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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_정원 214

순천 낙안읍성, 서문 주변에 남아 있는 초가집 민가들

낙안읍성은 고려후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서남해안의 많은 읍성들 가운데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현재의 읍성은 세종대에 석축성을 쌓은 이래로 크고 작은 보수를 거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낙안읍성은 낙안군 관아가 있던 곳으로 관아건물인 객사, 동헌, 내아 등과 함께 90여호에 이르는 읍성내 마을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관아가 있던 읍성내에는 지역 유력계층인 양반들은 거의 살지 않고, 관아를 중심으로 삶을 살아았던 향리들이 아전을 비롯하여, 관아에 속했던 포졸 등을 비롯한 하층민들과 관노, 읍성을 오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했던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며 살았다고 볼 수 있다. 낙안읍성에 남아 있는 민가들은 대체로 향리들을 중심으로 한 중간층과 관아에 속해 있던 하층민들이 살..

고택_정원 2012.10.27

벌교 대지주 저택, 소설 태백산맥 김범우의 집으로 소개된 집

소설 태백산맥에서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인물로 등장하는 김범우의 집으로 소개된 대지주 저택이다. 벌교천을 건너는 홍교 동쪽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이 대저택은 순천만 해안과 낙안들판을 연결해 주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에 벌교천을 건너는 다리였던 홍교가 설치되어 있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낙안, 순천, 보성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교통로였던 곳으로 보인다. 이 집주인은 벌교지역 대지주였으며, 이집 막내아들이 태백산맥 저자 조정래의 친구였기때문에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때문에 소설에서 긍정적으로 표현된 대지주의 집으로 소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다른 대지주의 저택인 현부자집이 일본식이 많이 반영된 당시로서는 신흥부호가 살았던 현대식 대저택이라는 느낌을 준다면, 이집..

고택_정원 2012.10.18

보성 회정리 현부자네 집,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로 중도 벌판이 내려다 보이는 대지주 저택

소설 에 등장하는 많은 장소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라고 할 수 있는 첫 장면에 등장하는 회정리 현부자집이다. 기와를 얹고 담장이 있는 한옥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전통 한옥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일제강점기 대지주 계층의 저택이다. 서울의 집장사집이라 불리는 북촌 한옥과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독특한 형태의 한옥이다. 소설 첫장면에 정하섭이 새끼무당 소화의 집을 찾아가면서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 저택이다. 저자는 지역의 대지주이면서 벌교읍과는 약간 떨어진 넓은 중도벌판이 내려다 보이는 이집이 소설에서 지역 토호들을 대표하는 현부자의 집이라는 이미지와 맞아 떨어져서 집의 구조와 위치 등 특징을 자세히 묘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설 의 상징적인 장소여서 그런지 이곳에 태백산맥문학관이 세워졌다. 안..

고택_정원 2012.10.15

파주 화석정, 율곡 선생이 학문을 논하던 임진강변에 세워진 정자

서울에서 개성으로 향하는 중요한 교통로인 임진강 나루터 뒷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정자인 화석정이다. 지금은 북녁땅으로 오고가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옛날에는 서울과 평양을 비롯한 북쪽지방, 중국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중요한 나루터에 자리잡고 있는 정자로 조선중기 대학자인 율곡선생이 제자들과 학문을 논하던 곳이다. 이 정자는 율곡선생의 5대조인 이명신 건립한 정자라고 하며, 율곡선생의 명성과 함께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이 찾았던 곳이다. 원래 정자는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것을 현종때인 1673년에 복원하였다고 하며, 한국전쟁 때 다시 불타버린것을 1966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정자에 올라서면 임진강 중하류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며, 멀리 판문점이 있는 넓은 평야가 서쪽편으로, 골짜기를 이루면..

고택_정원 2012.10.04

강릉 초당마을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과 생가터

강원도의 대표적 명승지인 경포호수 남쪽편에 위치한 초동당은 간수대신 바닷물을 이용해서 만드는 초당두부로 유명한 동네이다. 이곳은 삼국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해왔던 지역으로 이 마을 부근에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유물들이 많이 발굴된 지역으로 사적 490호 지정되어 있다. 이 마을에는 홍길동의 저자인 허균의 아버지가 광해군대에 이곳에 자리잡아 살았다고 하여 그의 호를 따서 초당마을이라 불렀다고 한다. 마을에 있는 허균의 생가터를 중심으로 이 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느데 허균, 허난설헌을 비롯한 이 곳 출신 5명의 시를 적은 시비가 세워져 있어 허균.허난설헌 시비공원이라고 한다. 생가터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한옥과 동해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울창한 소나무숲이 어우러져 걷기 좋은 ..

고택_정원 2012.08.22

경주 양동민속마을, 영남 4대길지이자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통마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소재한 양동민속마을은 한국의 전통 민속마을로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있다. 이 마을이 위치한 양동리는 동해안을 따라서 끝없이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형산강을 만나서 끊어지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남쪽으로는 경주에서 발원하여 포항으로 흘러드는 형산강이, 서쪽으로는 큰 하천인 기계천이 흐르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경북 동해안 일대에서는 상당히 넓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안강평야가 펼쳐져 있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모여사는 마을의 입지조건인 큰 하천의 중상류 지역에 산을 등지고, 하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태를 하고 있는 마을로 봉화 닭실마을, 안동 하회마을과 천전마을과 함께 영남의 4대 길지로 불리웠던 곳이다. 마을은 안계라는 작은 시내를 경계..

고택_정원 2012.07.18

경주 양동민속마을, 넓은 들판이 한눈에 들어오는 저택 관가정(보물 442호)

양동민속마을에서도 입지면에서나 건축형태에 있어서 가장 좋아 보이는 보물 442호로 지정된 관가정이다. 조선 중기 이 마을에 입향한 손소의 아들이 손중돈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이라고 한다. 형산강과 기계천이 흐르는 안강평야의 넓은 벌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는 저택이다. 기본적으로 'ㅁ'자형 건물배치를 하면서도, 왼쪽으로는 누마루가, 오른쪽으로는 살림집이 확장된 형태를 하고 있다. 마당과 넓은 벌판을 바라보고 있는 사랑채는 정자형태의 대청마루 2칸과 온돌방 2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5칸 규모로 가운데 3칸을 대청마루로 사용하고 있으며, 양쪽에 방들과 대청마루가 연결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안채의 방들도 바깥경치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문간채에 대부분 위치하고 있으며, 창문을 열면..

고택_정원 2012.06.08

경주 양동민속마을, 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정자인 심수정

경주 양동민속마을에는 10여개의 정자가 있는데, 그 중 가장 규모가 크다는 심수정이다. 회재 이언적의 동생 이언팔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정자로 오랜 기간동안 마을 서당 역할을 했다고 한다. 건물은 종가집인 무첨당과 향단을 바라보고 있으며, 'ㄱ'자형 건물을 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4칸에 누마루를 달아내여 'ㄱ'자형을 이루고 있다. 왼쪽 2칸은 대청마루로, 오른쪽 2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누마루는 2칸 규모로 1칸은 난간이 있는 정자 형태로, 1칸으로 문이 있는 방으로 되어 있다. 심수정은 이언팔을 추모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로 철종대에 불탄 것을 일제강점기에 다시 지었다고 하는데, 누마루를 비롯하여 전체적인 건물형태에 있어서 구한말에 유행했던 건물양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정자 앞에는 서당으로 ..

고택_정원 2012.06.06

경주 양동민속마을, 회재 이언적 종가집과 보물 411호로 지정된 별채 무첨당

한옥 건물 중 보물로 지정된 많지 않은 건물 중 하나인 보물 411호 경주 양동 무첨당이다. 이 건물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성리학자로 종묘에 배향되었으며 경주 옥산서원에 모셔진 회재 이언적(1491~1553) 종가의 일부로 조선 중기에 세워진 건물이다. 건물은 'ㄱ'자형을 하고 있으며, 앞면 5칸으로 3칸은 대청마루, 2칸은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누마루를 달아내어 놓고 있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상류층의 건물로 종가집 본채의 사랑채와는 별개로 손님을 접대하거나 독서 등을 할 수 있는 정자와 비슷한 성격의 사랑채이다. 대청에는 흥선대원군이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무첨당이 있는 이집은 회재 이언적의 부친이자 손소의 사위로 양동마을에 처음 들어온 이번이 살던 집으로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여주이씨의 종가집..

고택_정원 2012.06.05

경주 양동민속마을, 18세기에 지어진 고택 대성헌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어진 경주 양동마을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형성된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가 모여사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집성촌이다. 이 마을에는 여러 집안이 살았지만은 대체로 조선중기 중종대에 이 마을에 터를 잡은 손소의 후손들이 모여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랜 세월동안 후손들이 분가하면서 지은 다양한 시기의, 다양한 형태의 한옥들을 볼 수 있다. 이 마을 가운데 여주 이씨 대종택이라고 할 수 있는 보물로 지정된 고택인 무첨당 안쪽에는 현재 남아 있는 고택들이 가장 많이 지어진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영조대에 지어진 대성헌이 있다. 이 집은 이언적의 11세손인 이능단이 18세기에 분가하면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전형적인 'ㅁ'자형 주택을 하고 있으며, 손님들이 출입하는 길을 사랑채가 내려다 보고 있..

고택_정원 2012.06.04

경주 양동민속마을, 천석꾼 부자가 살았던 큰 저택인 낙선당

하회마을과 함께 영남지역을 대표하는 민속마을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양동마을은 경주 손씨와 여주 손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양반들 집단주거지인 반촌이다. 이 마을에서 제일 안쪽으로는 조선중기 성종대 문신인 손소가 살았던 대종택인 서백당을 중심으로 손씨 후손들이 분가한 낙선당, 창은전사를 비롯하여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큰 규모의 저택들을 여럿 볼 수 있다. 그 중 이 마을에서도 상당히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낙선당은 이 마을 경주 손씨 대종택이라고 할 수 있는 서백당 안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이 집은 손소의 셋째 아들인 망재 손숙돈이 분가할 때 지은 저택이다. 낙선당이라는 저택의 이름은 병자호란때 순절한 낙선당 손종로의 호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저택은 문간채, '-'자형의 사..

고택_정원 2012.06.02

경주 양동민속마을, 마을안쪽 회재 이언적이 태어난 경주손씨 대종택인 서백당과 주변 한옥들

양동민속마을은 영남지방 4대길지로 불리는 곳으로 지금도 양반들의 저택과 초가 160여호가 남아 있는 지주계층인 양반들이 살았던 반촌이다. 이 마을에 주민이 거주한 것은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에도 여러집안이 이마을에 거주했다고 한다. 지금은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가 모여 살고 있는 집성촌으로 주로 조선 중기 성종대 문신이 손소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다. 손소는 이 마을에 터를 잡고 살던 류복하의 외동딸과 결혼하여 일가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으며, 중종대에 판서와 우참찬을 지낸 손중돈이 아들이고, 조선중기를 대표하는 문신이자 유학자인 회재 이언적이 외손자이다. 이들은 마을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마을에 남아 있는 고택들은 대부분 이들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다. 양동마을 제일 안쪽에는 이 마을 ..

고택_정원 2012.05.31

경주 양동민속마을, 영.정조대 분가한 후손들이 세운 저택(근암고택, 상춘헌, 사호당고택)

경주 양동민속마을은 조선시대 영남 4대 길지 중 하나인 마을로 동해안을 따라서 이어진 백두대간이 동해로 흘러드는 큰 강인 형산강과 만나는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서쪽으로는 형산강 지류이자 큰 하천인 기계천, 남쪽에는 형산강이 흐로고 있으며, 마을 앞으로는 형산강을 중심으로 안강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여주이씨와 경주손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이 마을은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조선시대 마을입지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처음에는 넓은 평야가 내려다 보이는 마을 앞쪽 언덕에 마을에 늦게 늘어온 여주이씨 집안 종택이 있고, 뒷편에는 이 마을에 먼저 터를 잡은 경주 손씨 대종택을 중심으로 경주 손씨가 많이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마을이 뒷편 언덕에 분가한 후손들의 저택이 많이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

고택_정원 2012.05.30

경주 양동민속마을, 큰 저택인 두곡고택과 정자인 동호정,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소재한 양동민속마을은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를 중심으로 형성된 씨족마을로, 영남지방 4대 길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대표적인 반촌마을이다. 마을 앞으로는 안강의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낮은 산줄기를 따라서 150여채의 옛집들이 들어서 있는 마을이다. 마을전체가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기와집이 네채나 남아 있다. 넓은 평야나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는 양반들의 저택이 들어서 있고, 논밭과 가까운 평지에는 노비들이나 소작농들이 살았던 초갓집들이 있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양반들이 살던 마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곳이다. 양동민속마을은 중앙의 큰 길을 중심으로 주로 동남쪽을 바라보는 서쪽편 언덕에 대부분의 저택들이 들어서 있으며, 후대에 조성된 저..

고택_정원 2012.05.29

경주 독락당(보물 413호), 조선중기 유학자 회재 이언적이 고향에 돌아와 지은 사랑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소재한 보물 413호로 지정된 오래된 한옥인 독락당이다. 이 집은 조선중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회재 이언적이 낙향하여 고향에 지은 사랑채이다. 현재 남아 있는 한옥건물 중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인 1516년(중종11)에 지어진 건물로 옥산천 계곡물이 흐르는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은 별장과 비슷한 성격의 한옥으로 옥산정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래 이언적은 경북지역의 대표적인 양반마을 중 하나인 양동마을 출신이었나, 서울에서 벼슬을 물러난 후 이 곳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지금도 후손들이 이 집에 살고 있다. 독랑당 아랫쪽에는 이언적을 모신 옥산서원이 있으며, 옥산천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13층석탑이 남아 있는 정혜사 절터가 있다. 지금도 옥산천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으며, 인근에서는 넓는..

고택_정원 2012.05.28

부여 백제문화단지, 사택지적의 집을 재현한 백제 귀족 주택

백제의 마지막 수도 사비성이 있었던 부여 백마강 북쪽편에 조성된 백제문화단지는 백제의 궁궐인 사비궁, 대표적인 사찰인 능산리고분군 사찰을 재현한 능사, 그리고 사비성내에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주요 주택들을 재현한 생활문화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백제인들이 살았던 마을 재현한 생활문화마을에는 큰 저택으로 계백장군의 집을 재현한 군관주택, 백제말기의 대표적 귀족가문인 사택씨의 저택, 일반 서민들이 살았던 주택들과 초기 한성백제의 모습을 보여주는 위례성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곳에 재현된 주택들은 백제궁성이었던 부소산성 아래 관북리 유적지를 중심으로 여러 유적지의 집터를 참조하여 재현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옛 백제 주택의 형태를 재현하였다고 하지만, 실제 모습은 조선시대 한옥과 큰 차이는 없어 보이며,..

고택_정원 2012.05.16

부여 백제문화단지, 계백장군의 집을 재현해 놓은 군관주택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사비성이 있었던 부여에 재현해 놓은 백제문화단지는 백제왕궁인 사비성, 능산리고분군 원찰이었던 능사와 함께 사비성내에 있었던 주택들을 재현해 놓고 있다. 이 곳에 재현된 주택들로는 큰 규모의 저택으로 백제군관의 저택으로 계백장군의 집을, 귀족의 저택으로 백제말기의 유력가문이었던 사택지적의 집과 다양한 규모의 주택들을 재현해 놓고 있다. 삼국시대에 주택에 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백제 왕궁터였던 관북리 유적지나 부여지역 주거유적지 등을 참조하여 상상을 더해서 재현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백제문화단지 생활문화마을에 재현해 놓은 계백장군댁은 사비성에 있던 고위군관의 주택을 재현해 놓은 집이다. 이 집은 조선시대 양반들의 저택과 마찬가지로 손님을 맞는 사랑채에 해당..

고택_정원 2012.05.14

안성 덕봉리마을, 옛 양성현 관아와 덕봉서원 인근에 소재한 해주오씨 집성촌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 마을은 옛 양성현 관아가 있었던 양성면 소재지에서 약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 덕봉서원에 모셔진 숙종대 문신 오두인을 비롯하여 해주오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조선중기 이후 양반들이 세거지를 정할 때 풍수지리의 영향을 받은 배산임수의 지형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관아와는 가깝지만 관아 영역내에 속하지 않고 하천이 마을 앞을 흐르고 있지만 홍수의 피해가 적은 산지를 벗어나 평야지대로 접어드는 곳으로 마을 앞으로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이 마을에 해주오씨가 세거지로 정하고 집성촌으로 된 것은 조선중기 중종대였던 것으로 보이며, 초기에 이마을에 자리를 잡은 오정방 고택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현재 덕봉리 마을에는 이 고택 외에는 고택으로 분류할 수 있는..

고택_정원 2012.03.29

안성 정무공 오정방 고택, 옛 양성현 덕봉리 마을에 남아 있는 조선중기 한옥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는 옛 양성현 관아가 있었던 양성면 소재지에서 서남쪽으로 약 1.5km 정도 떨어진 고성산 아래 덕봉리마을에 소재한 정무공 오정방 고택이다. 이 고택은 현재 남아 있는 한옥 중에서는 그 연대가 오래된 편인 조선 중기인 중종 5년(1510)에 세워졌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1650(효종1)에 옮겨진 것이라고 하며, 실제로 이때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는 'ㄱ'자형 안채 겸 사랑채와 사당, 문간채가 남아 있으며, 외곽에 행랑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건물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편이며, 창덕궁 후원에 사대저택을 모방해서 만든 연경당 건물처럼 사랑채와 안채가 한건물이면서 담장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고택은 중종대에 정무공 오정방이 처음 건립한 이..

고택_정원 2012.03.21

논산 연산 고정리마을, 기호학파를 대표하는 조선중기 유학자 김장생 세거지

충남 논산군 연산면 고정리마을은 지금은 황산벌참살이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작은 마을로 조선중기 이후 조선사회의 주류세력이었던 기호학파를 대표하는 사계 김장생의 세거지이기도 하다. 김장생은 율곡 이이의 제자이자, 노론의 영수인 우암 송시열의 스승이기도 한 조선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로 이이를 모신 자운서원을 비롯하여 논산의 돈암서원 등 그를 모시는 서원이 전국각지에 있다. 연산 고정리마을은 김장생의 선조이 김약채가 조선초에 이곳에 자리잡은 마을로 세조대의 김국광에 이르러 많은 공을 세워 훈구공신의 반열에 오른 집안으로 대대로 높은 벼슬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충청지역을 대표하는 유력 가문의 세거지이지만, 후손들이 주로 서울에서 벼슬을 많이 해서 그런지 마을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편이며, 안동 하회마을처럼 후손..

고택_정원 201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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