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뛰어난 예술성과 도자기술을 자랑하는 문화재이다. 고려초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한 고려청자는 12~13세기에 그 절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많은 걸작들이 오늘날까지 전해내려오고 있다. 고려청자는 중국 송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개경 근처에서 처음 만들어 졌다. 초기 많이 사용되었던 차를 마시는 그릇인 완이나 술잔, 그릇, 술을 보관하는 병이나 매병, 화장품 등을 보관하는 용기인 합 등에서 중국과 비슷한 태를 보이면서도 고려청자 특유의 장식이나 빛깔 등을 보여준다. 절정기 고려청자 중에는 물가풍경무늬 등 회화적인 요소가 반영된 비슷한 형태의 도자기들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전문 화가가 도자기 제작에 연관되었던 것으로 추정하게 하고 있다.
고려시대 도자기는 주요 소비처인 궁궐과 귀족들이 거주하는 개경 주변에서 만들어졌다가 후에는 전남 강진, 전북 부안 등의 가마터에서 뛰어난 걸작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현존하는 고려청자는 예술품으로서의 가치가 더해져서 골통품 중에서는 최고의 가격으로 평가.거래되고 있다. 고려청자 중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것이 꽤 많은 편인데, 그중 상당수는 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박물관이 생기면서 개경의 궁궐터나 무덤 등에서 출토된 것들이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일제에 의해 수집되었고 이런 유물들이 해방이후 국립박물관으로 인수되면서 뛰어난 예술성을 갖춘 도자기들을 일반인들이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예술과 기술의 조화
현재 전하고 있는 문헌기록에서 상감의 시작시기와 발전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중국 도자의 영향 아래 자기 제작을 시작했던 고려 장인은 단순한 모방단계에서 벗어나 청자에 상감기법을 적극 수용하여 고려적인 미감을 선보였고 이것은 곧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고려청자를 장식한 '상감'기법이 도자기에 시도된 것은 고려시대 사람들의 창조적인 응용력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 창조를 실현하는 것은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원동력이다. 잠시 시선을 돌려 900년 전에 만들어진 고려청자를 바라보자. 예술과 기술의 기술의 조화를 통해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한 고려시대 사람들의 안목을 생각해 보자. 세상 모든 것이 변하여도 그들이 우리에게 해 주는 이야기는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고려청자를 마주 대하는 이유다. <출처:중앙박물관>
참외모양 병(중국 송, 왼쪽), 연꽃잎무늬 참외모양병(고려 12세기,오른쪽), 참외모양병(왼쪽)은 북송전기부터 경덕진 요에서 제작되어 수입된 것으로 요주요 청자와 자주요 백유자기에서도 이같은 기종이 확인된다. 몸체는 참외 모양이지만 골을 촘촘히 내어 과한 느낌을 준다. 긴 몸체에 비해 짧게 만들어진 굽은 여러 겹의 꽃잎 모양을 형상화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국화모란무늬 참외모양 병, 국보 114호, 인종의 장릉에서 나온 것으로 전하는 <청자 참외모양 병>과 형태가 매우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인종 장릉 병은 문양이 없지만 이 병은 각 면에 국화와 모란꽃을 번갈아 흑백상감하였다. 이 같은 예를 통해 우리는 고려의 독창적인 기술과 미감이 빚어낸 상감청자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청백자 합(중국 송), 합(고려 12세기), 중국 송나라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고려청자 특유의 조형미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백자 꽃넝쿨무늬 합(고려 12세기)
국화넝쿨무늬 완(중국 북송), 모란넝쿨무늬 대접(고려 12세기). 북송의 것에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고려청자 특유의 조형미와 빛깔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모란무늬 완, 고려 12세기
백자 병(중국 송), 연꽃무늬 병(고려 12세기), 국화무늬 병(고려 12세기)
청동 물가 풍경무늬 정병, 국보 92호, 고려 12세기, 정병은 맑은 물을 담아두는 병으로, 본래 승려가 지녀야 할 열 여덟가지 물건 중 하나였으나 점차 불전에 바치는 깨끗한 물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되었다. 이 정병의 아름다운 문양은 '입사'기법으로 표현되었는데, 입사기법이란 그릇 표면에 홈을 내고 그 안에 은선을 박아 넣는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물가풍경무늬 정병, 국보66호, 고려 12세기, 이 작품은 기형과 문양이 국보 92호 <청동 물가풍경무늬 정병>이나 보물 344호 <물가풍경무늬 정병>과 매우 유사하여 재질은 다르지만 같은 형태의 그릇이 주고받은 상호 영향관계를 잘 살펴볼 수 있다. 청자의 상감기법과 금속공예품의 은입사기법은 표면을 파내고 그 안에 다른 재질의 물질을 감입하여 장식하는 속성이 같다. 청자에서 양각 문양은 정교하게 조각된 것에 비해 상감문양이 단순하지만 청자 태토와 백토의 대비로 인해 장식효과가 두드러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물가풍경무늬 정병, 보물 344호, 고려 12세기, 앞면에는 물가의 갈대와 그 밑에서 쉬고 있는 기러기 한쌍을, 뒷면에는 수양버들 아래 쉬고 있는 원앙 한 쌍이 양각되어 있다. 같은 기종에 유사한 문양이 여러 기법으로 장식된 것은 공예품 문양 도안을 주관했던 화업의 존재로 인해 생겨난 결과물로 생각된다. <출처:중앙박물관>
풍경 인물무늬 편병, 고려 13세기
소나무 인물 학무늬 매병, 고려 12~13세기
고려청자, 다시 세상의 빛을 보다
고려의 수도인 개경에는 고급 청자의 최대 소비처인 궁궐과 여러 중앙관청이 있었고 주변 지역에는 왕릉과 귀족의 무덤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 현재 전하고 있는 우수한 품질의 고려청자는 이 같은 궁궐터와 무덤에서 나온 것들이며, 일제강점기에 이왕가박물관 및 조선 총독부박물관에 소장되었다가 광복 후 국립박물관이 인수하였다. 이로써 국립중앙박물관은 고려청자 최대 소장처가 되었으며 이번 전시는 그러한 고려청자를 선보이는 자리이다. <출처:중앙박물관>
고려청자가 많이 발견되었던 개경의 고려 궁궐터와 무덤
고려시대 청자를 구었던 대표적인 가마는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이다. 강진 사당리 가마터는 인종 장릉의 <청자 참외모양 병> 등을 비롯하여 청자 기와 등 수많은 양질의 청자 파편이 출토되어 왕실용 청자를 제작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1964년부터 1974년까지 국립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부안 유천리 가마터에서는 강진에 버금가는 세련된 양질의 청자가 많이 확인되고 있다. 1966년에 국립박물관에서 가마터 일부를 발굴 조사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강진 사당리 고려청자 가마터 발굴 모습
부안 유천리 가마터 발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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