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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 53

서울 정릉, 서삼릉에서 옮겨온 중종의 능

강남 선정릉에 있는 중종대왕의 능인 정릉이다. 원래 중종의 능은 고양 서삼능에 있었으며, 그 당시에는 그 곳을 정릉으로 불렀다가 중종의 능이 이 곳으로 이장하면서 서삼능에는 장경왕후의 능만 남고 이름도 희릉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는 정능의 이관을 주도했던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의 의도였던 것으로 보이며, 문정왕후 자신은 이 곳 정릉에 묻힐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또한 불교를 크게 중흥시킨 문정왕후는 중종과 자신의 내세를 위해서 원찰로서 봉은사를 보우대사와 함께 크게 일으켰는데, 실제로 문정왕후는 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서울 동쪽 동구릉 부근의 태릉에 묻혔다. 아마도 당시 중종의 능인 정릉의 이장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던 것 같고, 지금도 정릉은 태조 이성계의 능과 함께 유일하고 ..

서울 선릉,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성종대왕 능

서울 강남구에 도심 한가운데 공원처럼 존재하고 있는 선정릉은 조선의 전성기를 이끈 성종대왕의 능인 선릉과 계비 정현왕후의 능, 그리고 그의 아들이자 중종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의 능이 있는 곳이다. 선릉은 왕릉과 비릉이 다른 산등성이에 있는 동원이강의 형식으로 정현왕후의 능에는 둘레석인 병풍석을 세우지 않고 있다. 선릉과 정릉이 있는 이 곳은 강남개발로 급격히 도심화되어 왕릉에 속한 영역의 대부분이 아파트, 빌딩, 주택으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상당히 넓은 지역으로 소나무를 비롯하여 많은 수목들이 들어선 도심속의 공원 역할을 하고 있다. 강남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조선 성종대왕의 능인 선릉. 성종 재임시 완성한 국조오례의에 충실한 왕릉이라고 한다. 왕릉 입구임을 말해주는 홍살문 홍살문 옆에 왕이나 ..

고양 서삼릉 희릉, 외롭게 떨어진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의 능

원당종마목장 바로 옆에 있는 희릉은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의 능이다. 사극 '여인천하'에 나오는 중종과 명종때의 수많은 사건과 정쟁들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능이다. 원래 서초구 내곡동에 있던 능을 당시 정쟁의 결과로 이 곳 서삼릉으로 옮겼다고 하며 중종의 능도 이 곳에 있었으나, 명종때 문정왕후가 강남의 선정릉으로 능을 옮겼다고 한다. 사극에서 슬픈모습으로 많이 등장하던 장경왕후는 죽어서도 홀로 자리를 하고 있으며, 다만 그 옆쪽에 자신의 아들인 인종은 능인 효릉과 함께 있다는 것이 위안일 것이다. 중종 계비인 장경왕후의 희릉. 중종의 능과 함께 있을때는 정릉이라고 불렸으나, 선정릉으로 이장후에는 희릉으로 불린다. 근처의 자신의 아들인 인종의 능이 있다. 입구의 홍살문. 그 옆에 판위..

고양 서삼릉 예릉, 조선이 마지막으로 조성한 국왕(철종)의 능

고양 서삼릉의 예릉은 조선이 법규에 의해 조성한 마지막 능으로 강화도령으로 잘 알려진 철종과 철인왕후의 능이다. 고종과 순종의 경우는 일제강점기에 조성되었기때문에 실질적으로 예법에 맞게 국가에서 시행한 마지막 왕릉이 되었다. 예릉은 고종때 흥선대원군이 주도로 왕권 강화를 보여 주기 위해 석물과 부속 건축물을 웅장하게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속건물로는 정자각과 비각이 남아 있고, 제례를 준비하던 부속건물인 수라방은 없어지고 수복방은 지금은 초석만 남아 있다. 조선 왕릉 상당수가 농협을 비롯한 농수산부에 산하 기관에서 접수해서 그런지 주변에 아름다운 길과 목장풍경으로 유명한 원당종마목장과 농협대학을 비롯한 유사 기관들이 모여있다. 조선 25대 철종과 철인왕후의 능인 예릉 전경. 홍살문, 정자각, 비각, 능..

고양 서삼릉, 의령원과 효창원

원당 종마목장과 농협대학이 위치한 서삼릉에 있는 의령원과 효창원이다. 효창원을 정조의 아들이 문효세자의 묘소로 원래는 서울 효창공원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이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의령원은 사도세자의 첫째 아들인 의소세손의 묘소로 정조대왕의 형님이 되는 분으로 그런 연유로 해서 이 곳으로 효창원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 앞쪽에 의령원이 있고, 뒷쪽에 효창원이 있는데 격에는 잘 맞지 않은 것 같아 보이지만, 효창원을 후에 이 곳으로 옮겨서 그런것으로 보인다. 효창원과 의령원 앞에는 제사를 준비하는 전각이 있는데, 능이 아니라서 그런지 정자각 형태를 하고 있지는 않다. 사도세자의 아들인 의소세손의 묘소인 의령원. 어린나이에 죽어서 그런지 영조가 직접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의령원 앞에 있는 석물. 영조가 ..

화성 융건릉, 정조대왕과 효의왕후의 건릉

수원(화성) 화산 융건릉 중 서쪽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건릉이다. 정조가 사도세자 능인 융릉을 국왕의 격에 맞게 조성한 후 그의 유언에 따라서 화산 동쪽에서 두번째 언덕에 조성했다가 효의왕후 사후에 현재의 위치로 이장했다고 한다. 사도세자에 대한 그의 효심을 잘 엿볼수 있는 부분이다. 현재는 왕릉 가까이는 갈 수 없게 되어있고, 아래에서만 올려다 볼 수 있다. 수원 화산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정조대왕이 묻힌 건릉 정조대왕 건릉 입구에 홍살물이 보이고, 중앙에 정자각, 뒷편에 봉분이 있다. 홍살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건릉의 모습 정자각에서 내려다 본 건릉 입구 정조대왕 건릉 봉분 확대해서 본 건릉. 건릉은 정조와 효의왕후의 합장릉이다. 병풍석이 없고 난간석을 두른 차이를 제외하고는 거의 융릉의 상설과 흡사..

화성 융건릉 왕릉 들어가는 숲속길과 입구 재실

화성 화산에 위치한 융건릉은 사도세자가 묻힌 융릉과 정조대왕이 묻힌 건릉을 통칭하여 융건릉이라 부른다. 현재는 행정구역상 화성에 속하지만 통칭은 수원 화산이라고 부르며, 근처에 있는 용주사와 더불어 왕릉 영역을 이루고 있다. 화산은 수원 남쪽의 넓은 벌판에 자리잡고 있으며 왕릉을 숲을 아주 정성스럽게 이백년 정도로 가꾸어 왔기때문 숲이 상당히 우거지고 아름답다. 융건릉 입구에서 건릉과 융릉을 한바퀴 돌고 나면, 숲의 기운을 듬뿍받고 나올 수 있다. 융건릉 입구에서 조금 걸어서 들어가면 동쪽 융릉방향과 서쪽 건릉방향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을 만난다. 길 양쪽으로 송림이 우거져 있다. 갈림길에서 서쪽편 건릉으로 들어가는 길. 중간에 숲은 송림에서 다른 활엽수로 바뀐다. 숲길을 걸어서 조금더 들어가면 정조대왕의 ..

백제 무녕왕릉 있는 공주 송산리 고분군

공주 송산리고분군은 무녕왕릉으로 유명한 대표적인 백제 고분군으로 공주를 도읍으로 정했던 시기의 백제 왕들의 무덤이라고 한다. 경주 왕릉에 비해서 크기도 크지 않고 내부는 중국 남조 귀족들의 무덤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백제가 남조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여서 그런 형태를 취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공주의 도읍인 공산성 서쪽편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서방을 죽은자들의 땅이라는 사상이 묻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외형적으로는 화려한 면모가 거의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 이 곳에는 무녕왕릉을 포함하여 7기의 왕릉이 금강변 구릉에 남쪽 방향을 보면서 줄지어 있다. 공주 공산성 서쪽 금강변 구릉에 위치하고 있는 송산리 고분군. 공주가 백제의 수도였던 시기 왕들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며, 위쪽에 1~4호분이,..

[북경 명13릉] 정릉(딩링), 명나라 신종 만력제의 능과 지하궁전

북경 팔달령 만리장성 남쪽에 위치한 명13릉 중에서 현재 능 내부가 개방된 3곳 중 하나로 다른 능에 비해서 규모가 커 보이는 정릉(딩링)의 봉분(?)과 지하궁전 내부의 모습이다. 중국 황제의 능은 조선의 왕릉과는 달리 봉분을 쌓아서 만든 것이 아니라, 원형의 작은 동산 형태를 하고 있다. 이 곳 정릉(딩링)은 무덤의 모습의 자금성처럼 하나의 지하 궁전을 구현 놓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능 전체를 높은 성벽으로 두르고 있으며, 입구에는 문루를 두고 그 안에는 수장자의 일생을 적은 비석을 세워 놓고 있다. 현재 정릉(딩링) 내부는 발굴이 완료되어 일반에 공개되고 있는데, 문루가 있는 성벽을 계단을 따라서 걸어올라 능의 뒷편으로 돌아가면 지하궁전 내부로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지하궁전 내부에는 여러..

중국(China) 2010.07.10

[북경 명13릉] 정릉(딩링), 제단과 비석이 있는 누각

명나라 황제의 능인 명13릉의 정릉은 조선 왕릉과는 달리 봉분의 형태라기 보다는 낮고 평평한 동산과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능의 정면에는 황제의 일생을 적어 놓은(?) 비석이 있는 누각이 있고, 능이 있는 영역을 구분하는 방법으로 원형의 성벽을 쌓아 놓고 있다. 그래서 조선의 왕릉에는 봉분 앞에 제단과 그 양쪽에 무인석, 문인석이 있는데 비해서 제단이 비석이 있는 누각 앞쪽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 왕릉의 정자각 역할을 하는 건물을 내려서면 삼도가 이어져 있고, 출입문이 하나뿐인 홍살문처럼 생긴 문이 제단 앞에 위치하고 있다. 제단 위에는 향로 모양의 대리석으로 만든 석물 양쪽으로 제기처럼 생긴 석물이 양쪽에 2개씩 놓여 있는데, 아마도 이 위에 제물을 올려(?) 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유교 예법에..

중국(China) 2010.07.10

[북경 명13릉] 정릉(딩링), 제단 앞 건물이 있었던 월대 (조선왕릉 정자각에 해당)

북경 정릉 삼문을 지나 첫번째 건물이 있었던 월대의 계단을 내려오면 삼도는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그 앞으로는 규모가 큰 건물이 있었던 자리로 보이는 월대를 볼 수 있다. 능 바로 앞에 있는 건물로 우리나라 왕릉의 정자각에 해당하는 건물로 보인다. 대부분 대리석으로 월대를 쌓아 놓고 있으며, 궁궐 건물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월대에 올라서 보면 바로 앞으로 성문루 같이 생긴 누각이 보이고 그 누각 뒤로는 전체가 왕릉이다. 월대 위를 보면 건물이 있었던 자리를 추정하게 해 주는 주춧돌이 있고, 그 앞으로 넓은 공간을 남겨두고 있다. 아마도 이 건물에 제사를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월대 계단에 답도가 있는 것으로 보아 황제는 가마를 타고 이 곳을 지나갔었던 것으로 보인다. 맞는 사실인지는 모르겠지..

중국(China) 2010.07.10

[북경 명13릉] 정릉(딩링) 삼문, 첫번째 전각

북경 명13릉 탑비와 광장을 지나면 실제 출입문이라 할 수 있는 삼문이 나타난다. 조선의 왕롱에서는 실제 삼도가 시작되는 홍살문과 같은 기능을 하는 곳으로 보이며, 현재는 매표소 역할을 하고 있다. 삼문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는데, 능참배시에 참여하는 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삼문앞에서 대기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많은 인원이 참석했었던 까닭에 넓은 광장이 조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삼문을 지나면 삼도가 깔려있고, 조금 걸어들어 가면 전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월대가 있고, 그 양쪽으로는 원래 담장으로 능역 안쪽과 바깥쪽으로 구분되고 있다. 이는 조선의 왕릉에서 볼 수 없는 구조로 아마도 황제가 능 참배를 준비하던 공간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건물이 있었던 곳의 월대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는 자금성 ..

중국(China) 2010.07.10

[북경 명13릉] 정릉(딩링) 입구 금수교, 삼도

북경 명13릉은 만리장성이 있는 천수산록 아래 창평구에 위치하고 있는 명나라 13명 황제의 능이 있는 곳이다. 명13릉 대부분은 개방되어 있지 않으며, 영락제의 장릉. 윤경제의 소릉. 만력제의 장릉 만이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그 중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정세에 적극 개입하여 승리를 이끌었던데 일조했던 만력제의 장릉을 찾아가 보았다. 만력제는 명나라를 가장 오랜 기간동안 통치했던 황제로 돈을 밝혀서 내정을 문란하게 한 점과 과도한 임진왜란 개입으로 명나를 멸망케 한 점 등으로 중국내에서는 평판이 좋지 않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 때 적극적으로 도와준 점으로 인해서 후대에 송시열을 비롯하여 친명사상을 갖게 동기가 되게 한 황제로 명나라 멸망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그를 기리는 서원 등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중국(China) 201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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