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국보 21호), '석가탑' 또는 '무영탑'으로 불리는 통일신라 석탑의 걸작

younghwan 2011. 9. 29. 01:00
반응형


  불국사 경내에 있는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불국사 삼층석탑은 우리에게 석가탑 또는 무영탑으로 잘 알려진 대표적인 석탑이다. 불국사 삼층석탑은 현세의 부처인 석가모니를 상징하는 탑이라 하여 석가탑이라 불리었으며, 아사달의 슬픈 전설이 담긴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무영탑으로도 많이 불린다. 60년대 석가탑 해체 복원시 석탑 내부에서 '무구정광 다라니경'과 사리함이 발견되기도 한 탑이다. 불국사는 우리가 아는 현재의 대부분의 사찰처럼 대웅전을 비롯한 법당과 불상이 신앙의 중심이 아니라 사방의 회랑이 사찰의 신앙 공간을 이루며 중앙에 위치한 탑이 주된 신앙의 상징물이었다고 하며, 당시에 만들어진 많은 탑들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불국사 삼층석탑은 국보 2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형적인 통일신라의 삼층석탑 양식을 대표하는 석탑으로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과 상륜부를 올려 놓고 있다. 석가탑 각부분은 체감비율은 간결하면서도 조형적인 미(美)가 뛰어난 걸작이라고 할 수 이다. 기단부는 각면에 기둥이 새겨져 있고 다른 조각이나 장식은 두고 있지 않다. 삼층으로 이루어진 탑신은 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몸돌에는 기둥을 새겨 놓고 있다. 지붕돌은 5단으로 새겨놓고 있으며 날렵한 느낌을 주고 있다. 상륜부는 노반.복발.앙화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현재의 상륜부는 남원실상사 석탑 상륜부를 모방해서 복원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사진 등으로 볼 때는 2층의 기단부와 3층의 탑신으로 이루어진 다른 석탑과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높이 10.4m의 웅장한 석탑이다. 1960년대에 이 석탑을 해체 복원할 때 사리함과 사리엄장구와 함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다.



경주 불국사 중심 불전인 대웅전 앞 경내에 위치하고 있는 삼층석탑(일명 '석가탑,무영탑')은 다보탑과 더불어 불국사 경내의 중심을 이루는 석탑으로 엄숙한 경내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불국사 삼층석탑은 일명 '석가탑' 또는 '무영탑'이라고 불린다. 탑의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으로, ‘석가탑’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불국사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것을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에 따른 것이라 한다.

 

불국사 삼층석탑 (석가탑) 상륜부 장식은 파괴되어서 남원 실상사 삼층석탑의 상륜부를 본떠서 새로 만들어 붙혔다고 한다. 그래서 석가탑 전체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기도 하다. 아랫 부분인 노반.복발.앙화만 남아있었다고 한다.



불국사 삼층석탑 (석가탑)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인 3층의 탑신이다. 목탑의 처마를 본 떠서 석탑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탑신에도 목조건축물의 본떠서 기둥을 새겼으며, 지붕돌의 모서리들은 모두 치켜올려져 있어서 탑 전체에 경쾌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몸돌은 1개의 돌로 만들었으며 양쪽 모서리에 기둥을 새겨 놓고 있으며 별다른 조각상을 새겨놓고 있지는 않다.


날렵한 탑신 지붕둘


2층으로 이루어진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의 기단부. 육중한 탑을 지탱하기 위해서 2층으로 지어졌으며, 목조건축을 본따서 위·아래층 기단의 모서리마다 돌을 깎아 기둥 모양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현재 석가탑은 화강암석재가 해체복원과정에서 그랬는지, 자연적인 현상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많은 부분에서 손상이 있는 것 같다. 석가탑 기단부는 자연석 위에 기단부를 올려놓고 있는데 이른 다른 석탑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석가탑 기단부.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불국사 삼층석탑


불국사 삼층석탑 주위로는 연꽃 모양의 주출돌처럼 생긴 돌이 박혀 있는데 이는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탑이라고 해석을 하고 있다.


탑주위에 연꽃무늬를 조각한 것으로 팔방금강좌라고 한다.


불국사 삼층석탑


다보탑과 석가탑이 나란히 서 있는 '두개의 탑'이라는 느낌을 잘 주고 있는 불국사 대웅전 경내의 가람배치이다. 불국사는 경내는 회랑으로 둘러져 있으며, 불상중심의 사찰에서는 불전 내부가 신앙의 공간이지만, 불국사나 황룡사같은 사찰들은 회랑 내부의 공간 전체가 신앙의 공간이었으며 불상이 아닌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탑이 신앙의 중심이었다.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로 항상 붐비는 석가탑 주변.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굴된 '무구정광다라니경'과 사리함은 현재 불교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불국사 삼층석탑 해체복원과정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복제품)




국보 제21호인 석가탑과 국보 제20호인 다보탑은 우리 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이예요. 불국사의 대웅전과 자하문 사이에 있는데 서쪽에는 석가탑이, 동쪽에는 다보탑이 마주 보고 우뚝 서 있답니다. 통일신라시대(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두 탑은 높이 10.4m로 석가탑은 우리 나라 일반형 석탑을 대표하고, 다보탑은 특수형을 대표하지요. 그런데 왜 모습이 다른 2기의 석탑이 한 자리에 같이 있을까요? 석가탑과 다보탑은 불교의 사상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바꾼 것이죠. 석가모니가 설법을 하고 있을 때 바로 앞에 칠보로 장식된 다보탑이 허공에 우뚝 솟았다고 해요. 석가탑과 다보탑이 나란히 있는 것은 설법을 하는 석가여래와 그것을 증명하는 다보여래를 나타내는 것이죠. 다음 글을 그림으로 그려보세요. ‘높이와 너비가 굉장하고, 갖가지 보물로 장식되었으며, 나부끼는 깃발과 길게 늘인 깃발, 줄줄이 늘어뜨린 구슬들, 보배로운 방울이 무수히 걸려 화려하고...’ 다보탑의 모습과 비슷한 그림이 그려졌나요? 석가모니 앞에 나타난 다보탑의 모습을 표현한 글인데 그대로 옮겨 다보탑을 만들었다고 해요.  <출처:문화재청>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 김대성의 발원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과거·현재·미래의 부처가 사는 정토(淨土), 즉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정신세계가 잘 드러나 있는 곳이다. 『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석굴암을,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혜공왕 10년(774) 12월 그가 목숨을 다할 때까지 짓지 못하여, 그 후 나라에서 완성한 후 나라의 복을 비는 절로 삼게 되었다. 불국사삼층석탑과 불국사다보탑(국보 제20호)은 절의 대웅전 앞 뜰 동서쪽에 각각 세워져 있는데, 서쪽탑이 삼층석탑이다. 탑의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으로, ‘석가탑’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것을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에 따른 것이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석탑으로, 감은사지삼층석탑(국보 제112호)과 고선사지삼층석탑(국보 제38호)의 양식을 이어받은 8세기 통일신라시대의 훌륭한 작품이다. 탑 전체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2층의 기단이 튼실하게 짜여 있으며, 목조건축을 본따서 위·아래층 기단의 모서리마다 돌을 깎아 기둥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탑신에도 그러한 기둥을 새겼으며, 지붕돌의 모서리들은 모두 치켜올려져 있어서 탑 전체에 경쾌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더한다. 탑의 머리장식(상륜부)은 파손되어 1973년 남원 실상사삼층석탑(보물 제37호)의 머리장식을 본따서 복원하였다. 탑 주위로 둘러놓은 주춧돌 모양의 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이를 부처님의 사리를 두는 깨끗한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탑이 건립된 시기는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으로 추측되며, 그 후 원래 모습대로 잘 보존되었으나, 안타깝게도 1966년 9월 도굴꾼들에 의해 탑이 손상되는 일이 있었다. 그해 12월 탑을 완전하게 복원하면서 2층 탑신의 몸돌 앞면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던 사각형의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서 여러가지 사리용기들과 유물을 찾아냈는데,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국보 제126호)이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닥나무 종이로 만들어졌으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 탑은 ‘무영탑(無影塔: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여기에는 석가탑을 지은 백제의 석공(石工) 아사달을 찾아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 온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보지도 못한 채 연못에 몸을 던져야 했던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불국사(佛國寺) 대웅전(大雄殿) 앞뜰에 동서로 세워진 두 탑 중 서쪽에 있는 탑이다. 2층 기단 위에 세워진 일반형 석탑으로, 각부의 비례가 아름다운 우수작의 하나이다. <출처: 문화재청>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