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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_정원 214

논산 명재고택, 조선후기 유학자 윤증 선생 고택

충남 논산시 노성면 노성향교가 있는 교촌리에 자리잡고 있는 조선후기 유학자 명재 윤증의 고택이다. 이 저택은 'ㄷ'자형의 안채와 '-'자형의 사랑채가 연결되어 'ㅁ'형 형태를 하고 있으며, 솟을대문이나 행랑채를 두고 있지 않어 검소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 집을 처음 지은 연대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조선 숙종대에 처음 지은 것을 후대에 여러차례 중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본채만 남아 있지만 원래 바깥쪽에 별채 형태로 초가집들이 있던 것으로 보이며, 현재는 건물 왼쪽편에 초가집 1동을 복원해 놓고 있다. 건물 앞 마당에는 넓은 마당을 두었으며 작은 샘과 섬이 있는 장방형의 연못을 두고 있다. 건물 뒷편에는 최근에 복원한 사당이 있으며, 사당 앞에는 많은 장독들이 놓여 있는 마당이 있다. 윤..

고택_정원 2012.02.01

강화 철종 외가, 경기지역 사대부 저택

철종은 전계대원군의 셋째 아들로 사도세자(장헌세자)의 아들인 은언군의 손자이기도 하다. 1844년 그의 형 회평군의 옥사로 가족이 강화도로 유배되어 '강화도령'이라는 별칭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철종은 헌종의 뒤를 이어 1849년 19세로 즉위했으나 재위기간 14년은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절정기로 삼정의 문란이 극심했고 민란이 끊이지 않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국왕으로서은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이른 나이에 병사했던 왕이다. 강화도에는 그와 관련된 유적이 몇곳있는데, 그가 강화유배기간 동안 살았던 강화유수부 관아부근의 용흥궁과 그의 외가가 남아 있고, 잠시 교동도에 피신했던 철종잠저소 등이 있다. 강화군 선원면에 소재한 철종외가는 철조이 즉위한지 4년후인 1853년에 지어진 철종의 외삼촌 염보길의 집이다...

고택_정원 2011.11.05

삼척 대이리 산촌마을, 환선굴 입구에 남아 있는 너와집과 굴피집

환선굴을 비롯하여 여러 석회암동굴이 있는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산간지역 주거형태였던 굴피집과 너와집이 남아 있는데, 환선굴이 동굴체험을 할 수 있는 관광자원화될 때 이 곳 환선굴 입구 골짜기에 있던 산간지역 민가들 중 일부를 보존하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환선굴 매표소 바깥쪽으로는 옛 주택이 남아 있지는 않고, 매표소 안쪽 계곡에 몇 가구만이 옛 산촌 주택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100여년전에 만들어진 마을 방앗간인 통방아가 계곡에 남아 있다. 너와집은 소나무, 전나무 등 큰 나무를 쪼개어 기와처럼 쌓아 올린 너와지붕을 하고 있으며, 굴피집은 너와대신 참나무, 떡갈나무 껍질을 벗겨 지붕으로 사용하는 주택의 형태이다. 이 곳 산촌마을의 너와집과 굴피집은 온돌방,..

고택_정원 2011.11.04

충주 윤민걸가옥, 남한강 지역 양반 가옥

충주시 엄정면에 남아 있는 옛 지주계층이 살았던 양반가옥인 충주 윤민걸가옥이다. 이 가옥은 안채를 중심으로 사랑채, 별당, 행랑채, 문간채로 구성되어 있는 상당히 부유했던 것으로 보이는 양반가옥이다. 'ㅁ'자형으로 구성되어 폐쇄적인 경북내륙지방의 양반가옥과는 달리 담장으로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넓은 마당과 개방적인 건물배치를 하고 있는 전형적인 남한강 유역의 양반 저택이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가옥은 뒷쪽에 산이 있고 앞쪽으로는 하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건물배치를 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북향집이다. 이 가옥이 있는 충주시 엄정면은 강원도 내륙지방에서 제천을 지나 박달재를 넘어서 충주 남한강 유역으로 연결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충주에서 남한강 하류방..

고택_정원 2011.10.29

경주 교촌마을, 경주향교와 최부자집을 중심으로 형성된 전통마을

경주를 비롯하여 영남지역에서도 손꼽히는 부호였던 경주 최부자집과 경주향교 주변에 형성된 오래된 마을인 경주 교촌마을이다. 이 마을은 신라 천년 세월동안 궁성이었던 월성의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으며, 김알지 탄생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계림과 인접해 있다. 마을 뒷편으로는 신라 황금문화의 절정기에 조성된 대릉원이 있다. 이 곳은 통일신라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국학이 있었던 곳으로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경주향교가 자리잡고 있다. 조선시대 경주는 종2품 외관직인 부윤이 고을 수령으로 있던 큰 고을로 관아는 현재 경주 도심의 경주읍성내에 있고, 지역 유력자들은 향교를 중심으로 이 곳 교촌마을에 많이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교촌마을 중심에는 99칸 대저택이었던 경주 최부자집이 있고, 그 앞쪽으로 옛 요석궁 자리에 ..

고택_정원 2011.10.24

경주 서출지 (사적 138호), 남산 기슭에 위치한 삼국시대 연못

경주 남산 동쪽 기슭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연못인 서출지이다. 이 연못은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형성된 유수지이지만, 안압지나 궁남지처럼 인공적으로 조성된 연못에 비해서 경관이 뒤떨어지지 않는다. 서출지가 있는 남산마을은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던 마을로 삼국유사 기록에도 남아 있다. 연못 한쪽에는 조선 중기 (1664년)에 세워진 옛 정자가 남아 있어 연못에 핀 연꼿, 마을, 남산과 더불어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주고 있다. 이 정자는 임정이라는 사람이 세웠다고 하며, 팔작지붕에 누마루를 두고 있는데 석조기둥을 연못에 박아서 세웠기때문에 연못에 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 건물이다. 경주 서출지 전경. 연꼿이 한창 피어난 시기에는 장관을 이룰것 같은데, 연꽃이 진 이후지만 남아 있는 연두빛의 ..

고택_정원 2011.10.12

경주 교동 최씨 고택, 최부자집으로 불린 독립유공자 최준선생 생가

신라의 궁성이었던 월성 서쪽편 남천을 건너는 월성교 다리 주변에 위치한 경주 교촌에서도 향교와 함께 랜드마크가 되었던 경주 최부자집으로 잘 알려져 있는 고택이다. 이 가옥은 1700년 대에 건립된 가옥으로 구한말 대부분의 대지주 저택과 마찬가지로 99칸 규모의 건물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사랑채와 안채, 문간채와 큰 광이 남아 있다. 그 중 사랑채는 70년대에 불타버린 것을 복원한 건물이라고 한다. 경주 최부자집은 영남일대에서 손꼽히는 부호이지만 저택의 건물규모가 크거나 화려하게 꾸며놓고 있지는 않고 일반적인 양반촌의 저택 정도 규모를 하고 있다. 지금도 경주를 찾는 관광객이 많은데, 조선시대에도 경주를 찾아 유람을 떠나왔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이며, 지위가 높은 사람 대부분은 이 집에서 묵었다고 하..

고택_정원 2011.10.08

오늘날의 웃대, 인왕산 아래 조선시대 중인들의 거주지

조선시대 웃대는 인왕산 기슭 아래 조선시대 중앙 관서에서 일하던 하급관리들을 중심으로 중인계층을 형성했던 사람들이 모여살았던 지역을 말하며 지금의 효자동 사거리에서 사직단 입구까지의 종로구 사직동.통인동.옥인동 등의 지을 말한다. 인왕선은 서울의 서쪽 백호에 해당하는 산으로 바위암봉을 중심으로 서울에서도 경치가 아주 좋은 지역으로 정선의 대표작 '인왕재색도'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많은 화가들이 이 곳 경치를 그림으로 남겨 놓고 있다. 조선후기에 그려진 도성대지도에 나타난 당시의 명소나 지명으로는 청운동 54번지 일대 청계천의 발원지이기도 한 청풍계, 옥류동천이 흐르던 옥인동,통인동 일대의 옥류동, 광해군때 세운 인경궁 누각이 있었던 누각동, 백사 이항복이 살았던 집터인 필운대 등이 있으며, 구한말 대표적인..

고택_정원 2011.09.26

고성 학동마을, 옛 담장길이 아름다운 남해안 전통마을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에 소재한 학동마을은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학동이라 불리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전주최씨 집성촌으로 마을 중심에 있는 고택인 '최영덕씨 고가'를 중심으로 규모가 큰 가옥과 작은 농가들이 고루 섞여있는 전통적인 시골마을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학동마을이 있는 학림리는 푸른 바다가 있는 해안가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으로 남해안 다른 지역에 비해서 약간 넓은 농토가 있는 살기 좋은 마을이다. 인근에 학림리 지석묘가 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사시대 이래로 주민들이 거주해 왔던 곳이기도 하다. 등록문화재로 선정된 고성학동마을 옛담장은 수태산 줄기에서 채취한 납작돌과 황토를 결합하여 바른층으로 쌓은 것으로 정겨운 시골마을의 정취와 잘 어울려서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고택_정원 2011.08.29

고성 학림리 최영덕씨 고가, 학동마을의 오래된 고택

아름다운 옛 담장으로 유명한 고성 학림리 학동마을에 있는 오래된 고택인 '고성 학림리 최영덕씨 고가'이다. 마을 중앙에 위치한 이 가옥은 전형적인 남부지방 부농의 가옥으로 구한말인 고종 6년(1869)에 지어진 한옥이다. 이 가옥이 있는 학동마을은 해안과 가까운 곳에 남해안에서는 넓은 농토가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근에 학림리지석묘가 남아 있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대 이래로 사람이 거주했던 살기 좋은 고장이다. 이 가옥은 약간 경사진 지형에 대문채, 사랑채, 익랑채, 안채가 나란이 배치되어 있는 형태로 건물의 규모는 약간 큰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구한말에 유행했던 건축양식인 난간이 있는 누마루가 사랑채 양쪽에 있고, 안채는 특이하게 우진각 지붕을 하고 있다. 건축양식은 전통적인 남부지방 가..

고택_정원 2011.08.27

달성 묘골마을, 사육신 박팽년 후손들이 모여사는 전통마을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소재한 순천박씨 세거지인 묘골마을이다. 이 마을은 사육신 중 한명으로 유일하게 후손이 살아남은 박팽년 후손들이 터를 잡고 살고 있는 마을이다. 원래 이 마을은 박팽년의 2남인 박휘순의 처가이 있었던 곳으로 그의 부인이 친정인 이 곳에서 아들을 낳고 숨어살다가 성종대에 사면을 받고 외가의 재산을 물려 받아서 오늘날에 이르고 이르고 있다고 한다. 묘골마을은 상당히 부유한 마을로, 달성지역에서는 영향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장을 지낸 박준규씨가 이 마을을 대표하는 인사라 할 수 있으며, 삼성그룹 창업자 부인인 박두을 여사가 이 마을 출신이라고 한다. 묘골마을은 조선시대에 양반가문으로 크게 번성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사육신을 모신 사당인 육신사를 중심으로 상당히 큰 규모의..

고택_정원 2011.08.27

달성 삼가헌, 낙빈서원 인근 박팽년 후손이 사는 고택

삼가헌은 사육중 한명이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세거지인 묘골마을과 낮은 산을 경계로 하여 자리잡은 주택으로 11대손인 삼가헌 박성수가 1769년에 사랑채를 짓고 자신의 호인 '삼가헌'을 현판으로 걸었다. 삼가헌은 원래 초가였으나 19세기초에 안채와 사랑채를 현재의 모습을 지었다고 한다. 별당인 하엽정은 원래 서당으로 사용했던 것을 누마루를 붙여서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삼가헌은 2009년 화재로 안채가 불타버렸다고 하며, 현재의 안채 건물은 최근에 다시 복원하였다고 한다. 삼가헌이 있는 마을은 주민이 많이 살지 않는 곳으로 사육신을 모신 서원이 낙빈서원이 있는 곳으로 낙동강에 수백m 정도 떨어진 곳에 낙동강 경치를 즐기기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달성 삼가헌은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가 보이며, ..

고택_정원 2011.08.25

달성 도곡재, 사육신 박팽년 후손들이 모여사는 묘골마을 고택

달성 묘골마을은 낙동강 동쪽 칠곡군과 경계가 되는 하빈면에 자리잡고 있는 전통마을로 사육신 중 한분인 박팽년 후손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다. 사육신 후손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박팽년의 손자 박일산이 외가의 재산을 물려받아 가문을 이루었다고 한다. 마을의 규모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재력이 풍부했던 마을답게 사육신을 모신 사당인 육신사를 중심으로 대부분 큰 한옥으로 마을이 이루어져 있다. 달성 묘골마을은 양반들이 모여살았던 마을로 큰 한옥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오래된 한옥은 잘 보이지 않고, 사당인 육신사 근처에 있는 재실로 사용되었던 건물인 도곡재가 눈에 띄게 오래되어 보인다. 이 건물은 대사성을 지낸 박문현이 1778년(정조2)에 주택으로 건립하였던 것을 19세기에 도곡공 박종우의 재실로 사용하였다고..

고택_정원 2011.08.24

달성 태고정 (보물 554호), 사육산 박팽년 종가에 있던 별당 건물

사육신 중 유일하게 후손이 살아남은 박팽년 후손들이 모여사는 세거지인 달성군 하빈면 묘골마을 안쪽에는 사육신을 모신 육신사가 있다. 사육신을 모신 사당은 원래 낙빈서원에 있었으나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서원강당만 일제강점기에 복원되었고, 사당은 70년대 전국적인 '충효위인유적화사업'으로 현재의 위치에 세워졌다고 한다. 사육신을 모신 사당 동쪽편으로는 한옥건물 2동이 있는데, 하나는 보물 554호로 지정된 달성 태고정이라는 정자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재실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건물로 보인다. 달성 태고정은 조선 성종때인 1479년에 박팽년의 손자가 건립한 것이 임진왜란 때 불타버리고 1614년(광해군 6)에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일명 '일시루'라..

고택_정원 2011.08.23

성주 경산리 성밖숲, 재앙을 막기 위해 조성된 오래된 숲

경북 성주군은 낙동강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고대국가 성산가야가 자리를 잡았던 곳이다. 이 고장은 조선시대에 문인들을 많이 배출하고 유교적 색채가 짙은 고장으로 보이며, 성주군 소재지에 위치한 성주 향교는 전국의 향교 중에서도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성주는 가야산자락 북쪽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대국가가 자리잡을 수 있을 만큼의 농업생산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성주참외로 유명한 고장이다. 성주읍 서쪽편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성주 경산리 성밖숲'을 볼 수 있다. 옛 성주읍성 서문 밖에 조성된 이 숲은 풍수지리에 영향을 받아서 재앙을 막기 위해 조선중기에 밤나무숲으로 조성했던 것을 여러 이유로 해서 임진왜란 이후에 밤나무를 베어 버리고 왕버들로 다시 조성했다고 한다. 수령..

고택_정원 2011.08.06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과 전통정원

서울 중구 필동 남산골 공원에 있는 남산골한옥마을이다. 원래 이곳에는 수도방위사령부가 있었던 자리로 1989년 서울시와 수방사가 합의하여 그 부지에 서울시에 있었던 한옥 5채를 이전 복원하여 1998년에 공식개장하였다고 한다. 이 지역은 조선시대에는 계곡과 정자들이 있어서 여름철 피서를 겸한 놀이터로 이름이 있던 곳으로 한옥마을 조성과 함께 전통 공원을 조성하여 서울 도심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남산골 한옥마을 남쪽편 언덕에는 서울이 우리나라의 수도가 된지 600년을 기념하기 위해 타임캡슐을 묻어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남산골 한옥마을에는 서울 시내에 산재해 있던 '관훈동 민씨가옥', '옥인동 윤씨가옥',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 '삼..

고택_정원 2011.07.13

한국 민속촌, 옛 강변 풍경과 사람 사는 마을

전통 민속마을을 복원해 놓고 있는 한국민속촌 중심을 흐르고 있는 하천은 큰 하천은 아니지만, 옛사람들이 살았던 강변의 풍경을 어느 정도 재현해 놓고 있다. 큰 강이 흐르는 지역은 전통적으로 농토가 넓고 부유한 지역에 속하는 경우가 많으며, 경치가 빼어난 곳이 많다. 강변 경치 좋은 곳에는 관아에서 설치한 큰 정자가 있고, 지역의 토호들에 세워놓은 크고 작은 정자 또한 지금도 많이 남아 있는다. 또한 선현들을 모시고 제사를 올리며 후학을 양성하던 서원 또한 경치가 빼어난 강변에 세워진 경우가 많다. 용인 한국민속촌에서는 이런 옛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집약적으로 복원해 놓고 있어서 복원한 가옥들을 살펴보는 즐거움과 더불어 강변에 있는 정자에 앉아서 옛 사람들이 느꼇던 한가움을 같이 한번 느껴볼 수 있다. 또..

고택_정원 2011.07.11

한국민속촌, 민속신앙 서낭당과 유교식 사당

한국민속촌은 우리나라 전통마을의 모습을 복원한 곳으로 마을 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민속신앙인 서낭당의 다양한 모습을 마을 입구에 잘 꾸며놓고 있다. 예날부터 우리나른 마을 입구에는 질병이나 재해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을 하는 장승을 비롯하여 선돌.돌탑.솟대.당나무.당집 등 다양한 형태로 신앙대상이 세워져 있었는데, 이를 매개로 신에게 마을 주민들의 안녕과 삶의 풍요를 기원하였다. 이는 만주,몽골,시베리아,일본 등 동북아시아 지역의 민족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물을 상징하는 물새를 장대위에 세운 솟대와 선돌 등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있다. 마을을 수호하는 서낭당이 동아시아지역 토착신앙이라고 한다면, 조선사회 신앙의 중심은 조상을 섬기는 제례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유..

고택_정원 2011.06.26

광명 오리 이원익선생 종택과 관감당

광명시 소하동 옛 충현서원 자리에 있는 오리 이원익 선생의 종택이다. 오리 이원익 선생은 조선 선조에서 인조 때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던 분으로 '오리정승'이라는 별칭으로 후손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분이다. 원래 이 집터는 이원익 선생이 50여년간의 벼슬길을 끝내고 낙향하여 살던 초가집에 인조가 새로 집을 지어 하사했으며, 그 뒷편에는 그를 모신 충현서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현재의 종택은 일제강점기에 새로 지어진 주택으로 'ㄱ'자형의 안채와 'ㄱ'형의 문간채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경기지역 한옥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서울지역 개량한옥들과 비슷한 중정형태의 안마당을 두고 있는 튼 'ㅁ'형 건물 배치를 하고 있다. 종택건물은 조선시대 전통한옥이라기 보다는 일제강점기 경기지역 개량한옥의 모습을 잘 보..

고택_정원 2011.06.21

한국민속촌 한옥, 중부지방 민가 (서민층 가옥)

한국민속촌에 복원되어 있는 중부지방 민가이다. 방이 많지 않고 큰 대청마루를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선비계층이 살았던 집은 아니고, 농사에 종사하던 서민층이 살았던 가옥으로 보인다. 광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 크지는 않고, 농기구 또한 많이 가지고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안채와 사랑채가 구분되어 있기는 하지만 용도에서는 별 차이를 보이는 않는다. 중부지방 민가 안채는 남부지방 일반형인 '-'자형의 작은 집이며 아래 윗방에 툇마루가 붙어 있는 간략한 형식이다. 사랑채는 두 개의 큰 방과 외양간, 헛간이 있는 겹집이다. 안팎이 모두 중부지방 농가로서는 특이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부엌과 안방, 웃방으로 구성된 남부지방 가옥과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다.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대청마루를 두지 않는 대..

고택_정원 201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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