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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신라실] 신라와 실크로드, 서역과의 교류

younghwan 2011. 5. 15.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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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기 5~6세기 신라 고분으로 알려진 황남대총을 비롯하여 여러 고분에서는 서역과의 교류관계을 보여주는 여러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그 중 유리그릇이나 유리잔 등은 서아시아지역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유물들은 비단길 또는 바닷길로 신라에 전해졌다고 한다. 당시의 바닷길로는 인도와 아라비아 상인들과의 교역을 통한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에는 여러차례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삼국시대의 바닷길 교류는 크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들 물품들은 신라가 서역과 직접 교류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불교의 전파와 함께 당시 실크로드를 통한 교류가 활발했던 중국을 통해 들어왔다는 견해도 있다. 고구려는 국방.외교상 서역과 직접 교류할 필요도 있었고, 교류의 흔적도 많이 남아 있어서 서역국가와 직접 교류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신라는 중국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교류했다는 의견의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서역물품들은 신라뿐만 아니라 삼한 이래로 백제, 가야에서 그 사례를 많이 찾아 볼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신라만의 특징은 아닌 듯 하다.

신라와 실크로드
신라는 중국 등 주변 국가뿐만 아니라 서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돌무지덧널무덤은 시베리아의 알타이 지역에 분포하는 무덤과 그 구조가 비슷하다. 또 무덤에서 출토되는 금관과 허리띠는 북방 유목 민족 문화와 연결되고 있다. 유리 그릇, 장식보검, 뿔모양 잔, 상감 유리구슬 등은 지중해 주변과 서아시아 지방에서 출토되는 것과 형태나 제작 기법이 비슷하다. 이 유물은 비단길 또는 바닷길로 신라에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유리병, 국보 193호, 경주 황남대총에 출토된 문화재이다. 지중해 연안인 로마로부터 비단길과 바닷길을 통해 수입된 제품으로 설명이 되어 있지만, 페르시아에서 만들어졌다는 견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유리병은 손잡이에 금실을 감아 수리한 흔적으로 보아 매우 귀한 물품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유리잔, 보물 624호, 5세기, 경주 황남대총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유리잔으로 아가리부분이 넓게 바깥쪽으로 벌여졌고, 몸통부분은 밥 그릇 모양으로 밑아 약간 넓어진다. 우리나라에서 잘 볼 수 없는 형태로 서역에서 전해진 유물로 보고 있다.



유리잔, 5세기, 경주 황남대총


이 시기 신라고분에서 특히 유리제품이 많이 출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리잔, 6세기, 경주 금령총, 진남색의 유리알맹이를 위, 아래로 녹여 붙여 반점무늬를 만들었다. 유리의 옅은 녹색과 짙은 코발트색의 조화가 오늘날의 미적 감각과 비교하여도 전혀 손색이 없다.


금.옥 팔찌, 보물 623호, 경주 황남대총, 표면에 녹색의 터어키석과 회색.흑색의 보석을 박아 넣고 금 알갱이를 붙여 장식하였다. 형태나 기법으로 보아 서아시아에서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팔찌는 외형에서도 기존에 많이 출토되는 신라의 금팔찌와는 상당히 다른 형태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장신구 문양과 많이 비슷하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유물이다.


은잔, 보물 627호, 경주 황남대총, 거북등무늬 안에 새.노루.벌.말.사람 등의 여러가지 무늬가 새겨져 있다. 특히 사람은 큰 눈, 높은 코를 가진 서역인의 모습이다.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발견 되었다. 황남대총은 2개의 봉분이 남·북으로 표주박 모양으로 붙어 있다. 이 은제잔은 황남대총 북쪽 무덤에서 발견된 신라 잔 모양의 그릇으로 높이 3.5㎝, 아가리 지름 7㎝의 크기이다. 밑이 평평한 잔으로 표면의 장식 무늬가 매우 특이하다. 아가리에 좁은 띠를 두른 뒤, 연꽃을 겹으로 촘촘하게 돌려 무늬를 장식하고, 그 밑으로는 쌍선으로 거북등 무늬를 연속시켰다. 거북등 안에는 각종 상상속의 동물 형상을 새겼다. 바닥 안 쪽 중앙에도 꽃무늬 안에 봉황을 배치하였다. 이러한 무늬의 표현 형식과 동물의 형상은 경주 식리총에서 출토된 장식용 신발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무늬 자체는 중국 한나라 시대의 구리 거울과 연관이 있으나, 그 분명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출처:문화재청>


금동 신, 5세기, 경주 식리총에서 출토된 것으로 신발의 바닥으로, 거북등무늬 안에 짐승얼굴무늬와 새가 있고 그 둘레에 가릉빈가(새 몸에 사람 얼굴).새.기린.날개달린 물고기 등이 새겨져 있다. 새겨진 문늬는 중국 한나라시대에서 거울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하며, 새겨진 무늬 중 새 몸에 사람얼굴을 한 무늬는 그리스 신화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정확한 내용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신발에 새겨진 무늬


* 자료참조: 중앙박물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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