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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조선의 금속할자, 갑인자 외

younghwan 2010. 2. 3.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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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유교국가로 교육과 역사기록을 매우 중요시하였고,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 기록문화유산을 남겨놓고 있다. 조선의 금속활자는 태종때 만든 계미자에서 시작하여, 갑인자, 임진자, 한구자, 정리자 등 다양한 금속활자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국가가 주도로 금속활자를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한구자처럼 민간에서 금속활자를 만들어 사용하던 것을 국가가 구입하여 사용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금속활자가 보편화되어 있었다. 조선전기에 만든 금속활자는 임진왜란때 대부분 불타버렸고, 현존하는 금속활자는 주로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현종실록을 찍을 때 사용한 활자

1677년 '현종실록'을 펴낼때 사용한 활자이다. 지방 문중에서 사용하는  금속활자를 왕실에서 구입하고, 새로 4만여자를 만들어 '현종실록'을 찍었다. 글씨체는 세종때 만든 갑인자와 비슷하며 크기가 약간 작다. 고서관에 보관해 두고 '조선왕조실록' 등 주로 왕실관련 책을 찍을 때 사용하였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열성지장통기' 인쇄를 위한 교정지 (복제품)

임진년에 만든 활자, 임진자

갑인자의 글씨체를 글자본으로 한 금속활자 가운데 다섯번째로 만든 활자로 오주갑인자라고도 한다. 1772년 임진년 당시 세손이었던 정조 주관으로 큰 자와 작은자 만들어 교지관에 보관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여러차례 금속활자를 만들었지만 갑인자의 글씨체가 아름다워 여섯차례 같을 글씨로 금속활자를 만들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세번째 만든 한구자

한구자는 숙종때 김석주가 당대 명필 한구가 쓴 글씨체로 만든 활자이다. 숙종22년 무렵 국가에서 사들여 사용하다가 정조 6년 정조의 명으로 다시 주조하였다. 철종 8년 활자를 보관해 두었던 주자소에 불이 나 두번째로 만든 한구자가 불타버리자, 다음 해 세번째로 한구자를 만들었다. 이 활자는 만든 후 사용하지 않은 새 것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두번째로 만든 정리자

정리자는 정조 19년 '정리의궤통편'을 찍기 위해 만든 활자를 일컫는다. 글씨체는 청나라 때 만든 사전인 '강희자전'의 글씨체를 바탕으로 하였다. 철종 8년 활자를 보관해 두었던 주자소에 불이 나 정리자가 불타버리자, 다음해 두번째로 정리자를 만들었다. 다른 활자들과 달리 인홰체로 구한말 각종 교과서, 관보, 법령, 조약문 등의 인쇄에 널리 사용되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기록의 나라 조선
우리 선조들은 일찍부터 기록을 중시하였다. 특히 유교를 국교로 삼은 조선에는 개인과 국가가 걸어온 발자취를 가능한 한 모두 기록하려는 유교적 역사의식이 있었다. 그 결과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 등 방대한 양의 세계기록유산을 남겼다. 문치주의를 택한 조선은 이에 걸맞은 인재를 기르고 백성을 교육하기 위해 많은 서적을 편찬하였다. 이를 위해 태종3년 계미자를 시작으로 30여 차례 금속활자를 만들었다.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활자는 임진왜란 때 거의 불타 버렸으나, 금속 활자를 만드는 기술이 일본에 전해져 일본 금속활자 개발에 이바지 하였다. 임진왜란 이후에도 국가와 개인이 새로이 활자를 만들어 기록과 편찬 사업을 이어 나갔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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