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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_정원 214

안동 금계리마을 겸와고택

안동시 금계리 마을에 있는 고택인 겸와고택(謙窩古宅)이다. 구한말 관료를 지낸 김진형이 처음 지은 집으로, 초산댁(楚山宅)이라고도 부른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5칸으로 안채와 사랑채로 ‘ㅁ’자형 주택 구조를 하고 있다. 사랑채는 대청마루가 있는 앞면 3칸규모이며. 안채는 넓은 대청마루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방과 부엌을 배치히 놓았다. 학봉종택에 비해 소박하면서도 검소한 느낌을 준다.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마을에 남아 있는 전통한옥인 겸와고택이다. 구한말 관료를 지낸 김진형이 처음 지은 집으로 구한말 안동지방 양반가옥의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다. 전제적으로 가운데 마당을 두고 있는 'ㅁ'자형 건물배치를 하고 있다. 바깥주인의 생활공간이 사랑채. 1칸규모의 작은 대청마루와 온돌방을 두고 있다. 안채를 출..

고택_정원 2016.05.09

안동 천전마을 백하구려

영남 4대 길지로 손꼽히는 천전마을에 남아 있는 전통 한옥인 백하구려(白下舊廬)이다. 구한말 김대락이 살았던 집으로 1885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김대락은 1907년에 이곳에 지역 최초의 근대식 학교인 협동학교를 개교하였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1910년에 만주로 갔으며, 독립자금마련을 위해 사랑채까지 팔았다고 한다. 현재는 문화재 및 국가보훈시설로 지정되어 있다. 건물은 앞면 4칸 규모의 사랑채, 문간채,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방과 부엌 등이 배치되어 있다. 현재의 사랑채 일부는 다른 곳에 있던 건물을 옮긴 것이라 한다. 안동 천전마을 동쪽편에 위치하고 있는 백하구려. 구한말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인 김대락이 살았던 고택으로 19세기에 지어진 집이다. 건물은 사랑채와 ..

고택_정원 2016.04.21

안동 천전마을 제산종택

안동 천전마을 동쪽 끝편에 있는 제산종택(齊山宗宅)이다. 이 집은 조선후기 영조대 학자이자 관리였던 김성택이 살았던 집으로 살림집와 후학을 양성하던 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은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된 ‘ㅁ’자형을 하고 있다. 살림집 오른편에 앞면 3칸 규모의 초당을 두고 있는데 실제로는 초당이 바깥주인이 거처하면서 손님을 맞는 사랑채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건물들은 건축양식 등으로 볼 때 18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영남 4대 길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천전마을에 남아 있는 고택 중 하나인 제산종택이다. 조선후기 영조 때 지은 집으로 안채와 사랑채 역할을 하는 초당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살림집에 해당하는 안채. 안동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안마당이 있는 'ㅁ'자형 구조를 하고 있다..

고택_정원 2016.03.28

안동 지례마을 치헌(恥軒)

안동 천전마을 동쪽 끝에 위치한 치헌(恥軒)이다. 조선후기 정조대에 처음 지어진 집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건물의 규모는 크지 않으며 소박한 느낌을 주는 고택이다. 원래 임동면 지례마을에 있던 것을 임하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임하댐 건설로 임동면 지례마을이 수몰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조선후기 정조대에 지은 건물로 소박한 느낌을 주는 고택이다. 건물은 안채와 사랑채가 앞뒤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한쪽편에 안채 부속 건물이 있다. 'ㅁ'자형 구조를 하고 있는 안동지방의 다른 고택과는 달리 개방된 형태를 하고 있다. 한쪽편에는 안채에 딸린 살립집이 있다.

고택_정원 2015.10.26

안동 지례마을 오류헌(五柳軒)

안동시 임하댐 아래 임하리 마을에 있는 오류헌(五柳軒)이다. 경치가 좋았던 반변천 부근 임동면 지례동에 자리잡고 있었던 비교적 큰 규모의 양반가옥으로 임하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면서 이곳으로 옮겼다. 조선 숙종대에 천전마을 의성김씨 일가인 김원중이 분가하면서 처음 지어졌다고 한다. 사랑채는 1920년에 크게 증축하였다. 바깥주인과 안주인이 생활하는 공간을 담장으로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는 등 조선후기 안동지역 한옥의 특징들을 잘 갖추고 있다. 안동시 임하면 임하마을에 위치한 오류헌. 안채와 사랑채가 합쳐져서 'ㅁ'형을 이루고 있는 고택으로 조선후기 안동지역 한옥의 전형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문간채가 있는 솟을대문. 사랑채는 온돌방, 대청마루, 누마루를 갖추고 있는 앞면 5칸 규모의 큰 건물이다. 안동지역..

고택_정원 2015.10.05

안동 임청각(보물182호), 안동지방을 대표하는 99칸 대저택.

경북 안동을 대표하는 고택인 임청각(臨淸閣, 보물182호)이다. 권문세가의 세거지가 많은 안동지역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99칸 대저택이다. 중종때 처음 지었으며, 영조대 중건하면서 99칸으로 크게 확장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중앙선 철도가 집앞을 지나가면서 행랑채를 비롯한 부속건물들이 철거되어 그 규모가 많이 줄어들었다. 건물은 살림집에 해당하는 안채와 이에 딸린 행랑채, 조선중기에 지은 건물이 아직도 남아 있는 별당 건물이 군자정(君子亭)과 사당 등이 남아 있다. 임청각은 상해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을 비롯하여 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집으로 국가현충시설로도 지정되어 있다. 영남산 동쪽 기슭에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는 배산임수의 풍수적 조건을 잘 갖추고 있는 저택으로 낙동강변 경사..

고택_정원 2015.09.17

안동 임하마을 국탄댁(菊灘宅

임하댐 건설로 수몰된 지례마을에 있던 국탄댁(菊灘宅)이다. 임하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면서 임하마을로 옮겨졌다. 이 집은 영조대인 1757년에 지어졌다. 건물은 안채와 사랑채가 합쳐져서 ‘ㅁ’자형 주택을 하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 모두 간단한 구조로 지어졌는데, 안채는 앞면 3칸, 옆면 3칸이며, 사랑채는 앞면 4칸 규모이다. 국탄은 조선중기 숙종대 문신인 김방걸의 후손이다. 천전마을 의성김씨의 후손으로 임동면 지례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고 한다. 지례 마을에 있던 여러 고택들은 이곳 임하마을을 비롯하여, 천전마을, 원래 마을이 있던 곳으로 흩어졌다. 안동 임하댐 아래 전통마을인 임하마을에 남아 있는 고택인 국탄댁이다. 원래 반변천 상류쪽 지례마을에 있던 것을 임하댐 건설 수몰되면서 이곳으로 옮겼다..

고택_정원 2015.09.02

안동 임하마을 이우당종택

안동 임하댐 아래 임하마을에 있는 이우당 종택이다. 이 집은 권환(權寏)이 살았던 집으로 조선중기 인조대에 지어진 집이다. 집은 마을 앞을 휘감으며 흐르는 반변천을 향해서 북동쪽을 향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5칸의 ‘ㅁ’자형 안채와 북쪽으로 돌출된 사랑채, 불천위 조상을 모신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동 와룡면 출신인 권환이 천전마을 의성김씨 집안의 사위가 되면서 터를 잡고 살면서 안동권씨 집성촌이 되었다고 한다. 안동시 임하면 임하마을 안동권씨 종택인 이우당종택. 조선중기 인조대에 처음 지어진 고택으로 비교적 규모가 큰 편이다. 이우당이라 적힌 현판이 결려 있는 사랑채. 앞쪽으로 돌출된 누마루와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구한말에 증축된 부분을 당시 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ㅁ'자형 살림집 ..

고택_정원 2015.07.28

안동 천전마을 추파고택

영남지역 4대 길지(吉地)로 손꼽히는 양반들의 세거지인 천전마을 종택 인근에 있는 추파고택(楸坡古宅)이다. 이 집은 종손의 아우였던 추파 김정락과 그의 아들 김병식이 살았던 집으로 원래는 천전마을 종택 안에 있었다고 한다. 건물은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 형태 한옥으로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19세기에 지어진 저택으로 당시 건축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는 건물이다. 이 집 주인이었던 김병식은 1907년 안동지역 근대교육의 출발점이 되었던 협동학교 교사와 교장을 역임하였다고 한다. 안동 천전마을 종택 부근에 위치한 추파고택. 19세기경 종갓집에서 분가하면서 지은 고택을 당시의 주택양식이 잘 남아 있다고 한다.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을 이루고 있는데, 중문 왼쪽편에 앞면 3칸 규모의 사랑채가 있다. 오른..

고택_정원 2015.07.20

천안 유관순열사 생가지(사적230호)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에 위치한 유관순 열사 생가지(사적230호)이다. 3.1만세운동을 벌어졌던 병천면소재지 아우내장터에서 동쪽으로 1.5 km 정도 떨어진 매봉산 동쪽편 자락에 열사의 생가가 위치하고 있다. 열사가 태어나고 자랐던 생가 건물은 남아 있지 않고, 1991년에 복원한 건물을 볼 수 있다. 유관순 열사는 일제강점기를 대표적인 항일운동이었던 3.1만세운동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생가 건물은 초가 건물은 얹은 'ㄱ'자형 안채와 작은 부속채로 이루어져 있다. 인근에 있는 유석 조병옥 생가와 비슷한 규모로 경제적으로 중산층 이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생가 바로 옆에는 열사가 다녔던 매봉교회와 1970년대 이후 열사의 동생 유인석씨가 살았던 한옥 건물이 있다. 생가 내부에는 유관순 열사가 아우내장터에서 ..

고택_정원 2014.07.17

천안 유석 조병옥박사 생가

충남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 열사 생가에서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한 유석 조병옥박사 생가이다. 조병옥 박사는 항일독립운동도 했지만, 해방전후 공간에 활동한 정치가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당시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고, 1960년 이승만 정권에 대항하여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나 선거 돌연 병으로 사망하였다. 천안 병천면 용두리에 위치한 조병옥 박사의 생가는 '-'자형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작은 안채와 창고가 있는 작은 부속채로 이루어진 조촐한 규모이다. 일제강점기 정규 교육을 받고, 항일운동에 투신한 것으로 볼 때 경제적으로 중산층 이상이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생가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소박하고 검소한 외형을 하고 있다. 이는 조병옥박사 경우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당시를 살았던 여러 인물들의 생가..

고택_정원 2014.07.15

진천 이상설 생가, 소박한 모습을 보여주는 초가삼간

진천읍소재지에 멀지 않은 들판에 위치한 이상설 생가이다. 이성설은 구한말 관료이자 독립운동가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한 3인 중 한명이다. 진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신학문을 배운 후 관료의 길을 걸었다. 1905년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러시아로 망명하였다. 이준, 이위종과 함꼐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호소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와 독립운동을 펼쳤다. 진천군 산척리 마을에 남아 있는 생가는 일제강점기 이후 무너진 것으로 복원한 것이다. 건물은 앞면3칸, 측면2칸의 작은 초가집이다. 이상설은 구한말 신학문을 배우고 과거에 급제했던 것으로 볼 때 신분이 낮거나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생가는 서민들이 살았던 작은 초가집이다. ..

고택_정원 2014.06.16

파주 오금리마을, 임진강 부근에 위치한 전통마을

파주시 탄현면에 위치한 오금리마을이다. 파주시 서쪽편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하는 지점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임진강을 건너는 오금나루가 있었던 곳으로 서울에서 파주 교하를 거쳐서 개성으로 연결되는 교통로 중 하나였던 곳이다. 주변에는 나즈막한 야산과 넓은 평야가 있는 풍족한 마을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경치가 아름다운 임진강변과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며, 마을 앞으로 만우천이라는 하천이 흘러 물이 부족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멀지 않은 곳에 청동기시대 유적지인 파주 덕은리 유적지가 있으며, 조선초기 재상 황희정승 무덤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 탄현면 일대에는 양반들의 세거지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오금리 마을에는 조선중기 문신으로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었던 계유정란에 참여하여 ..

고택_정원 2014.01.13

상주 오작당, 승곡리마을에 남아 있는 조선중기 양반가옥

상주시 승곡리마을에 남아 있는 고택으로 보물로 지정된 인근에 위치한 양진당과 함께 조선중기 문신 조정이 지은 집이다. 양진당과 비슷한 양식으로 원래는 겹집으로 좌우에 익사가 있었으나 지금은 안채, 사랑채, 가묘만이 남아 있다. 조선중기인 선조대에 처음 지은 집으로 양진당보다 오래된 가옥이라고 한다. 건축수법에 있어 침수피해가 많았는 지형적 특징을 고려하여 안채는 마당보다 높게 지었으며, 기둥 모서리를 깎아 모접을 두고 있다. 원래는 양진당과 비슷하게 'ㅁ'자형 주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며, 'H'자형으로 된 안채지붕에서 그 흔척을 찾아볼 수 있다. 승곡리마을은 낙동강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 낙동강 지천인 장천 주변에 비교적 넓은 농지가 형성되어 있고 물이 풍부한 마을로 전형적인 양반들의 세거지였..

고택_정원 2013.11.15

상주 양진당(보물 1568호), 조선중기에 지어진 양반가 대저택

상주 승곡리마을에 남아 있는 보물 1568호로 지정된 조선중기 양반 저택인 상주 양진당이다. 이 가옥은 원래 임하댐 아래 천전마을에 있던 것을 1625년 검간 조정이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한다. 앞면 9칸, 옆면 7칸의 대저택으로 바깥쪽에 사랑채가 있고 안마당에 안채가 있는 전형적인 경북 내륙지방의 'ㅁ'자형 주택구조를 하고 있다. 낙동강변에 위치하고 있어 홍수때 상습 침수되는 지역적 특성이 만영되어 안채는 바닥에서 1미터 이상 높게 지어진 고상식 구조를 하고 있다. 승곡리마을은 낙동강 지천인 장천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지점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마을로 작은 마을 뒷편으로 작은 구릉이 있고, 마을 앞으로는 낙동강 지천인 장천을 중심으로 비교적 넓은 농지가 펼쳐진 전형적인 양반마을이라 할 수 있다. 마을에는 ..

고택_정원 2013.11.14

서울 황학정,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조선시대 활터

황학정은 조선시대 인왕산 아래 있던 다섯군데의 활터 중 하나였던 등과정에 있는 정자이다. 이 정자는 구한말인 1898년 고종의 명으로 경희궁 뒷편 언덕에 세웠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경희궁을 헐고 서울고등학교를 비롯하여 여러 건물들을 그 자리에 세울때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2칸의 정자 건물로 구한말에 지어진 많은 정자 건물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활쏘기는 역사이래로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중요한 무기로 여겨졌으며,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대표적인 명궁이었다고 한다. 이는 북방초원에서 활약한 기마민족을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활쏘기는 지도자의 필수 덕목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정조가 당대의 명궁이었다는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까지 이..

고택_정원 2013.11.03

서울 비우당, 낙산 동쪽 지봉 아래 '지봉유설'을 지은 실학자 이수광이 살았던 집터

한양도성을 이루고 있는 동.서.남.북 봉우리 중 가장 낮은 서쪽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 동쪽 상산 줄기인 지봉 아래에 복원되어 있는 비우당이다. 이곳은 조선중기 실학자로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지봉유설'을 저술한 지봉 이수광이 살았던 집터이다. 부엌 1칸, 방2칸으로 이루어진 조선시대 전형적인 서민가옥 형태를 하고 있는 이 집은 조선시대 한양에 거주했던 선비들이 소박하게 살았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원래 이수광의 외가쪽 인물로 청백리로 널리 알려졌던 유관이 살았던 집을 이수광이 고쳐지어 살았다고 전해지는 집이다. 현재의 가옥은 최근에 옛모습을 복원한 것으로 실제 초가집과는 약간 다른 모습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규모나 형태에서 이수광이 살았던 모습을 느껴볼 수 있다, 가옥 뒷편에는 단..

고택_정원 2013.09.30

시흥 관곡지와 연꽃테마공원, 강희맹이 중국에서 연꽃을 들여와 심었던 역사적인 장소

시흥 관곡지와 연꽃테마공원은 연꽃이 아름다운 명소로 손꼽히는 연못 중 하나로 수도권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시흥시 하중동에 위치한 관곡지는 조선초 문신 강희맹이 연꽃을 가져와 처음 심었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연못이 크거나 정원을 아름답게 꾸며 놓은 곳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 연꽃을 널리 보급시킨 장소로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시흥시 중심부에서 소래포구 사이에 형성된 넓은 평야지대에 위치한 관곡지 주변 지역은 연꽃과 관련된 지명인 '연성'이라고도 불렸으며 연성동을 비롯하여 연꽃과 관련된 많은 명칭들이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관곡지는 이곳에 연꽃씨를 가져와 보급한 강희맹의 사위 권만형의 후손들이 대대로 터를 잡고 사는 곳으로 재실과 저택이 지금도 연못 주위에 남아 ..

고택_정원 2013.09.03

대구 서상돈 고택, 근대골목에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한옥

대구 계산동 근대골목 이상화 고택 맞은편에 있는 서상돈 고택이다. 현재의 건물은 원래의 자리에 아파트가 지어지면서 규모를 축소하여 복원한 건물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부호들이 많이 살았던 도시형 개량한옥 형태를 하고 있는 건물로 안채, 사랑채와 별채로 보이는 작은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대구 지역 부호였던 서상돈이 살았던 저택으로는 소박하면서 검소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원래 규모에서 축소되었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당시의 모습이 남아 있는 주택이라고 할 수 있다. 서상돈은 서울출신으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여러차례 천주교 박해를 피해서 지방으로 옮겨다니다가 대구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대구지역에서 지물행상과 포목상을 하면서 크게 부를 축적하여 당대에 재벌수준이었다고 하며, 천주..

고택_정원 2013.05.22

대구 이상화고택, 근대문화골목에 남아 있는 <뺴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시인이 살던 집

대구 구도심 계산동성당 뒷편에 위치한 이상화고택은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을 대표하는 이상화시인이 만년에 살았던 고택이다. 이 지역은 옛 대구읍성 서쪽편에 위치하고 있는 대구약령시와 가까운 주거지역으로 대구에서도 상류층 사람들이 주로 모여 살았던 곳으로 지금은 '대구근대화골목'으로 불리운다. 근처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이끌었던 서상돈이 살았던 고택을 비롯하여 여러채의 한옥들이 남아 있다. 이상화고택은 조선시대에 지어진 한옥은 아니고 일제강점기에 많이 지어졌던 대구지역 도시형 개량한옥이라 할 수 있다. '건물은 ㅁ'자형으로 이루어진 서울 북촌의 한옥과는 달리 '-'자형 한옥형태를 하고 있는 안채와 문간채처럼 대문과 붙어 있는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옥은 인근 서상돈고택과 함께 1999년 도시개발로 허물어질 ..

고택_정원 2013.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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