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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대학도서관 효시 존경각, 활을 보관하던 육일각, 제2 과거장 비천당

성균관은 조선시대 최고의 교유기관으로 오늘날 대학과 마찬가지로 여러 부속건물들을 두고 있다. 성균관 강당 건물인 명륜관 뒷편에는 성균관 소장 장서보관하던 우리나라 대학 도서관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존경각과 유생들이 닦아야 주요 소양 중 하나인 활쏘기에 사용할 활과 화살을 보관하던 육일각이 있다. 또한 명륜당 서쪽에는 명륜당 주변 강학공간을 보완하는 건물로 강당격인 비천당과 일양재, 벽입재 등의 부속 건물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일제강점기에 성균관대학 도서관으로 사용되던 비천당만이 남아 있다. 성균관 존경각은 우리나라 대학도서관의 효시로 한때 수반권의 장서들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존경각은 성종6년(1475)에 한명회의 건의로 건립되었으며, 성종이 1만 여권의 책을 하사하여 최고 교육기관에 걸맞는 도서를 를..

담양 죽림재, 창녕조씨 집성촌인 분향리마을 문중에서 세운 마을 글방

담양 광주댐 아래 창녕조씨 집성촌인 분향리 마을 언덕에 위치한 죽림재는 문중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은 곳으로 서원과 비슷한 성격을 하고 있다. 이곳은 원래 조선중기 문신인 조수문(1426~)이 후학 양성을 위해 작은 정자인 죽림재를 세운 이후에 크고 작은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서원과 비슷한 규모로 확장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마을 건너편에 조선중기 이지역을 대표하는 유학자였던 양자징 주돌 창평지역 25개 성씨가 후학을 양성하기 건립한 수남학구당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죽림재가 있는 분향리 마을은 담양 일대에서 경치가 좋아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 등 양반들이 세운 크고 작은 정자들이 들어서 있는 가사문학의 산실 증암천이 골짜기를 빠져 나와서 들판과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죽림재 ..

남양주 홍유릉 홍릉(사적 207호), 대한제국 황제의 능으로 조성한 조선 26대 고종과 명성황후 합장릉

홍릉은 조선 26대 고종과 명성황후의 합장능으로 남양주시 금곡동에 위치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홍릉은 이전의 왕릉과는 달리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기때문에 황제의 예를 따라서 능을 조성하였다. 홍릉은 기존 왕릉의 제사시설이었던 정자각을 없애고 대신 '-'형의 앞면 5칸짜리 침전을 세워 놓았으며, 능을 수호하는 석양과 석호대신 침전앞 참도 양쪽으로 문.무석인과 기린, 코끼리, 사자, 해태, 낙타, 말 석상을 순서대로 세워 놓고 있다. 참도도 기존에 어도와 신도의 2단으로 되어 있던 것을 3단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능역 입구에 위치해 있던 재실 또한 왕릉 바로 앞으로 옮겼으며, 그 규모 또한 상당히 큰 재궁을 조성해 놓고 있다. 홍릉은 1895년에 명성황후가 경복궁 건청궁에서 ..

담양 식영정, 송강 정철이 지은 성산별곡의 무대이자 가사문학의 산실

담양 식영정은 무등산에서 발원하여 영산강에 합류하는 지천은 증암천이 내려다 보인 경치좋은 곳에 위치한 작은 정자이다. 식영정은 16세기 서하당 김성원이 장인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이다. 조선중기 가사문학을 대표하는 송강 정철이 이 일대 경관을 노래한 '성산별곡'을 지었다. 이 정자의 주인 임억령은 부근 경치좋은 20곳을 골라 경치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식영정 20영'을 지었으며, 김성원, 정철, 고경명 또한 각 20수를 지었다. 이들 4명을 식영정 4선이라 불렸으며, 식영정 또한 사선정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증암천과 광주댐으로 막은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동산에 세운 식영정은 앞면 2칸, 옆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아담한 크기의 정자로 온돌방 1칸, 대청마루 1칸으로 이루어졌다. 송강 정철..

고택_정원 2013.03.14

담양 수남학구당, 조선중기 지역민들이 세운 담양에서만 볼 수 있는 중등교육기관

담양군 고서면 분향리에 위치한 조선시대 사설 중등교육기관이었던 수남학구당이다. 수남학구당이 위치한 곳은 조선시대 소쇄원, 환벽당, 식영정 등 지역 양반들이 세웠던 정자와 정원 많이 들어섰던 가사문학의 산실이라고도 여겨지는 영산강 지천인 증암천이 골짜기를 빠져나와 넓은 들판과 만나는 곳으로 지금은 광주댐이 있다. '창평학구당'이라고도 불리는 수남학구당은 유교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세운 사설 교육기관으로 담양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형태의 교육기관이다. 현재의 건물은 1988년에 크게 보수한 것을 4칸짜라 강당건물과, 2층문루, 관리사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는 18개 성씨가 참여하여 운영하고 있다. 수남학구당에는 원래 고려시대 건립된 향적사라는 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조선시대 숭..

[성균관]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들 기숙사인 동재(東齋),서재(西齋)

교육기관으로서 성균관의 실질적인 기능을 담당했던 유생들이 머둘던 기숙사인 동.서재이다. 성균관 강당인 명륜당 앞 마당 동.서쪽에 회랑처럼 나란히 서 있는 건물로 각각 앞면 18칸으로 총 28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은 명륜당 마당 반대쪽을 향하고 있다. 명륜당 방향에는 국왕을 모시고 공식행사를 치를 수 있도록 회랑을 만들어 놓고 있으며, 생활공간인 바깥쪽 방향으로는 반칸씩 툇마루를 달아 놓았다. 한옥 건물의 작은 방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유생들의 생활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동.서재 건물은 한양에 성균관이 처음 세워졌던 1398년(태조7)에 세워졌고,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06년(선조39)에 중건하였다고 한다. 성균관 동.서재에는 진사나 생원에 합격한 후 입학한 상재상과 ..

광주 충효동마을 정려비각과 왕버들, 광주호

광주 무등산 북쪽 자락에서 발원하여 창평천과 함께 영산강에 합류하는 증암천 주변에는 삶의 현장이 넓은 들판과 가까우면서도 휴식을 생각하게 하는 계곡을 형성하고 있어 조선시대 선비들이 많은 정자들을 세워놓고 자연을 즐겼다. 송강 정철로 대표되는 가사문학의 산실로 소쇄원, 환벽당, 식영정 등 대표적인 정자와 정원이다. 그 중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의 바탕이 되었던 식영정 부근은 댐으로 막아 넓은 호수로 변하여 옛모습이라 보기는 힘들지만,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식영정에서 작은 다리를 건너면 광주호 수변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수령이 수백년된 왕버드나무 3그루가 심어져 있는 마을이 있다. 이곳에는 원래 일송일매오류라 하여 소나무 1그루, 매화나무 1그루, 왕버드나무 5그루가 심어져 있는데 지금은 왕버드나무 ..

고택_정원 2013.03.13

[성균관] 명륜당(明倫堂), 유학을 가르치던 강당

성균관 명륜당은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문묘)에서 교육을 담당하던 공간의 중심이 되는 강당 건물이다. 성균관은 서원의 건물배치에서 제향공간인 대성전을 앞에, 교육공간인 강당건물을 뒷편에 배치하는 전묘후학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는 데 이는 평지에 터를 잡았기때문에 위상이 높은 대성전을 앞쪽에 두었기때문이다. 지방 향교도 성균관의 건물배치와 격식을 따랐는데, 대부분 경사진 언덕에 터를 잡았기때문에 대성전이 뒷편에 위치한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으며, 평지에 자리잡은 큰 규모의 향교인 전주향교, 나주향교, 경주향교 등이 전묘후학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조선시대 성균관에는 전국의 진사, 생원 중 200명 한도로 엄격하게 선발하여 기숙사인 동.서재에 머물고 공부하였다고 한다. 명륜당은 조선을 ..

[필암서원 유물전시관] 하서 김인후와 고암 양자징

하서 김인후는 조선중기 문신이자 유학자로 전남 장성에서 출생하였다. 김인후는 성균관에서 퇴계 이황과 학문을 닦았으며, 과거에 급제한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쳤으며 홍문관 박사 겸 세자를 가르치는 세자시강원 설서를 역임하면서 인종의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종은 중종의 아들로 인품이 훌륭하고 학자들을 좋아했기때문에 연산군대 이후 중앙으로 진출한 사림출신 관료와 학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병약하여 즉위 8개월만에 사망하였다. 김인후가 학문적 업적도 뛰어났지만 인종의 스승이었던 점이 당대 및 후대 왕들과 학자들의 존경을 받았던 큰 동기가 되었다. 김인후는 인종의 사망과 을사사화 등으로 실망하여 고향인 전남 장성으로 낙향하여 성리학을 연구하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당대 및 후대 학계에서 인종의 스승이었던 점..

지역박물관 2013.03.12

담양 개선사지 석등 (보물111호), 가사문학의 산실 증암천 주변 옛 절터에 남아 있는 큰 석등

개선사지는 담양군 남면 학선리 광주호 서쪽편에 석등만이 남아 있는 절터이다. 석등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볼 때 그 이전부터 이곳에 사찰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절터는 오랜 세월 농경지로 사용되어서 옛 절이 있었던 흔적은 거의 찾아 보기 힘들다. 개선사지는 가사문학의 산실로 물이 풍부하고 경치가 좋아 조선시대 많은 선비들이 정자와 정원을 조성하여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던 증암천 주변에 위치해 있다. 지금은 광주댐 건설로 큰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주변지역이 댐건설로 수몰되지 않았다면 농경지가 풍부한 마을과 가까운 전형적인 통일신라 평지사찰의 입지를 갖추고 있던 사찰로 석등의 규모로 볼 때 꽤 큰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땅속..

담양 소쇄원, 유학자 양산보가 조성한 자연환경을 활용한 가장 한국적인 정원 중 하나

담양 소쇄원은 조선중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소쇄 양산보가 1530년 건립한 정자와 정원으로 우리나라 정원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곳 중 하나이다. 자연계곡을 중심으로 애양단, 광풍각, 제월당, 고암정사 증 정자를 세우고 대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을 주위에 심어 정원을 이루고 있다. 자연지형에 맞추어 정자를 세우고 수목을 심어 자연과 인공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창덕궁 후원이 자연환경에 적극 활용한 궁궐정원을 대표한다고 하면, 소쇄원은 당시 양반계층이 선호했던 정원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소쇄원에는 원래 10여동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계곡을 중심으로 3동의 건물이 남아 있다. 소쇄원의 사랑채격인 광풍각은 계곡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는데 앞면 3칸, 옆면 2칸의 건물로 ..

고택_정원 2013.03.11

서울 흥천사, 태조가 신덕왕후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정릉 원찰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정릉은 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의 능이다. 원래 덕수궁 부근 정동에 있었던 정릉은 태종 이방원이 '왕자의 난'으로 등극하면서 미움을 받아 현재의 위치로 옮겨지면서 방치되었다가 조선후기 현종대 복권되면서 현재와 같은 왕릉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태조는 정릉을 조성하면서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1397년 170여칸에 이른 큰 사찰을 짓고 흥천사라 명하였다. 정릉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 이후에도 흥천사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세웠기때문에 도성 안에 있는 큰 사찰로서 유지될 수 있었다. 조선중기로 넘어가는 연산군대에 큰 화재로 가람 대부분이 소실되면서 흥천사는 대찰로서 위상을 잃어버리고 급격히 쇠퇴한다. 연산군의 할머니인 인수대비가 불교를 크게 지원했던 인물인데 이에 대..

전국 사찰 2013.03.11

[맛집] 담양 신식당, 떡갈비로 유명한 식당

떡갈비는 갈비살을 다져서 갈비뼈에 붙여 양념장에 발아 구워낸 요리로 전남 담양군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는 담양을 비롯하여 전남 남해안지역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전통음식은 아니라고 한다. 다진고기를 구워먹는다는 점에서 햄버거스테이크와 비슷한 요리라고 할 수 있으며, 고기에 바른 양념에서 한국적인 맛이 더해졌다고 할 수 있다. 여러 매체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담양사람들은 떡갈비를 거의 먹지 않고, 오히려 돼지갈비를 많이 먹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지역 음식으로 많이 알려진 포천 이동갈비, 수원 왕갈비처럼 담양 떡갈비도 실제로는 담양을 비롯한 전남지방에서 떡갈비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식당에서 비싼 떡갈비를 사서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기때문에 담양 부근 장성에 위치한 군부..

맛집 2013.03.10

담양 독수정원림, 가사문학 산실 담양 증암천 상류에 세워진 정자

무등산 서쪽 자락에서 발원하여 영산강과 합류하는 증암천 주변에는 호남지방 가사문학의 산실로 소쇄원, 식영정을 비롯하여 이 지역 선비들이 세운 크고 작은 정자들 들어서 있다. 광주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무등산 계곡 역할을 했던 이 곳은 조선시대 창평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근처의 창평천 주변과 함께 조선시대 양반들이 선호했던 세거지의 특징들을 잘 갖추고 있다. 가사문학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이 지역은 다른 지역 양반들이 경치가 좋은 곳에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서당을 많이 설립한 것과는 달리 자연을 벗삼아 시를 읊고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한 정자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담양군 남면 연천리에 소재한 독수정은 가사문학의 산실인 증암천 주변에 세워진 정자 중에서도 제일 상류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그 ..

고택_정원 2013.03.10

서울 정릉(사적208호),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의 능

서울 성북동 북악산 뒷편 자락에 위치한 정릉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의 능이다. 태조는 신덕왕후가 죽자 능을 덕수궁 부근에 자신의 능역과 함께 조성하고 원찰로서 흥천사를 세웠다. 그런 연유로 원래의 정릉은 조선이 건국하면서 처음으로 조성한 왕릉으로 고려 왕릉을 참조하여 조성하였다고 한다. 왕자의 난으로 등극한 태종은 정릉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석재 일부를 청계천 광통교를 보수하는데 사용하고 목재들을 태평관 건축에 사용하는 등 홀대하였다고 한다. 태종대에 신덕왕후는 평민으로 강등되었기때문에 그 이후 오랜기간동안 일반 무덤처럼 관리되었다고 조선후기 현종대인 1669년에 송시열 등이 계청으로 신덕왕후로 복권되면서 종묘에 배향되고 현재의 모습으로 재조성되었다고 한다. 처음 정릉을 조성했..

담양 수북학구당, 진사를 많이 배출한 지역민들이 건립한 조선시대 중등교육기관

담양군은 광주광역시 북동쪽에 위치한 군으로 주변에 크고 작은 산들이 있으며 호남지방의 큰 강인 영산강이 발원한다. 조선시대 담양도호부와 창평현이 합쳐서 오늘날 담양군을 이루고 있으며, 영산강과 지천 주변으로 넓은 평야지대가 형성되어 있어서 경제적으로 풍족한 고장이었기때문에 호남지역에서도 대표적으로 양반문화가 발달되었던 곳이다. 담양에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부유층들이 조성한 크고 작은 정자와 원림들이 많이 남아 있다. 반면에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았던 서원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다른 지역에서는 많이 볼 수 있는 사설교육기관이었던 학구당이 몇곳 남아 있다. 담양군 수북면 병풍산(해발 822m) 남쪽 자락에는 조선시대 사설 중등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수북학구당이 있다. 이곳은 조선 중기 성..

담양 척서정, 마을입구에 마을 회의를 위해 세워진 정자

담양군 대전면 대치리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정자인 척서정이다. 영천이씨 집성촌인 대치리 마을 입구에 재실로 보이는 건물과 정자나무와 함께 마을 광장 역할을 하는 장소에 세워져 있는 특이한 형태의 정자이다. 정자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사방이 뚫려 있고 넓은 대청마루가 있다. 이 건물은 조선후기인 17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며, 옛 문헌에는 이 마을에 '강호정'이라는 정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척서정'이라는 이름은 후대에 바뀐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자내부에 척서정 현판과 시를 적은 액자가 여러개 걸려 있다. 보통 정자는 경치좋은 강변이나 전망이 좋은 언덕에 세워지는 것이 일반적인 이 정자는 마을입구에 세워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아마도 집성촌이었던 이 마을에서 마..

고택_정원 2013.03.07

[필암서원 유물전시관] 필암서원 문서(보물587호), 서원 운영 기록을 남겨 놓은 문서

정성 필암서원에는 조선후기 인조2년(1624)부터 구한말인 1900년까지 서원에서 작성했거나 발간했던 문서나 서적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원래는 서원내 서적이나 목판을 보관하는 건물인 장판각 건물에서 보관했으나, 지금은 서원 앞에 유물전시관 형태의 꽤 건물에서 서원의 내력과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설명과 함께 전시해 놓고 있다. 그 중 서원의 운영과정에서 작성한 각종 문서들은 조선후기 서원의 운영과 조직구성 들을 볼 수 있고, 지방교육제도와 사회경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어 보물 587호로 지정되어 있다. 보물로 지정된 유물은 총 14책 64매로, 역대 원장들을 기록한 '원장선생안', 서원에서 강의를 담당한 교관, 강의에 참석자 등 강의내력을 기록한 '보강안', 강회 참가자 명단인 '문계안', ..

지역박물관 2013.03.07

장성 진원리 오층석탑, 정형화된 고려시대 오층석탑

장성군 진원면 진원리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고려시대 오층석탑이다. 1층의 기단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놓은 전형적인 고려시대 오층석탑이다. 탑의 규모도 크지 않은 편이며 조각수법도 전성기 석탑에 비해서 많이 뒤떨어지는 편이다. 탑은 부처의 사리를 모셔놓은 곳으로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까지는 불교 사원에서 신앙의 중심이 되는 예배물이었지만, 고려시대 이후 불전에 모셔진 불상이 신앙의 대상으로 바뀜에 따라서 형식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석탑이 형식적인 성격을 가진 전형적인 고려시대 석탑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석탑의 기단부는 2층으로 쌓아야 안정적인 모습을 하는데, 이 석탑은 원래부터 그런지 알 수 없지만 1층으로 쌓고 있으며, 기단부와 몸돌에 안상이나 불상 등을 전혀 새겨 놓지 않고 있다..

[중앙박물관 특별전, 유리 3천년의 이야기] 이슬람 유리의 전개

기원전후에 개발된 대롱불기기법으로 유리는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로마제국의 흥성과 함께 유리산업은 크게 발전하였다. 로마시대의 유리기술은 시리아와 이집트에 7~8세기까지 유지되었고, 사산조 페르시아에서는 커트유리 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8세기에는 유리표면에 채색을 하는 장식기법이 크게 발전되었다. 7~8세기 이후 이 지역에서는 동로마와 사산조 페르시아는 쇠퇴하고 이슬람 세력이 등장하면서 유리 제작기술을 계승하였다. 오랜기간 동안 이슬람 세력이 크게 융성하면서 지역내 교역이 활발해지면 유리 제작도 발전하여 대량생산이 이루어졌다. 유리가 대량을 생산되면서 부유층의 위세품이나 장식품의 성격을 가진 유리는 다양한 생황용품으로 만들어지면서 일상생활에서도 두루 사용되었다. 이때 발전된 유리가공 ..

중앙박물관 2013.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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