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은 17세기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서 대두된 현실개혁적인 조선시대 유학의 학풍을 말한다. 당시 청나라의 고증학과 더불어 실제적인 사물에서 진리를 찾아낸다는 뜻에 그 근원을 두고 양국에서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 면이 있다. 청대의 고증학은 경서의 해석에 치중한데 반해 조선의 실학은 서구문물의 영향과 함께 농업에서 부터 사회전반의 개혁을 추구한 학문으로 그 세부적인 내용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중앙박물관 조선실에서는 조선후기 실학을 대표하는 각종 저서들을 실제 볼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이전에는 없었던 것들이 조선실을 개편하면서 당대를 대표하는 저서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행운을 만나게 된다. 조선시대 실학의 시초라 여겨지는 이수광의 '지봉유설', 이익의 '성호사설' 요약한 성호사설유선, 유형원의 '반계수록',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비롯하여 실학을 집대성했다고 할 수 있는 정약용의 저서 '목민심서' 또한 이 곳에서 볼 수 있다. 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실학관련 저서와 유물들은 그 수량이 아주 많다고 할 수 없지만, 당대를 대표하는 귀에 익은 여러 저서와 유물들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게 하며, 당시의 다른 사회현상과 비교하여 체계적으로 볼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이수광이 지은 백과사전, 지봉유설. 교과서에 실학이 처음으로 등장한 저서로 잘 알려져 있는 당시의 상식들을 모아서 책으로 엮은 백과사전이다.
이익이 편찬한 백과사전, 성호사설유선. 이익의 <성호사설> 또한 실학을 대표하는 저서로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이익(1579~1624)의 제자인 안정복(1712~1791)이 <성호사설>의 중복되고 번잡한 것을 삭제하고 다시 유별로 편차를 엮어 원래의 1/3 정도로 줄여 엮은 책으로 유서의 일종이다. 원편의 약 1/3인 1,332칙이 실려 있으며, 종류별로 간명하게 배열되고 주석까지 덧붙여졌기 때문에 매우 편리하게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유형원이 국가운영의 개혁을 주장한 책, 반계수록. 실학을 대표하는 저서 중 하나로 사회개혁을 주창한 사상서에 가까운 성격을 가지는 유형원이 저술한 책이다. 실학의 수준을 한단계 높여준 저서라 할 수 있다.
조선중기의 학자 유형원(1622~1673)이 통치제도에 관한 개혁안을 중심으로 저술한 책이다. 이책은 유형이 관직생활에서 물러나 전북 부안에 머물며 22년에 걸쳐 연구한 결과물이다. <반계수록>에 담긴 내용은 현실 법제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지역적인 불균등과 신분적인 특권을 해소하여 모든 사람이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정약용이 목민관으로서 백성을 다스리는 도리를 적은 책, 목민심서. 조선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 대표적인 저서라 할 수 있다. 조선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정약용(1762~1836)이 전라남도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에 저술한 것으로 유배가 끝나는 해인 1818년 완성되었다. 목민이란 백성을 다스려 기른다는 뜻으로 지방관이 지켜야 할 도리를 논하고 있다.
박지원이 쓴 청나라 기행일기, 열하일기
정조4년(1780) 박지원(1735~1805)은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잔치를 축하하기 위해 갔던 사신 박명원을 수행하였다. 이 때 청날 건륭제의 피서지인 열하를 여행하고 북중국과 남만주 일대를 견문한 후, 그 곳 문인, 명사들과 교유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기록한 책이다. <출처:중앙박물관>
북학과 연행
조선시대에 한양에서 북경까지 오가는 데는 두달이 넘게 걸렸고 북경에서의 체류기간을 포함하면 연행은 반년 정도가 소요되는 험한 여정이었다. 이때 사행의 대표격인 정사나 부사 및 서장관들은 공식 행사에 동원되거나 감시에 묶여 있는 반면, 그들을 수행한 자제군관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다. 실학자로 알려진 홍대용, 박제가, 박지원 등이 북경에 갔을 때에도 이러한 자제군관이었다. 이 때문에 그들은 궐 밖 세상을 살펴 기록할 수 있었고, 조선시대 3대 연행록으로 꼽는 <노가재연행록>, <을병연행록>, <열하일기> 등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들은 연행을 통하여 청의 발전된 학문과 문물을 수용하여 이용후생의 도구로 삼자는 북학을 주장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청나라 수도 연경을 그린 그림, 각국 중 제2, 연경성시도
세계각국의 지도와 중국 천하와 16성을 그린 지도첩 중 수도 연경을 그린 지도이다. 연경은 북경의 별칭이다. 도성과 내부의 궁궐, 좌우 대칭의 가로망과 건물 배치가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조선사신이 들어가던 문인 조양문이 오른족에 위치해 있고, 외국 사신들이 머물던 회동관, 조선사신들이 책, 서양의 물품, 골동품 등을 구입했던 유리창도 표시되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연경성시도 중 자금성과 그 부근을 그린 지도이다. 자금성은 실제로 전각의 배치는 묘사하지 못하고, 성벽과 출입문만 묘사하고 있다.
자금성 앞 천안문 광장 일대. 지금과는 달리 천안문 광장 일대는 우리나라의 광화문 대로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도 그 모습과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유리창. 당시 북경을 찾았던 사신들이 수많은 일가친척이나 지인으로부터 부탁을 받고 물건을 구경하고 구입하기 위해서 서성거렸던 거리이다.
조선 사신단이 머물렀던 회동관 일대. 지금 이 곳은 천안문 서쪽편 중산공원으로 변신해 있다. 중산공원에는 사직단이 있고, 지금도 옛날 사신들이 천자를 배알하는 연습을 했던 습례정이 있다. 당시 많은 저서에서 습례정에서의 고통스럽고 모욕스렀던 부분을 글로 남겨 놓고 있다.
청나라 서화가 오승량이 추사 김정희에게 보낸 편지
1828년 1월26일 청나라 서화가 오승량이 김정희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 내용은, 오승량이 그려준 <기유십육도>의 각 그림에 김정희가 16수의 <기유도가영십육수>를 지어 보내준 데 감사를 표하고, 김정희의 아버지 김노경에게 <화훼도> 1폭을 보낸다는 내용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청나라 학자 왕희손이 추사 김정희에게 보낸 편지. 추사 김정희에 대한 명성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 북경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827년 1월 26일 청나라 학자 왕희손이 김정희에게 보낸 편지이다. 왕희손은 김정희와 직접 만난 적은 없으나 서신을 통하여 친교를 맺었다. 청대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에 대한 소개와 평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는 객관적 사실을 통해 정확한 해답을 얻어내는 실사구시, 즉 고증학적인 학문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1861년. 구한말에 만들어졌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도라 할 수 있다. 그 정확도가 상당히 뛰어나서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전체를 측량했던 일본인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김정호가 만든 우리나라 전국지도로 목판 인쇄본이다. 우리나라를 남북 120리 간격으로 구분하여 22층으로 나누고, 각 층마다 동서 방면의 지도를 수록하였다. 각층의 지도는 1권의 책으로 묶어 동서 80리를 기준으로 병풍처럼 접고 펼칠 수 있도록 하고 휴대하기 간편하게 만들었다. 물줄기는 곡선으로, 도로는 직선으로 표현하였으며 정확하고 상세하다. <출처:중앙박물관>
대동여지도를 찍어낸 목판, 대동여지도 목판, 보물 1561호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인쇄하기 위해 제작한 목판이다. 산줄기와 물줄기를 바탕으로, 교통로와 교통시설, 통신시설, 군사시설 등의 각종 정보를 목판 위에 정교하게 조각하였다. <대동여지도>에 조각된 지명 등 주기의 총수는 13,000여 개에 이른다. 목판의 앞뒷면에 모두 조각이 있고 목판이 완성된 것은 1861년이지만, 그 후 여러 차례 수정작업을 거쳤다. <출처:중앙박물관>
우리나라 전국지도, 동국대지도, 보물 1538호
<동국대지도>는 한반도 전체와 국경을 제대로 묘사한 첫번째 지도라고 한다.
정상기(1678~1752)의 <동국지도>에 기초하여 제작한 우리나라 전국지도이다. 동국은 우리나라를 일컫는 여러 이름 가운데 하나이다. 이 지도에 이르러 비로소 북부지방이 정확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지도에는 정상기가 고안한 백리척이 활용되어 정확도가 획기적으로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지도상에서 실제 거리를 산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현재의 독도인 우산도, 두만강 하구의 녹둔도 등이 분명하게 표기되어 있어 당시의 영토의식을 잘 보여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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