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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목 관아] 나주읍성 동점문(동문)

나주는 영산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오래된 도시로서 호남지역 중심도시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나주에는 읍성이 있었고, 관아 건물 및 향교 등 지방관청이 있는 도시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중 나주읍성은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없어지고, 곳곳에 기초석만 일부 남아있는 상태였다가 최근에 남고문과 동점문이 복원되었다. 나주읍성 동점문은 읍성 동쪽 방향 출입문으로써 광주지역에서 영산강을 따라서 오던 사람들이 출입하는 출입문이다. 복원이 완료된 나주읍성 동점문. 최근에 복원한 성문이라서 그런지, 실제 읍성에 사용되는 자재를 사용해서 제대로 복원이 이루어진 것을 보인다. 나주읍성 동점문은 전면부에 옹성이 있으며, 옹성을 통해서 내부로 들어가게 된다. 나주읍성 동점문은 자연석을 적절한 크기..

김제 금산사 오층석탑 (보물 25호), 방등계단 앞에 서 있는 석탑

김제 금산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 중 하나인 사리계단인 방등계단 앞에 있는 보물 25호로 지정된 오층석탑이다.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기본 양식을 드래로 따른 고려시대 작품으로 석탑 구성요소간 비례가 잘 되어 있는 편이고,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통일신라 석탑의 모양을 하고 있다. 사리계단 앞에 있는 이 석탑은 고려시대 석탑의 기능을 잘 보여주고 있는 석탑으로 통일신라시대에는 주로 경내 한 가운데에서 신앙의 중심이었으나, 이 석탑은 사리계단을 보좌하는 기능을 한 것으로 보인다. 금산사 방등계단 앞에 있는 오층석탑. 2층의 기단부와 5층의 탑신, 상륜부로 이루어져 있다. 금산사 오층석탑 기단부. 1층은 낮고, 2층 기단부는 높게 만들어졌다. 목조건축물처럼 기단부 몸돌에 기둥이 있다. 오층으로 이루어진 탑신과 상..

[김제 모악산 금산사] 석련대, 노주

금산사 중심불전인 대적광전 앞마당 좌우에 위치한 석련대와 노주이다. 석련대는 불상을 올려놓는 탑으로 석조연화대좌라 불리며, 노주 또한 불상을 얹는 대좌처럼보이만 실제로 그 용도를 알 수 없어 노주라 불린다. 두개의 석물 양식은 통일신라시대 양식이나, 그 만든 형태를 보면 고려전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석련대와 노주는 얼핏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석물처럼 보이지만 문화재로서의 독창성과 역사성 등이 있어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문화재이다. 금산사 대적광전 앞 동쪽편 미륵전 가는 길에 위치한 석련대. 불상을 놓는 받침대로서 규모가 상당히 크고, 새겨진 연꽃무늬가 화려하다. 금산사 석련대 상대부분. 연꽃이 에워싸고 있는 형태이다. 중심불전인 대적정전 앞에 있는 석련대 석련대는 석조연화대좌의 준말로 ..

[김제 모악산 금산사] 대장전 앞 석등, 범종각

금산사 미륵전과 마주하고 있는 작은 불전인 대장전 앞에는 석등이 놓여 있고, 남쪽으로는 범종각이 북쪽으로는 명부전이 있다. 대장전과 명부전 사이에는 미륵신앙을 강조하는 사찰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적힌 큰 돌기둥이 자리하고 있다. 대장전 앞에 있는 석등은 고려전기에 만들어진 석등으로 그 형태가 온전히 남아있고,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판단되어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금산사 석등. 받침돌과 화사석, 머리꼬대기 장식까지 온전히 남아 있다. 금산사 석등 받침돌. 아래받침돌, 중간받침돌, 윗받침돌의 3단으로 만들어졌다. 석등 화사석. 팔각형으로 되어 있고 4면에 창을 만들어 놓고 있다. 측면에서 본 석등 금산사 대장전 앞뜰에 놓여 있는 8각 석등으로, 불을 밝히는 부분인 화사석(火舍石..

북경 만리장성 - 북경 팔달령 장성 동쪽 능선

동쪽 발해만 산해관에서 서쪽 장안까지 이어진 만리장성 중에서 가장 방문객이 많은 곳은 아마도 팔달령 동쪽 능선의 장성일 것이다. 팔달령 동쪽 능선은 지형적으로 고갯길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이 많기때문에 돈대의 간격이 좁고, 많은 돈대들이 설치되어 있다. 팔달령 고갯길 동쪽능선을 따라서 쌓은 장성은 최고 높은 봉우리를 돌아서 다시 북경방향으로 이어져 있다. 물론 팔달령을 넘어가는 고갯길도 팔달령에서 동쪽 방향으로 향하고 있어 만리장성 방어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동쪽 능선을 따라 쌓은 장성으로 지금도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걸어서 오르거나, 주요 돈대와 연결된 케이블카로 만리장성을 오르고 있다. 팔달령 고갯길에 있는 만리장성 관광의 출발지에서부터 동쪽 능선의 만리장성을 오르고 있다. 능선을..

중국(China) 2009.12.20

중국 북경 자금성 - 황제의 위엄이 살아 있는 정전인 태화전(太和殿)

중국 자금성의 중심이 되고, 중국 황제의 권위를 가장 잘 나태내고 있는 자금성 정전인 태화전이다. 지금은 누구나 태화전 월대를 올라서 태화전 내부를 어려움 없이 살펴 볼 수 있으나, 옛날에는 황제가 중요한 국가행사시에만 잠시 머무는 법궁으로 3단으로 쌓은 높은 월대 위에 있는 건물이다. 황제를 상징하는 황금빛 기와지붕과 잡상들, 화려한 단청과 처마 장식 등 중국을 대표하는 가장 크고 웅장한 궁궐 건물이다. 태화전 내부는 생각보다는 장식의 거의 없는 공간으로 가운데 황제가 앉는 자리가 보인다. 자금성의 입구인 오문(午門)에서 이 곳 태화전까지가 공식적인 공간으로 황제의 위엄을 표현할려고 애를 많이 쓴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자금성 조정(朝政) 출입문이 태화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자금성 태화전이다..

중국(China) 2009.12.20

중국 만리장성 노룡두(老龍頭) - 바다로 들어가는 장성 성벽.

노룡두는 만리장성이 동쪽에서 시작되는 상징적인 곳으로 발해만 바다와 만리장성이 만나는 곳이다. 영해성 성루와 해안가 모래사장 사이를 막아주는 마지막 견고한 성벽이 노룡두와 등해루 사이에 있다. 등해루에서 계단과 성벽위 길을 따라서 내려가면 만리장성 첫번째 돈대인 노룡두를 만날 수 있고, 노룡두 성벽에서 만리장성 바깥쪽 만주로 들어가는 해안을 볼 수 있다. 만리장성이 발해만과 만나는 해안가 백사장 위로 세워진 첫번째 돈대와 성벽. 용의 머리가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이라하여 노룡두라 불린다. 만리장성 첫번째 읍성격인 영해성 성루인 등해루 앞 광장과 노룡두로 내려가는 길. 해안가와 발해만을 감상할 수 있는 성벽위에 세워진 기념비들 노룡두로 내려오는 길 등해루에서 성벽길을 따라서 내려오면 바다위에 세워진 첫번째 ..

중국(China) 2009.12.20

김제 금산사 육각다층석탑 (보물 27호)

금산사 육각다층석탑은 원래부터 금산사 경내에 있던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던 것을 금산사로 옮겨왔다고 한다. 기단석 위에 유각형의 탑신이 12층으로 쌓여있는데 원래부터 12층인지는 알 수 없고 보통 석탑의 경우 3층, 5층, 7층 등 홀수층으로 탑을 쌓는데 내력을 정확히 알지 못해 다층석탑으로 보르는 것으로 보인다. 화강암으로 쌓은 일반 석탑과는 달리 검은색 점판암으로 탑을 쌓고 있다. 금산사 육각다층석탑. 기단부는 화강석으로 탑신은 점판암으로 상륜부는 화강석으로 만들었다. 원래부터 이런 형태인지 아니면 후대에 보완한것인지 알 수 없다. 육각다층석탑 기단부. 화강석으로 쌓은 2층 기단부 위에 점판암으로 만든 2층 기단부가 따로 있다. 육각다층석탑 탑신. 원래는 몸돌과 지붕도이 모두 있었는데 지금은 상층..

전주 풍남문(豊南門), 전주 읍성에서 남아 있는 유일한 성문

전주를 상징하는 풍남문은 원래 전주부성의 4대문 가운데 남문으로 고려시대에 처음으로 건축되었다고 합니다. 풍남문은 전주한옥마을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으며, 성문 너머로 조금만 걸어가면 천연 해자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하천이 흐로고 있습니다. 이 풍남문은 전주읍성에서 남아있는 유일한 시설물로서 현재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905년 조선통감부의 폐성령에 의해 전주부성 4대문중 풍남문만 제외한 3대문이 동시에 철거되는 수난을 겪었다. 원래는 성문만 있던 것을 80년대에 종각, 포루, 옹성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풍남문과 한옥마을 사이에 큰 도로가 있어 한적한 곳이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으며 성문 앞과 뒤쪽으로는 옛길로 추정되는 작은 이차선 도로가 있고 재래시장이 형성되어 ..

전주 전동성당, 한옥마을 입구에 자리한 호남 최초 서양식(로마네스크 양식) 건물

전주 구도심의 중심부에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을 비롯하여 한옥 마을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건물이 전주 한옥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호남에서 제일 오래된 로마네스크풍의 서양식 건물인 전주 전동성당이 이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실제로 보면 건물 자체가 아주 간결하게 설계되어서 주위의 한옥 마을을 억누리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건물입니다. 전주 한옥마을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호남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전동성당입니다. 경기전이 자리한 한옥마을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잘 어울리는 건물입니다. 전주 전동성당의 첨탑입니다. 3개의 첨탑으로 이루어져 있으면 모양이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전동성..

김제 금산사, 불전들 (명부전, 조사전, 나한전, 삼성각, 원통전)

금산사는 대형 사찰로 많은 전각들을 두고 있다. 그 중 미륵전과 대장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근래에 세워진 건물들로 보인다. 절의 규모에 맞게 많은 전각들을 새로 짓거나 중건한 것으로 보인다. 미륵전 맞은편 대적광전 서쪽에는 명부전과 대장전이 있고, 대적광전 뒷편에 조사전, 나한전, 삼성각이 있다. 특이하게 강당 동쪽에 원통전이 자리잡고 있다. 미륵전 맞은편에 위치한 명부전. 보통 지장전이라고 부르며, 죽은이의 명복을 비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어 최근 전국 대부분의 사찰에서 명부전이 신축되고 있다. 금산사 조사전. 일반적인 사찰의 경우 조사당이라고 명칭하고 있는데 이 곳 금산사에서는 조사전이라 부르고 있다. 금산사 나한전. 원래는 방등계단 입구에 있던 것을 옮겼다고 한다. 사찰의 제일 뒷편에 위치하는 삼성각..

김제 금산사 대장전, 목탑에서 법당으로 변한 건물

금산사 대장전은 미륵전 정면에 위치한 작은 법당이다. 원래는 미륵전 마당 가운데 있는 목탑이었던 건물로 조선시대에 금산사가 중건될때 목조탑을 법당 건물로 바뀌었다고 한다. 전통적인 가람배치에 있어서 금당 앞에 있던 목탑으로 보인다. 지금도 지붕에는 목탑이었을때의 흔적이 남아 있다. 금산사 대장전. 앞면 3칸의 작은 건물로 지붕에 목탑이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대장전 편액. 대장전에 모셔진 석가모니불 여러 방향에서 본 금산사 대장전 금산사는『 금산사사적』에 따르면 백제 법왕(600)때 세운 절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원래 미륵전 뜰 가운데 세운 목조탑으로 불경을 보관하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예전의 기능은 없어지고 안에 불상을 모시고 있다. 조선 인조 13년(1635)에 다시 짓고, 1922년에 지금 있는 위..

김제 금산사, 주불전인 대적광전

금산사의 중심불전인 대적광전이다. 원래의 건물은 1986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지금의 건물은 1994년에 복원한 건물이라 한다.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는 불전으로 이 또한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했던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한 불교 신앙의 흔적으로 보인다. 현재는 이 대적광전이 주불전으로 되어 있으나, 금당의 배치상으로는 통일신라 이래로 미륵전이 주불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신앙의 중심이 탑에서 대웅전을 비롯한 불상으로 옮겨지면서 주불전이 바뀐것으로 보인다. 금산사 중심 불전인 대적광전. 앞면 7칸의 규모가 큰 법당 건물로 화재로 소실된것을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일반적인 사찰의 중심불전인 대웅전은 앞면이 3칸 또는 5칸인 경우가 많은데 이 곳 금산사 대웅전은 7칸 규모..

김제 금산사 미륵전, 통일신라 장륙전 모습이 남아 있는 불전

금산사 미륵전은 통일신라시대 사찰의 구성 요소인 금당의 흔적이 남아 있는 많지 않은 불전 중의 하나이다. 신라 고도 경주 황룡사 금당인 장륙전의 모습을 상상할려면 이 곳 금산사 미륵전이나, 구례 화엄사의 각황전을 연상하면 될 것 으로 보인다. 장륙전은 금산사처럼 외부에서 보면 3층 건물로 보이지만, 내부는 통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금산사 미륵전처럼 황룡사 장륙전 내부에는 엄청난 규모의 청동불상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그 모습은 일본 나라의 동대사에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미륵전은 수차례에 걸쳐서 화재로 소실된 것을 다시 중건하여 오늘날까지 내려왔으며, 삼국시대 이래 우리나라 사찰의 오래된 전형을 볼 수 있는 건물이다. 물론 일본이나 중국의 경우 비슷한 형태의 사찰 건물이 많이 남아 잇는 것으로 보인..

[김제 모악산 금산사] 강당인 보제루와 요사채

금산사는 전북 최대 규모의 사찰로 미륵전을 포함하여 많은 전각들을 가지고 있지만, 많은 사찰 전각이 있지만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건물들도 많다. 그 중 사찰 경내 입구라 할 수 있는 누각 건물인 보제루와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들이 대표적으로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금산사에는 조선시대에 지어진 12칸짜리 누각인 만세루가 있었다고 하며, 지금의 보제루는 이를 계승한 건물로 여겨진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사찰 강당이라고 할 수 있는 보제루를 볼 수 있다. 보제루는 앞면 9칸의 큰 건물로 최근에 지어진 건물로 보인다. 보제루 편액 금산사 경내에서 본 보제루 천왕문을 지나 가람의 중심에 이르면 누각 건물이 보제루이다. 앞면 7칸, 옆면 3칸의 2층 누각식 건물로서 아래층은 절 앞마당으로 오르는 계단..

[김제 모악산 금산사] 당간지주

금산사 금강문 옆 도로에 위치한 당간지주는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금산사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재이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당간지주 중에서 완성도가 가장 높은 것이라 한다. 당간지주가 사찰입구인 금강문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은 금강문과 천왕문이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섬세하고 균형미가 있게 만들어졌으나, 장식적인 면의 거의 배제하고 있다. 금산사 당간지주. 천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 모습이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금산사 당간지주 기단부. 기단부에 약간의 장식을 새겨 놓고 있다. 옆쪽에서 본 당간지주 뒷쪽에서 본 당간지주 일반적인 사찰의 경우 당간지주는 출입문 앞쪽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금산사는 출입문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절에 행사가 있..

[김제 모악산 금산사] 금강문, 천왕문

김제 금산사는 우리나라 최대 곡창지역인 전북의 중심지인 전주지역에 속해 있는 최대의 사찰답게 규모가 상당히 크다. 금산사의 규모와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가 출입문이다. 보통 일반적인 사찰의 경우 천왕문 또는 금강문 하나만 있으며, 수도권 지역 사찰의 경우 출입문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비해 금산사는 천왕문과 금강문을 별도로 두고 있다. 현재의 금강문과 천왕문은 오래된 문화재는 아니고 내력 또한 깊지 않아 보이지만, 두개의 출입문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사찰의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금산사 출입문인 금강문. 금강문 편액 금강문에 있는 금강역사와 동자 금산사 안쪽에서 본 금강문 금산사 천왕문 천왕문 편액 천왕문에 모셔진 사천왕상 금산사 강당에서 내려다 본 천왕문

[김제 모악산 금산사] 일주문, 들어가는 길

금산사는 전주 남쪽에 위치한 모악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로한국에 대표적인 미륵신앙 중심지이다. 금산사는 모악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지만 사찰의 형태는 평지 사찰의 모습을 하고 있다. 모악산을 등반하려는 등산객들이 많은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걸어가는 길은 언덕길이 아니라 가로수가 우거진 산책로 같은 느낌을 주고 있으며, 물이 많은 산이라서 그런지 도로 주변 작은 도랑으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사찰 입구인 일주문을 지나서 금강문까지는 약 15분정도 도보로 걸어가는데 맑은 공기를 마시며 상쾌하게 걸을 수 있는 곳이다. 사찰을 찾을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풍경인 비빔밥을 파는 식당가를 지나 포장된 도로를 따라서 걸어 들어간다. 모악산은 물이 많은 사이라서 그런지 도로옆 도랑에는 맑은 물..

[익산 미륵사지] 복원된 동탑과 석조 유물들

익산 미륵사지 동쪽편에 있는 동탑은 흔적없이 사라졌지만, 현재는 서탑으로 그 형태를 추정하여 복원해 놓고 있다. 하얀 화강석으로 석탑을 쌓았는데 목조 건물을 그대로 석탑으로 구현해 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물로서의 고풍스러운 멋은 거의 없지만, 미륵사지 석탑의 형태를 이해하는데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석탑이다. 최근에 복원된 미륵사지석탑. 기단부와 구층의 탑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목탑처럼 기단부 내부에는 방이 있다. 하얀색 화강석을 만들었는데 크게 감흥이 잘 오지는 않는다. 측면에서 본 미륵사지석탑 동탑 정면에서 본 미륵사지 석탑 동탑 뒷쪽에서 본 동탑 탑신에는 사방으로 출입문이 있다. 미륵사지 승방 터에 있는 우물 금당 앞에 있는 석등. 하대석만 남아 있다. 미륵사지에서 발굴된 석조 유물들

익산 미륵사지, 유물전시관

익산미륵사지 유물전시관에서는 이 절터에서 발굴된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미륵사지에서는 건물의 규모를 말해주는 거대한 치미를 비롯하여 금동향로와 다양한 유리, 철, 청동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최근에 미륵사지석탑에서 발굴된 사리장엄은 아직 보존처리 중인 관계로 전시되지 않고 있지만, 현재에 전시된 유물만으로도 익산의 미륵사가 엄청난 규모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익산 미륵사지 승방터에서 발굴된 치미. 치미는 고려시대 이후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건축요소로 건물을 장식하는 기능이 있다. 황룡사터에서 발굴된 치미가 유명하며, 지금도 중국이나 일본 사찰 건물에는 치미를 볼 수 있다. 미륵사지에서 발굴된 금동향로 절터에서 발굴된 다양한 기와들 미륵사지에서는 다양한 유리가 발굴되고 있는데, 백제의 유리 가공..

지역박물관 200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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