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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 유물 - 받침있는 은잔, 금동 수저, 청동다리미 등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는 당시의 실생활상을 보여주는 은자, 수저, 청동다리미, 그릇 등이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유물들은 상당히 정교하게 잘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 유물들은 백제에서 만들었는지, 중국에서 수입한 것들이 잘 알려져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며, 중국과 일본에 비슷한 유물 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국제교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은잔은 받침과 잔이 합쳐진 것으로 상당히 세려되어 보인다. 뚜껑에 화려한 그림을 새겨 놓고 있다. 동탁은잔은 청동제 받침(동탁)과 은으로 만든 잔(은잔)을 합친 것이다. 받침 은 낮은대각이 달린 접시 모양인데 정 중앙에는 은잔을 받치기 위한 속이 빈 원통형의 받침이 솟아 있다. 여기에 은잔의 굽이 안으로 들어가면서 걸치게 고안되어 있다. 마치 단아..

지역박물관 2009.11.30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 유물 - 청동거울 (청동신수경, 위자손수대경,수대경), 오수전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서 중국과 교류 관계를 잘 보여주는 문화재로 청동거울과 오수전을 들 수 있다. 청동거울은 3점 모두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로 중국 한대의 청동거울을 모방해서 만든 것이다. 중국 청동거울보다는 수준이 떨어지는 복제품으로 수입된 제품인지 백제에서 만들어졌는지 밝혀진 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오수전은 도교사상과 관련된 것으로 토지신에게 묘지터를 샀다는 의미로 지불한 돈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오수전은 백제초기부터 많이 통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3점의 청동거울 중 '청동신수경'이라 불리는 청동거울. 3점의 청동거울 중 의자손수대경과 수대경. 중국 한나라 수대경을 본떠서 만든 복제품이다.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청동거울로 청동신수경, 의자손수대경, ..

지역박물관 2009.11.30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 유물 - 금제 사엽형 장식, 목걸이 등 장신구류

무령왕릉에서 많은 장신구류들이 출토되었다.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많은 유물들이 있는데, 경주에서 출토된 많은 유물들과 큰 차이점이 없는 평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무령왕비와 관련된 금으로 만든 많은 장식류들. 그 금제 4엽형 장식은 왕비의 허리부에서 출토되었다.옥과 같은 보석류로 만든 목걸이. 출토된 옥으로 만든 장신구류 금동으로 만든 작은 동자승. 마스코트처럼 사용된 것 같다.

지역박물관 2009.11.30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 유물 - 무령왕비 귀고리, 은팔지, 목걸이, 발받침과 베게 등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유물로 왕비와 관련된 유물은 금제장식, 귀고리, 은팔지, 목걸이 등 장신구들과 목관에서 발굴된 발받침과 베게 등이 있는데 모두 문화재적인 가치가 높아서 국보로 지정된 것들이 많다. 금은 세공기술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문화재로서의 역사적 가치도 매우 풍부한 유물로 보인다. 무령왕비의 귀고리 2쌍. 단순하면서도 화려한 것이 현대적인 패션감각에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 때 귀고리 2쌍으로 길이는 11.8㎝, 8.8㎝이다. 왕비의 귀고리로, 굵은 고리를 중심으로 작은 장식들을 연결하여 만들었다. 한 쌍은 복잡한 형식으로 길고 짧은 2줄의 장식이 달려 있고, 다른 한 쌍은 1줄로만 되어있다. 앞의 귀고리 중 긴 가닥은 금 철사를 꼬아서 만든 사슬에 둥근 장식을 많..

지역박물관 2009.11.30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 유물 - 무령왕 금제장식, 뒤꽂이, 허리띠장식, 큰칼

웅진시대 백제와 공주를 대표하는 유물인 무령왕 금제장식과 신발, 뒤꽂이, 허리띠장식과 봉황무늬가 있는 큰 칼 등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들이다. 백제의 화려한 문화 수준을 잘 보여주는 유물로 대부분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문화재들이다. 금제장식은 무령왕과 왕비가 같이 한쌍씩 출토되었다. 공주박물관을 대표하는 문화재인 무령왕 금제장식과 신발 무령왕 금제장식 1쌍. 불꼿이 피어오르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 때 금으로 만든 왕관(王冠) 꾸미개(장식) 한쌍이다. 높이는 각각 30.7㎝, 29.2㎝이고, 너비는 각각 14㎝, 13.6㎝이다. 1971년 무령왕릉이 발견·조사되었을 때, 왕의 널(관) 안쪽 머리 부근에서 포개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금판을 뚫어서 덩굴 무늬를 장식했으며,..

지역박물관 2009.11.30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 유물 - 석수(石獸)/지석(誌石)/목관

국립공주박물관은 규모가 있는 박물관이지만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럴 정도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이 많고, 역사적/문화재적으로도 가치가 높다는 의미일 것이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은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로 중국 남조와의 교류를 잘 보여주고 있어서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가 많다. 그 중 왕릉을 대표한 유물로는 왕릉 입구를 지키는 석수, 묘지의 주인을 밝혀주는 지석, 왕의 시신이 있던 목관이 있다.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형성된 후대 왕릉의 초기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무령왕릉 입구 모습을 재현해 놓은 듯. 입구에 단지와 밥그릇, 숟가락이 있고, 그 뒤에 이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밝혀주는 지석과 무덤을 지키는 석수가 있다. 석수와 지석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

지역박물관 2009.11.30

[공주 공산성] '이괄의 난' 이야기가 남아 있는 쌍수정과 백제 왕궁터

공주 공산성을 이루고 있는 구릉에서도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쌍수정이다. 이 곳 쌍수정은 지금은 나무가 많아서 주위가 잘 보이지는 않지만, 주위를 훤하게 내려다 볼 수 있다. '이괄의 난'의 난을 피해서 인조가 6일동안 근심하면서 이 곳 쌍수정에서 반란 진압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곳에 있던 나무에 정삼품의 벼슬을 내리고 쌍수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쌍수정 아래 약간 넓은 공간에는 백제가 이곳을 도읍으로 삼았을 당시의 건물터로 보이는 유적과 우물이 발굴되었으며, 아마도 초기에 왕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공산성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쌍수정. 이 곳에서 반란이 진압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는 인조의 모습을 상상하니 처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쌍수정 누각과 편액 공산성 ..

[공주 공산성] 남문 진남루(鎭南樓)와 주위 성벽들

공산산 남문과 누각인 진남루는 공산성 성문 중에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던 성문으로 보이며, 70년대 해체 복원했다고 한다. 토성이었던 공산성을 돌로 쌓은 석성으로 바꾸면서 만든 성문으로 공주 구시가지와 통하는 길이 이 진남루와 연결되어 있다. 공산성과 진남루가 통하는 길이 경사가 있는 산길이었고, 서문인 금서루가 금강변을 중심으로 교통의 중심지와 가까웠던 까닭에 도로가 서문방향으로 개설되어서 이 곳 진남루 주변은 보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진남루는 공산성의 중심인 쌍수루와 백제 왕궁터와 가깝고 공주 구도심과도 가까웠던 까닭에 조선시대에는 진남문을 통해서 출입하던 사람이 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공산성 남문인 진남루.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성문으로 조선시대 산성 성문 형태를 하고 있다. 남문은 도심과..

[공주 공산성] 금강변 우물인 연지(蓮池)와 만하루(挽河樓)

공주 공산성 정문격인 북문 공북루를 지나서 성벽을 따라서 동쪽으로 가면 금강과 연결되어 있는 또 다른 누각인 만하루를 볼 수 있다. 만하루는 사람이 왕래하는 성문은 아니고, 금강 경치를 감상하고, 금강과 바로 연결되기때문에 군사적 방어 목적으로 누각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만하루 바로 안쪽으로는 공산성에서 필요한 식수를 확보할 목적으로 만든 우물인 연지가 있고, 그 뒷편으로는 작은 사찰인 영은사가 자리잡고 있다. 이 곳 주변은 원래부터 사람이 많이 왕래하던 곳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누각인 만하루와 연못인 연지. 이 곳은 사람이 출입하는 성문은 아니고, 금강 경관을 관람하기 위한 목적으로 누각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 앞에는 큰 연못인 연지가 있다. 만하루는 공주지역 유..

[공주 공산성] 북문인 공북루와 금강 옛다리 흔적

공주 공산성 북문인 공북루는 지금은 아무도 드나드는 사람들이 없는 외진 곳처럼 보이지만, 고대 이래로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공주에 금강철교(금강교)가 가설되기 전까지는 호남지역에서 서울로 통하는 거의 유일한 내륙교통의 거점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던 출입문이다. 공북루를 나서면 금강을 건너는 나루가 있었고, 후대에는 각종 다리가 건설되었다고 한다. 이 곳에서 금강을 건너면 걸어서 천안 차령산맥의 관문인 차령을 넘어서 서울로 향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공주 공산성은 동.서로 흐르는 금강 수운과 호남지역에서 연결된 남.북 내륙 교통의 거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으며, 그 관문이 공산성 북문인 공북루였다. 계곡을 둘러싼 포곡형 산성인 공주 공산성에서 정면이 뚫린 북쪽 방향에 북문과 공북루가 있다. 공북..

[공주 공산성] 공산루와 주변 성벽, 금강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곳

공산성은 금강을 천연 해자로 삼아서 서축과 토축으로 쌓은 산성이다. 공산성에서도 서쪽 금강변 구릉위에 위치하고 있는 공산루는 기록에는 없는 누각으로 봐서 최근에 금강의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서 만든 누각으로 보인다. 지금은 공산성에 수풀이 우거져서, 산성 방위를 지휘하는 공산성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쌍수정이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여 마치 금강변 구릉에 위치한 공산루가 그 역할을 하는 것 처름 보인다. 공산성 서쪽편 석축은 원래 백제시대에 쌓은 흙으로 쌓은 토축 외부에 돌을 쌓아서 축조했다고 한다. 공산루에 올라서면 금강과 북쪽편이 훤히 보이는데 벌판은 그리 넓어 보이지는 않아서 수도로서 기능을 하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공주 공산성의 정문이라고 할 수 있는 북문인 공북루 앞에서 올라다 본 공산루...

[공주 공산성] 금서루 (錦西樓), 정문 역할을 하는 서쪽편 출입문

공주 금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공산성은 백제의 두번째 도읍진인 웅진성이 있던 자리이다. 동에서 서로 흐르는 금강이 북쪽 방향으로 천연해자 역할을 하고 있다. 공산성은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포곡형 산성으로 원래는 백제의 성곽형식인 토성이었으나, 조선후기에 석축을 쌓아 올렸다고 한다. 공산성 서쪽 출입문인 금서루는 오래전에 공산성 안에 도로를 만들면서 없으졌으나, 최근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공주에 있는 금강을 건너는 다리 중 가장 오래된 금강교 바로 옆에 있어 공산성 정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지금도 공산성 내부로 자동차가 들어올 수 있도록 자동차 출입문이 있다. 공산성 서쪽출입문인 금서루는 최근에 복원된 성루이지만, 공산성을 대표하는 장소가 되어 있다. 공산성 입구 주차장에서 올려다 보이는 공산성 금서루. ..

[공주 석장리박물관] 후기 구석기 시대 집터와 발굴도구 및 기록

공주 석장리 유적발굴은 60년대 미국인 대학권생이 이 곳을 처음으로 발견하여, 연세대 손보기 교수와 함께 발굴한 구석기 시대의 유적으로 미국의 영향을 받아서 가장 모범적이고 체계적으로 발굴을 실시한 대표적인 발굴 유적이다. 석장리박물관에는 발굴된 후기구석기 시대 1호집터를 재현해 놓고 있으며, 당시 발굴에 사용한 다양한 도구와 기록들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 가족과 함께 이곳 석장리 선사유적지와 박물관을 방문하면 고고학과 우리나라 구석기 문화에 대해서 좋은 학습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공주 석장리 박물관 내부에 재현해 놓고 있는 후기구석기 시대의 집터. 공주 석장리 발굴에 사용된 각종 기록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석장리 선사 유적지 발굴에 사용된 장비와 도구들 손보기 교수. 선사고고학과 인쇄문화 연구에..

지역박물관 2009.11.28

[공주 석장리박물관] 우리나라 구석기 유물 (단양 금굴 유적, 제천 점말동굴 유적, 대전지역 출토유물)

공주 석장리박물관에는 석장에서 출토된 유물 외에도 연세대 손보기 교수를 중심을 선사연구실에서 단양 금굴 유적, 제천 점말동굴 유적, 대전지역 등에서 출토된 구석기 시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단양 금굴 유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 유물이고, 제천 점말 동굴은 남한지역에서 최초로 발견된 구석기 유적지라고 한다. 단양 금굴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들. 전기 구석기 시대에 해당하는 짐승화석과 주먹도끼, 찍개 등이 유물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유적 앞으로 남한강이 흐르고 있다. 금굴유적은 1983~85년에 연세대학교 선사연구실에 의해 발굴되었다. 금굴은 석회암지대에 발달한 동굴로서, 동굴에 쌓여 있는 퇴적층에서는 구석기시대의 동물화석과 석기를 비롯하여 신석기시대의 무늬토기와 청동기시대의 민토기가 나왔다...

지역박물관 2009.11.28

[공주 석장리 박물관] 석장리 선사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들

금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공주 석장리 선사유적지는 30만년전 전기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 이전인 중석기 시대까지 다양한 석기들이 발굴되었다. 전기 구석기 유물부터 집터와 함께 발굴된 후기 구석기까지의 유물들은 깊은 땅속에 묻혀 있어서 유물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으며 중석기 시대 이후는 얕은 지역에 묻혀 있어, 경작 과정 등을 통해서 유물들이 흙과 섞여서 발굴된 유물은 많지 않다고 한다. 수십만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이 지역에는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다는 것이 많은 유물을 통해 밝혀졌다고 한다. 그래서 석장리 유적지는 국내 고고학계에 많은 영향을 미친 곳이라 한다. 30만전년으로 추정되는 전기 구석기 유물 여러가지 유형의 석기들 석장리 전기 구석기문화는 2지구 외날찍개 문화층과 주먹괭이-자르개 문화층, 1지구 ..

지역박물관 2009.11.28

[가족주말농장] 2009년 11월 (마지막), 김장 준비를 끝내다

11월을 마지막으로 올해 주말농장을 끝냈다. 마지막을 겨울 준비를 위한 김장채소 수확으로 배추와 무를 뽑았는데, 전문가가 아니라 배추나 무의 크기가 들쑥날쑥했다. 어떤것은 아주 크고, 어떤 것들은 주먹만하게 자랐다. 배추를 보면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채소가 역시 크게 잘자라고, 밖에서 키운 배추는 잘 자라지 못했다. 하지만 역시 밖에서 키운 것이 단단하고 싱싱해서 맛은 월등히 뛰어났다. 올해 주말농장을 해보니 재미있었던 부분도 있고, 생각만큼 잘 안되는 부분도 있었는다. 그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열매는 많이 달리지 않았지만 싱싱한 열매를 먹을 수 있었던 토마토가 제일 재미있었고, 오이는 역시 관리하기 힘들어 크게 재미를 보지 못했다. 비닐하우스는 온도가 높아서인지 배추가 크게 잘 자라서, 시중에..

기타 2009.11.27

북경 한인들이 많이 사는 왕징 거리 풍경

왕징은 북경 공항에서 북경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조성된 신도시로 북경에 거주하는 한인들 대부분이 모여사는 곳이다. 중국적인 모습을 거의 느낄 수 없고, 한국에서 서울 부근 수도권 신도시 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는 도시로 수만명이 한인들이 이 곳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거리의 모습도 고층아파트와 넓은 대로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곳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거의 이 곳을 벗어나지 않고 생활하는 듯 하다. 중국의 버스 표지판. 설명은 친절하게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한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왕징의 남호시장 부근이다. 중국 도로에는 자전거 도로가 별도로 있는 경우가 많다. 중국 왕징의 아파트 단지내 상가는 부동산가게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중국 왕징에 있는 백화점. 우리에게 익숙한 파리바게트를 비롯한 메이커가 있는 매장..

중국(China) 2009.11.22

중국 진황도(친황다오) 기차역 풍경

중국 진황도는 북경에서 기차로 2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도시이다. 중국대륙의 하북평원이 끝나는 지점에 자리잡고 있는 이 도시는 만리장성이 시작하는 지역인 산해관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작은 어촌이지만 19세기말 탄광이 개발되면서 도시의 중심이 산해관에서 이 곳 친황다오로 옮겨졌다고 한다. 중국이 최근에는 많이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친황도 기차역 풍경은 중국의 서민적인 풍경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친황다오 기차역, 단층 건물로 현대적인 건축물이 들어서 있지는 않고 있고, 역광장은 관광객들을 기다리는 택시들이 줄지어 서 있다. 친황다오역 광장의 매점 비슷한 건물 친황다오 역 상가. 우리나라 기차역 부근의 풍경과 비슷하다. 친황다오역 앞에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크게 보기 친왕..

중국(China) 2009.11.22

중국 진황도 북대하(北戴河), 북경에서 가까운 해수욕장

중국 진황도는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산해관과 노룡두가 있는 곳으로 북경올림픽때 축구경기가 있었던 곳이다. 이 곳 진황도 북대하는 북경에서 가까운 곳 중에서 백사장이 있는 해안으로 모택동의 별장을 비롯하여 중국 고위층의 별장들이 있는 곳으로 북경에서 기차로 2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다. 아마도 중국이 개방되기 이전부터 이곳은 중국 서민들이 사는 곳과 다른 모습을 했을 것으로 생각되며, 지금은 북대하 해안지역은 서구의 어떤 리조트보다고 깨끗하고 정비가 잘된 곳으로 중국에서는 별천지 같다는 느낌을 주는 곳이다. 북경시민들에게는 바다를 즐길 수 있느 가장 가까운 곳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진황도 서쪽 해안강 자리잡고 있는 북대하 해수욕장. 고운 황토색 모래사장은 우리나라 서해안의 해수욕장을 연..

중국(China) 2009.11.22

[강화 해안 진지] 남장포대

강화도와 육지 사이를 흐르는 물길인 염하(강화해협)의 입구를 지키는 덕진진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남장포대입니다. 낮은 위치에 포좌를 설치하여 염하를 지나는 선박을 공격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남장포대에는 대포 10문이 설치되어서 강화 해안의 진지 중에서 가장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던 곳이라 합니다. 신미양요 때 미국 함대와 격렬한 포격전을 벌인끝에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70년대에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염하(강화해협)을 지키는 진/보 중에서 가장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던 남장포대입니다. 대포 10문이 지키고 있었으며 신미양요 때 미국함대와 격렬한 포격전을 벌린 곳이기도 합니다. 남장포대에는 당시에 사용하던 대포를 전시해 놓고 있습니다. 남장포대의 포좌입니다. 대포 10문으로 서울을 들어오는 함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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