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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170

서울 성북동 이태준가옥과 이종석 별장,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별장형식 한옥

성북동은 한양도성 북쪽 성밖에 있는 마을로 북향을 하고 있는 성밖마을과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 북악산자락 아래 남향을 하고 있는 주택가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마을이 크지 않고 도성수비를 하는 군대가 주둔하는 곳이기도 했다. 성북동에는 일제강점기 이후 도시가 확장되면서 도성 바깥쪽 언덕에 서민 주택들이 들어섰던 것으로 보이며, 그 중에서는 별장 형식의 한옥들도 있다. 지금도 성북동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은 한옥들이 몇채 남아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만해 한용운 선생이 살았던 심우장, 작가 이태준이 살았던 가옥, 중앙박물관장을 지냈던 최순우 옛집, 일제강점기 부호였던 이종석 별장 등이 있다. 성북동 골짝기에서 중간쯤에 위치한 상허 이태준 가옥은 지금은 복개해서 보이지 않지만, 성북동 개울이 내..

고택_정원 2012.11.01

서울 성북동 심우장, 만해 한용운 선생이 살았던 성밖마을 소박한 한옥

시인 김광섭의 시 의 분위기가 남아 있는 서울 성북동 서울성곽 바깥 북향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심우장은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명이자 의 시인인 만해 한용운 선생이 만년에 살았던 집이다. 말년에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마련해준 조그마한 거처로 서민들이 거주하던 성북동 성밖마을 언덕에 자리잡은 크지 않은 저택이다. 총독부를 등지고 있다는 의미를 가진 북향집으로 앞면 5칸짜리 소박한 한옥이다. 원래 선방을 지으려고 마련해 두었던 땅에 지은 집으로 마당은 넓은 편이며, 마당에서 성북동 골짜기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김광섭의 시 에 등장하는 채석장이 있는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풍경이다. 심우장은 불교에서 소를 찾는 동자가 산속에 헤메는 모습에서 깨우침을 찾아 수행하는 과정을 비유..

고택_정원 2012.10.31

순천 낙안읍성, 서문 주변에 남아 있는 초가집 민가들

낙안읍성은 고려후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서남해안의 많은 읍성들 가운데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현재의 읍성은 세종대에 석축성을 쌓은 이래로 크고 작은 보수를 거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낙안읍성은 낙안군 관아가 있던 곳으로 관아건물인 객사, 동헌, 내아 등과 함께 90여호에 이르는 읍성내 마을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관아가 있던 읍성내에는 지역 유력계층인 양반들은 거의 살지 않고, 관아를 중심으로 삶을 살아았던 향리들이 아전을 비롯하여, 관아에 속했던 포졸 등을 비롯한 하층민들과 관노, 읍성을 오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했던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며 살았다고 볼 수 있다. 낙안읍성에 남아 있는 민가들은 대체로 향리들을 중심으로 한 중간층과 관아에 속해 있던 하층민들이 살..

고택_정원 2012.10.27

벌교 대지주 저택, 소설 태백산맥 김범우의 집으로 소개된 집

소설 태백산맥에서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인물로 등장하는 김범우의 집으로 소개된 대지주 저택이다. 벌교천을 건너는 홍교 동쪽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이 대저택은 순천만 해안과 낙안들판을 연결해 주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에 벌교천을 건너는 다리였던 홍교가 설치되어 있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낙안, 순천, 보성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교통로였던 곳으로 보인다. 이 집주인은 벌교지역 대지주였으며, 이집 막내아들이 태백산맥 저자 조정래의 친구였기때문에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때문에 소설에서 긍정적으로 표현된 대지주의 집으로 소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다른 대지주의 저택인 현부자집이 일본식이 많이 반영된 당시로서는 신흥부호가 살았던 현대식 대저택이라는 느낌을 준다면, 이집..

고택_정원 2012.10.18

보성 회정리 현부자네 집,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로 중도 벌판이 내려다 보이는 대지주 저택

소설 에 등장하는 많은 장소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라고 할 수 있는 첫 장면에 등장하는 회정리 현부자집이다. 기와를 얹고 담장이 있는 한옥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전통 한옥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일제강점기 대지주 계층의 저택이다. 서울의 집장사집이라 불리는 북촌 한옥과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독특한 형태의 한옥이다. 소설 첫장면에 정하섭이 새끼무당 소화의 집을 찾아가면서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 저택이다. 저자는 지역의 대지주이면서 벌교읍과는 약간 떨어진 넓은 중도벌판이 내려다 보이는 이집이 소설에서 지역 토호들을 대표하는 현부자의 집이라는 이미지와 맞아 떨어져서 집의 구조와 위치 등 특징을 자세히 묘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설 의 상징적인 장소여서 그런지 이곳에 태백산맥문학관이 세워졌다. 안..

고택_정원 2012.10.15

강릉 초당마을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과 생가터

강원도의 대표적 명승지인 경포호수 남쪽편에 위치한 초동당은 간수대신 바닷물을 이용해서 만드는 초당두부로 유명한 동네이다. 이곳은 삼국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해왔던 지역으로 이 마을 부근에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유물들이 많이 발굴된 지역으로 사적 490호 지정되어 있다. 이 마을에는 홍길동의 저자인 허균의 아버지가 광해군대에 이곳에 자리잡아 살았다고 하여 그의 호를 따서 초당마을이라 불렀다고 한다. 마을에 있는 허균의 생가터를 중심으로 이 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느데 허균, 허난설헌을 비롯한 이 곳 출신 5명의 시를 적은 시비가 세워져 있어 허균.허난설헌 시비공원이라고 한다. 생가터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한옥과 동해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울창한 소나무숲이 어우러져 걷기 좋은 ..

고택_정원 2012.08.22

경주 양동민속마을, 영남 4대길지이자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통마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소재한 양동민속마을은 한국의 전통 민속마을로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있다. 이 마을이 위치한 양동리는 동해안을 따라서 끝없이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형산강을 만나서 끊어지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남쪽으로는 경주에서 발원하여 포항으로 흘러드는 형산강이, 서쪽으로는 큰 하천인 기계천이 흐르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경북 동해안 일대에서는 상당히 넓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안강평야가 펼쳐져 있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모여사는 마을의 입지조건인 큰 하천의 중상류 지역에 산을 등지고, 하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태를 하고 있는 마을로 봉화 닭실마을, 안동 하회마을과 천전마을과 함께 영남의 4대 길지로 불리웠던 곳이다. 마을은 안계라는 작은 시내를 경계..

고택_정원 2012.07.18

경주 양동민속마을, 넓은 들판이 한눈에 들어오는 저택 관가정(보물 442호)

양동민속마을에서도 입지면에서나 건축형태에 있어서 가장 좋아 보이는 보물 442호로 지정된 관가정이다. 조선 중기 이 마을에 입향한 손소의 아들이 손중돈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이라고 한다. 형산강과 기계천이 흐르는 안강평야의 넓은 벌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는 저택이다. 기본적으로 'ㅁ'자형 건물배치를 하면서도, 왼쪽으로는 누마루가, 오른쪽으로는 살림집이 확장된 형태를 하고 있다. 마당과 넓은 벌판을 바라보고 있는 사랑채는 정자형태의 대청마루 2칸과 온돌방 2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5칸 규모로 가운데 3칸을 대청마루로 사용하고 있으며, 양쪽에 방들과 대청마루가 연결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안채의 방들도 바깥경치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문간채에 대부분 위치하고 있으며, 창문을 열면..

고택_정원 2012.06.08

경주 양동민속마을, 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정자인 심수정

경주 양동민속마을에는 10여개의 정자가 있는데, 그 중 가장 규모가 크다는 심수정이다. 회재 이언적의 동생 이언팔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정자로 오랜 기간동안 마을 서당 역할을 했다고 한다. 건물은 종가집인 무첨당과 향단을 바라보고 있으며, 'ㄱ'자형 건물을 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4칸에 누마루를 달아내여 'ㄱ'자형을 이루고 있다. 왼쪽 2칸은 대청마루로, 오른쪽 2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누마루는 2칸 규모로 1칸은 난간이 있는 정자 형태로, 1칸으로 문이 있는 방으로 되어 있다. 심수정은 이언팔을 추모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로 철종대에 불탄 것을 일제강점기에 다시 지었다고 하는데, 누마루를 비롯하여 전체적인 건물형태에 있어서 구한말에 유행했던 건물양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정자 앞에는 서당으로 ..

고택_정원 2012.06.06

경주 양동민속마을, 회재 이언적 종가집과 보물 411호로 지정된 별채 무첨당

한옥 건물 중 보물로 지정된 많지 않은 건물 중 하나인 보물 411호 경주 양동 무첨당이다. 이 건물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성리학자로 종묘에 배향되었으며 경주 옥산서원에 모셔진 회재 이언적(1491~1553) 종가의 일부로 조선 중기에 세워진 건물이다. 건물은 'ㄱ'자형을 하고 있으며, 앞면 5칸으로 3칸은 대청마루, 2칸은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누마루를 달아내어 놓고 있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상류층의 건물로 종가집 본채의 사랑채와는 별개로 손님을 접대하거나 독서 등을 할 수 있는 정자와 비슷한 성격의 사랑채이다. 대청에는 흥선대원군이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무첨당이 있는 이집은 회재 이언적의 부친이자 손소의 사위로 양동마을에 처음 들어온 이번이 살던 집으로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여주이씨의 종가집..

고택_정원 2012.06.05

경주 양동민속마을, 18세기에 지어진 고택 대성헌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어진 경주 양동마을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형성된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가 모여사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집성촌이다. 이 마을에는 여러 집안이 살았지만은 대체로 조선중기 중종대에 이 마을에 터를 잡은 손소의 후손들이 모여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랜 세월동안 후손들이 분가하면서 지은 다양한 시기의, 다양한 형태의 한옥들을 볼 수 있다. 이 마을 가운데 여주 이씨 대종택이라고 할 수 있는 보물로 지정된 고택인 무첨당 안쪽에는 현재 남아 있는 고택들이 가장 많이 지어진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영조대에 지어진 대성헌이 있다. 이 집은 이언적의 11세손인 이능단이 18세기에 분가하면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전형적인 'ㅁ'자형 주택을 하고 있으며, 손님들이 출입하는 길을 사랑채가 내려다 보고 있..

고택_정원 2012.06.04

[맛집] 경주 요석궁, 최부자집이 있는 교촌마을 입구의 오래된 고택에서 한정식을 즐길 수 있는 식당

신라의 왕궁이었던 월성 서쪽편 옛 국학이 있었던 경주향교 주변에는 경주를 비롯하여 영남지방에서도 손꼽히는 부호였던 최부잣집을 중심으로 오래전부터 형성된 반촌마을인 교촌마을에는 최부잣집을 비롯하여 교동법주 등 내세울만한 것이 많은 마을이다. 교촌마을 최부자집으로 들어가는 입구 동쪽편에는 오래된 한옥을 개조하여 만든 유명한 한정식 식당인 요석궁이 있다. 원래 양반의 부호가 살던 저택이라 건물의 규모도 큰 편이며, 옛 고택과 그 옆으로 확장한 현대식 건물이 같이 있는 식당이다. 경주 요석궁에서 내는 요리는 경주 최부잣집 전통요리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 마을에서 먹던 음식도 있게지만 일반적인 한정식집에서 제공하는 요리들과 최근에 개발하는 먹기 좋은 퓨전한식들도 많이 선보이고 있는 것 같다. 음식가격은 비싼편이..

맛집 2012.06.02

경주 양동민속마을, 천석꾼 부자가 살았던 큰 저택인 낙선당

하회마을과 함께 영남지역을 대표하는 민속마을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양동마을은 경주 손씨와 여주 손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양반들 집단주거지인 반촌이다. 이 마을에서 제일 안쪽으로는 조선중기 성종대 문신인 손소가 살았던 대종택인 서백당을 중심으로 손씨 후손들이 분가한 낙선당, 창은전사를 비롯하여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큰 규모의 저택들을 여럿 볼 수 있다. 그 중 이 마을에서도 상당히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낙선당은 이 마을 경주 손씨 대종택이라고 할 수 있는 서백당 안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이 집은 손소의 셋째 아들인 망재 손숙돈이 분가할 때 지은 저택이다. 낙선당이라는 저택의 이름은 병자호란때 순절한 낙선당 손종로의 호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저택은 문간채, '-'자형의 사..

고택_정원 2012.06.02

경주 양동민속마을, 영.정조대 분가한 후손들이 세운 저택(근암고택, 상춘헌, 사호당고택)

경주 양동민속마을은 조선시대 영남 4대 길지 중 하나인 마을로 동해안을 따라서 이어진 백두대간이 동해로 흘러드는 큰 강인 형산강과 만나는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서쪽으로는 형산강 지류이자 큰 하천인 기계천, 남쪽에는 형산강이 흐로고 있으며, 마을 앞으로는 형산강을 중심으로 안강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여주이씨와 경주손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이 마을은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조선시대 마을입지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처음에는 넓은 평야가 내려다 보이는 마을 앞쪽 언덕에 마을에 늦게 늘어온 여주이씨 집안 종택이 있고, 뒷편에는 이 마을에 먼저 터를 잡은 경주 손씨 대종택을 중심으로 경주 손씨가 많이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마을이 뒷편 언덕에 분가한 후손들의 저택이 많이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

고택_정원 2012.05.30

경주 양동민속마을, 큰 저택인 두곡고택과 정자인 동호정,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소재한 양동민속마을은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를 중심으로 형성된 씨족마을로, 영남지방 4대 길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대표적인 반촌마을이다. 마을 앞으로는 안강의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낮은 산줄기를 따라서 150여채의 옛집들이 들어서 있는 마을이다. 마을전체가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기와집이 네채나 남아 있다. 넓은 평야나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는 양반들의 저택이 들어서 있고, 논밭과 가까운 평지에는 노비들이나 소작농들이 살았던 초갓집들이 있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양반들이 살던 마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곳이다. 양동민속마을은 중앙의 큰 길을 중심으로 주로 동남쪽을 바라보는 서쪽편 언덕에 대부분의 저택들이 들어서 있으며, 후대에 조성된 저..

고택_정원 2012.05.29

경주 독락당(보물 413호), 조선중기 유학자 회재 이언적이 고향에 돌아와 지은 사랑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소재한 보물 413호로 지정된 오래된 한옥인 독락당이다. 이 집은 조선중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회재 이언적이 낙향하여 고향에 지은 사랑채이다. 현재 남아 있는 한옥건물 중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인 1516년(중종11)에 지어진 건물로 옥산천 계곡물이 흐르는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은 별장과 비슷한 성격의 한옥으로 옥산정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래 이언적은 경북지역의 대표적인 양반마을 중 하나인 양동마을 출신이었나, 서울에서 벼슬을 물러난 후 이 곳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지금도 후손들이 이 집에 살고 있다. 독랑당 아랫쪽에는 이언적을 모신 옥산서원이 있으며, 옥산천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13층석탑이 남아 있는 정혜사 절터가 있다. 지금도 옥산천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으며, 인근에서는 넓는..

고택_정원 2012.05.28

부여 백제문화단지, 사택지적의 집을 재현한 백제 귀족 주택

백제의 마지막 수도 사비성이 있었던 부여 백마강 북쪽편에 조성된 백제문화단지는 백제의 궁궐인 사비궁, 대표적인 사찰인 능산리고분군 사찰을 재현한 능사, 그리고 사비성내에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주요 주택들을 재현한 생활문화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백제인들이 살았던 마을 재현한 생활문화마을에는 큰 저택으로 계백장군의 집을 재현한 군관주택, 백제말기의 대표적 귀족가문인 사택씨의 저택, 일반 서민들이 살았던 주택들과 초기 한성백제의 모습을 보여주는 위례성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곳에 재현된 주택들은 백제궁성이었던 부소산성 아래 관북리 유적지를 중심으로 여러 유적지의 집터를 참조하여 재현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옛 백제 주택의 형태를 재현하였다고 하지만, 실제 모습은 조선시대 한옥과 큰 차이는 없어 보이며,..

고택_정원 2012.05.16

안성 정무공 오정방 고택, 옛 양성현 덕봉리 마을에 남아 있는 조선중기 한옥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는 옛 양성현 관아가 있었던 양성면 소재지에서 서남쪽으로 약 1.5km 정도 떨어진 고성산 아래 덕봉리마을에 소재한 정무공 오정방 고택이다. 이 고택은 현재 남아 있는 한옥 중에서는 그 연대가 오래된 편인 조선 중기인 중종 5년(1510)에 세워졌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1650(효종1)에 옮겨진 것이라고 하며, 실제로 이때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는 'ㄱ'자형 안채 겸 사랑채와 사당, 문간채가 남아 있으며, 외곽에 행랑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건물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편이며, 창덕궁 후원에 사대저택을 모방해서 만든 연경당 건물처럼 사랑채와 안채가 한건물이면서 담장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고택은 중종대에 정무공 오정방이 처음 건립한 이..

고택_정원 2012.03.21

논산 모선재(慕先齋), 조선중기 유학자 김장생의 선조를 모시기 위한 재실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중기 기호지방 유학자를 대표하는 사계 김장생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모시기 위한 재실인 모선재(慕先齋)이다. 재실은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지은 한옥으로 전통 한옥 건물 중 현재까지 많이 남아 있는 형태 중 하나이다. 이 재실은 18세기에 후손들이 세운 것으로 인근에 있는 사계 김장생을 모신 돈암서원이 지어진 이후에 그의 조상들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의 민도리집 한옥으로 오론쪽 1칸은 부엌, 가운데 2칸은 온돌방, 왼쪽 1칸은 대청마루를 하고 있으며, 앞쪽에 툇마루를 설치하고 있다. 건물 왼쪽에 앞편 3칸의 방과 부엌으로 이루어진 별도의 건물이 있고, 출입문 솟을대문 양쪽은 광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

논산 돈암서원 응도당(보물 1569호), 노강서원 강당과 함께 기호지방을 대표하는 서원 건축

돈암서원은 율곡 이이 선생의 제자로 조선중기 유학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기호학파를 대표하는 김장생을 중심으로 김집, 송준길, 송시열의 위패를 모시기 있는 서원으로 구한말 서원철폐령 때 살아남은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로 노강서원과 함께 기호지방을 대표하는 서원이다. 원래 김장생의 아버지 김계휘가 경회당을 세워 후학을 양성하던 곳에 김장생이 양성당을 세원 후학을 양성하던 서당이었던 곳에 후학들이 그의 학문적 업적을 기려 1634년(인조12)에 건립한 서원이다. 보물 1569호로 지정된 돈암서원 강당인 응도당은 서원에서 유생들이 학문을 논하던 강학공간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사당과 나란히 배치된 다른 서원이나 향교와는 달리 직각방향으로 틀어서 배치되어 있다. 이 건물은 1880년에 돈암서원이 현재의 위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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