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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사, 주불전인 대웅보전

선운사 중심불전인 대웅보전은 신라 진흥왕 때 세운 것으로 전하며,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광해군 때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중심불전인 대웅전에 석가모니를 모시지 않고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다. 석가모니불을 모신 영산전이 대웅전 옆에 별도로 있는데 우리나라 사찰건물 배치중에서는 아주 특히한 형태의 건물배치이다. 대웅보전 건물은 조선후기를 대표할 수 있는 사찰건물로 규모가 크고 안정감이 돋보이는 건물이며, 단청이 화려하고 많은 그림이 그려져 있다. 선운사 동쪽 출입구에서 본 풍경. 만세루, 6층석탑, 대웅보전과 동백숲이 나란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선운사의 중심 불전인 대웅보전. 조선후기를 대표할 수 있는 건축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건물의 규모가 큰..

고창 선운사, 동백나무숲

선운사에서 가장 유명한 존재인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나무숲입니다. 가수 송창식이 노래 '선운사'에 등장해서 유명해진 곳입니다.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전해주는 상록수임을 주위의 마른가지들과 비교하면 느낄 수 있습니다. 동쪽 출입문으로 들어서면 대웅전 건물 뒷편 언덕에 푸른 동백나무숲이 인상적인 풍경입니다. 가수 송창식의 노래로 유명해진 선운사 동백나무입니다. 아마도 선운사에서 가장 유명한 존재가 이 동백나무숲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보통 동백나무는 남해한 바닷가 지방에 많이 자라는 나무인데, 이 선운사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선운사 동백나무숲의 동백나무들은 수령이 꽤 오래되어서 그런지 키가 크고 울창합니다. 선운사를 들어오는 동쪽편 통로에서 보면 대웅전 뒷편으로 한겨울에도 초록으로 물든 울창한 동백나무숲을 볼..

전국 사찰 2009.12.10

고창 선운사, 6층석탑과 전각들(관음전)

선운사 대웅전 동쪽편으로는 동백숲을 배경으로 조그만 건물인 관음전이 있다. 보통 관음전은 관음보살을 모시는 불전인데 이곳 관음전은 특이하게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고, 지장보살을 모시는 명부전은 서쪽편에 별도로 있다. 선운사 대웅전 앞 마당에는 사찰의 규모에 비해 석탑, 석등 같은 문화재는 많지 않은 편이고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고려시대 6층 석탑이 유일하게 서 있다. 서운사 동쪽편에 자리하고 있는 관음전. 뒷쪽 동백나무 숲을 배경을 하고 있다. 관음전 내부에는 보물로 지정된 금동지장보살 좌상과 관음보살 탱화가 있다. 선운자 관음전에 보신 주불은 지장보살이기 때문에 이름이 지장전, 또는 명부전이 되어야 하지만, 선운사에서는 명부전이 서쪽편에 별도로 있고 이곳을 관음전이라고 부른다. 동쪽 출입문에서 보면 정면에..

고창 선운사, 팔상전과 산신각

선운사 서쪽편 영산전 뒷쪽 축대위로는 우리나라에서 많지 않은 팔상전이 자리하고 있고, 그 옆으로는 산신각이 있다. 팔상전과 산신각 모두 최근에 조성한 불전이 아니고 오래 전부터 선운사에 존재했던 건물이다. 팔상전은 석가모니의 행적을 그린 그림을 보관하는 불전으로 대형 사찰에만 존재하는데 선운사의 규모를 말해주는 건물이다. 팔상전 뒷쪽으로는 선운사에서 가장 유명한 울창한 동백나무 숲이 있다. 선운사 대웅전 뒷편 축대 위에 있는 팔상전과 산신각. 선운사 팔상전. 우리나라에서 팔상전을 갖추고 있는 사찰은 많지 않은데 선운사에는 드물게 팔상전을 갖추고 있다. 대웅전 뒷편에서 올려다 본 팔상전 팔상전(八相殿)은 석가모니의 행적 가운데 극적인 여덟 장면을 그림으로 나타낸 팔상 탱화(幀畵)를 봉안하는 곳이다. 이 곳..

고창 선운사, 영산전과 명부전

선운사는 전북 고창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규모가 큰 사찰인 까닭에 일반적인 사찰보다는 넓고 전각도 많은 편에 속한다. 그 중에서 우리나라에서는 많지 않은 불전인 석가모니를 모신 영산전이 대웅전과는 별도로 자리하고 있다. 영산전이 존재하는 까닭에 사찰규모에 비해서 명부전의 규모는 크지 않고 낮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선운사 경내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영산전과 명부전. 대웅전 옆에 석가모니를 모신 영산전이 배치되어 있는 것은 선운사의 특이한 전각배치이다. 그리고 명부전도 사찰규모에 비해 작아 보인다. 석가모니를 모신 영산전. 원래는 장육전이었던 것이 영산전으로 바뀌었다고 하며, 문화재로 지정된 목조삼존상을 모시고 있다. 영산전 단청과 편액. 영산전(靈山殿)은 대웅보전의 서쪽에 위치하며 정면 5칸, 측면 3..

[공주박물관 야외전시장] 반죽동 석조와 중동석조, 석물들

공주 박물관에 전시된 야외 전시 유물 중 보물로 지정된 석조이다. 이 석조는 백제 성왕 때 세워진 대통사지 있었던 것으로 통일신라 시대의 일반적이 석조와는 달리 원형으로 만들어져 있어 백제 특유의 양식이 반영된 석조라 한다. 석조 외에도 공주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 중 일부분만이 남은 석탑, 대좌석, 계단석, 부도 등 다양한 형태의 석조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공주 대통사지 반죽동 석조와 중동 석조. 직사각형 형태로 만들어진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석조와는 달리 원형으로 만들어져 세련미가 있다. 석조[石槽]란 돌을 파서 물을 담아 쓰도록 만든 큰 물통으로, 절에서 큰 행사가 끈난 뒤 그릇을 씻을 때, 또는 물을 담아두거나 연꽃 등을 기르는데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석조는 백제(百濟) 성왕(聖王) 5년..

지역박물관 2009.12.08

[공주박물관 야외전시장] 서혈사터 발굴 석불좌상, 백제시대 석불

공주박물관 야외전시장에도 여느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공주지역에서 출토된 석조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주로 백제시대 석조 불상을 중심으로 사찰과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 서혈사터에에 발굴된 불상이 온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어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나머지 불상들을 일부만이 남아 있다. 주로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보이며, 백제 고유의 불상 양식이 약간 가미된 것으로 보인다.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인 서혈사지 출토 석불좌상. 대좌와 불상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통일신라시대 불상이다. 서혈사터에서 출토된 3구의 불상 중 하나이다. 서혈사지는 백제시대에 창건되어 작은 규모로 운영되다가 통일신라시대에 본격적인 사찰로 운영되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얼굴은 약간 길고 눈·코..

지역박물관 2009.12.08

[고창 도솔산 선운사(禪雲寺)] 만세루(萬歲樓), 경전을 강의하던 강당

선운사는 평지에 터를 잡고 있기때문에 보통의 사찰들처럼 대웅전앞을 들어갈때 누각을 밑을 지나서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천왕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만세루가 있고 이를 돌아서 들어가게 되어있다. 만세루는 선운사를 창건할 당시부터 있었다는 건물로 알려져 있으며 건물의 규모가 보통의 사찰누각보다 커서 많은 사람이 앉아서 쉴 수 있게 되어 있다. 앞면 9칸의 상당히 규모가 큰 건물로 객사를 연상시키는 건물이다. 선운사 경내 대웅보전 앞 마당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만세루. 보통 일반적인 사찰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기때문에 만세루 등의 누각 밑을 통과해서 중심불전이 있는 경내로 들어가게 되어 있지만 선운사는 평지에 자리잡고 있어 경내 한 가운데에 만세루가 자리잡고 있다. 선운사의 출입문인 천왕문을 들어서면 최..

[고창 도솔산 선운사(禪雲寺)] 천왕문, 범종각, 입구 풍경

도솔천을 따라서 난 숲속길을 5분쯤 걸어서 올라오면 선운사의 실질적인 출입문이 천왕문을 볼 수 있다. 선운사는 계단형태로 언덕위에 지은 사찰이 아니고 설악산 백담사와 비슷하게 개천 옆에 있는 넓은 평지에 지은 사찰이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넓은 선운사 경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정면에는 유서깊은 누각인 만세루가 사찰 경내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선운사 입구인 사천왕상이 모셔진 천왕문. 2층 누각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범종이 있다. 선운사는 사찰을 담으로 둘러쌓여서 천왕문을 통해서 들어가게 되어 있다. 문화재급의 건물은 아닌듯.... 천왕문에 모셔진 사천왕상. 선운사 경내 중앙에 위치한 만세루에서 본 천왕문 천왕문 동쪽편에 자리잡은 건물. 천왕문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범종각 선운사 영산전에서 본 천왕문과 선운사..

[부안 능가산 내소사] 설선당(設禪堂), 요사(寮舍)

내소사에는 특이하게 법당이 아닌 건물로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 설선당으로 두개의 건물이 하나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금은 스님들이 기거하고 있는 요사채이다. 조선시대 인조때 처음 세워진 건물로서 대웅전 앞 마당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으며,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건물로 마루에 앉아 있으면 내소사 입구의 탁 트인 전경이 보인다. 내소사 요사채인 설선당 입구. 남쪽방향으로 문이 나 있고 앞에는 마루가 있다. 현재는 스님들이 거처하는 장소로 일반인을 출입을 할 수 없다. 설선당과 요사는 내소사를 출입하는 봉래루 동쪽편에 자리하고 있다.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동쪽편에 보이는 설선당과 요사의 전경 설선당과 요사 건물의 마루. 마루에 걸터 앉으면 내소사 입구 마당의 정겨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봉래..

[공주박물관 특별전] 공주의 명가 - 영월엄씨(수표,준호구), 장기정씨

영월 엄씨는 관직에 많이 등용한 집안은 아니지만 공주지역에서 유력가문으로 지위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수표, 준호구 등 실생활과 관련된 유품들이 많이 전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장기정씨도 관직에 등용한 인물이 많은 집안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향약절목 등 실생활과 관련된 유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엄전 준호구 嚴絟準戶口(1687). 당시의 호적과 같은 기능을 하는 문서. 한성부의 용산방 2리에 사는 엄전(49세)에게 발급한 준호구로, 처는 덕수이씨(德水李氏)로 51세이며 48세 때에 기록되지 않았던 딸(26세)이 유학 이명배(李命培, 22세)와 혼인(본관은 全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공주로 처음 입향했다고 전하는 유학 한중(漢重, 24세)이 전주이씨(全州李氏, 24세)와 혼인하였음이 기록되어 있다...

중앙박물관 2009.12.05

[공주박물관 특별전] 공주의 명가 - 함양박씨(분재기,예조입안), 대구서씨(상소초안)

함양박씨는 조선중기 공주로 이주한 후 여러 관직에 든 사람들이 있으나, 눈에 띄게 업적을 세운 사람은 없지만, 효자로로 명망을 얻은 것으로 보이며, 관련하여 예조로부터 받은 예조입안이 있고, 자식에게 재산상속을 위한 문서로 분재기가 있다. 분위기가 화목해 보이는 집안이다. 대구서씨는 관직에 등용해서 업적을 쌓은 인물은 많지 않지만 공주지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해온 것으로 보이며, 관련하여 상소문이 출품되어 있다. 함양박씨 집안의 상속을 위한 분재기. 당시 상속관련 사회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분재기-화회문기 分財記-和會文記(1669) 1669년 8월 7일에 이서(李曙)의 자녀 6남매가 부모가 돌아가신 후 화회분급(和會分給)한 분재기이다. 분재의 대상은 자녀 들로 장매 송씨가(長妹 宋氏家), 대흥가(大興家),..

지역박물관 2009.12.05

[공주박물관 특별전] 공주의 명가 - 신천강씨(매매문서), 연안김씨(천자문), 순천박씨(공신녹권)

공주의 신천강씨는 조선초 왕자의 난때 참화를 당하고, 남이장군 사건때도 참화를 당하는 등 여러차례의 화를 거치면서 공주지역에 옮겨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관직과 관련된 교지보다는 서화류 등이 많이 출품되었다. 매매문서에 해당하는 명문이 있다. 연안김씨는 임진왜란 전후시점에 공주에 정착한 가문으로 책자 등을 출품하였다. 그 중 현존하는 최초의 천자문인 진초천자문이 있다. 순천박씨는 중정반정 공신인 박원종의 사촌인 이검의 아들인 박인손이 공주로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하며, 이괄의 난때 공을 세웠다고 한다. 중정반정과 관련된 공신녹권 등이 출품되었다. 명문(名文). 매매문서에 해당하는 유품이다. 1834년(道光 14년) 11월 27일에 전주(田主) 강일영(康一榮)이 재삼종(再從弟) 종영(鍾榮)에게 청수리(淸..

지역박물관 2009.12.05

[공주박물관 특별전] 공주의 명가, 진주강씨(강세황영정), 능성구씨(함흥읍도,이력서)

공주의 진주강씨는 강백년의 후손으로 그의 사후에 공주에 안장되면서 후손들이 이 곳에 거주하게 되었다. 진주강씨 가문에서 출품한 유품중에는 보물로 지정된 강세황 영정이 있으며, 벼슬을 많이 한 집안답게 교지가 많이 출품되었다. 능성구씨는 광해군때 중추부사를 지낸 구득원이 공주로 낙향하면서 공주지역 유력가문이 되었다고 하면, 교지, 서화류 등의 유품들이 있는데 그 중 벼슬을 얻기 위해 작성한 이력서와 함흥읍도가 눈에 뛴다. 강세황영정과 교지.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로 다른 사람의 영정보다는 잘 그렸다는 것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조선 후기 대표적 문인 서화가인 강세황(1713~1791)의 초상화로 이명기가 그렸다고 전해진다. 강세황은 설봉 강백년의 손자이자, 강현의 아들로 시, 글씨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뛰어나..

지역박물관 2009.12.05

[공주박물관 특별전] 공주지역 명가 - 만경노씨(진사급제 교지), 의령남씨(남이웅 영정)

공주박물관 특별전 공지지역 명가전에 전시된 유품들 중 만경노씨와 의령남씨 가문에서 출품한 유품들이다. 만경노씨는 조선초기부터 공주에 자리잡은 가문으로 임진왜란때 삼형제가 금산전투에 참가해 순절하고, 이괄의 난때 공을 세워 지역 유력가문으로 자리잡은 가문으로 사당과 관련된 유품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는데 그 중 노혁왕지라 하여 노혁이란 사람이 진사에 급제하고 받은 교지이다. 의령남씨는 조선중기 병자호란때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를 잘 보필하여 공신으로 봉해진 남이웅의 후손으로 영정과 일기류 중심으로 유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그중 남이웅이 중국사신으로 가서 그려온 남이웅 영정이 가장 의미가 있어 보인다. 노혁왕지. 노혁이라는 사람이 진사로 합격하고 받은 교지로 과거 합격증과 같은 의미를 갖는 공문서이다. 조선초..

지역박물관 2009.12.05

[공주박물관 특별전] 공주의 명가 - 이천서씨(주자영정), 진주류씨 (교지)

공주 박물관 특별전인 '공주의 명가' 전시에 출품한 이천서씨 가문과 진주류씨 가문의 유품들이다. 이천서씨는 공주지역의 사액서원인 충현서원을 설립한 서기 선생의 후손들로 주로 서원에 모시던 영정와 서적류가 전시되고 있고, 진주류씨는 임진왜란때 공을 세운 류형 선생의 후손들로 관련된 교지를 중심을 유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회안선생주문공유상. 충현서원에 모셔진 주자 영정이다. 충현서원에 모셔신 분들의 영정들 주자를 비롯하여 이존오·이목·성제원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다. 주자(1130∼1200)는 중국 송나라 유학자이며 성리학의 대가로, 순수한 사고와 이성만으로 사물을 의미하는 사변철학(思辨哲學)과 실천윤리의 체계를 확립하였다. 서기가 조선 선조 14년(1581)에 세운 충현서원은 인조 2년(1624)에 ‘충현’..

지역박물관 2009.12.05

[공주박물관 특별전] 공주의 명가 - 경주이씨, 동복오씨

공주지역 명가 중 경주이씨와 동복오씨 가문에서 출품한 유품들이다. 경주이씨 가문에서는 자손에게 유산상속을 위한 내용을 자세히 정리한 분재기와 책자 등을 출품하였고, 동복오씨 가문에서는 채색도와 그에 관한 일화를 적은 '동복오씨 세덕십장' 등을 출품하였다. 주로 관직 임명장 역할을 하는 교지를 제일 중요시 여긴 것으로 보이며, 서원 상량문 현판, 영정 등도 같이 출품되었다. 경주이씨 가문에서 출품한 각종 서적류. 족보, 일기, 분재기 등이 포함되어 있다. 관직 임명 교지 등 각종 공문서들. 가구와 도자기, 인장류와 각종 호패들 채색도와 그에 관한 일화를 적은 '동복오씨 세덕십장' 동복오씨 가문은 숙종대 남인세력의 중심이었던 오시수가 공주로 입향한 인물이며 이조.호조.예조 판서 등 다양한 관직을 역임했으며,..

지역박물관 2009.12.04

[공주박물관 특별전] 공주의 명가 - 진주 정씨(예조등급, 등장, 오가작통), 전주 이씨 (숭선군 인장)

공주박물관에서는 공주지역 명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다양한 유품을을 한데 모아서 특별전시를 하고 있다. 지역내 다양한 가문에서 보물처럼 간직해 오던 유품들인데, 조선시대 사회상을 잘 보여주고 있는 유물들이 많았다. 그 중 진주 정씨에서 출품한 유물로는 예조등급같은 공문허와 조선시대 사회상을 보여주는 오가작통,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여론을 모은 등장 등의 유품이 있었고, 전주이씨는 종친인 관계로 인장, 의복류 등을 출품하였다. 진주정씨 가문을 대표하는 유품인 예조등급. 진사 이기선 등이 상소를 올려 부조묘 설치를 요청한 것에 대한 재가사항을 확인한 예조에서 발급한 등급문서이다. 오가작통. 오가작통법은 경국대전에 법제화되어 있는 것으로 한 통(統)으로 묶은 인보조직(隣保組織)이다. 역사시간에 말로만 들었던 오가..

지역박물관 2009.12.04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문화회관, 도심속 문화예술의 전당

서울 광화문 광장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세종문화회관이다. 70년대에 건설된 이래 오랜 기간동안 국경일날 관제행사의 중심지였다가 도심 속의 문화공간으로 변하고 있는 곳이다. 강남의 예술의 전당이 세워지기 전까지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공연이 독점적으로 열리던 곳으로 지금도 수준 높은 공연이 끊임 없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세종문화회관은 여의도 국회의사당과 함께 화강암의 웅장한 모습이 강조되는 7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의 건축물이기도 하다. 당대의 건축가와 조각가들이 이 곳 세종문화회관 건설에 참여했다고 할 수 있다. 특이한 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축가인 김수근씨가 배제되고 엄덕문건축연구소에서 설계되었다고 한다. 세종문화회관은 크게 3,800석 규모의 대강당과 음악전용홀인 소강당(세종M시어터)와 두 건물..

20세기초 영국인이 한국 건축을 응용해서 지은 강화 온수리 성공회 성당

강화도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간척에 의해서 섬이 형성된 곳입니다. 그래서 강화도는 농지면적도 넓고 옛날에는 화문석을 짜야 했기때문에 강화사람들은 매우 근면하다고 합니다. 여기에 덧붙혀서 강화도만의 특징으로 우리나라에서 오래된 영국 성공회가 이 곳에 뿌리를 박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성공회 성당 건물이 이 곳 온수리와 강화 읍내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강화도의 성공회 성당은 일반 개신교나 카톨릭 성당과는 달리 한옥 형태의 건물이라는 것입니다. 물로 초창기 영국 성공회를 한국에 도입한 선교사의 취향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독창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강화 전등사 북쪽편 온수리 중심부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온수리 성당입니다. 한옥식으로 지은 옛날 교회 건물이 있고, 그 옆으로는 덕수궁 옆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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