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반응형

전체 글 3936

영덕 영해면 괴시마을, 목은 이색 선생 유적지/생가터

영덕 북쪽인 영해면 소재지에서 대진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 고려 말의 대학자 목은 이색(李穡)의 탄생지이자, 조선시대 전통가옥들로 고색창연한 영양 남씨 집성촌인 괴시전통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괴시마을의 형세로 보아서는 이 곳이 이 지역에 중심적인 부호들이 살았던 지역으로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물 좋고, 경치 좋은 곳에 살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은 똑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괴시마을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곳이 목은 이색선생의 생가터이자 유적이고, 지금은 영덕군에서 그 유적지를 잘 조성해 놓고 있다. 영덕 괴시마을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목은 이색선생 유적지 지금 재현해 놓은 목은 이색 선생 생가의 모습. 옛날 사람들의 살던 한옥들은 예상외로 규모가 크지 않다. 목은 이색 선생 생가터임을 표시..

부여 관북리백제유적, 백제 마지막 수도 사비성 왕궁터로 추정되는 곳

백제 마지막 수도인 사비성 왕궁터로 추정되는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지이다. 이 곳은 부여의 중심지인 부소산성 남쪽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부여읍 도심지가 바로 뒷편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부여박물관만 있지만 옛날에는 민가들이 있었던 곳으로 1982년도부터 이 일대를 발굴하였는데 방형석축연지와 다양한 석축시설이 발견되었으며 연꽃무늬수막새를 비롯하여 철제무기, 벼루, 등장 등 다양한 생활 유물들이 이 곳에서 발굴되어 상류층의 생활유적임을 말해주고 있다. 경주 월성의 신라 왕궁 추정 유적지와 마찬가지로 실제로 유적지는 공사현장이나 공터같은 느낌을 주고 있지만, 오래전 백제왕궁터였음을 생각하고 주위환경 등과 박물관의 출토유물들을 같이 고려하여 보는 즐거움이 있다. 옛 국립부여박물관 앞쪽여 서쪽편이 백제 마지막 수..

창녕 신라진흥왕척경비 (국보33호), 진흥왕이 비화가야를 편입한 기념으로 세운 비석

신라가 창녕지역 비화가야(빛벌가야)를 편입한 이후 진흥왕이 이 곳을 다녀간 후 기념으로 세운 기념비이다. 북한산, 함초령, 마운령비와 함께 진흥왕순수비로 여겨지는 비석으로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자연석 앞면에 비문을 새겨두고 있는데 앞면은 닳아서 읽을 수 없고 후반부에는 수행하던 신의 명당이 나열되어 있어 당시의 행정조직, 신분제 및 사회조직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비문 내용중에 '순수관경(巡狩管境)'이라는 제목이 보이지 아낳아 척경비로 일컫고 있으나, 비분의 내용과 성격 등을 고려해 볼 때 북한산을 비롯한 다른 순수비와 동일한 성격으로 보는 의견이 많아 보인다. 창녕읍 공원에 위치한 진흥왕 척경비. 원래는 창원 동쪽편 화왕산 목마산성 기슭에 있는 것을 일제강점기에 이 곳으로 옮겼다고 ..

충주 고구려비 (국보 205호), 삼국시대 고구려 영토 범위를 알려주는 비석

30년전 발견된 남한에서는 유일한 고구려 비석인 충주 중원고구려비입니다. 장수왕때 세워진 비석으로 알려져 있으며 삼국의 영역과 세력관계를 나타내고 있는 비석입니다. 크기나 형태가 아주 평범해서 30년 발견될 때까지는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고 단지 동네 어귀를 지키고 있는 많은 비석 중에 하나로 간주되었던 유물입니다. 지금도 사전에 준비하고 가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평범하게 생겼지만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비석입니다. 인근에 신라의 영토임을 표현하고자 했던(?) 충주 중앙탑이 있고, 남한강을 굽이 보고 있는 고구려산성인 장미산성이 있습니다. 이천년의 세월 동원 충주 중원 입석마을 입구를 지켜왔던 중원 고구려비입니다. 옛날부터 있어던 비석이고 글자가 많이 마모되어 있어 사람들의 관심밖에 있던 비..

단양 신라 적성비(국보198호), 신라 진흥왕의 영토확장 정책 의지가 표현된 비석

고구려의 영토확장 의지가 담겨 있는 중원 고구려비에 대비되는 단양 적성산성 내에 위치한 단양신라적성비이다. 중원 고구려비, 장미산성, 온달산성 등 신라 진흥왕때 신라와 고구려 간의 투쟁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단양 적성비가 위치한 적성산성은 경상도에서 중부지방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통로 중의 하나인 죽령 고개를 넘자마자 나타나는 단양의 중심지로서 전략적 의미가 상당히 높은 지역이다. 산성 아래로는 남한강이 흐르고 있어, 이 지역을 장악했다는 것은 충북지역 상당부분을 장악했다고 할 수 있기때문에 그 의미를 높게 사서 적성비를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단양 신라 적성비에는 440자 정도의 글자가 적혀 있다고 한다. 비문 내용은 신라가 이 지역을 점령하는데 공을 세운 지역민들의 공을 치하하는 내용이라고 하며...

경주 대릉원, 월성 북쪽편에 자리잡고 고대 신라의 고분군

경주 궁성인 월성 북쪽편에는 너무나도 유명한 첨성대를 비롯하여 많은 초기 신라의 고분들이 산재해 있다. 내물왕릉을 비롯하여 일부는 월성 바로 북쪽편 궁궐터, 계림 등과 함께 있으며 유명한 천마총, 황남대총, 미추왕릉 등은 대릉원이라는 이름으로 약간 북쪽인 황남동 일대에 몰려 있다. 가장 작은 고분에 속하는 천마총, 금관총을 시범적으로 발굴한 결과 왕관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들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훨씬 더 큰 고분에는 얼마나 많은 보물들이 같이 묻혔을까 상상을 하게하는 위대한 유적지이다. 고분들의 보면 초기 고분일수록 규모가 크고 후대로 올 수록 정형화되어 조선의 왕릉과 비슷한 규모로 바뀌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대릉원 입구, 미추왕릉 천마총, 미추왕릉, 황남대총이 있는 대릉원 입구와 들어가는 ..

서울 북한산성 비봉, 진흥왕 순수비 유지 (사적228호)

북한산 봉우리중의 하나인 비봉은 삼국시대 신라가 한강유역을 장악하고 진흥왕이 순수비를 세운 곳이다. 그 만큼 한강유역을 장악함에 있어 북한산성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비봉은 산봉우리가 험해서 올라가기는 쉽지 않은 곳이라 아래에서만 감상해 보았다. 비봉 아래에서 본 진흥왕순수비(복제품) 순수비가 있는 비봉을 오르기는 약간 위험합니다. 멀리서 바라본 비봉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진흥왕 순수비 북한산에 세워졌던 신라 진흥왕비의 옛 자리이다. 북한산비는 비석을 세운 이래 1,200여 년 동안 잊혀져 오다가 19세기 전반에 추사 김정희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북한산비에는 진흥왕이 북한산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지나온 여러 고을에 세금을 면제해 주고, 죄수들을 석방하도록 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지금까지..

[경복궁, 조선의 법궁] 집옥재, 협길당, 팔우정

경복궁 후원격인 향원정 연못 북쪽편에는 중국풍의 건물은 집옥재, 협길당, 팔우정이 자리잡고 있다. 이 건물들은 전통적인 궁궐 건물 배치에 따라서 지은 건물은 아니고, 고종이 경복궁 중건한지 20여년이 지난 1888년에 지은 건물이다. 전통적인 조선의 궁궐건물 양식은 아니고, 구한말에 중국풍으로 개조된 창덕궁의 국왕 침전인 희정당같은 건물처럼 창덕궁에 있었던 건물이라고 하며, 1891년에 경복궁 후원으로 옮겼다고 한다. 집옥재는 고종의 서재 용도로 지은 벽돌건물로 가장 중국풍에 가까운 건물로 넓은 마루가 있는 건물로 외국사신을 접대하던 장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팔우정은 팔각형 지붕을 가진 정자로 전통적인 한국의 정자는 창호를 두지 않으며, 정자 마루에 앉아서 바깥 경치를 감상하면서 연회를 하는 것이 보통이..

궁궐_종묘 2010.09.09

강화 부근리 강화지석묘, 유네스코 문화유산로 지정된 강화도 들판에 홀로 서 있는 우리나라 대표 고인돌

강화도 부근리에 있는 이 강화지석묘(江華支石墓)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인돌입니다. 현 시대를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고인돌의 모습이 이 고인돌입니다. 아마 가장 유명해 진 것은 박수동 화백이 그린 만화에 나오는 원시인들이 사는 곳으로 묘사되었고, 광고를 통해서 더 많이 알려진 유적지입니다. 우리나라는 고인돌의 나라라고 할 만큼 수량면에서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넓은 벌판에 거대한 고인돌이 홀로 서 있는부근리의 고인돌 유적지의 모습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스톤헨지 유적와 비슷한 분위를 주는 면도 있습니다. 전형적인 북방식(탁자형) 고인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강화 부근리의 강화지석묘(江華支石墓)입니다. 우리가 상식과 ..

강화 산삼리고인돌, 논 가운데 외로이 서 있는 고인돌

강화 부근리에서 시작해서 고려산 서쪽편 능선아래 도로를 따라오다 보면 보이는 여러 고인돌 유적지 중에서 중간쯤되는 지점에 위치한 고인돌입니다. 삼산리 고인돌은 하점면의 넓은 평야지대가 시작되는 지점의 도로변 논 한가운데에 외로이 서 있는 고인돌입니다. 도로위에서 보면 고인돌 판석위에 새겨진 성혈(?)이 뚜렷히 보입니다. 강화 하점면 삼거리 고인돌군이 있는 산속에서 내려와 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오면 도로변 논 한 가운데 외로이 서 있는 고인돌을 볼 수 있습니다. 논 주인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여태껏 없애지 않고 농사를 지어 왔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고인돌 판석의 크기는 중간 정도가 되는 것 같고 판석위에 성혈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삼산리 고인돌은 문화재로서는 급이 낮아서 향토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

강화 오상리 고인돌군 (내가 지석묘), 산속에 숨어 있는 고인돌

강화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인돌군이 5군데 있다고 합니다. 그 중 하나인 내가면 고려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오상리 고인돌군입니다. 총 11기의 고인돌이 이 곳에 모여 있습니다. 'ㅍ'자 형 묘실 구조를 하고 있고, 모두 전형적인 북방형 고인돌입니다. 눈에 익숙한 강화지석묘의 모습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강화 중심부에 자리한 고려산 서쪽 봉우리 아래인 내가면 오상리에 고인돌군입니다. 이 곳 고인돌군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내가지석묘입니다. 이 곳에서 가장 큰 고인돌입니다. 고인돌 내부가 돌로 막혀 있는 모습입니다. 북방식 고인돌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측면에서 본 고인돌입니다. 덮개는 사라지고 발만 남은 고인돌 흔적입니다. 하나는 덮개인지는 모르겠지만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제일..

강화 삼거리 고인돌군, 고려산 중턱에 남아 있는 고인돌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강화 부근리 지석묘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로 조금 내려오면, 고려산 서쪽 능선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삼거리 부근에서 도로 안내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면, 삼거리 고인돌군이 있는 고려산 능선으로 올라갈 수 있다. 삼거리 고인돌군은 이름과는 달리 도로변에 있는 고인돌이 아니라 산 능선에 집단으로 자리잡고 있는 고인돌군이다. 고인돌의 규모는 크지는 않고 형태도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는 않고, 능선을 따라서 여러기의 고인돌이 집단으로 분포하고 있는 곳이다. 강화 고려산 서쪽 능선에 자리잡고 있는 고인돌 중에서 제대로 형채를 갖추고 있는 고인돌. 강화 삼거리 고인돌군은 고려산 능선을 따라서 분포되어 있다. 아주 소형의 고인돌들은 능선 아래에도 일부 분포하고 있다. 소형 고인돌이 상판돌과 ..

강화 부근리 점골 지석묘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강화 지석묘는 강화섬에서 가장 높은 산인 고려산의 서쪽편 능선 아래에 많이 산재해 있습니다. 가장 많이 알려진 부근리 고인돌이 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내가저수지까지 도로변과 고려산 자락에 주로 분포하고 있습니다. 부근리 점골 지석묘는 부근리 고인돌이 있는 곳에서 자동차로 5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북방식 탁자형 고인돌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강화 부근리 점골 지석묘입니다. 유명한 고인돌인 부근리 고인돌이 있는 곳에서 고려산 북쪽 능선에 위치한 삼거리 고인돌 가는 길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강화 부근리 점골 지석묘의 크기는 중간 정도의 크기로 받침돌이 있는 탁자식으로 전형적인 북방식 고인돌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아주 평범한 형태의 고인돌입니다. 뒷편에..

고창 매산마을 (유네스코 문화유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인돌 군집

고창 고인돌군은 강화도 고인돌군과 함께 통칭해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유적지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인돌 군집을 이루고 있습니다. 전북 고창군 죽림리와 도산리일대에 매산마을을 중심으로 동서로 약 1,764m 범위에 442기가 분포하고 있습니다. 10톤 미만에서 300톤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으며 탁자식, 바둑판식, 지상석곽형 등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이 유적지의 입구인 고인돌 박물관에서 매산마을까지는 1km 정도를 걸어서 들어가야만 합니다. 주위 농촌의 경치와 고인돌군이 형성된 지역의 특징 등을 관찰하면서 걸어가는 것도 유익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고창지역도 강화도처럼 서해안 갯벌지역과 가깝고 이 고인돌군이 있는 지역과 갯벌이 가까웠다는..

연천 양원리 고인돌, 괸돌마을 전형적 북방식 고인돌

연천 양원리 고인돌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인돌인 강화 고인돌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북방식 고인돌인 탁자식 모양을 하고 있다. 이 고인돌이 있는 마을은 이름이 관돌말이라 하며, 거북모양의 고인돌에 의미를 많이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양원리는 연천과 파주의 경계에 있는 마을로 사람의 통행이 옛부터 많았던 것으로 보이는 곳으로 이 곳에 고인돌이 많았다고 하며, 상당한 토착세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강과 한탄강 북쪽의 연천지역 고인돌과는 약간 다른 형태를 보이며, 한강 하류지역의 고인돌과 비슷해 보인다. 전형적인 탁자식 고인돌인 양원리 고인돌. 이 양원리 고인돌의 덮개돌은 거북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지역민들이 신성시 여겨왔다고 한다. 여러 방향에서 본 양원리 고인돌 우리나라의 고인돌..

연천 무등리 고인돌, 진상리 고인돌 - 별자리 흔적 있는 고인돌

연천 3번국도 옆 통현 고인돌공원에 전시되어 있는 연천지역에서 발견된 고인돌들이다. 주로 한탄강과 임진강 주변의 사람의 왕래가 많은 주요 도로에서 고인돌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무등리와 진상리는 연천 서쪽편을 흐르는 임진강을 건너는 다리가 있는 곳으로 임짐강을 건너는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고, 학담리 또한 동도천에서 연천으로 흐르는 큰 하천인 신천 주변에 있는 마을이다. 연천 무등리 고인돌 (연천 왕정면 무등리 126). 연천 무등리는 임진강 서쪽편에 있는 마을로 얼마전까지 동쪽편 진상리와 함께 임진강 동.서를 연결해 주는 교통의 요지에 자리잡고 있다. 이 고인돌의 덮개돌은 주택가 진입도로 포장공사 시 매몰되어 있던 것으로 중장비 기사에 의해 발견된 것이다. 고인돌이 발견된 곳은 구릉하단부로 주위는..

연천 통현리 고인돌, 고인돌 공원

연천 3번 국도에서 연천읍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있는 작은 고인돌 공원이 있다. 이 공원에는 연천지역에서 발견된 학곡리 고인돌, 전곡리 고인돌, 진상리 고인돌 등과 이 곳 주변에서 발견된 통현리 고인돌 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약 20여기 고인돌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으로 고인돌이 발견된 지역을 보면, 연천지역에서 사람이 많이 거주하는 강변이나 교통로 주변에서 고인돌이 많이 발굴됨을 알 수 있다. 연천 통현리 2호 고인돌 (연천읍 통현2리 199-2) 이 고인돌은 3변국도변 통현리에서 발견되었으며, 발굴조사를 하기 전에 덮개돌과 서쪽 굄돌의 일부가 드러나 있었으나 동쪽 굄돌은 많은 부분이 묻혀 있었다. 덮개돌의 평면 생김새는 네모꼴이고 가장자리를 돌아가면서 상당히 손질을 많이 했으며 윗면은 편평하다. 발..

연천 학곡리 고인돌, 임진강변

연천 3번 국도 옆 통현리 고인돌 공원에 전시된 연천 학곡리 고인돌이다. 연천 백학면 학곡리는 학곡리는 임진강변 북쪽 평야지대를 이루는 곳으로 고려 태조왕건을 모신 숭의전지가 있는 부근이다. 숭의전지에서 경순왕릉 사이에 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진 곳으로 고구려성인 동쪽으로 당포성, 서쪽으로는 호로고루가 있으며, 임진강 남쪽 파주지역에는 백제 토성인 육계토성과 신라 칠중성이 있는 옛부터 사람의 교류가 많았던 곳이다. 연천 학곡리 2호 고인돌 (연천 백학면 학곡리 298-1) 이 고인돌은 학골리 마을안 축사 뒤편에 방치된 상태로 있던 것이다. 발견당시 덮개돌은 남동쪽으로 15~20˚ 쯤 기울어져 있었으며, 그 밑에는 굄돌이 묻혀있고 주변에는 콘크리트 덩어리와 벽돌 등이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덮개돌 주변에서 굄..

연천 전곡리 고인돌, 학담리 고인돌

서울에서 의정부를 지나 연천으로 연결된 3번 국도변에 조성된 통현리 고인돌 공원에서 전시된 고인돌 중에서 연천 전곡리에서 발견된 고인돌들이다. 연천 전곡리 북쪽에서 발견된 2호, 3호 고인돌과 전곡리 한탄강 유원지 인근에서 발견된 1호 고인돌이 있다. 이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현무암으로 만든 고인돌이다. 선사시대 이후 연천 전곡리에는 사람들이 계속 살아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연천 전곡리 1호 고인돌 (전곡읍 전곡6리 552) 이 고인돌은 한타강 유원 입구의 한탄강 사슴농원에서 발견된 것으로 덮개돌의 생김새는 부부적을 약간 각이 진 긴 네모꼴 모양이다.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연천 전곡리 2호 고인돌 (전곡읍 전곡리 430-13) 이 고인돌은 전곡중학교 뒷편 하사관 관사 옆에서 발견된 것이다. 조사..

인천 검단 대곡동 지석묘, 길가에 있는 바윗돌처럼 보이는 고인돌

검단 대곡동 지석묘는 검단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인 가현산 자락 구릉지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강화의 고인돌과 비슷한 북방식 고인돌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고인돌은 크기가 상당히 큰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지역은 한강과 서해안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인돌이 많이 존재하는 강가와 서해안 갯벌이 가까운 지역으로 낮은 구릉지대입니다. 인천 서구로 편입된 검단 지역내 가현사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고인돌입니다. 지금은 무너진 채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고인돌의 크기가 상당히 큰 편으로 강화도의 고인돌과 비슷한 북방식 형태로 보입니다. 가까이서 그냥 보기에는 큰 돌더미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주변에는 이런 큰돌이 나올 수 있는 계곡이나 바위산은 아닌 나지막한 구릉지역입니다. 검단 지석묘의 묘실과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