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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축물 64

인천항 옛 제물포구락부, 외국인 사교클럽

최초의 서구식 공원인 자유공원 정상 바로 아래에 위치한 옛 제물포구락부 건물이다. 1901년에 지어진 2층 벽돌건물인 이 건물은 당시 개항장인 인천항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의 사교활동을 위해서 만들어진 건물로 인천시장 관사 바로 뒷편에 위치하고 있다. 일제가 한반도를 강제병합하기 전까지는 많은 외국인이 찾았던 것으로 보이며, 이후에는 일본군 장교들의 사교클럽, 미군의 장교클럽 등으로 권력을 가진자들의 사교클럽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옛 제물포구락부의 모습을 재현한 문화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자유공원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구한말 역사현장과 볼거리를 주고 있다. 내부는 옛 사교클럽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술을 마시던 바와 작은 식탁, 그리고 각국에서 기증한 것으로 보이는 물품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

개항장 인천항, 옛 인천부청사 (현 인천중구청)와 일본인 거리

우리나라 최초의 개항 항구인 인천항에서 오랜 기간동안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옛 인천부청사 건물이다. 현재는 중구청 건물로 사용하고 있는 이 건물은 1933년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건축물로 현 정독도서관(옛 경기고 교사)을 비롯한 많은 공공기관 건물들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모더니즘 양식의 건물이다. 인천부청사가 있던 이 곳은 구한말 개항기에 일본인 조차구역의 핵심적인 위치로 정면에 인천항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원래는 일본영사관이 있었던 곳이다. 현 중구청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은 서쪽편의 차이나타운과는 다른 일본식 거리가 조성되어 있는 곳으로 아직도 많은 일본식 상가, 주택, 은행 점포 등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들이 모여 있어서 마치 옛날 일제 강점기로 돌아간 듯한 영화세트장 같은 분위..

개항장 인천항, 옛 일본18은행 인천지점, 근대건축 전시관

인천 중구청에서 내려오는 길과 금융기관이 많이 있었던 길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옛 일본18은행 인천지점 건물이다. 원래는 나가사키에 본점을 둔 일존제18은행은 구한말 영국의 면직물을 수입하여 한국에 팔던 중개무역에 종사했던 나가사끼 상인들을 위한 은행으로 현재의 건물은 일본의 첫 개항 항구인 나가사끼인들의 취항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건물은 단층건물로서 목조 트러스트 위에 일식 기와를 올려놓고 있었다고 하며, 외벽과 창호는 단순하면서도 일체감 있게 만들었고, 출입구에는 약간의 장식을 가미하고 있다. 나가사키는 18세기 이전부터 네덜란드에 개항된 일본 최초의 개항 항구로서 네덜란드인의 실용적인 면이 이 건물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 건물은 우리나라 최초의 개항장인 인천항을 이루고..

개항장 인천항, 옛 일본58은행 인천지점

구한말 개항장 인천항에서 중심 거리가 된 일본 조차구역내 금융가에 위치한 옛 일본58은행 인천지점 건물이다. 1892년에 설치된 금융기관 건물로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오래된 금융기관 건물 중 하나이다. 은행 지점 건물로 프랑스식 르네상스 풍의 건축물로 2층 벽돌조로 지었다. 일본 제58은행은 후에 야스다은행으로 바뀐 오사카에 근거를 두고 있는 은행으로 석조건물로 위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동경 기반의 제1은행과는 달리 오사카 지방 특유의 개방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 건물이다. 일본제1은행, 제58은행, 제18은행 지점들이 들어선 이 거리는 자동차가 달리는 현대식 거리와는 다르게 마차 2대가 지나갈 수 있는 전형적인 19세 유럽의 도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초가집과 한옥집만 있었던 당시의 우리나라에서는 상..

강릉 임당동 성당

강릉 객사가 있는 임영관지 동쪽 길 건너편에 있는 임당동 성당건물이다. 근대 건축물로서 문화재로 등록된 건물이지만 195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해방 이후에 지어진 건물로 화려하거나 많은 재원을 투입하여 지은 건물이 아닌 까닭에 웅장하거나 화려한 멋은 없지만 다양한 양식을 접목시켜서 낡았지만 세련된 멋을 보여주고 있는 건물이다. 강원도 지역 성당건축을 대표하는 건물이라고 한다. 강릉 임당동성당은 건물의 크기나 외장재 등 외형적으로는 큰 교회건물로 보이지 않지만, 다양한 기법을 적용하여 멋지고 휼륭한 건축물을 세울려고 했던 당시 사람들의 정성이 보이는 건축물이다. 강릉 임당동 성당 정면 출입문. 아치형 출입문 위로 뾰족한 첨탑을 잘 구성해 놓고 있다. 임당동 성당 첨탑 성당 건물은 왼쪽편에는 출입..

서울 중앙고등학교 서관, 동관, 교정 풍경

중앙고등학교에는 고려대학교 본관 건물을 닮은 본관 건물외에도 동관, 서관 건물 또한 사적으로 지정된 유서깊은 건물미다. 이 두동의 건물은 붉은 벽돌로 지은 건축물로 지은 연대는 1920년대로 본관 건물보다 약 10년 이상 먼저 지은 건물들이다. 민간에서 건축한 건물 중에서는 연대가 상당히 빠른 편에 속하는 건물로 붉은 벽돌로 1910년대에 지은 종로구 운현궁 앞에 있는 천도교 본당 건물과 비슷한 양식으로 지은 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당시에 유행했던 건축 양식이 아니었나 생각되는 건물들이다. 중앙고등학교는 북촌에서 제일 안쪽 주택가에 위치한 유서깊은 사립교육기관으로 북촌의 공립학교인 경기고등학교와 현대 계동사옥에 있었던 휘문고등학교와 함께 북촌의 분위기를 이끌어 왔던 학교였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고등학교 서..

서울 중앙고등학교 본관

서울의 반촌인 북촌 제일 안쪽에 위치한 중앙고등학교 본관 건물이다. 사적으로 지정된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고려대학교 설립자이자, 동아일보 사주였던 인촌 김성수가 세운 고등학교 건물로 1934년에 건축가 박동진이 설계하여 세운 석조 2층건물이다. 같은 설계자가 건축한 고려대학교 본관 건물과 거의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석조 건축물로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사람이 설계하고 건축한 서양식 건축물로서 그 의의가 큰 건물이다. 중앙고등학교 본관 건물은 'H'자형을 하고 있는 2층 석조건물로 전체적으로 화강석을 외장재로 사용하고 중앙에 망루처럼 생긴 첨탑을 세워 놓은 것이 고려대학교 본관 건물과 거의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건물 중앙에 있는 고딕형식의 첨탑. 화강석으로 쌓아 올려 석탑같은 이미지를 주고 있다..

고려대학교 본관 (사적285호)

고려대학교 본관 건물은 사적으로 지정된 대표적인 근대 서양식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1930년대 일제 강점기에 민족자본으로, 한국인 건축가 박동진의 설계로 세워진 건물이다. 화강석으로 외장을 마감한 고딕양식의 건축물로 이후에 세워진 많은 대학교 건물의 모범이 되었던 건물로, 최근까지 고려대학교에 세워진 대부분의 건물들은 이 건물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높지는 않지만 개운산 언덕아래 서울 동부지역의 넓은 벌판과 한강을 바라보며 세워진 이 건물은 위치상의 장점으로 실제에 비해서 크고 웅장해 보인다. 고려대 본관 건물은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는 고딕양식의 3층 건물로 중앙에 6층의 탑을 두고 있다. 본관 앞쪽으로 약간 경사진 언덕을 두고 있으며 그 중앙에 설립자 김성수 선생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고려대 ..

번사창, 동양과 서양의 건축양식을 절충하여 만든 중국풍의 근대적 공장(무기고)

삼청동길 안쪽에 위치한 한국금융연수원 내에 있는 번사창이다. 번사창은 구한말 임오군란이 일어났을 즈음에 신식무기를 만들기 위해 세운 여러 건물군 중의 하나로 쇠를 주조하는 곳을 말한다. 외벽은 벽돌로 쌓았으며 지붕은 지와를 올려놓은 맞배지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지 않지만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구조를 하고 있다. 비록 건물의 형태가 수려하거나 웅장한 모습을 하지 않고 있으며, 그 양식에 있어서 특출함은 없어보이지만 서울에서 남아 있지 않은 몇 안되는 조선시대 관청건물이자 무기고 겸 무기제조 공장으로서 의미가 있는 건물이다. 한국금융연수원 구석에 위치하고 있는 번사창 건물 번사창은 구한말에 지은 서양식 성당건물의 붉은 벽돌이 아닌 중국풍의 벽돌로 쌓은 건물로 동.서양 건축 양식이..

독립문, 독립의지를 표방한 개선문을 본떠서 만든 근대건축물

옛날 한양의 북쪽 경계점인 무악재를 넘어가는 길목에 있었던 중국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세운 독립문이다. 개선문을 본떠서 만들어서 그런지 개선문은 웅장한 모습에 대비되어 약간 왜소한 느낌을 주는 건축물이다. 대로변에 위치하고 있어 이 길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눈에 익어서 친숙한 느낌을 주는 기념물이다. 이 독립문은 화강석을 쌓아서 만든 건물로 개선문을 본떠서 만들었지만 돌을 쌓는 수법과 아치인 홍예를 만든 수법 등에서 고유의 건축기술이 많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 19세기말 갑오개형 이후 조선의 자주독립을 천명하고자 중국 사신을 맞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세운 기념물인 독립문. 현재 독립문은 원래의 위치에서 북쪽 옛 서대문형무소 앞 광장으로 옮겨 놓고 있다. 독립문 앞에는 조선시대 ..

원효로성당, 용산신학교 부속 성당

원효로성당은 이 곳에 세워진 용산신학교 부속 성당으로 명동성당을 설계한 코스트 신부가 설계했다고 알려진 건물이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헤 세워진 이 성당은 앞에서 보면 3층, 뒤에서 보면 2층 건물로 보인다. 언덕에 세워진 까닭에 실제 건물의 크기는 작지만, 상당히 웅장한 느낌을 주는 성당이다. 이 성당은 출입문이 왼쪽편에 있어 전체적으로 비대칭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붉은 벽돌로 쌓은 초기 성당 건축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용산신학교가 있던 자리에는 현재는 성심수녀회 소속의 성심여고가 자리잡고 있다. 이 학교 교문을 들어서면 브라질의 상징인 리오의 예수상을 연상시키는 예수상이 두팔을 버리고 서 있다. 원효로 성당은 출입문이 정면에 있지 않고 왼쪽편에 있는 까닭에 전면 ..

광화문사거리를 지겨온 동아일보 사옥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사거리를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지켜온 건물인 옛 동아일보.동아방송 사옥이다. 지상6층은 콘크리트 건물로 타일로 외장을 장식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세워진 이 건물은 언론사 사옥으로서는 당시에는 상당히 규모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넓은 광화문 대로를 굽어보았을 것으로 보이는 이 건물은 지금은 교보빌딩을 비롯하여 주위의 고층빌딩에 눌려서 왜소한 느낌마져 주고 있다. 언론사 건물로서는 남아 있는 많지 않은 건물중의 하나로 광화문 대로와 함께 현대사를 지켜온 건물이다. 광화문사거리 빌딩숲에 둘려쌓여서 왜소해 보이기까지 하는 동아일보 사옥 동아일보 사옥 출입문. 당시 건축물의 특징은 좁은 출입문을 하고 있다. 1920년대 당시의 모더니즘 디자인의 특징을 보여주는 현관 위에서 옥탑..

부민관, 옛 태평로 국회의사당 (현 서울시의회)

태평로 서울시청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는 오래된 콘크리트 건물인 서울시의회 건물은 193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다. 원래는 부민관이라는 현재의 국립극장과 같은 기능을 가진 건물로 조선총독부에서 세운 건물이다. 70년대에 세워진 세종문화회관이 주는 웅장함을 당시에는 주었을 것으로 보이는 건물이다. 해방전에는 각종 공연장으로 사용하였으며, 해방후에는 국회의사당으로 사용하면서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건설되기 전까지 일어났던 수 많은 정치적 사건의 현장이기도 한다. 지금은 서울시의회 건물로 사용되고 있으며,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조용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서울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대로인 태평로에 위치한 서울시의회 건물. 지상3층의 현대식 공연장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서울시 의회건물인 옛 부민관 첨탑. ..

서울 정동 옛 신아일보 별관

서울 덕수궁 뒷편에 위치한 옛 신아일보 별관 건물이이다. 원래는 지하1층, 지상2층으로 193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하며, 현재는 지상 4층의 건물이다. 1960년대 신아일보사에서 별관으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구한말에서 시작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구 열강의 대사관들이 많이 위치하고 있는 이 곳 정동의 서구적 분위기에 가장 맞는 붉은 벽돌로 외벽을 장식하고 있는 건물이다. 정동길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옛 신아일보 별관 건물. 장식적인 용도로 만들어진 건물 출입구. 계간을 걸어서 올라가게 되어 있는 당시 미국풍 건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직도 신아일보 별관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다. 1930년대에 지­1930년대에 지하1층 지상2층으로 건축된 철근콘크리트 건물. 1969년 신아일보사에서 매입, 별관으로 ..

배재학당 동관, 근대교육의 산실

서울 정동 옛 대법원청사였던 서울시립미술관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배재학당터에 남아 있는 당시의 건물이다. 이화학당과 더불어 1885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 중 하나로 미국인 선교사인 아펜젤러가 세웠다고 한다. 정동의 건물배치를 서대문인 돈의문터에서 시작해서 남대문까지는 창덕여중, 이화학당, 정동교회, 배재학당, 서울시립미술관, 상공회의소, 삼성그룹빌딩군 등 공공기관 성격의 건물들이 옛 한양도성 성곽을 허문 자리에 들어서 있다. 아마도 구한말 이 곳 성곽을 허물고 외국인들에게 부지를 내어 준 것으로 보인다. 배재학당의 후신인 배재고등학교는 지금은 강동구로 이전하고 지금은 재단관련 빌딩들이 들어서 있다. 배재학당 건물 중 현재까지 남아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배재학당 동관. 건물상태가..

중림동 약현성당, 최초의 벽돌조 서양식 교회 건축물

중림동 약현성당은 서소문 종로학원 맞은편 중림동 시장 뒷편 언덕 위에 자리납고 있는 성당으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세어진 벽돌조 교회 건축물이라 한다.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 많이 처형된 '서소문 밖 네거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성당이라고 한다. 초기에 세워진 성당 건축물로서 규모는 크지 않고, 언덕위에서 서소문을 내려다 보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성문밖의 서민주택이 밀집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 약간은 얼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주고 있는 곳으로 서소문과 화려한 서울 시가지 중심을 내려보고 있다. 중림동 약현성당 전경. 약현이라는 말에서 나타나듯이 한양도성으로 들어오는 고갯길에 위치하고 있어 높지는 않지만, 사대문안이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약현성당 정문과 옆면 출입구. 출입무과 창문은 대부분 아치형..

명동성동 본당,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교회 건축물

명동성당 본당 건물은 1898년에 완공된 벽돌로 쌓은 교회 건축물로서 프랑스 선교사 코트스신부가 설계해서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명동거리 중심부 제일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이 건물은 고층빌딩이 들어선 도심에서 아직도 이정표 역할을 할 정도로 눈에 띄는 건물이다. 고층건물이 없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로 돌아가 본다고 생각하면, 이 건물이 얼마나 인상적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붉은 벽돌로 쌓았는데 다양한 모양의 벽돌을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카톨릭의 총본산으로 이 성당이 생겨난 이후 오늘날까지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과 함께 해 왔던 성당이다. 건물의 형식은 중세에 성당건물에 많이 사용되었던 순수한 고딕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실제 건물규모에 비해서 그 위치적 특성과 건물 설계로..

광통관, 가장 오래된 은행점포 중 하나인 우리은행 종로지점

광통관은 청계천에서 가장 유명한 다리인 광통교 바로 앞에 있어서 광통관으로 불린다. 구한말 현재의 재경부격인 탁지부에서 강당격인 집회소로 사용하기 위해서 만든 건물이다. 당시 창립했던 천일은행의 영업장으로 사용할 목적이 더해져서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지상2층의 벽돌조 건물로 1층은 은행영업장과 사무실, 2층은 집회실 등을 두었다고 한다. 건물 윗부분에는 바로크식 돔을 얹었다고 한다. 1914년 화재 후 현재의 모습을 많이 바뀌었고, 그 후 수차에 걸친 수리로 인해서 내부의 원형은 남아 있지 않지만, 외관은 화재 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우리은행 종로지점에서 사용하고 있다. 지상 2층의 건물로 양쪽에 돔을 얹어놓고 있으며, 아치형이 많이 강조된 우리은행 종로지점에서 사용하고 있는 광통관..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분수광장

서울 신세계백화점은 1930년 일본 미쓰코시백화점으로 시작한 지금은 없어진 종로의 화신백화점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백화점이다. 최근에 리모델링을 실시하여 고풍스러운 멋은 없어졌지만, 기본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건물이다. 이 신세계백화점이 있는 자리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주로 거주하던 남촌의 대표적인 건물로 서울시청의 전신격인 경성부청이 있던 자리이다. 맞은에 위치한 조선은행, 경성우편국과 더불어 행정 및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에도 제일은행 본점과 나란히 하고 있던 이 건물은 현재의 모습과 큰 차이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장소이다. 리모델링이 끝난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현재 모습. 옛건물은 원형을 유지한채 리모델링을 완료했으며, 뒷편에 새로운 건물을 신축했다. ..

옛제일은행본점 사옥, 일제강점기에 지어졌지만, 새건물처럼 보이는 건물

일제강점기에 서민금융을 목표로 했던 조선저축은행으로 한때는 우리나라에 수신규모가 가장 큰(?) 은행이었으며, 1997년 IMF금융위기로 외국계 자본으로 넘어가 버린 옛 제일은행 본점건물이다. 한국 최초로 철골.철근 건물로 지어졌으며, 맞은편에 위치한 르네상스 양식의 한국은행본점과 대비되는 전형적인 네오-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비록 수리가 되어왔겠지만 옆에 있는신세계백화점과 함께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이 아닌 최근에 지어진 건물처럼 보이는 건물이다. 옛제일은행 본점 건물은 신세계백화점과 나란히 있으며, 백화점 건물로 오해받기 쉬운 건물이다. 지상 5층 건물로 외벽을 국내산 화강석으로 마감했으며 웅장하면서도 단정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믿기지 않는 건물이다. 건물 정문.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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