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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는 '금의 나라'로 알려질 정도로 금과 은으로 수 많은 꾸미개들을 만들었다. 신라금관을 비롯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들 중 상당수는 신라에서 만든 금제 꾸미개들이며 특히 금관은 세계적으로 출토되는 사례가 많지 않다고 한다. 금관 외에도 신라의 꾸미개로는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이 많이 출토되고 있는데 주로 금, 은, 옥, 유리 등을 가공하여 만들고 있으며 출토된 유물의 양도 상당히 풍부하면서 그 세공기법 또한 상당히 뛰어나다. 주로 삼국시대에 중기에 만들어진 무덤부장품들이 현재까지 남아 있으며, 그 세공기술은 후대에서는 불상 등 불교관련 문화재들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신라의 꾸미개
신라의 꾸미개는 금관 및 허리띠를 비롯하여 관모, 관꾸미개, 귀걸이, 목걸이, 팔찌, 반지, 신발 등이 있는데 재질이나 형태가 화려하고 다양하다. 고대 일본인들이 신라를 '눈부신 금.은의 나라'라고 하였듯이 신라의 꾸미개는 대부분 금과 은으로 만들어졌다. 이 외에도 수천개의 유리나 수정으로 만든 목걸이와 손잡이를 용무늬나 봉황무늬로 꾸민 고리자루칼이 있다. 이러한 꾸미개는 몸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기능 외에도 정치적.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역할을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가슴꾸미개에서 삼국시대 신라의 고분에서 출토되는 각종 꾸미개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신라에서는 특히 신라에서는 곱은옥 장식을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금 귀걸이, 국보 90호, 경주 부부총에서 출토된 것으로 태환이식이라고도 한다. 서역에서 전래된 누금세공법이 장식전체에 적용된 것으로 상당한 수준의 세공기술을 필요로 한다.

태환이식,
경주 보문동의 부부총(夫婦塚)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한쌍의 금귀걸이로, 길이 8.7cm이다. 태환이식이란 가운데를 빈 공간으로 하여 무게를 가볍게 한 귀걸이를 말한다. 귀걸이의 몸체가 되는 커다랗고 둥근 고리에 타원형의 중간고리가 연결되었으며, 그 아래에는 나뭇잎 모양의 화려한 장식들이 매달려 있다. 커다란 둥근 고리에는 거북등무늬와 같이 육각형으로 나누어 그 안에 4엽 혹은 3엽의 꽃을 표현하였는데, 꽃 하나하나에 금실과 금 알갱이로 장식한 누금세공법(鏤金細工法)을 이용하는 세심함을 보여주고 있다. 밑부분에는 나뭇잎 모양의 작은 장식들을 금실을 꼬아서 달고 장식 끝에 커다란 하트모양을 달았다. 신라 귀걸이 장식에는 대부분 서역(西域)에서 전래된 누금세공법이 사용되었는데 그 중에서 태환을 비롯한 전체 장식에 누금세공법이 사용된 것은 이것이 대표적인 것으로 화려하고 놀라운 세공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금 귀걸이, 5~6세기, 경주 일대에서 출토된 금으로 만든 귀걸이들이다. 귀걸이는 중심고리의 형태에 따라 굵은 고리와 가는 고리 귀걸이가 있다. 굵은고리 귀걸이는 가죽 등으로 묶어 귀에 걸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박물관을 찾는 여자들이 제일 많이 감탄하는 유물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금 목걸이, 국보 194호, 6세기, 경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것으로 곱은옥모양의 금 구슬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3개씩의 금 구슬을 연결하였다. 간결하면서도 세련미가 돋보인다. 푸른색의 곱은옥을 사용하지 않고 금으로 곱은옥 모양을 만든것이 특이한 유물이다.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길이 33.2㎝의 금 목걸이이다. 황남대총은 남북으로 2개의 봉분이 표주박 형태로 붙어 있는데, 남쪽 무덤에서 사람의 목에 걸린 채로 널(관) 안에서 발견되었다. 금실을 꼬아서 만든 금 사슬 4줄과 속이 빈 금 구슬 3개를 교대로 연결하고, 늘어지는 곳에는 금으로 만든 굽은 옥을 달았다. 경주지역 신라의 무덤에서 발견되는 대부분의 목걸이가 푸른빛의 옥을 사용한데 반하여 전체를 금으로 만든 특이한 목걸이이다. 금 사슬, 금 구슬, 굽은 옥의 비례와 전체적인 크기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우아하고 세련된 멋을 풍기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금.유리 목걸이(6세기, 경주 금령총), 금 목걸이(보물 456호, 6세기, 경주 노서동 무덤). 금을 세공한 수법이 상당히 정교하면서도 화려하다.

경주 노서동 금목걸이
금소환(金小環) 여러 개를 연결하여 속이 빈 구형(球形)을 만들고 심엽형(心葉形) 금판을 금줄로 연결하여 장식한 것을 44개 연결하고 끝에 비취 곡옥(曲玉) 1개를 달았다. 가운데가 빈 구형(球形)의 구슬은 같은 시대 귀걸이의 중간 장식에서 볼 수 있는 수법이고 목걸이 끝에 곡옥(曲玉)을 다는 형식은 당대 목걸이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목걸이가 대부분 유리제 청옥(靑玉)을 연결하고 끝에 곡옥(曲玉)을 다는 형식이었으나 이 목걸이는 청옥(靑玉)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구슬 하나하나에 기교를 다하는 등 당대 목걸이로서는 최대의 걸작이다. 끝에 달린 비취 곡옥(曲玉)의 맑은 색은 금색과 좋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목걸이는 경주 노서동 215호 고분(古墳)에서 발견된 것으로 일찍이 이 고분(古墳)에서 출토된 일련의 유물과 함께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65년에 체결된 한·일협정에 의하여 1966년에 반환된 문화재 중의 하나이다. <출처:문화재청>



금 드리개, 5세기, 경주 황남대총(왼쪽), 드리개는 중간 샛장식의 길이가 귀걸이에 비해 길다. 주로 금관이나 허리띠를 꾸미는데 사용된다.


금 팔찌, 보물 454호, 6세기, 경주 노서동 무덤, 안팎에 각각 네 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는 팔찌, 용은 간략하지만 역동적으로 표현되었다.

경주 노서동 금팔지
경주 노서동에 있는 무덤에서 발견된 지름 8㎝의 신라의 금제 팔찌이다. 납작한 단면 바깥쪽에 각각 59개씩의 돌기를 내어 하나하나에 옥을 상감하였다. 이 돌기 좌우에는 4마리 용이 입을 벌려, 서로 다른 용의 꼬리를 물려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새겼다. 몸에는 비늘을 세밀하게 조각하였고 눈은 음각하였다. 경주 시내에 있는 신라 무덤에서는 각종 금제나 금동제 팔찌가 발견되는데, 장식이 없거나 간단한 문양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같이 용이 조각된 예는 매우 드물며, 그 중에서도 이 팔찌는 뛰어난 걸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금 팔찌


금 방울, 5~6세기, 황남대총, 금령총에서 출토된 것들이다. 경주 금령총은 돌덧널무덤으로 금관과 금허리띠와 함꼐 한 쌍의 말 탄 사람토기와 배모양 토기가 출토되었다. 특히 금관과 허리띠의 크리로 보아 어린 왕자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금방울이 출토되어 '금령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금 반지, 5~6세기, 경주


유리 목걸이, 5세기, 경주 황남대총. 수십개의 곱은옥모양의 유리 구슬을 엮어 만든 것이다. 곱은옥은 하늘의 달, 생명의 근원인 태아의 모습을 본 뜬 것으로, 신라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수정 ~ 마노 목걸이, 5~6세기, 경주


유리 구슬, 5세기, 경주


가슴 꾸미개, 5세기, 경주 황남대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