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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금산사, 불전들 (명부전, 조사전, 나한전, 삼성각, 원통전)

금산사는 대형 사찰로 많은 전각들을 두고 있다. 그 중 미륵전과 대장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근래에 세워진 건물들로 보인다. 절의 규모에 맞게 많은 전각들을 새로 짓거나 중건한 것으로 보인다. 미륵전 맞은편 대적광전 서쪽에는 명부전과 대장전이 있고, 대적광전 뒷편에 조사전, 나한전, 삼성각이 있다. 특이하게 강당 동쪽에 원통전이 자리잡고 있다. 미륵전 맞은편에 위치한 명부전. 보통 지장전이라고 부르며, 죽은이의 명복을 비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어 최근 전국 대부분의 사찰에서 명부전이 신축되고 있다. 금산사 조사전. 일반적인 사찰의 경우 조사당이라고 명칭하고 있는데 이 곳 금산사에서는 조사전이라 부르고 있다. 금산사 나한전. 원래는 방등계단 입구에 있던 것을 옮겼다고 한다. 사찰의 제일 뒷편에 위치하는 삼성각..

김제 금산사 대장전, 목탑에서 법당으로 변한 건물

금산사 대장전은 미륵전 정면에 위치한 작은 법당이다. 원래는 미륵전 마당 가운데 있는 목탑이었던 건물로 조선시대에 금산사가 중건될때 목조탑을 법당 건물로 바뀌었다고 한다. 전통적인 가람배치에 있어서 금당 앞에 있던 목탑으로 보인다. 지금도 지붕에는 목탑이었을때의 흔적이 남아 있다. 금산사 대장전. 앞면 3칸의 작은 건물로 지붕에 목탑이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대장전 편액. 대장전에 모셔진 석가모니불 여러 방향에서 본 금산사 대장전 금산사는『 금산사사적』에 따르면 백제 법왕(600)때 세운 절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원래 미륵전 뜰 가운데 세운 목조탑으로 불경을 보관하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예전의 기능은 없어지고 안에 불상을 모시고 있다. 조선 인조 13년(1635)에 다시 짓고, 1922년에 지금 있는 위..

김제 금산사, 주불전인 대적광전

금산사의 중심불전인 대적광전이다. 원래의 건물은 1986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지금의 건물은 1994년에 복원한 건물이라 한다.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는 불전으로 이 또한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했던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한 불교 신앙의 흔적으로 보인다. 현재는 이 대적광전이 주불전으로 되어 있으나, 금당의 배치상으로는 통일신라 이래로 미륵전이 주불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신앙의 중심이 탑에서 대웅전을 비롯한 불상으로 옮겨지면서 주불전이 바뀐것으로 보인다. 금산사 중심 불전인 대적광전. 앞면 7칸의 규모가 큰 법당 건물로 화재로 소실된것을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일반적인 사찰의 중심불전인 대웅전은 앞면이 3칸 또는 5칸인 경우가 많은데 이 곳 금산사 대웅전은 7칸 규모..

김제 금산사 미륵전, 통일신라 장륙전 모습이 남아 있는 불전

금산사 미륵전은 통일신라시대 사찰의 구성 요소인 금당의 흔적이 남아 있는 많지 않은 불전 중의 하나이다. 신라 고도 경주 황룡사 금당인 장륙전의 모습을 상상할려면 이 곳 금산사 미륵전이나, 구례 화엄사의 각황전을 연상하면 될 것 으로 보인다. 장륙전은 금산사처럼 외부에서 보면 3층 건물로 보이지만, 내부는 통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금산사 미륵전처럼 황룡사 장륙전 내부에는 엄청난 규모의 청동불상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그 모습은 일본 나라의 동대사에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미륵전은 수차례에 걸쳐서 화재로 소실된 것을 다시 중건하여 오늘날까지 내려왔으며, 삼국시대 이래 우리나라 사찰의 오래된 전형을 볼 수 있는 건물이다. 물론 일본이나 중국의 경우 비슷한 형태의 사찰 건물이 많이 남아 잇는 것으로 보인..

[김제 모악산 금산사] 강당인 보제루와 요사채

금산사는 전북 최대 규모의 사찰로 미륵전을 포함하여 많은 전각들을 가지고 있지만, 많은 사찰 전각이 있지만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건물들도 많다. 그 중 사찰 경내 입구라 할 수 있는 누각 건물인 보제루와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들이 대표적으로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금산사에는 조선시대에 지어진 12칸짜리 누각인 만세루가 있었다고 하며, 지금의 보제루는 이를 계승한 건물로 여겨진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사찰 강당이라고 할 수 있는 보제루를 볼 수 있다. 보제루는 앞면 9칸의 큰 건물로 최근에 지어진 건물로 보인다. 보제루 편액 금산사 경내에서 본 보제루 천왕문을 지나 가람의 중심에 이르면 누각 건물이 보제루이다. 앞면 7칸, 옆면 3칸의 2층 누각식 건물로서 아래층은 절 앞마당으로 오르는 계단..

[김제 모악산 금산사] 당간지주

금산사 금강문 옆 도로에 위치한 당간지주는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금산사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재이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당간지주 중에서 완성도가 가장 높은 것이라 한다. 당간지주가 사찰입구인 금강문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은 금강문과 천왕문이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섬세하고 균형미가 있게 만들어졌으나, 장식적인 면의 거의 배제하고 있다. 금산사 당간지주. 천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 모습이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금산사 당간지주 기단부. 기단부에 약간의 장식을 새겨 놓고 있다. 옆쪽에서 본 당간지주 뒷쪽에서 본 당간지주 일반적인 사찰의 경우 당간지주는 출입문 앞쪽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금산사는 출입문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절에 행사가 있..

[김제 모악산 금산사] 금강문, 천왕문

김제 금산사는 우리나라 최대 곡창지역인 전북의 중심지인 전주지역에 속해 있는 최대의 사찰답게 규모가 상당히 크다. 금산사의 규모와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가 출입문이다. 보통 일반적인 사찰의 경우 천왕문 또는 금강문 하나만 있으며, 수도권 지역 사찰의 경우 출입문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비해 금산사는 천왕문과 금강문을 별도로 두고 있다. 현재의 금강문과 천왕문은 오래된 문화재는 아니고 내력 또한 깊지 않아 보이지만, 두개의 출입문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사찰의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금산사 출입문인 금강문. 금강문 편액 금강문에 있는 금강역사와 동자 금산사 안쪽에서 본 금강문 금산사 천왕문 천왕문 편액 천왕문에 모셔진 사천왕상 금산사 강당에서 내려다 본 천왕문

[김제 모악산 금산사] 일주문, 들어가는 길

금산사는 전주 남쪽에 위치한 모악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로한국에 대표적인 미륵신앙 중심지이다. 금산사는 모악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지만 사찰의 형태는 평지 사찰의 모습을 하고 있다. 모악산을 등반하려는 등산객들이 많은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걸어가는 길은 언덕길이 아니라 가로수가 우거진 산책로 같은 느낌을 주고 있으며, 물이 많은 산이라서 그런지 도로 주변 작은 도랑으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사찰 입구인 일주문을 지나서 금강문까지는 약 15분정도 도보로 걸어가는데 맑은 공기를 마시며 상쾌하게 걸을 수 있는 곳이다. 사찰을 찾을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풍경인 비빔밥을 파는 식당가를 지나 포장된 도로를 따라서 걸어 들어간다. 모악산은 물이 많은 사이라서 그런지 도로옆 도랑에는 맑은 물..

[익산 미륵사지] 복원된 동탑과 석조 유물들

익산 미륵사지 동쪽편에 있는 동탑은 흔적없이 사라졌지만, 현재는 서탑으로 그 형태를 추정하여 복원해 놓고 있다. 하얀 화강석으로 석탑을 쌓았는데 목조 건물을 그대로 석탑으로 구현해 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물로서의 고풍스러운 멋은 거의 없지만, 미륵사지 석탑의 형태를 이해하는데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석탑이다. 최근에 복원된 미륵사지석탑. 기단부와 구층의 탑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목탑처럼 기단부 내부에는 방이 있다. 하얀색 화강석을 만들었는데 크게 감흥이 잘 오지는 않는다. 측면에서 본 미륵사지석탑 동탑 정면에서 본 미륵사지 석탑 동탑 뒷쪽에서 본 동탑 탑신에는 사방으로 출입문이 있다. 미륵사지 승방 터에 있는 우물 금당 앞에 있는 석등. 하대석만 남아 있다. 미륵사지에서 발굴된 석조 유물들

익산 미륵사지, 유물전시관

익산미륵사지 유물전시관에서는 이 절터에서 발굴된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미륵사지에서는 건물의 규모를 말해주는 거대한 치미를 비롯하여 금동향로와 다양한 유리, 철, 청동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최근에 미륵사지석탑에서 발굴된 사리장엄은 아직 보존처리 중인 관계로 전시되지 않고 있지만, 현재에 전시된 유물만으로도 익산의 미륵사가 엄청난 규모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익산 미륵사지 승방터에서 발굴된 치미. 치미는 고려시대 이후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건축요소로 건물을 장식하는 기능이 있다. 황룡사터에서 발굴된 치미가 유명하며, 지금도 중국이나 일본 사찰 건물에는 치미를 볼 수 있다. 미륵사지에서 발굴된 금동향로 절터에서 발굴된 다양한 기와들 미륵사지에서는 다양한 유리가 발굴되고 있는데, 백제의 유리 가공..

지역박물관 2009.12.16

[익산 미륵사지] 2개의 당간지주

익산 미륵사지에는 다른 사찰과는 달리 90m 정도의 간격을 두고 2개의 당간지주가 있다. 원래 이 곳 미륵사지에 있던 2개의 석탑 앞쪽에 각각 하나씩 당간지주가 있는데 다른 사찰과는 다른 형식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이 당간지주가 백제시대부터 있던 당간지주는 아니고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부석사 당간지주와 소수서원 입구에 있는 숙수사지 당간지주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앞쪽에 위치한 당간지주. 전형적인 통일신라 당간지주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장식이 거의 없지만 균형미가 있어 보인다. 미륵사지 서쪽 당간지주 기단부. 측면에서 본 당간지주 미륵사지 안쪽에서 본 당간지주 미륵사지 동쪽편 석탑 앞에 서 있는 당간지주 미륵사지 동쪽 당간지주 기단부 당간지주는..

익산 왕궁리유적, 유물전시관

오층석탑이 있는 왕궁리 입구에는 왕궁리에서 출토된 유물을 중심으로 왕궁터였던 때부터 사찰로 변한 이후의 모습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유적 전시관이 있다. 이 전시관에는 왕궁터 전체의 모습과 당시의 생활상의 모습 등을 재현해 놓고 있으며, 기와 등 건축 부재를 중심으로 유물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백제 왕궁터가 제대로 남아 있는 곳이 많지 않기때문에 백제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을 중심으로 왕궁지를 설명하고 있다. 왕궁리는 무왕이 조성한 왕궁지와 후대의 사찰 유적이 같이 있는 곳으로 경복궁 등의 궁궐과 같이 앞쪽은 정전을 중심으로 의례적인 공간이, 뒷쪽은 생활공간이 흔적이 남아 있다. 왕궁리 유적지는 백제 궁궐지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인장와는 기와..

지역박물관 2009.12.15

[고창읍성(高敞邑城)]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읍성

읍성은 우리나라의 특징적인 성곽의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이나 일본의 성곽은 지역 유력자의 저택을 중심으로 견고한 성곽을 쌓는데 비해 우리나라의 읍성은 주민이 거주하는 지역을 성곽으로 쌓고 있습니다. 이런 일반적은 읍성의 성격과는 달리 고창읍성은 동쪽으로 반등산(半登山)을 둘러싸고 있는 산성과 비슷한 형태를 보입니다. 동문·서문과 정문격인 북문이 있고, 성문사에는 방어를 위한 6개의 치(雉)가 있습니다. 성문은 일반적인 성곽의 성문처럼 견고해 보이지는 않지만 앞에 튼튼한 옹성을 쌓아놓고 있습니다. 고창읍성의 전체적인 구조를 보면 장기적인 농성을 할 수 있는 견고한 산성이나 지역중심지의 성곽이라고는 보기는 힘들고, 며칠정도 농성이 가능한 읍성과 비슷한 규모입니다. ※ 고창읍성 탐방 1. 고창읍성 성..

[고창읍성(高敞邑城)] 겨울 읍성 성벽길

서산의 해미읍성, 순천의 낙안읍성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읍성입니다. 이 성의 명칭은 고창읍성이라고 불리는데 형태로는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았던 산성의 형태와 비슷합니다. 그렇지만 성벽을 쌓은 형태를 보면 읍성의 형태와 비슷해 보입니다. 내부에는 관청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면에서 보면 진주 남강변에 있는 진주성과 형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창읍성은 반등산을 중심으로 산성과 비슷한 형태로 성벽을 쌓아놓고 북문, 동문, 서문에는 옹성을 쌓아 방어의 기능에 충실했던 성으로 보입니다. 고창읍성의 정문이자 북문입니다. 옹성으로 정문을 막고 있는데 다른 지역의 읍성보다 튼튼해 보입니다. 정문인 북문 왼쪽편 성벽입니다. 북문의 옹성안에서 본 옹성 입구와 서쪽편 성벽입니다. 북문 옹성성의 외벽입..

[고창읍성(高敞邑城)] 성문, 옹성, 치(雉), 연못

고창읍성은 동쪽으로 반등산(半登山)을 둘러싸고 있는 산성과 비슷한 형태를 보이는 읍성이다. 동문·서문과 정문격인 북문이 있고, 성문 사이에 방어를 위한 6개의 치(雉)가 있다. 성문은 일반적인 성곽의 성문처럼 견고해 보이지는 않지만 앞에 튼튼한 옹성을 쌓아놓고 있다. 고창읍성의 전체적인 구조를 보면 장기적인 농성을 할 수 있는 견고한 산성이나 지역중심지의 성곽이라고는 보기는 힘들고, 며칠정도 농성이 가능한 읍성과 비슷한 규모이다. 고창읍성의 정문격인 북문. 옹성을 통해서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옹성의 크기가 전주 풍남문의 옹성보다 크게 보인다. 옹성 출입통로. 통로 길의 넓이가 일반적인 읍성의 옹성보다 크다. 옹성 성벽 북문의 성루인 공북루 성안에서 본 공북루 성의 또다른 방어시설인 치(雉) 고창읍성으 ..

[고창 도솔산 선운사] 일주문, 도솔천, 들어가는 길

동백꽃으로 유명산 전라북도 고창에 위치한 선운사입니다. 선운사는 깊은 산중에 위치한 절은 아니지만, 주위에 마을이 있는 그런 지역은 아닙니다. 도솔산 아래에 넓은 지역이 아마도 선운사 소유인 것 같습니다. 선운사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장소라서 그런지 주차장에서 한참을 걸어가야만 선운사 일주문을 만날수 있습니다. 일주문에 들어서면 산속에 있는 고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숲속길과 맑게 흐르는 개천인 도솔천을 볼 수 있습니다. 선운사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사찰이러서 그런지 주차장에서 일주문까지는 한참을 걸어서 들어가야 합니다. 제일 먼전 선운사에 들어섰음을 알려주는 일주문입니다. 일주문(一柱門)은 사찰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알림의 문으로 부처님을 향한 진리는 하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도솔산..

서울 봉원사, 대웅전과 칠성각

봉원사 중심 불전인 대웅전은 1991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새로 건립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봉원사 경내로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새로 지은 건물인 대웅전, 삼천불전, 명부전을 보면 이 사찰의 내력이 없어 보인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하지만 봉원사 자체로는 내력이 깊은 사찰이며, 수도인 한양에서 제일 가까운 사찰이었던 까닭에 많은 역사적인 내력을 갖고 있다. 또한 조계종에서 분리된 태고종의 본산으로서 지금도 사찰땅은 조계종 소유로, 사찰 운영은 태고종에서 하고 있다고 한다. 봉원사 대웅전. 1991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새로 만들었다나고 한다. 일반적인 사찰양식과는 약간 달리 궁궐 건물 양식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봉원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보이는 칠성각. 봉원사는 문에 유리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서울 봉원사, 들어가는 길

서울 봉원사는 연세대와 이화여대 사이에 있는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다. 금화터널 입구에서 안산을 향해서 조금 올라가다 보면 버스종점이 나오고 그 반대편에는 사찰 입구임을 알려주는 부도탑과 비석들이 여러개 모여 있다. 봉원사는 입구에 일주문이나 사천왕문, 누각 같은 것이 없고 그냥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대웅전이 있는 경내로 들어선다. 봉원사 주위에는 사찰과 관련된 사람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보이는 주택들이 있고, 입구에는 궁궐 연못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연못이 있다. 봉원사는 조경이나 건물들이 한양과 가까운 곳에 있었던 까닭에 궁궐 건축의 요소들이 많이 눈에 띄는 것이 특징이다. 봉원사 대웅전이 있는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 봉원사 입구에 있는 범종각 봉원사 입구에 있는 연못. 궁궐 후원의 연못과 비슷한 ..

전국 사찰 2009.12.11

서울 봉원사, 요사채와 불전들(명부전)

봉원사는 오래된 사찰이지만, 한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 그 규모에 제한을 많은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찰 경내도 넓지는 않고 건물들도 일반적인 사찰에 비해서 작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경제력이 집중되는 서울에 위치한 까닭에 거대한 불전을 지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봉원사 서쪽편에 위치한 삼천불전일 것이다. 또한 대웅전이나, 극락전 등 불전에 비해서 규모가 상당히 큰 요사채가 경내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봉원사 경내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요사채로 보이는 건물. 봉원사라고 적힌 편액을 걸고 있는 건물로 앞면이 7칸이나 되는 큰 건물이다. 마찬가지로 유리창문을 사용하고 있으며, 궁궐건물과 비슷한 양식을 보이고 있다. 이 건물의 기단은 궁궐 건물처럼 만들어 놓고 있다. 봉원사 서쪽편에 자리잡고 ..

서울 봉원사, 불전들 (반월전, 극락전, 미륵전)

봉원사는 한양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찰로 신라 진성여왕때부터 존재해 왔다고 전해진다. 불교 종파 중 태고종의 총본산으로 고려 공민왕때 개혁 승려인 보우스님이 크게 중창하였고, 영조대왕이 봉원사 편액에 글씨를 하사할 정도로 번창했던 사찰이다. 하지만 서울에 있었던 까닭에 사찰의 규모가 지방의 사찰에 비해서 작고 대웅전은 한국전쟁 때 타 버렸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전각 중에서는 극락전과 만월전, 칠성각이 오래된 건물로 보이며 다른 건물들은 대부분 최건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봉원사 만월전. 만월전은 과거불인 약사여래를 모시는 불전으로 보통 약사전으로 불리지만 봉원사에서는 만월전으로 부른다. 봉원사 극락전. 미래불인 아미타불을 모신 불전으로 무량수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봉원사에서는 특이하게 유리창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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