친 후와 병자호란 이후에 강화의 궁궐 건물과 성벽 등 방어 시설을 모두 파괴하였다고 합니다. ※ 강화산성 탐방 1. 강화산성 서문/석수문/연무당 옛터 2. 강화산성 남문 3. 강화산..

[나주목 관아] 나주읍성 남고문(남문)

나주 읍성의 남문에 해당하는 남고문은 나주 시내 중심가 도로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성문이다. 나주 도심부를 중앙을 가로지르는 대로가 끝나는 지점에 위치한 남고문은 읍성 성문 중 가장 먼저 복원된 성문으로 마치 서울의 숭례문을 연상시키다. 원래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동점문과는 달리 옹성이 없고, 도로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읍성 밖에서 본 나주읍성 남고문. 옹성은 없고 성문 위에 2층 문루가 있다. 읍성 안쪽에서 본 나주읍성 남고문 옆에서 본 나주읍성 남고문. 문루에 오르는 계단이 있고, 성벽은 남아 있지 않다. 나주읍성 남고문은 나주시대를 관통하는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나주읍성이 만들어진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 이전 또는 고려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초..

[나주목 관아] 나주읍성 동점문(동문)

나주는 영산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오래된 도시로서 호남지역 중심도시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나주에는 읍성이 있었고, 관아 건물 및 향교 등 지방관청이 있는 도시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중 나주읍성은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없어지고, 곳곳에 기초석만 일부 남아있는 상태였다가 최근에 남고문과 동점문이 복원되었다. 나주읍성 동점문은 읍성 동쪽 방향 출입문으로써 광주지역에서 영산강을 따라서 오던 사람들이 출입하는 출입문이다. 복원이 완료된 나주읍성 동점문. 최근에 복원한 성문이라서 그런지, 실제 읍성에 사용되는 자재를 사용해서 제대로 복원이 이루어진 것을 보인다. 나주읍성 동점문은 전면부에 옹성이 있으며, 옹성을 통해서 내부로 들어가게 된다. 나주읍성 동점문은 자연석을 적절한 크기..

김제 금산사 오층석탑 (보물 25호), 방등계단 앞에 서 있는 석탑

김제 금산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 중 하나인 사리계단인 방등계단 앞에 있는 보물 25호로 지정된 오층석탑이다.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기본 양식을 드래로 따른 고려시대 작품으로 석탑 구성요소간 비례가 잘 되어 있는 편이고,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통일신라 석탑의 모양을 하고 있다. 사리계단 앞에 있는 이 석탑은 고려시대 석탑의 기능을 잘 보여주고 있는 석탑으로 통일신라시대에는 주로 경내 한 가운데에서 신앙의 중심이었으나, 이 석탑은 사리계단을 보좌하는 기능을 한 것으로 보인다. 금산사 방등계단 앞에 있는 오층석탑. 2층의 기단부와 5층의 탑신, 상륜부로 이루어져 있다. 금산사 오층석탑 기단부. 1층은 낮고, 2층 기단부는 높게 만들어졌다. 목조건축물처럼 기단부 몸돌에 기둥이 있다. 오층으로 이루어진 탑신과 상..

[김제 모악산 금산사] 석련대, 노주

금산사 중심불전인 대적광전 앞마당 좌우에 위치한 석련대와 노주이다. 석련대는 불상을 올려놓는 탑으로 석조연화대좌라 불리며, 노주 또한 불상을 얹는 대좌처럼보이만 실제로 그 용도를 알 수 없어 노주라 불린다. 두개의 석물 양식은 통일신라시대 양식이나, 그 만든 형태를 보면 고려전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석련대와 노주는 얼핏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석물처럼 보이지만 문화재로서의 독창성과 역사성 등이 있어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문화재이다. 금산사 대적광전 앞 동쪽편 미륵전 가는 길에 위치한 석련대. 불상을 놓는 받침대로서 규모가 상당히 크고, 새겨진 연꽃무늬가 화려하다. 금산사 석련대 상대부분. 연꽃이 에워싸고 있는 형태이다. 중심불전인 대적정전 앞에 있는 석련대 석련대는 석조연화대좌의 준말로 ..

[김제 모악산 금산사] 대장전 앞 석등, 범종각

금산사 미륵전과 마주하고 있는 작은 불전인 대장전 앞에는 석등이 놓여 있고, 남쪽으로는 범종각이 북쪽으로는 명부전이 있다. 대장전과 명부전 사이에는 미륵신앙을 강조하는 사찰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적힌 큰 돌기둥이 자리하고 있다. 대장전 앞에 있는 석등은 고려전기에 만들어진 석등으로 그 형태가 온전히 남아있고,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판단되어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금산사 석등. 받침돌과 화사석, 머리꼬대기 장식까지 온전히 남아 있다. 금산사 석등 받침돌. 아래받침돌, 중간받침돌, 윗받침돌의 3단으로 만들어졌다. 석등 화사석. 팔각형으로 되어 있고 4면에 창을 만들어 놓고 있다. 측면에서 본 석등 금산사 대장전 앞뜰에 놓여 있는 8각 석등으로, 불을 밝히는 부분인 화사석(火舍石..

북경 만리장성 - 북경 팔달령 장성 동쪽 능선

동쪽 발해만 산해관에서 서쪽 장안까지 이어진 만리장성 중에서 가장 방문객이 많은 곳은 아마도 팔달령 동쪽 능선의 장성일 것이다. 팔달령 동쪽 능선은 지형적으로 고갯길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이 많기때문에 돈대의 간격이 좁고, 많은 돈대들이 설치되어 있다. 팔달령 고갯길 동쪽능선을 따라서 쌓은 장성은 최고 높은 봉우리를 돌아서 다시 북경방향으로 이어져 있다. 물론 팔달령을 넘어가는 고갯길도 팔달령에서 동쪽 방향으로 향하고 있어 만리장성 방어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동쪽 능선을 따라 쌓은 장성으로 지금도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걸어서 오르거나, 주요 돈대와 연결된 케이블카로 만리장성을 오르고 있다. 팔달령 고갯길에 있는 만리장성 관광의 출발지에서부터 동쪽 능선의 만리장성을 오르고 있다. 능선을..

중국(China) 2009.12.20

중국 북경 자금성 - 황제의 위엄이 살아 있는 정전인 태화전(太和殿)

중국 자금성의 중심이 되고, 중국 황제의 권위를 가장 잘 나태내고 있는 자금성 정전인 태화전이다. 지금은 누구나 태화전 월대를 올라서 태화전 내부를 어려움 없이 살펴 볼 수 있으나, 옛날에는 황제가 중요한 국가행사시에만 잠시 머무는 법궁으로 3단으로 쌓은 높은 월대 위에 있는 건물이다. 황제를 상징하는 황금빛 기와지붕과 잡상들, 화려한 단청과 처마 장식 등 중국을 대표하는 가장 크고 웅장한 궁궐 건물이다. 태화전 내부는 생각보다는 장식의 거의 없는 공간으로 가운데 황제가 앉는 자리가 보인다. 자금성의 입구인 오문(午門)에서 이 곳 태화전까지가 공식적인 공간으로 황제의 위엄을 표현할려고 애를 많이 쓴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자금성 조정(朝政) 출입문이 태화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자금성 태화전이다..

중국(China) 2009.12.20

중국 만리장성 노룡두(老龍頭) - 바다로 들어가는 장성 성벽.

노룡두는 만리장성이 동쪽에서 시작되는 상징적인 곳으로 발해만 바다와 만리장성이 만나는 곳이다. 영해성 성루와 해안가 모래사장 사이를 막아주는 마지막 견고한 성벽이 노룡두와 등해루 사이에 있다. 등해루에서 계단과 성벽위 길을 따라서 내려가면 만리장성 첫번째 돈대인 노룡두를 만날 수 있고, 노룡두 성벽에서 만리장성 바깥쪽 만주로 들어가는 해안을 볼 수 있다. 만리장성이 발해만과 만나는 해안가 백사장 위로 세워진 첫번째 돈대와 성벽. 용의 머리가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이라하여 노룡두라 불린다. 만리장성 첫번째 읍성격인 영해성 성루인 등해루 앞 광장과 노룡두로 내려가는 길. 해안가와 발해만을 감상할 수 있는 성벽위에 세워진 기념비들 노룡두로 내려오는 길 등해루에서 성벽길을 따라서 내려오면 바다위에 세워진 첫번째 ..

중국(China) 2009.12.20

김제 금산사 육각다층석탑 (보물 27호)

금산사 육각다층석탑은 원래부터 금산사 경내에 있던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던 것을 금산사로 옮겨왔다고 한다. 기단석 위에 유각형의 탑신이 12층으로 쌓여있는데 원래부터 12층인지는 알 수 없고 보통 석탑의 경우 3층, 5층, 7층 등 홀수층으로 탑을 쌓는데 내력을 정확히 알지 못해 다층석탑으로 보르는 것으로 보인다. 화강암으로 쌓은 일반 석탑과는 달리 검은색 점판암으로 탑을 쌓고 있다. 금산사 육각다층석탑. 기단부는 화강석으로 탑신은 점판암으로 상륜부는 화강석으로 만들었다. 원래부터 이런 형태인지 아니면 후대에 보완한것인지 알 수 없다. 육각다층석탑 기단부. 화강석으로 쌓은 2층 기단부 위에 점판암으로 만든 2층 기단부가 따로 있다. 육각다층석탑 탑신. 원래는 몸돌과 지붕도이 모두 있었는데 지금은 상층..

전주 풍남문(豊南門), 전주 읍성에서 남아 있는 유일한 성문

전주를 상징하는 풍남문은 원래 전주부성의 4대문 가운데 남문으로 고려시대에 처음으로 건축되었다고 합니다. 풍남문은 전주한옥마을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으며, 성문 너머로 조금만 걸어가면 천연 해자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하천이 흐로고 있습니다. 이 풍남문은 전주읍성에서 남아있는 유일한 시설물로서 현재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905년 조선통감부의 폐성령에 의해 전주부성 4대문중 풍남문만 제외한 3대문이 동시에 철거되는 수난을 겪었다. 원래는 성문만 있던 것을 80년대에 종각, 포루, 옹성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풍남문과 한옥마을 사이에 큰 도로가 있어 한적한 곳이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으며 성문 앞과 뒤쪽으로는 옛길로 추정되는 작은 이차선 도로가 있고 재래시장이 형성되어 ..

전주 전동성당, 한옥마을 입구에 자리한 호남 최초 서양식(로마네스크 양식) 건물

전주 구도심의 중심부에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을 비롯하여 한옥 마을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건물이 전주 한옥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호남에서 제일 오래된 로마네스크풍의 서양식 건물인 전주 전동성당이 이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실제로 보면 건물 자체가 아주 간결하게 설계되어서 주위의 한옥 마을을 억누리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건물입니다. 전주 한옥마을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호남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전동성당입니다. 경기전이 자리한 한옥마을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잘 어울리는 건물입니다. 전주 전동성당의 첨탑입니다. 3개의 첨탑으로 이루어져 있으면 모양이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전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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