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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차산보루(사적455호), 고구려군이 쌓은 보루를 복원한 아차산4보루

한성백제 왕성이었던 풍납토성 북쪽 아차산 능선을 따라서 고구려군이 세웠던 보루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4보루이다. 등산로를 따라 발굴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다른 보루와는 달리 4보루는 시범적으로 고구려군이 쌓았던 모습을 추정하여 복원하고 있다. 아차산4보루는 둘레 249m로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석축을 쌓은 방어시설이다. 조선후기 강화도 일대에 쌓은 돈대와 비슷한 성격이지만, 여장이나 총구 등은 설치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성벽 위에 목책을 설치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성벽 안쪽 건물터에는 온돌, 배수로, 저수조 등이 있었으며, 투구.창.도끼같은 무기와 낫.쇠스랑같은 농기도, 말갖춤이 발굴되었다. 아마도 군사들이 주변에 둔전을 경영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차산보루(사적455호)는 삼국시대 고구..

서울 아차산 보루(사적455호), 고구려가 한성백제를 장악하기 위해 쌓은 요새 (1,3,5보루)

서울 아차산 보루(사적455호)는 서울과 구리시의 경계가 되는 아차산 일대에 있는 17여개의 보루를 말하며, 그중 일부를 제외하고은 고구려가 쌓았다고 한다. 아차산 보루군은 5세가 한강유역을 진출한 고구려가 한성백제의 왕성 위례성을 장악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아차산과 용마산, 수락산 능선을 중심을 중랑천 일대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보루(堡壘)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거점에 군사들이 주둔할 수 있도록 쌓은 요새로 조선후기에 강화도 일대와 남한산성 등에서 볼 수 있는 돈대와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구려가 보루를 쌓은 지점은 홍련봉이나 구의동 보루처럼 평지와 가까운 낮은 언덕에 쌓은 것도 있으며, 아차산이나 용마산 보루처럼 능선에 쌓은 것도 있다. 대부분 한성백제의 왕성이었던 위례성을 ..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구한말 조선왕실의 지원으로 설립된 여성교육기관

용산구 청파동 숙명여자대학교이다. 이화여대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자대학으로 이화여대가 외국선교사가 설립한 반면, 숙명여대는 조선왕실의 후원을 받아 설립된 민족교육기관이었다. 캠퍼스는 1934년 설립당시부터 있었던 제1캠퍼스, 1980년대에 준공된 이과대학캠퍼스, 2000년대에 준공된 제2창학캠퍼스로 이루어져 있으며 9개의 단과대학, 3개 독립학부, 일반대학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재학생인 1만65명이라고 한다. 역사가 오래되기는 했지만 도심에 위치하고 있어 학교의 부지는 넓지 않은편이며, 캠퍼스 건물 또한 대부분 최근에 신축한 것으로 문화재로 등록할 수 있는 유서깊은 건물은 없다. 숙명여대는 1905년 고종의 계비이자 영친왕의 어머니인 순헌왕귀비의 지원으로 설립된 민족여성교육기관이었던 명신여학..

한국의 풍경 2014.04.11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이봉창, 윤봉길, 백정기)와 임정요인(이동녕, 조성환, 차리석) 묘역

일제가 도심공원으로 조성한 효창공원에는 해방 이후 귀국한 백범 김구선생이 항일투쟁을 하다 목숨을 바친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와 해방되던 시기에 돌아가신 임시정부 주요 인사였던 이동녕, 차이석, 조성환 선생의 묘역을 마련하면서 독립운동가 묘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백범 자신도 1949년 흉탄에 쓰러지면서 자연스럽게 이곳에 묻혔다. 이곳은 원래 정조의 맏아들로 어린나이에 죽은 문효세자의 능역인 효창원이었던 것으로 구한말까지 상거래이 중심지였던 마포나루에서 멀지 않은 곳에 넓은 능역이 남아 있었던 곳이다. 효창공원을 들어서면 정면에 이곳에 처음 묘역을 조성한 삼의사 묘역이 있고, 동쪽편 언덕에는 임정요인의 묘역이, 서쪽편 언덕에는 마지막으로 조성한 백범 묘역과 백범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백범 묘역 아..

서울 효창공원, 백범 김구선생 묘역

효창공원에 위치한 백범 김구선생 묘역이다. 김구선생은 일제강점기에 공원이 되었던 효창공원에 해방을 맞이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의 묘소를 이장하였고, 본인도 1949년 흉탄에 쓰러진 후 삼의사와 함께 이곳에 묻혔다. 이런 연유로 효창공원은 자연스럽게 독립운동가 묘역으로 자리매김하였으나,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효창경기장이 들어서고 다른 독립운동가들은 이곳에 묻히지 못하게 됨으로써 도심공원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면에서 약간 아쉬운점이 있기는 하지만, 국립현충원과 달리 많은 사람이 오가는 도심공원에서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백범 선생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2002년에 백범 김구선생의 생애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된 백범기념관이 묘역부근에 세워졌다. 효창공원..

서울 효창운동장, 60년대 축구전용경기장으로 지어졌던 아마추어 축구의 요람

효창운동장은 독립운동가 묘역이 있던 효창공원에 축구전용경기장으로 세워진 곳이다. 한국전쟁 이후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시절인 1956년 독립운동가 묘역이었던 이곳에 운동장을 건립할 계획을 세웠으나 여론의 반대로 실천되지 못하다가 1959년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를 유치하면서 축구경기장으로 지었다고 한다. 건물로 지어진 일반경기장과는 달리 언덕을 깎아서 경기장을 조성했다. 원래는 천연잔듸구장이었으나, 관리비용문제 등으로 지금은 인조잔듸가 깔려 있다. 최초의 축구전용경기장이지만 지금은 낙후된 경기시설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곳으로 학생들을 비롯하여 아마추어 축구경기가 주로 열리는 곳이다. 효창공원은 정조의 맏아들로 어린나이에 요절한 문효세자의 무덤인 효창원이 있는 곳으로 조선시대에도 도심 가까운 곳에 넓은 능역을 확..

한국의 풍경 2014.04.08

[고궁박물관특별전] 헝가리 왕실의 보물, 합스부르크왕가와 헝가리 귀족 사회

2013년 겨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라는 제목으로 특별전이 개최되었다. 헝가리국립박물관에서 준비한 이번 전시는 1000년부터 시작된 헝가리 역사를 상징하는 '신성한 왕관'을 중심으로 오스만투르크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았지만, 외세에 대한 저항과 협력을 통해 오늘날까지 정체성을 유지해온 발자취를 보여주고 있다. 헝가리는 우랄산맥 근처에서 거주하던 유목민이 도나우강 유역의 중부유럽으로 진출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외부세력에 대한 유럽의 방패 역할을 하면서 그 세력을 유지했으나, 16세기 근동지방의 강자로 등장하면서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오스트리아 빈까지 공격해왔던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았으며, 17세기 오스만투르크 세력이 약화되면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기 시..

지역박물관 2014.04.08

서울 와룡묘, 남산 아래 자리잡은 제갈공명을 모신 사당

남산공원 북쪽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와룡묘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제갈량을 모시는 사당이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선조대에 와룡묘를 짓게 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남산 와룡묘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의 와룡묘는 구한말 고종의 후궁으로 숙명여학교, 진명여학교 등을 설립하는 등 큰 엄귀비가 처음 세워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현재의 사당은 1924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34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관우를 모신 사당인 동묘가 중국 전통 사당의 형식을 유지하고 있는데 비해, 와룡묘에는 단군사당, 삼성각 등 민속신앙 요소가 강한 사당들을 같이 모시고 있어 민속신앙과 결부되어 한국적인 사당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와룡당이라 부르는 무당들이 치성을 드리는 장소와 비슷한 성격을..

[맛집] 부산 부평시장 수제어묵

부산 부평시장은 1910년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세워진 공설시장으로 전형적인 재래시장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부산시민들의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거래하던 재래시장들은 최근 다양한 먹거리로 일반시민이나 관광객들의 관심을 새롭게 끌고 있는데 부산 부평시장은 그 중 대표적인 시장일 것이다. 먹거리 골목을 형성하고 있는 족발을 비롯하여, 부산을 대표하는 오뎅, 팥죽 등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 오뎅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요리로 어묵을 무 등과 함께 국물에 삶아낸 요리를 말하지만 한국에서 보통 어묵을 오뎅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어묵은 생선을 녹말 등과 넣아 반죽하여 튀긴 것으로 부산지역에서 많이 만들어져 대표적인 간식거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근에는 직접 만들어 튀기는 수제어묵이 인기를 끌고 ..

맛집 2014.04.06

[한성백제박물관] 한강유역의 신라

삼국시대 한강유역은 475년 고구려가 백제 수도 한성을 점령함으로써 고구려가 76년간 장악하였다. 이후 백제는 신라와 연합해 한강유역을 되찾기는 했으나 553년부터는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한 이래 통일신라가 멸망하기까지 약 350년간 신라의 주요 거점으로 존재했었다.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한 뒤로 중국과의 뱃길을 확보하고 지방조직인 한산주를 설치하였으며 여러 산성을 쌓았다. 한강유역의 대표적인 신라 유적지로는 하남 위례성 동남쪽 남한산성 자라게 쌓은 이성산성을 들 수 있다. 이성산서은 포곡식 석축산성으로 둘레 1.6km의 산성이다. 이곳에서는 신라가 쌓은 산성 석축을 비롯하여 자.방망이.톱 등 다양한 생활유물도 출토되었다. 신라, 마침내 한강으로 삼국 가운데 국가체제 정비가 가장 늦었던 신라는 5세기 이..

지역박물관 2014.04.05

서울 애니메이션센터와 남산 드라마센터

서울 남산1호터널 입구 주변에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드라마센터, 교통방송, 적십자사 등의 공공기관과 학교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은 구한말 조선을 강점하기 위해 을사늑약으로 일제가 통감부를 세웠던 장소로 경복궁으로 이전하기까지 조선총독부가 있었던 곳이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으로 서울 도심 명동과 충무로가 가까운 이 지역에 주거지가 들어서지 않고 많은 공공기관들이 자리잡고 있다. 드라마센터는 60년대 미국의 지원으로 연기자를 양성하기 위해 세운 공연장이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장이라기보다는 방송국 부속시설 역할을 했던 곳으로 보이며, 연기자들 양성하기 위한 연극아카데미도 같이 있었다고 한다. KBS가 여의도로 이전한 70년대 이후에는 서울예술전문대학으로 바뀌었으며, 지금은 대학은 안산으로 이전하고 공..

한국의 풍경 2014.04.03

[한성백제박물관] 한성기 이후 백제

백제는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강한 압박을 받아 개로왕이 죽고 한성을 버리고 남하하게 된다. 새로운 도읍지로 금강을 방패삼아 공산성이 있는 웅진으로 왕성을 옮기게 된다.이후 538년 지형적으로 좁은 웅진을 버리고 넓은 평야를 배후에 두고 있는 사비성으로 옮겨 백제가 멸망하는 660년까지 존속하게 된다. 백제가 수도를 웅진(공주)과 사비(부여)에 자리를 잡았던 시기는 약 200여년의 백제 역사에서 27% 정도의 기간이지만 오늘날 남아 있으면서 잘 알려진 백제유적과 유물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한강유역에 물러난 이후 백제는 주변국과의 동맹에 크게 주력했던 것으로 보이며, 특히 중국 남조, 왜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비롯하여 다양한 선진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일본에..

지역박물관 2014.04.02

[맛집] 부산 돼지국밥, 지역을 대표하는 장터 음식 (신창국밥)

부산을 대표하는 먹거리 중 하나인 돼지국밥이다. 돼지국밥은 돼비뼈를 고아서 육수를 만들고 돼지고기를 넣어서 국밥을 만든 것으로 실제로는 순대국밥과 거의 비슷한 음식이다. 부산을 비롯하여 창원, 밀양 등지에서 볼 수 있는 음식인데 실제로 유명한 돼지국밥집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며, 체인으로 운영하는 음식점도 거의 없다. 경남지역에서 주로 볼 수 있기때문에 지역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맛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부산을 여행하면서 부산 구도심을 대표하는 옛 경남도청이었던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신창국밥'이라는 돼지국밥 전문식당을 찾아가 보았다. 부평시장 뒷편 보수대로변에 위치하고 있는 이 식당은 이곳이 본점이고 다른 곳에 분점도 있다고 한다. 국밥은 순대국밥과 거의 비슷한 편으로..

맛집 2014.04.02

[한성백제박물관] 한강유역의 고구려

고구려는 삼국시대를 주도했던 국가로 정치.경제.문화적으로 동시대를 이끌었던 주도세력이었지만, 휴전선으로 남북이 갈라진 오늘날 고구려 유물이나 유적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는 않다. 다만 한성백제기 고구려와 백제가 한강유역 패권을 다투던 시기에 한강과 임진강 유역에 주둔했던 고구려 군대가 쌓았던 산성이나 보루, 요새 등은 비교적 많이 남아 있는 편이서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삼국시대 고구려 유물은 경주를 비롯하여 남부지역에서도 일부 출토되기는 하지만, 많은 유물들은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장악하기 위해서 쌓았던 아차산 일대 보루에서 출토되고 있다. 이들 보루에 주둔했던 고구려인들은 대부분 군인들이었으며, 둔전의 형태로 농사를 짓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출토되는 유물들은 철제무기, 말갖춤, 각종 농..

지역박물관 2014.04.01

부산 임시수도기념관, 한국전쟁 당시 대통령관저로 사용한 옛 경남도지사 공관

부산 임시수도기념관은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왔던 이승만 전대통령이 관저로 사용했던 공간이다. 이 건물은 1926년 경남도청이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겨오면서 도지사 공관으로 지어졌다. 한국전쟁 당시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면서 업무를 보았던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공간으로 대통령이 떠난 후에는 다시 경남도지사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경남도청이 창원으로 이전한 1983년 이후 임시수도 기념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내부에는 이승만 전대통령이 사용했던 기물들과 서류 등을 전시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축물로 서양식 주택으로 지어졌지만 내부 구조는 일본식 주택의 특징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2층으로 지어진 건물로 외부인이 출입하는 현관과 내실로 출입하는 현관을 뒷편에 따로 두고 있으며, 건물 앞쪽 정원은 가족들..

부산 옛 경남도청, 한국전쟁 당시 임시수도 정부청사로 사용되었던 건물

부산시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에 남아 있는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건물이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때인 1925년 경남도청 청사로 처음 지은 건물로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정부청사로 사용하였다. 경남도청이 창원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사용하다가 부산지방법원, 부산지방검찰청 등으로 사용해 왔다. 2007년에 동아대학교가 이전해 오면서 원래의 건물은 동아대학교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고, 주변에 학교 건물들이 들어섰다. 건물은 원래 '-'자형 건물이었는데 1960년대 도청 건물을 증축하면서 'ㅁ', '日'자 모양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대부분의 공공건물과 마찬가지로 가운데 현관에 포치(Porch)가 돌출되어 있어 자동차를 세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양쪽 측면에도 돌출된 출입문을 두고 있다. 이 건..

[한성백제박물관] 백제의 무기와 철제 도구

백제는 압록강 중류지방 졸본부여에서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세력이 온조와 비류를 중심으로 출발하여 한강유역에 정착하여 토착화된 세력이라 할 수 있다. 대체로 이들은 북방계 철기문화를 지닌 부여.고구려계통의 유민집단으로 청동기시대 이래로 성읍국가를 형성하면서 살던 원주민에 해당하는 마한인들보다는 뛰어난 철기기술과 말을 다룰 줄 아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기때문에 빠른 시일내에 지역내 유력세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고, 점차로 그 영역을 확대하여 한반도 서남부지역을 장악하여 고대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런 철기기술과 기마전력을 바탕으로 고대국가로 발돋움한 백제는 근초고왕대에는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하고, 가야를 공략하는 등 한반도의 패자가 될 수 있었다. 한성백제기 왕성이었던 한강유역과 경기도 일대에서 당시의 무..

지역박물관 2014.03.30

부산 보수동 책방거리, 좁은 골목길 사이로 진열된 낡은 책들이 만들고 있는 색다른 풍경

보수동 책방거리는 국제시장, 부평시장 등과 함께 부산 도심에 자리잡고 있는 명소이다. 이곳은 개항 이후 근대도시로 모습을 갖춘 부산에서도 중심가에 해당하는 곳으로 행정중심지였던 옛 경남도청에서 부산항까지 이어지는 대로인 대청로에 자리잡고 있다. 일제강점기까지 도심지로 일본인 거주지역이었던 곳이 해방이후 국제시장에 있던 많은 노점상들 중 하나였던 헌책방들이 한국전쟁으로 피난왔던 많은 학교들이 보수산, 영주산 일대에 자리잡으면서 자연스럽게 학생들을 상대로 헌책을 팔고 사면서 책방거리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하고 급격한 인구의 도시집중이 심화되었던 60~70년대에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지금도 헌책방들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오늘날 도서거래의 대부분이 인터넷으로 거래되면서, 대부분의 서..

한국의 풍경 2014.03.28

[한성백제박물관] 백제의 대외교류

백제는 한반도에서 대외교류가 가장 많았던 국가 중 하나였다. 삼국시대는 한나라 멸망 이후 5호16국에서 남북조시대까지 중국에서 크고 작은 많은 나라들이 성쇠를 거듭하던 시기로 혼란스러웠던 측면도 있지만, 다양한 세력간에 많은 교류가 있었던 시기이다. 또한 고조선 멸망이 낙랑군이 중국,한반도,일본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해상교역의 중심이었다가 고구려의 압박으로 낙랑군이 물러난 이후 백제와 가야가 해상교역의 중심이었다. 또한 삼국시대에는 황해도 연안과 산동반도를 잇는 항로가 개발되어 더 많은 물자와 사람의 교류가 있었다. 한성기 백제는 주로 남조, 가야, 일본과 강한 유대관계를 가지면서 정치.경제적인 교류가 있었는데, 이는 를 비롯하여 많은 역사서에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출토유물에서도 당시의 교류관계를 잘 ..

지역박물관 2014.03.27

부산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성공회성당

구한말 부산항이 개항되면 초량왜관에서 일본인거류지역으로 바뀌면서 근대도시로 탈바꿈했던 용두산공원 주변 대청동에 남아 있는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대성당이다. 대한성공회 부산교구는 부산, 경북, 경남, 제주를 관할하고 있다고 하며, 이곳이 주교좌대성당이라 한다. 덕수궁 뒷편 영국대사관과 함께 들어섰던 서울 주교좌대성당은 건물이 상당히 웅장하고 부지도 상당히 넓은 편이지만, 부산주교좌대성당은 주택가 좁은 골목길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아마도 부산항을 오갇던 영국 선원들을 위해서 지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부산주교좌대성당은 일제강정기인 1924년에 지어진 건물로 서울 대성당보다 먼저 지어졌다고 한다. 건물의 규모는 일반 개신교보다도 크지 않은편이며, 붉은 벽돌로 주로 사용하여 쌓았고, 스테인레스 재질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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