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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고려실] 고려시대 도교, 풍수지리설

younghwan 2012. 2. 16.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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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크게 융성하였고, 국가의 행정체계는 유교를 중심으로 운영된 국가였다. 도교는 중국에서 크게 번성하여 지금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식인들의 수신 측면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국가적인 의례 측면을 제외하고는 개인 생활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힘들다. 도교와 함께 풍수지리설도 비슷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도교관련 유적,유물은 중국에 비해서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풍수지리설
고려시대에는 풍수지리설이 크게 유행하였다. 풍수지리설이란 땅속에 흐르는 기운이 사람의 길흉화복에 영향을 준다는 이론으로서, 산천의 형세를 잘 살펴 도읍이나 사찰, 주거, 분묘 등의 위치를 정할 때 많이 활용되었다. 백제 온조왕이 한산에 올라 지세를 살피고 도읍을 정했다고 한 것처럼, 이미 삼국시대부터 고유한 풍수지리적 관념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보다 체계화된 이론으로서의 풍수지리설은 통일신라 말기에 당나라에 다녀온 선승들이 들여온 것으로 보인다. 선성 도선은 이러한 풍수지설을 바탕으로 전국을 답사하면서 우리의 풍토에 맞는 한국적 풍수지리설의 근간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고려시대를 통하여 사찰이나 이궁의 건설, 천도 논의 등에서 도선의 권위는 거의 절대적이었다. <출처:중앙박물관>



풍수지리설을 집대성한 도선의 초상화(선각국사 도선 초상,복제품), 보물 1506호, 순조5년(1805), 선암사 소장
통일신라 말기의 선승인 선각국사 도선(817~898)의 초상화이다. 본래 화엄종 승려이던 도선은 구산선문의 하나인 동리산파의 개조 혜철의 문하에서 선종으로 개종하였고, 이후 전국 산천을 돌아다니며 당시 선종과 함께 유행하던 풍수지리설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나라 풍수지리서의 고전으로 여겨지는 '도선비기', '송악명당기', '도선답산가', '삼각산명당기' 등이 도선의 저작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 초상화는 1805년 도일비구가 대각국사의 초상화와 함께 그린 것으로 서안과 발받침대, 돗자리 등의 형상이 다소 사실적이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짜임새 있는 구성과 안정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도교
고려시대에는 정부 주도 하에 왕실과 나라의 안녕을 비는 의례 중심의 도교가 크게 성행하였다. 수도 개경의 복원궁.대청관과 같은 도교 사원에서는 십일요나 삼청을 비롯한 여러 도교 신들에게 제사를 올리며 국왕의 수명장수와 나라의 태평함을 빌고, 재난이 없어지기를 기원하였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도교는 불교처럼 조직적인 대중 종교로 발전하지는 않았으며, 민간에서 수명 연장이나 복을 비는 도교적 습속을 지켜나가는 정도였다.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도가 사상과 도교적 양생수련법으로 심신을 다스리며 신선과 같은 탈속의 경지를 지향하는 풍조가 많았다. <출처:중앙박물관>

왕이 별자리 운행의 정상화를 기원하는 글
일관이 변고를 관찰한 보고를 받아보니, 별들의 운행이 정상적이지 못하다고 여러번 말하나이다. 이것은 사람을 사랑하여 그로 하여금 닦고 반성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니, 진실로 깊이 자신을 책망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 재앙을 없애버리겠습니까? 이에 정성을 다하여 특별히 법도를 엄숙히 하고 도사들을 모아 경전의 신령스런 글월을 외나이다. 바라건대 굽어 흠양하시고 도움을 더해 주셔서 삼신(해,달,별)의 궤도가 다시는 잘못되는 재앙이 없이 사방이 태평하며 영화로운 경사를 이루게 하소서.
- 동국이상국집 권39, 초소 십일요소재도량문 - <출처:중앙박물관>


청자 도교 인물 모양 주전자(청자 도석인물형 주자), 국보 167호, 12세기, 대구 달성군 공산면 내동 출토
두 손에 선도를 받쳐 든 인물 모양의 주전자이다. 의복과 봉황이 장식된 관, 선도를 받쳐 든 모습 등에서 이 인물은 도사이거나 서왕모일 것으로 추정된다. 서왕모는 도교의 대표적 여자 신선으로서, 중국 한 무제에게 불로장생의 복숭아를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등 뒤에 손잡이가 있어서 전체적으로 주전자의 기능을 지니고 있으나, 실제로 사용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출처:중앙박물관>


도교 제사에 사용한 청자 접시 (청자 "십일요전배"명 접자), 고려
도교 제사에 사용하던 제기이다. 그릇 바깥 면에 "십일요전배"라고 새겨져 있다. "십일요를 위해 진열되었다"라는 뜻이다. 십일요란 일.월.화.수.목.금.토를 포함한 11개의 별자리를 가리킨다. 고려 시대에는 왕실과 나라의 복을 빌고 재난을 물리치기 위하여 십일요를 비롯한 여러 신들에게 도교 제사를 많이 올렸다. 이런 도교 제사를 재초라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도교 관청에서 쓰던 잔(청자 "소전색"명 잔), 개성출토
고려 때 도교 제사를 담당하던 소전색이라는 관청에서 쓰던 잔이다. 소전색은 복원궁.구요당.대청관과 같은 도교 사원들과 함께 조선 건국 직후 폐지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도교에 심취한 시인을 노래한 시가 새겨진 청자병
조롱박 모양의 몸체 전면에 연꽃 넝쿨무늬를 양각하고 글 위쪽에도 양각으로 두 겹의 연꽃무늬를 둘렀다. 몸체 양면에 각각 마름꽃 모양의 창을 내고 그 안에 사구를 흑상감하였다. 이 시는 도교에 심취했던 당나라 시인 하지장의 주흥을 이 병과 관련하여 언급하고 있다. 시 내용이나 병의 생김새로 보아 술병으로 썼을 가능성이 높다. <출처:중앙박물관>


신선 세계를 찾아가는 배를 새긴 거울 ("황비창천"명 항해도문 동경), 개성출토
개성에서 출토된 청동거울로, "황비창천"이라는 명문과 함께 범선, 용 등의 문양을 새겨 놓았다. 이들 문양은 바다의 신산을 찾아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황비창천"이란 "밝게 빛나는 창성한 하늘"이란 의미로서, 신선이 사는 별천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거울은 송~금대에 걸쳐 중국에서 다량 수입되었고, 고려에서 이들을 본 떠 만들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바둑 두고 그림을 그리는 신선을 새긴 향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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