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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170

안동 지례마을 치헌(恥軒)

안동 천전마을 동쪽 끝에 위치한 치헌(恥軒)이다. 조선후기 정조대에 처음 지어진 집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건물의 규모는 크지 않으며 소박한 느낌을 주는 고택이다. 원래 임동면 지례마을에 있던 것을 임하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임하댐 건설로 임동면 지례마을이 수몰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조선후기 정조대에 지은 건물로 소박한 느낌을 주는 고택이다. 건물은 안채와 사랑채가 앞뒤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한쪽편에 안채 부속 건물이 있다. 'ㅁ'자형 구조를 하고 있는 안동지방의 다른 고택과는 달리 개방된 형태를 하고 있다. 한쪽편에는 안채에 딸린 살립집이 있다.

고택_정원 2015.10.26

안동 지례마을 오류헌(五柳軒)

안동시 임하댐 아래 임하리 마을에 있는 오류헌(五柳軒)이다. 경치가 좋았던 반변천 부근 임동면 지례동에 자리잡고 있었던 비교적 큰 규모의 양반가옥으로 임하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면서 이곳으로 옮겼다. 조선 숙종대에 천전마을 의성김씨 일가인 김원중이 분가하면서 처음 지어졌다고 한다. 사랑채는 1920년에 크게 증축하였다. 바깥주인과 안주인이 생활하는 공간을 담장으로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는 등 조선후기 안동지역 한옥의 특징들을 잘 갖추고 있다. 안동시 임하면 임하마을에 위치한 오류헌. 안채와 사랑채가 합쳐져서 'ㅁ'형을 이루고 있는 고택으로 조선후기 안동지역 한옥의 전형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문간채가 있는 솟을대문. 사랑채는 온돌방, 대청마루, 누마루를 갖추고 있는 앞면 5칸 규모의 큰 건물이다. 안동지역..

고택_정원 2015.10.05

안동 임청각(보물182호), 안동지방을 대표하는 99칸 대저택.

경북 안동을 대표하는 고택인 임청각(臨淸閣, 보물182호)이다. 권문세가의 세거지가 많은 안동지역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99칸 대저택이다. 중종때 처음 지었으며, 영조대 중건하면서 99칸으로 크게 확장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중앙선 철도가 집앞을 지나가면서 행랑채를 비롯한 부속건물들이 철거되어 그 규모가 많이 줄어들었다. 건물은 살림집에 해당하는 안채와 이에 딸린 행랑채, 조선중기에 지은 건물이 아직도 남아 있는 별당 건물이 군자정(君子亭)과 사당 등이 남아 있다. 임청각은 상해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을 비롯하여 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집으로 국가현충시설로도 지정되어 있다. 영남산 동쪽 기슭에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는 배산임수의 풍수적 조건을 잘 갖추고 있는 저택으로 낙동강변 경사..

고택_정원 2015.09.17

안동 임하마을 국탄댁(菊灘宅

임하댐 건설로 수몰된 지례마을에 있던 국탄댁(菊灘宅)이다. 임하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면서 임하마을로 옮겨졌다. 이 집은 영조대인 1757년에 지어졌다. 건물은 안채와 사랑채가 합쳐져서 ‘ㅁ’자형 주택을 하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 모두 간단한 구조로 지어졌는데, 안채는 앞면 3칸, 옆면 3칸이며, 사랑채는 앞면 4칸 규모이다. 국탄은 조선중기 숙종대 문신인 김방걸의 후손이다. 천전마을 의성김씨의 후손으로 임동면 지례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고 한다. 지례 마을에 있던 여러 고택들은 이곳 임하마을을 비롯하여, 천전마을, 원래 마을이 있던 곳으로 흩어졌다. 안동 임하댐 아래 전통마을인 임하마을에 남아 있는 고택인 국탄댁이다. 원래 반변천 상류쪽 지례마을에 있던 것을 임하댐 건설 수몰되면서 이곳으로 옮겼다..

고택_정원 2015.09.02

안동 임하마을 이우당종택

안동 임하댐 아래 임하마을에 있는 이우당 종택이다. 이 집은 권환(權寏)이 살았던 집으로 조선중기 인조대에 지어진 집이다. 집은 마을 앞을 휘감으며 흐르는 반변천을 향해서 북동쪽을 향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5칸의 ‘ㅁ’자형 안채와 북쪽으로 돌출된 사랑채, 불천위 조상을 모신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동 와룡면 출신인 권환이 천전마을 의성김씨 집안의 사위가 되면서 터를 잡고 살면서 안동권씨 집성촌이 되었다고 한다. 안동시 임하면 임하마을 안동권씨 종택인 이우당종택. 조선중기 인조대에 처음 지어진 고택으로 비교적 규모가 큰 편이다. 이우당이라 적힌 현판이 결려 있는 사랑채. 앞쪽으로 돌출된 누마루와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구한말에 증축된 부분을 당시 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ㅁ'자형 살림집 ..

고택_정원 2015.07.28

부여 부여현(扶餘縣) 관아 내아(內衙), 부여현감이 거처하던 살림집.

백제 마지막 수도 사비성을 지키던 부소산성 아래 부여읍 관북리는 옛 백제왕궁터였으며, 조선시대에는 부여현 관아가,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백제를 대표하는 부여박물관이 있었던 곳이다. 옛 부여박물관 정원을 장식하고 있는 조선시대 관아터에는 국왕의 궐패를 모시는 객사, 부여현감의 공식 업무공간인 동헌, 살림집인 내아(內衙)가 남아 있다. 내아(內衙)는 현감이 살던 살림집으로 여러 동의 건물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본채만 남아 있다. 건물은 앞면 5칸의 ‘-’자형 건물로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 그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백제시대의 주춧돌과 기단석을 사용하여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내아 뒷편에는 부여지역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모신 사당인 도영강당(道江影堂)이 있다. 옛 부여현 관아 건물터 동쪽편에 위치한 내아. ..

조선 관아 2015.06.01

부여 부여현(扶餘縣) 관아 객사(客舍)

부소산성 아래 삼국시대 백제 왕궁터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건물 중 하나인 부여 객사(客舍)이다. 객사는 조선시대 관아의 중심건물로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闕牌)를 모시고 예를 올리는 건물이자 공식적으로 지역을 방문한 중앙 관리나 외국 사신이 묵을 수 있는 숙소이다. 건물은 궐패를 모시는 정당(正堂)을 가운데에, 양쪽에 좌.우익랑을 두고 있다. 정청은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좌.우익랑은 앞면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부여 객사는 구한말인 1869년에 지은 건물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부여박물관 전시실 등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부여객사가 있는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일대는 삼국시대 백제의 왕궁터였던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부여현 관아가 있었다. 이곳에는 옛 부여박물관이 있었으며, 관아 건물로는 객사..

조선 관아 2015.03.26

부여 부여현(扶餘縣) 동헌

부여읍 옛 부여박물관 마당에 남아 있는 부여현 관아 건물 중 동헌이다. 동헌은 고을 수령인 종6품 부여현감이 재판이나 민원인 알현 등 공식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공간이다. 건물은 앞면 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지방관아 동헌 중에서는 작은 편이다. 왼쪽 3칸은 넓은 대청마루로 되어 있으며, 오른쪽 2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으며, 앞쪽에 툇마루를 놓았다. 대청마루 처마 밑에 '초연당(超然堂)'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현재의 건물은 구한말인 1869(고종6)에 지은 것이라 한다. 부여현(扶餘縣)은 백제의 마지막 수도연 사비성에 설치된 지방행정단위이다. 백제가 멸망하면서 부여도독부가, 통일신라시대에는 부여현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공주와 병합되었다가 조선초 독립하여 부여현이 되었다. 조선시대..

조선 관아 2015.03.12

김포 통진이청(通津吏廳), 관아 아전들이 근무하던 곳

김포시 월곶면 군하리 옛 통진도호부 관아터에 남아 있는 관아 건물인 통진이청(通津吏廳)이다. 구한말 병인양요 직후인 1869년에 중건된 건물로 관아 실무자인 이방을 비롯한 아전들이 근무하던 곳이다. 건물은 앞면 7칸으로 비교적 큰 규모이다. 통진군이 김포군과 합병된 이후 주택으로 사용하다가 최근에 복원되었다. 통진도호부는 오늘날 김포시의 서쪽편에 위치한 지역으로 월곶면, 통진면, 하성면 일대를 포함하며, 읍치는 문수산성 동쪽편에 오늘날 월곶면사무소가 있는 군하리 일대에 자리잡고 있다. 옛 통진도호부 관아가 있던 자리에는 면사무소와 초등학교 들어서 있다. 관아의 흔적으로는 면사무소 내에 남아 있는 고목들과 이방청 건물, 선정비 등이 있으며 근처에 중등교육기관인 통진향교가 남아 있다. 옛 통진도호부 관아 건..

조선 관아 2015.01.19

천안 유관순열사 생가지(사적230호)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에 위치한 유관순 열사 생가지(사적230호)이다. 3.1만세운동을 벌어졌던 병천면소재지 아우내장터에서 동쪽으로 1.5 km 정도 떨어진 매봉산 동쪽편 자락에 열사의 생가가 위치하고 있다. 열사가 태어나고 자랐던 생가 건물은 남아 있지 않고, 1991년에 복원한 건물을 볼 수 있다. 유관순 열사는 일제강점기를 대표적인 항일운동이었던 3.1만세운동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생가 건물은 초가 건물은 얹은 'ㄱ'자형 안채와 작은 부속채로 이루어져 있다. 인근에 있는 유석 조병옥 생가와 비슷한 규모로 경제적으로 중산층 이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생가 바로 옆에는 열사가 다녔던 매봉교회와 1970년대 이후 열사의 동생 유인석씨가 살았던 한옥 건물이 있다. 생가 내부에는 유관순 열사가 아우내장터에서 ..

고택_정원 2014.07.17

천안 유석 조병옥박사 생가

충남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 열사 생가에서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한 유석 조병옥박사 생가이다. 조병옥 박사는 항일독립운동도 했지만, 해방전후 공간에 활동한 정치가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당시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고, 1960년 이승만 정권에 대항하여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나 선거 돌연 병으로 사망하였다. 천안 병천면 용두리에 위치한 조병옥 박사의 생가는 '-'자형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작은 안채와 창고가 있는 작은 부속채로 이루어진 조촐한 규모이다. 일제강점기 정규 교육을 받고, 항일운동에 투신한 것으로 볼 때 경제적으로 중산층 이상이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생가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소박하고 검소한 외형을 하고 있다. 이는 조병옥박사 경우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당시를 살았던 여러 인물들의 생가..

고택_정원 2014.07.15

진천 이상설 생가, 소박한 모습을 보여주는 초가삼간

진천읍소재지에 멀지 않은 들판에 위치한 이상설 생가이다. 이성설은 구한말 관료이자 독립운동가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한 3인 중 한명이다. 진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신학문을 배운 후 관료의 길을 걸었다. 1905년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러시아로 망명하였다. 이준, 이위종과 함꼐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호소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와 독립운동을 펼쳤다. 진천군 산척리 마을에 남아 있는 생가는 일제강점기 이후 무너진 것으로 복원한 것이다. 건물은 앞면3칸, 측면2칸의 작은 초가집이다. 이상설은 구한말 신학문을 배우고 과거에 급제했던 것으로 볼 때 신분이 낮거나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생가는 서민들이 살았던 작은 초가집이다. ..

고택_정원 2014.06.16

상주 오작당, 승곡리마을에 남아 있는 조선중기 양반가옥

상주시 승곡리마을에 남아 있는 고택으로 보물로 지정된 인근에 위치한 양진당과 함께 조선중기 문신 조정이 지은 집이다. 양진당과 비슷한 양식으로 원래는 겹집으로 좌우에 익사가 있었으나 지금은 안채, 사랑채, 가묘만이 남아 있다. 조선중기인 선조대에 처음 지은 집으로 양진당보다 오래된 가옥이라고 한다. 건축수법에 있어 침수피해가 많았는 지형적 특징을 고려하여 안채는 마당보다 높게 지었으며, 기둥 모서리를 깎아 모접을 두고 있다. 원래는 양진당과 비슷하게 'ㅁ'자형 주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며, 'H'자형으로 된 안채지붕에서 그 흔척을 찾아볼 수 있다. 승곡리마을은 낙동강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 낙동강 지천인 장천 주변에 비교적 넓은 농지가 형성되어 있고 물이 풍부한 마을로 전형적인 양반들의 세거지였..

고택_정원 2013.11.15

상주 양진당(보물 1568호), 조선중기에 지어진 양반가 대저택

상주 승곡리마을에 남아 있는 보물 1568호로 지정된 조선중기 양반 저택인 상주 양진당이다. 이 가옥은 원래 임하댐 아래 천전마을에 있던 것을 1625년 검간 조정이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한다. 앞면 9칸, 옆면 7칸의 대저택으로 바깥쪽에 사랑채가 있고 안마당에 안채가 있는 전형적인 경북 내륙지방의 'ㅁ'자형 주택구조를 하고 있다. 낙동강변에 위치하고 있어 홍수때 상습 침수되는 지역적 특성이 만영되어 안채는 바닥에서 1미터 이상 높게 지어진 고상식 구조를 하고 있다. 승곡리마을은 낙동강 지천인 장천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지점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마을로 작은 마을 뒷편으로 작은 구릉이 있고, 마을 앞으로는 낙동강 지천인 장천을 중심으로 비교적 넓은 농지가 펼쳐진 전형적인 양반마을이라 할 수 있다. 마을에는 ..

고택_정원 2013.11.14

대구 서상돈 고택, 근대골목에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한옥

대구 계산동 근대골목 이상화 고택 맞은편에 있는 서상돈 고택이다. 현재의 건물은 원래의 자리에 아파트가 지어지면서 규모를 축소하여 복원한 건물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부호들이 많이 살았던 도시형 개량한옥 형태를 하고 있는 건물로 안채, 사랑채와 별채로 보이는 작은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대구 지역 부호였던 서상돈이 살았던 저택으로는 소박하면서 검소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원래 규모에서 축소되었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당시의 모습이 남아 있는 주택이라고 할 수 있다. 서상돈은 서울출신으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여러차례 천주교 박해를 피해서 지방으로 옮겨다니다가 대구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대구지역에서 지물행상과 포목상을 하면서 크게 부를 축적하여 당대에 재벌수준이었다고 하며, 천주..

고택_정원 2013.05.22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 경상도 관찰사가 근무하던 정청 건물

선화당(宣化堂)은 관찰사가 근무하던 감영의 정청으로 이름이 없거나 고유 이름이 있는 일반 동헌 건물과는 달리 감영 정청은 '선화당'이라는 같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선화당에서는 관찰사가 주관하는 주요 업무 및 중요한 송사, 재판 등이 행해졌다. 조선시대 감영에는 정청인 선화당을 중심으로 많은 부속건물들이 있었지만, 대도시 중심부에 위치해 있던 까닭에 남아 있는 건물은 거의 없는 편이다. 정청 건물인 선화당은 충청감영, 강원감영, 경상감영 선화당이 남아 있고, 객사는 전라감영 전주객사가 남아 있다. 조선초기 관찰사는 임기 2년(조선초는 1년)으로 지역을 순회하면서 근무했기때문에 감영이 별도로 설치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으며, 경상감영은 경주, 안동, 상주 등이 감영역할을 하였다. 조선중기부터 관찰사가 한..

조선 관아 2013.04.19

서울 석파정, 인왕산 자락에 자리잡은 흥선대원군 별장

서울 종로구 부암동 인왕산 동쪽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구한말 흥선대원군 별장이었던 석파정이다. 이 별장은 구한말 세도정치기 권력층이었던 안동김씨 일원으로 철종때 영의정까지 올랐던 김흥근이 세웠다고 한다. 흥선대원군은 집권한 뒤 반강제적으로 헌납받아 자신의 별장으로 사용했다고 하며, 고종도 이 곳에 가끔 머물렀기때문에 행궁의 역할도 했던 건물이다. 조선시대 수도 한양에서 가장 가까운 경치좋은 숲과 계곡이 많았던 부암동에 자리잡은 이 별장은 주변에 인왕산, 북악산 등 바위산이 많아 대원군은 '삼계동 정자'라 불리웠던 것을 '석파(石坡)'라 이름집고 자신의 호도 '석파'로 바꾸었다. 석파정은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흥선대원군의 후손들이 소유하다가 한국전쟁 후 고아원.병원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최근에는 사설미술관인..

고택_정원 2013.04.10

서울 장교동 한규설가옥, 구한말 상류층이 살았던 도심 한옥

서울 정릉 국민대학교 교정으로 옮겨진 장교동 한규설 가옥이다. 이 가옥은 서울 도심 청계천 하류에서 다섯번째 다리였던 장통교부근에 있던 가옥이다. 장교동은 조선시대 서울의 5부 52방 중 장통있었던 곳이라고 하며 부근에 긴 창고건물이 있어 청계천 다리를 창창교라 불렀으며 장교동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청계천 광통교와 장통교 일대는 지금도 서울에서 제일 번화한 도심으로 구한말 역관과 의관 등 기술직 중인들의 집중적인 거주지였다. 오늘날 이들의 직업은 의사, 외교관에 해당하는 전문직으로 서구문물의 도입과 함께 이들이 실세로 떠오르던 인물들이었다. 한규설(1848~1930)은 무관출신으로 구한말 대한제국 한성판윤(서울시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일제와 의사늑약 체결을 극구 반대하다 파직되었으며, 일제에 ..

고택_정원 2013.04.06

여주 명성황후생가, 민유중 묘막으로 지어진 집

여주군 여주읍 능현리에 있는 명성황후 생가이다. 이 가옥은 조선후기 숙종의 장인이자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부원군 민유중의 묘막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가옥은 솟을대문이 있는 '-'자형 행랑채, 사랑채와 중문이 있는 'ㄱ'자형 문간채, 'ㄱ'자형 안채, 바깥쪽에 '-'자형 별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옥의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지만 짜임새있게 꾸며진 중부지방 양반가옥의 특징을 살 보여주고 있다. 인현왕후 아버지 민유중을 묘막으로 지어진 이 가옥은 서울 북촌 감고당과 함께 민유중 후손들이 살아왔던 집이다. 원래 가옥 중 안채만이 남아 있던 것을 최근에 사랑채, 행랑채, 별당을 복원하였다. 명성황후의 아버지 민치록은 민유중의 5대손으로 영천군수 벼슬을 끝으로 서울 감고당에서 사망했다. 명성왕후는 이곳에서 태어나 8..

고택_정원 2013.04.03

담양 송진우 고택, 근.현대사에 발자취를 남겼던 고하 송진우가 살았던 가옥

전남 담양군 금성면 대곡리마을에 남아 있는 고하 송진우가 살았던 고택이다. 구한말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가옥은 안채와 문간채겸 사랑채로 단촐하게 구성된 한옥이다. 초가지붕을 얹고 가옥의 규모도 그리 크지 않지만, 담양지역에서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던 지주계층 가옥이다. 원래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슬레트지붕을 얹어서 평범한 시골집 형태를 최근까지 유지하다고 초가 지붕을 얹은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이 가옥은 일제강점기 언론인, 정치가, 교육자로서 독립운동을 하였고, 해방후 좌.우대립의 극심한 혼란기에 암살당한 고하 송진우가 태어나고 자랐던 집이다. 또한 구한말 의병장이었던 기삼연이 체포되었다가 탈출하면서 이 집에 은신하면서 송진우를 가르쳤다고 한다. 호남지역 지주계층 가옥으로 근.현대사에 큰 역할..

고택_정원 2013.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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