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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모현지석묘, 외대 용인캠퍼스 주변 아파트 입구의 고인돌

경기도 용인의 외대 용인캠퍼스 주변에 형성된 주택가 한가운데 공원에 자리잡고 있는 두기의 고인돌입니다. 정식 명칭인 모현지석묘(慕賢支石墓)입니다. 전형적인 북방식 탁자형 고인돌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경기도에 있는 고인돌 중에서는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고 합니다. 외대 용인캠퍼스 주변 주택가에 있는 모현지석묘입니다. 전형적인 북방식 고인돌롯 현재 주변에 2기의 고인돌이 남아 있습니다. 두기의 고인돌 중 앞에 있는 것으로 북방식 고인돌의 모습이 완벽하게 남아 있습니다. 규모는 큰 편에 속하는 고인돌입니다. 두기의 고인돌 중 뒷편에 있는 고인돌로 덮개돌은 온전히 남아 있지만 받침돌이 쓰러져 있습니다. 두기의 고인돌이 주택가 아파트 앞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마치 공원을 장식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지석묘는..

부여 산직리 지석묘, 송국리 선사취락지의 경계를 표시하는 고인돌

부여 송국리 선사취락지가 형성된 초촌면의 낮은 구릉지대가 끝나고, 넓은 평야의 논이 시작되는 언덕에 위치한 산직리 지석묘이다. 큰 판돌을 4개의 고인돌로 고인 탁자식 고인골 1개와 고인돌이 없는 덮개식 고인돌 1개로 이루어져 있다. 판돌의 크기는 평균적인 고인돌보다는 큰편에 속하며, 주변에서 유물을 발굴되지 않았다고 한다. 구릉의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어 넓은 논산평야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 위치이다. 전형적인 북방식 탁자형 고인돌으 모습을 하고 있다. 오랜 세월과 무게로 인해서 한쪽이 무너져 내려있다. 판돌위에는 의미가 있는 듯 구멍을 판 흔적이 있지만, 이 돌을 깨어서 석재로 쓰기 위해 후대에 판 채석공이라고 한다. 여러 방향에서 본 탁자식 고인돌 서쪽편에 있는 고인돌이 없는 덮개식 고인돌 고인돌 아..

여주 신접리 고인돌

한국을 여행하다보면 몰랐던 사실들을 알 수 있게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고인돌도 그 중 하나인 듯 하다. 여주 신륵사 들어가는 입구 한경변에는 여주 도자기 축제장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 곳 한편에 조그만 고인돌 유적이 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강화도의 고인돌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지만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 여주 신접리 고인돌 고인돌은 동남아시아의 농경민족의 풍습으로 죽은 사람을 매장할 때 지하에 석곽(石槨)을 만들고 그 위에 책상모양이나 바둑판 모양의 돌집을 세운 구조물이다. 한국에서는 벼농사가 제일 쉬운 지역인 영산강유역에 수만개의 고인돌이 있고 점차 주변지역으로 분포를 보이고 있다. 이 풍습은 벼농사 기술과 함께 북쪽으로 퍼지면서 벼농사의 북방한계선인 요동반도에서 끝난다. 경기도 지역은 벼..

김해 내동 고인돌, 구지봉 고인돌

김해 구지봉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고인돌입니다. 고인돌 위에선 명필 한석봉이 썼다고 전해지는 구지봉석(龜旨峯石)이라는 끌씨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바윗돌인 줄 알았는데 옆에 친절하게 고인돌이라고 안내표지판이 있어서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측면에서 본 구지봉 고인돌입니다. 구지붕 정상부에 있는 고인돌은 전형적인 남방식 고인돌로 규모는 240×210×100cm로 작은 편이지만, 특이하게 구릉의 정상부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고인돌은 아직 정식 발굴조사가 되지 않아 정확한 축조시기 등을 알 수 없으나, 주변에서 조사된 청동기시대의 마을 유적 등의 사례로 보아 기원전 4~5세기경 이 지역을 다스렸던 추장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구지봉 고인돌의 상석에 새겨진 구지봉석(龜旨峯石)이라는 글씨는 조선시대의 명필인..

강진 칠량송정리지석묘군, 남해안 바닷가 고인돌

강진만 다산초당 건너편 칠량에서 천관산이 있는 장흥 관산읍으로 넘어가는 길가에 있는 송정리지석묘군이다. 강화 고인돌처럼 모양을 잘 갖추고 있거나, 크지도 않은 평범한 고인돌이 논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은 남해안 강진만 갯벌을 간척한 농지가 있는 곳으로, 부근이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거주했던 지역인 것으로 보인다. 이 곳 고인돌은 주로 남방식인 탁자식 고인돌이 주를 이루고 있다. 강진만 칠량에서 장흥 관산읍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입구에 위치한 송정리 지석묘군. 청동기시대에는 이 곳이 바다와 가까운 해안 지역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강화 고인돌도 간척농지와 가까운 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남방식 바둑판형 고인돌이 주를 이루고 있다. 대표적인 고인돌 고인돌 부근의 물웅덩이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국보) - 유네스코문화유산 후보

울산의 경부고속도로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 신석기 시대 유물입니다. 울산을 관통하는 동해안으로 흘러들어가는 큰 강인 태화강 상류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곳 반구대의 계곡은 암각화가 있는 바위절벽이 여러곳에 있어 예로부터 경치가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경부고속도로 언양IC에서 나와 경주방향으로 20분쯤 달려가다 고속도로 방향으로 좁은길로 들어서서 한 10분쯤 자동차로 달려가면 반구대가 있는 계곡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 겨울을 빼고는 암각화가 물에 잠겨 있어 별로 기대를 하지 않고 갔지만, 반구대 주변의 경치가 너무 좋고 암각화가 물에 잠긴 모습도 멋집니다. 반구대 암각화가 새겨져 있는 바위절벽입니다. 지금은 물속에 잠겨 있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보면 꼭 바위에 그림이 새겨져 있는 것 처럼 보입니..

고령 알터마을 선사시대 암각화 (양전동 암각화)

철의 왕국 대가야 고분산에서 내려다 보면 정면에 낙동강이 흐르고 있고 낙동강 하류방향에 선사시대 유적인 양전리 암각화가 있는 알터마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양전리 암각화는 동심원, 십자형, 가면모양 등 다양한 그림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암각화는 북방민족과 관련된 유적으로 우리 민족의 기원을 보여주고 있고 당시 사람들의 신앙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는 유적입니다. 역사적 가치가 높아서인지 보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새겨 놓은 암각화가 바위에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문화재적인 가치가 높기때문에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동심원, 십자형, 가면모양 등 다양한 그림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암각화는 북방민족과 관련된 유적으로 우리 민족의 기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암각..

부여 송국리 선사 주거유적지 (송국리선사취락지)

부여 송국리 선사 주거유적지는 부여와 논산의 경계가 되는 부여군 초촌리 낮은 구릉에 자리잡고 있는 선사유적지이다. 구석기 주거지인 공주 석장리나 연천 전곡리와는 달리 신석기시대인 기원전 8~9세기 무렵의 주거유적지로서 동시대를 대표하는 다양한 유물들이 발굴된 곳이다. 이 곳은 전곡리나 석장리, 또는 서울 암사동 선사유적지와는 달리 강가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넓은 평야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벼농사와 관련된 볍씨를 포함하여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벼농사와 관련된 대표적인 유물로 이 곳 송국리에서 출토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실제 유적지는 발굴 후 다시 흙으로 덮어 버렸기때문에 볼 수는 없지만 선사 유적지가 형성된 지역적 특징과 여러 모형들로 선사시대에 대한 간접 체험을 할 수 ..

[선사유적지] 공주 석장리 유적지

연천 전곡리 선사유적지와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사시대 유적지인 공주 석장리 유적지이다.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오랜기간 동안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고, 60년대 미국인 대학원생이 이 곳을 처음으로 발견하여 우리나라 고고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유적지라고 한다. 구석기 전기부터 신석기, 청동기 시대까지 다양한 유물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강가에 좋재했던 많은 선사주거지처럼 이 곳도 금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유적지이다. 금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석장리 선사유적지. 북쪽으로 낮은 야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금강이 흐르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이 곳에서 오랜 기간 동안 사람이 거주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주거지 서쪽편을 1지구라고 하며 81개 구덩에서 6개의 문화층이 발견되었다고..

공주 석장리 선사유적지 박물관 (외부)

공주 석장리는 연천 전곡리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사유적지이다. 금강변에 자리잡은 이 선사유적지에는 석장리뿐 아니라 주변의 선사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하는 박물관과 석장리 유적지 박굴에 핵심 역할을 했던 손보기 선생 기념관이 같이 자리하고 있다. 외부에는 선사시대 유물을 발굴한 유적지 주변으로 구석기 시대의 움집, 원시 생활상 등을 재현해 놓고 있다. 공주 석장리 선사유적지 입구. 정면에 이 곳을 상징하는 구석기시대 움집을 재현해 놓고 있으며, 금강쪽으로는 유적지가, 윗쪽으로는 석장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공주 석장리 박물관 전경. 석장리 박물관 출입문 양쪽에 있는 원시인 청동상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구석기시대의 막집. 공주 석장리, 제천 창내 그리고 동해 노봉 유적에서 발굴된 집자리 흔적..

지역박물관 2010.09.08

서울 강동구 암사동 선사 유적지 (주거지)

서울 한강이남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88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가다보면 서울이 끝나는 지점에 위치한 신석기시대 주거 유적지인 암사동 선사주거지를 만날 수 있습니다. 북쪽으로는 워커힐 호텔과 고구려 산성이 있는 아차산과 마주하고 있고, 배후로는 백제의 수도였던 위례성의 주요 유적지인 풍납토성, 몽촌토성이 있습니다. 한강변에 자리잡고 있어 신석기인들을 포함하여 후대 백제인까지 살았던 것으로 보아 먹거리가 풍족했던 땅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아파트 숲으로 변한 강동구 주민들의 휴식처가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사실 선사 유적지를 방문하면 특징적인 모습이 재현해 놓은 움집 몇개와 유물 등을 전시한 전시관이 전부이어서 볼거리는 많다고 볼 수는 없는 곳이지만 역사적 의미를 찾는다는 측면에서 가치 있는 곳으로 생각됩니..

서울 강동 암사동 선사유적지 유물전시관

암사동 선사유적지 내에 있는 암사전시관입니다. 내부에는 암사동 선사주거지 발굴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으며 우리나라 선사 주거지와 유물 현황등에 대해서 설명을 잘 해놓고 있습니다. 특별히 가치가 높은 고고학 발굴 유물을 전시해 놓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선사문화를 이해하고 공부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놓고 있기때문에 자라나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가까운 곳에 있는 아주 좋은 학습 장소가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암사동 선사주거지 집터 발굴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습니다. 암사동 선사 주거지 집터를 기준으로 재현해 놓은 신석기인들의 움집입니다. 어로,채집,사냥,농경생활을 하던 암사동 신석기인의 생활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습니다. 신석기인들이 사용하던 석기와 불을 피우던 도구입니다. 다양한 형태의 ..

지역박물관 2010.09.08

경주 문무대왕 수중릉 (일명 '대왕암'), 삼국통일 이룩한 문무대왕의 호국정신이 담긴

경주 불국사를 지나 토함산 고갯길을 넘어서 동쪽으로 한참을 달려가다가 '두개의 탑'이 우뚝 서 있는 감은사지를 지나면 동해안 바닷가에 이르게 됩니다. 동해 먼바다에서 몰려오는 거센 파도와 싸우고 있는 조그만 바위섬이 삼국통일을 이룩한 문무대왕 수중릉입니다. 물론 직접 가 볼수는 없고 해안에서 물새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감상하는데 만족하게 됩니다. 문무대왕 수중릉인 대왕암입니다. 물새들이 한가로 앉아서 쉬고 있는 모습입니다. 동해안 바닷가에 가까운 대왕암은 모습입니다. 이 날을 파도가 잔잔해서 한가로운 모습이지만 거센 파도가 대왕암에 부딪힐 때는 대단한 광경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대왕암이 있는 해안가에서 본 감은사지 부근입니다. 경주를 찾는 사람들이 꼭 찾아가게 되는 감포지역입니다. 대왕암이 있는 해안가는..

경주 천마총과 주변의 고분들

경주 대릉원에 있는 많은 고분을 정비하면서 시범적으로 발굴한 고분입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은 고분을 발굴했음에도 불구하고 천마도, 금관 등 많은 국보급 문화재들이 출토된 곳입니다. 지금 내부를 공개하고 있는 대릉원 내 유일한 고분으로 들어가면 신라 왕릉 내부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천마총은 대릉원에서 제일 구석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천마총 들어가는 길에 여러 고분들을 볼 수 있습니다. 대릉원 내에 있는 많은 고분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천마총 입구입니다. 경주 대릉원 천마총을 관람하러 온 어린 학생들이 열심히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 대릉원 천마총 봉분의 모습입니다. 크기는 많이 크다고 할 수 없는 규모입니다. 천마총 안내표지판 천마총을 들어가는 길에 있는 대릉원의 여러 고분들입니다. 제155호 고..

경주 내물왕릉과 주위 고분들

경주 월성에서 북쪽 출입 통로를 통해서 내려오면 정면에는 대릉원과 첨성대를 비롯한 왕궁터가 자리잡고 있고 서쪽편으로는 경주 김씨 시조인 김알지 탄생설화가 담긴 계림과 계림 주변으로 김씨 왕위 세습체계를 마련한 내물왕릉을 비롯하여 5기의 고분이 자리잡고 있는 아주 넓은 벌판이 있습니다. 넓은 잔듸밭이 있고 첨성대외 계림, 그리고 고분들이 있어 경주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겨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경주 김씨 왕위 세습체계를 마련한 내물왕릉의 무덤입니다. 경주 계림 끝 부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안내표지판 경주 대릉원 입구에서 월성과 계림쪽을 보면 아주 인상적으로 규모가 큰 고분입니다. 누구의 왕릉인지는 설명이 되어 있지 않은 쌍분으로 된 고분입니다. 경주 계림을 배경으로 홀로 서 있는 고분..

경주 미추왕릉, 대릉원 들어가는 길

경주 대릉원에는 천마총과 미추왕릉을 비롯하여 다수의 신라 고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릉원에 존재하는 다수의 고분 중에서 가장 정비가 잘되어 있고 내력이 알려진 곳이 미추왕릉입니다. 미추왕릉 앞에는 조선시대에 조성된 제사를 올리기 위한 숭혜전과 왕릉 앞에서 상석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경주 대릉원 입구입니다. 대릉원 입구에서 고분이 있는 곳으로 들어오는 길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대릉원 소나무 숲길을 조금 들어오면 북쪽편에 조선시대 왕릉처럼 출입문이 있는 고분을 만날 수 있는 대릉원에서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있고 지금도 제사를 지내는 미추왕릉을 만날 수 있습니다. 대릉원 미추왕릉 출입문입니다. 조선 왕릉처럼 삼문으로 되어 있고 문에는 많은 틈이 있습니다. 대릉원 미추왕릉에는 제사를 올릴..

부여 능산리 고분군, 백제 마지막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군

백제의 마지막 수도인 사비성에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나지막한 구릉에 자리잡고 있는 백제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군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학자들에 의헤 6기의 고분이 확인되었으며, 1965년에 다시 2기의 고분이 발견되어 총 8기의 고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능산리 고분군들은 일찍 그 존재가 확인되어서 도굴이 먼저 이루어졌기때문에 발굴시 출토유물이 거의 없다고 한다. 능산리 고분군은 능산리형돌방무덤으로 불리는 백제후기에 조성된 대부분의 무덤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아마도 당시에 법률적으로 봉분을 조성하는데 규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최근에 조성한 의자왕 부자의 가묘까지 합쳐서 백제왕릉원이라고 불리고 있다. 부여 능산리고분군 전경. 능산리산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는 ..

영주 순흥읍내리벽화 고분, 고구려 영향 받은 신라 고분

풍기에서 소수서원을 가는 국도변에 자리잡고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고분이다. 이 고분은 순흥읍내리벽화고분이라고 부르며, 구릉 윗쪽에는 또다른 신라고분인 어숙묘가 있다. 이 고분에서는 벽화가 발견되었으며, 당시 고구려와 접경지역이었던 이 지역에서 고구려 영향을 받은 고분으로 여겨진다. 고분내부 벽화는 다른 곳으로 옮겨진 것 같고, 지금은 모조품이 내부에 그려져 있다. 소수서원이 있는 순흥면 소재지 부근 구릉에 자리잡고 있는 순흥읍니리 벽화고분. 고분 내부 벽면에 새겨진 그림들. 고분 널방입구. 정면과 측면에서 본 고분. 비봉산 정상(높이 431m)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내려온 구릉의 경사면에 있는 무덤이다. 무덤의 외형은 둥글고 내부는 널방(현실)과 그 방에서 입구를 연결하는 널길(연도)로 이루어진 굴식돌방무..

부여 능안골 고분군, 백제 후기 귀족들의 무덤

백제 마지막 왕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능산리고분군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볼 수 있는 백제 후기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능안골 고분군이다. 이 고분들의 모양새를 보면 최근의 무덤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기때문에 지나가다 보면 어느 집안의 선산이 아닌가 생각들 정도로 고분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는 무덤들이다. 모두 60여기의 고분이 있다고 하며, 많지는 않지만 유물들도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 고분군 앞에 있는 안내표지판을 보면 겉모양은 비슷해 보이지만 내부는 다양한 형태의 석실들로 이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능안골 고분군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평이하게 생긴 무덤처럼 보인다. 약간 시대가 앞선 가야나 마한지역의 경우 귀족들이나 왕이나 큰 구분이 없이 거대하게 봉분을 조성하고, 부장품도 풍부한 경우가 ..

백제 무녕왕릉 있는 공주 송산리 고분군

공주 송산리고분군은 무녕왕릉으로 유명한 대표적인 백제 고분군으로 공주를 도읍으로 정했던 시기의 백제 왕들의 무덤이라고 한다. 경주 왕릉에 비해서 크기도 크지 않고 내부는 중국 남조 귀족들의 무덤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백제가 남조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여서 그런 형태를 취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공주의 도읍인 공산성 서쪽편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서방을 죽은자들의 땅이라는 사상이 묻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외형적으로는 화려한 면모가 거의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 이 곳에는 무녕왕릉을 포함하여 7기의 왕릉이 금강변 구릉에 남쪽 방향을 보면서 줄지어 있다. 공주 공산성 서쪽 금강변 구릉에 위치하고 있는 송산리 고분군. 공주가 백제의 수도였던 시기 왕들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며, 위쪽에 1~4호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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