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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140

오대산 월정사, 승려들의 수행공간인 요사채들

월정사는 삼국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상원사와 함께 오대산을 대표하는 큰 사찰이다. 조선시대에는 세조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 곳을 다녀가고, 오대산 사고를 설치하는 등 왕실과 관련된 원찰의 기능을 갖고 있는 사찰이다. 월정사의 오랜 역사에 비해서 한국전쟁 당시 대부분의 전각이 불타 버렸기때문에 현재의 전각들은 대부분 그 이후에 중수되어 팔각구층석탑을 제외하면 고풍스러운 멋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사찰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이후 중수되기 시작한 월정사에는 적광전을 비롯하여 부처를 모신 불전을 여럿 두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불전보다는 승려가 수행하는 공간인 승방이나 사찰을 방문한 사람들이 잠시 묵을 수 있는 요사채들을 많이 두고 있다. 이는 월정사가 위치한 장소가 민가가 있는 마을과 거리가 떨어..

오대산 월정사, 수광전을 비롯한 불전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에 소재한 월정사는 삼국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문수보살이 머문다는 오대산을 대표하는 큰 사찰이다. 월정사에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팔각구층석탑이 있고, 조선시대에는 세조를 비롯한 왕실의 비호를 받고 실록을 보관했던 오대산사고를 지키는 역할을 하는 등 원찰의 성격을 갖는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월정사가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불교계에서 비중이 큰 사찰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당시 사찰 대부분이 소실되어 건축물로서 내력이 있는 불전이나 요사채건물은 없고 대부분 한국전쟁 이후에 중건되어 불전이나 요사채에서 오래된 사찰로서의 느낌은 주지 못하고 있다. 월정사 주불전인 적광전 뒷편으로는 4동 불전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안쪽에 있는 것이 이름난 큰 산에 자리잡은 사찰에서 많이 ..

하얀 눈으로 덮힌 월정사 전나무숲길

오대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고찰 월정사에는 팔각구층석탑과 함께 이 사찰을 대표하는 장면으로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오대천 옆 숲길을 따라 이어진 전나무숲길을 들 수 있다.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은 소나무숲길이 있는 우리나라의 다른 숲길과는 달리 전나무가 심어져 있다. 평균 수령 80년이 넘는 약 1700여 그루의 전나무가 1km에 이르는 숲길을 이루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고려말 나옹선사가 월정사에서 공양을 드리고 있는데 소나무에 쌓여있던 눈이 그릇으로 떨어져 공양을 망쳐서 산신령이 소나무대신 전나무를 심게 하였다고 한다. 이 길을 걸으면 오대산에서 발원한 오대천 개울과 하늘로 솟아오르는 듯한 전나무 숲이 조화를 이루면서 자연과 일체가 된다는 느낌을 주는 한국을 대표하는 숲길 중 하나이다. 오대산 월정사..

전국 사찰 2011.12.31

오대산 월정사, 주불전인 적광전

오대산 월정사는 643년(선덕여왕12)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삼국시대에는 작은 암자의 형태로 유지되다가 이후에 사찰로서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월정사는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세조가 방문하고 이 곳에 오대산 사고를 두는 등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원찰 기능을 했던 사찰이기도 하다. 고려초기에 세워진 팔각구층석탑을 제외하고는 사찰전각들은 여러차례의 화재와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어서 문화재로서 내력이 있는 불전은 남아 있지 않다. 현재 월정사는 주불전인 석가모니불을 모신 적광전을 비롯하여 많은 불전과 요사채를 두고 있는 강원도 지역을 대표하는 대형 사찰이다. 월정사의 주불전은 적광전으로 석가모니를 본존불로 모신 불전이다. 원래 이 곳에는 일곱부처를 모신 칠불전이 있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

평창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국보 48호),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석탑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기슭에 위치한 월정사는 643년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사리와 대장경일부를 가지고 돌아와 통도사와 함께 창건했다고 알려진 오래된 고찰이다. 오대산 깊은 산중에 위치해 있지만 국보 48호인 팔각구층석탑과 그 앞에 있는 보물 139호인 석조보살좌상을 제외하고 전각들은 한국전쟁으로 불타버렸기때문에 오래된 건물은 남아 있지 았다. 불교와 관련있는 오대산이라는 이름과 함께 문수보살이 머무는 땅으로 인식되고 있는 이 사찰은 조선초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세조의 영향으로 이곳에 오대산사고를 설치하고 상원사를 중창하는 등 왕실관 관련이 있는 원찰의 기능을 했던 사찰이라 할 수 있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은 고려초에 세워진 석탑으로 8각모양의 2단 기단 위에 9층의 탑신을 올린 석탑으로 경..

강화 교동도 화개사, 고려때 창건된 작은 사찰

강화 교동도의 주산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개산은 해발 269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이 섬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서해에서 한강으로 들어가는 뱃길과 북녁땅 연백평야의 넓은 벌판이 한눈에 들어오고, 사방이 뚫려있어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매우 수려한 산이다. 이 화개산은 한강을 지키는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으로 광개토대왕이 한성에 도읍을 하고 있던 백제를 제압하기 위해 점령하여 산성을 쌓았다고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화개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에 있는 화개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오래된 사찰로 서울 조계사의 말사로서 나름 내력이 있는 사찰이다. 고려말 목은 이색이 이 절에 머물렀다고 하며, 조선시대에는 이 절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는 않지만, 교동도에서는 거의 유일한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이..

전국 사찰 2011.11.10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보물 1527호)을 모시고 있는 작은 암자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억정사 옛 절터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보물 1527호로 지정된 철조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는 작은 암자인 백운암이 있다. 현재는 법주사의 말사 중 하나로 구한말인 고종 23년에 무당이었다고 공을 세워 벼슬을 얻었던 파평윤씨가 세웠다고 알려진 작은 사찰이다. 사찰은 불전인 대웅전과 삼성각, 요사채로 이루어진 작은 암자로 명승지가 아니라서 찾는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백운암에 주존볼로 모시고 있는 철조여래좌상은 원래부터 이 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이 사찰로 옮겨진 내력 또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억정사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이 불상은 높이 87cm 정도의 크지 않은 철조불상으로 전체적으로는 8세기 통일신라의 양식을 반영하고 있으나 그 제작 수법이나 조..

전국 사찰 2011.10.28

경주 불국사 석조(보물 1523호), 아직도 방문객의 목을 축여주고 있는 석조

불국사 앞 마당에서 청운교.백운교와 연화교.칠보교를 감상하다가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는 대웅전으로 올라가기전에 잠시 목을 축이던 샘물을 받아 먹었던 석조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보물 1523호로 지정된 문화재라는 것을 인식했던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 석조는 보통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해 보이는 석조의 모습을 하고 있다. 불국사 석조는 원형인 백제의 석조와는 달리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통일신라 후기의 석조다. 일반 석조와는 달리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었으며 내부 바닥면에는 화려한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다. 토함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서 불국사를 찾는 모든이에게 목을 축일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는 불국사 석조.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이만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불국사..

경주 불국사 다보탑 (국보20호), 석가탑과 함께 '2개의 탑'을 연상시키는 통일신라 석탑의 걸작

불국사를 대표하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석가탑과 다보탑일 것이다. 많은 전란등으로 불국사가 타버렸을 때도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었기 때문에 불국사는 계속 재건되어왔던 것으로 생각된다. 황룡사의 목탑이 불타버렸을때 그 복구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어 황룡사는 역사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불국사는 석가탑과 다보탑을 중심으로 언제나 예전같이 재건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불국사 마당에 있는 석가탑과 다보탑을 보면 그림,사진,동전 속에서 볼때의 약간 왜소함에 비해 실물의 크기에 감탄을 하게된다. 이 두개의 탑을 중심으로 불국사의 역사는 계속되는 것 같다. 국보 20호로 지정된 다보탑은 석가탑과 함께 대웅전 경내에 나란히 서 있는 '2개의 탑'이라는 의미를 잘 보여주는 석탑으로 높이 10.34m의 대형 석탑으로..

부산 금정산 범어사, 의상대사가 왜(倭)를 물리치기 위해 창건한 전형적인 호국사찰

우라나라 최대의 항구도시 부산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할 수 있는 금정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범어사는 삼국시대 의상대사가 전국에 창건한 화엄십찰 중의 하나이다. 범어사의 창건연대는 대체로 삼국유사에 기록된 678년(문무왕18)으로 보고 있으며, 삼국시대에 신라와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왜(倭)의 침입을 물리치고자 하는 소망을 담은 국가의 지원을 받았던 전형적인 호국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범어사는 임진왜란때 불타버린 것을 광해군때 묘전화상을 비롯한 여러 고승들이 크게 중건하였으며, 정조때 백암선사가 크게 중건하여 현재 범어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범어사의 가람배치는 부석사를 비롯한 화엄십찰에서 볼 수 있는 산중사찰의 가람배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제일 상단에는 사찰의 주불전인 대웅전을 그 아..

전국 사찰 2011.09.23

강화 정수사, 마니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고찰

강화도 마니산 남쪽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정수사는 신라 선덕여왕 8년(639)에 화정선사가 처음 세운 사찰로 보문사, 전등사와 함께 강화도에 있는 오래된 고찰이다. 사찰을 세운 내력은 오래되었지만 사찰의 규모는 크지 않고 보물 161호로 지정된 법당을 중심으로 요사채가 있는 작은 암자같은 사찰이다. 창건이후 고려시대까지의 내력은 알려진 바가 많지 않고, 조선 세종 5년 (1423)에 함허대사가 중창하면서 맑고 깨끗한 물이 법당 옆으로 흐르는 것을 보고 정수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정수사가 위치한 곳은 지금은 숲이 우거져서 잘 볼 수는 없지만, 강화도 남쪽 바다와 영종도가 한눈에 내려도 보이는 강화도의 명산이자,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첨성단이 있는 마니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사찰의 가람은 중앙에 ..

전국 사찰 2011.09.20

강화 백련사, 강화 고려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오래된 사찰

강화도의 주산이라고 할 수 있는 고려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백련사이다. 이 사찰은 장수왕 4년(416)에 인도승려가 창건한 사찰이라고는 하나 그 이후의 내력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 곳 백련사가 기록에 나타나는 것은 조선후기인 순조 6년(1806)에 세워진 사리비와 사리탑이라고 하며, 고려시대에 존재하기는 했던 사찰이 조선시대에 거의 폐사되었거나 작은 암자 형태로 존재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백련사 불전들은 대부분 그리 오리되지 않은 건물이지만, 사찰주위에 심어진 오래된 고목들에서 세월동안 사찰이 존재했다는 것은 느낄 수 있다. 현재의 사찰 가람은 대부분 1960년대 이후에 중수되었다고 한다. 백련사는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을 주불전으로, 삼성각, 칠성각, 요사채를 두고 있다. 사찰..

전국 사찰 2011.09.13

부산 범어사 들어가는 길과 계곡

부산 범어사는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큰 대도시인 부산 도심과 가까이 있는 사찰이지만, 금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어서 의외로 공기가 맑고 숲이 우거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범어사에서 시작해서 금정산성을 지나 성지곡 수원지로 이어지는 산길인 부산 시가지와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산길이라고 한다. 범어사는 금정산 중턱에 있기는 하지만, 산길을 따라서 도로가 사찰에서 가까운 곳까지 자동차로 올라갈 수 있어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찰이다. 시내버스도 사찰 근처까지 운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로가 산 중턱까지 나 있다고 해서 운치가 없는 것은 아지고 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계속이어지는 아름다운 도로라고 할 수 있다. 금정산은 상 중턱에 위치하고 있지만 그 옆으로 맑은 계곡물이 흐로고 많은 사람들이..

전국 사찰 2011.09.10

강화 정수사법당 (보물 161호), 문살을 아름답게 조각해 놓은 불전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마니산 남쪽편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정수사는 신라 선덕여왕떄 창건된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세종 8년에 함허대사가 절이름을 정수사로 바뀌었다. 사찰의 규모가 큰 편은 아니며, 보물 161호로 지정된 대웅전과 삼성각, 최근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여러동의 작은 요사채로 구성되어 있는 작은 암자같은 사찰이다. 정수사법당이라는 이름으로 보물 161호로 지정된 대웅보전은 언제처음 지은 것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숙종15년(1689)에 수리하면서 적은 기록에 따르면 세종 5년(1423)에 중수한 것이라고 한다.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의 건물이었던 것을 후대에 앞쪽에 1칸정도 툇마루를 달아내어 놓고 있는 특이한 건물구조를 하고 있다. 대웅보전 앞쪽 중앙 창호에는 꽃병에 꽃을 꽂은 그..

부산 범어사, 승려들이 수행하는 요사채와 범종루

부산 금정산에 위치한 범어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십찰 중 하나로 동남해안에 출몰하던 왜(倭)를 물리치고하는 바램으로 세운 사찰이다. 임진왜란 때 폐허가 되었던 것을 광해군 이래로 오랜 기간에 걸쳐서 중건하기 시작하여 숙종때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사찰의 가람배치는 상단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불전들이, 중단에는 보제루를, 하단에는 일주문 등을 배치하여 전체적을 3단을 이루는 화엄종 사찰 건물 배치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범어사는 화엄종의 성격을 갖고 있는 사찰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선종의 성격을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수행을 하는 승려들의 공간인 많은 요사채들을 두고 있다. 주로 사찰 좌우에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대부분은 이 곳을 찾는 신도들이나 관람객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범어..

부산 범어사 석등과 당간지주

범어사 경내에 남아 있는 문화재 중 석탑과 함께 그 내력이 가장 오래된 석등이다. 이 석등은 의상대사가 범어사를 창건할 때 같이 조성한 것이라고 하나 실제로는 석탑과 함께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석등의 내력은 오래되었지만, 조각수법이 투박하고,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몇자례 수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오히려 전체적인 조화나 균형미가 떨어진다. 통일신라에 만들어졌으면 상당히 오래된 것이기는 하지만, 원형이 유지되지 않았고 조형미가 떨어져서 보물로 지정되지 못한 것 같다. 범어사에는 석등 외에 오래되어 보이는 여러개의 당간지주가 있는데, 이 또한 조각수법이 떨어지는 편이라서 그런지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범어사 경내에는 다른 사찰과는 달리 옛 당간지주에 당간..

부산 범어사 팔상.독성.나한전, 한 건물에 3개의 불전이 있는 특이한 건축물

의상대사가 전국 각지에 창건한 화엄십찰 중 하나인 범어사는 부산을 중심으로 한 동남부 해안에서 가장 큰 사찰로 왜(倭)의 침입을 막고자 하는 소망이 담겨 있는 전형적인 호국사찰이다. 범어사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미륵전, 비로전, 지장전, 관음전 등 많은 불전을 두고 있으며, 그 중 지장전 왼편에 위치한 팔상.독성.나한전은 한 건물에 3개의 불전을 두고 있는 아주 독특한 건물로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형태이다. 18세기초에 처음 세워진 이 건물은 원래 팔상전과 나한전이 독립된 건물이었고 중앙에 출입문이 천태문이 있었다고 한다. 앞면 7칸, 옆면 3칸에 팔상전, 독성전, 나한전이 나란히 있는 이 건물은 1905년에 중수를 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양쪽의 팔상전과 나한전은 옛 건축물이 그대로 ..

부산 범어사 조계문(보물 1461호), 네개의 돌기둥이 나란히 서 있는 독특한 모양의 일주문

부산의 명산 금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범어사은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십찰 중 하나로 남해안을 괴롭히던 왜(倭)를 물리치고 했던 소망이 담긴 호국사찰의 성격을 지닌 사찰이다. 현재는 조계종 14교구 본사로 부산지역을 대표하는 큰 사찰이다. 이 사찰은 조선시대까지 왜구를 막는 비보사찰로 중요한 역할이 있었으며,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었던 것을 광해군 때부터 중창을 시작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하고 있다. 범어사 조계문은 사찰의 첫번째 출입문인 일주문으로는 드물게 보물 (1461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이 문은 범어사가 중창되기 시작했을 때인 1614년(광해군 6)에 처음 건립되기는 했지만 여러번의 중수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781년(정조 5)이라고 한다. 보통 사찰의 일주문은 본..

공주 태화산 마곡사, 충남지역을 대표하는 조계종 사찰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 기슭에 위치한 오래된 사찰인 마곡사이다. 마곡사는 수덕사와 함께 충남지역을 대표하는 조계종 사찰로 약 70여개의 사찰을 관리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고려 중기 무인정권 시절 불교결사운동으로 오늘날의 조계종이 있게 만든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크게 중건되었다고 하며 실제적인 마곡사의 역사는 이때 시작되었다고 여겨진다. 보조국사 지눌이 중건할 당시 마곡사의 규모는 지금의 2배가 넘는 대사찰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사찰 전각이 화재로 불타버렸다고 하며, 그 이후로 수차례에 걸쳐서 여러번의 화재로 건물들이 소실되어 실제로 마곡사 전각 중에서 역사가 오래된 건물을 그리 많지는 않다. 마곡사의 가람배치는 5층석..

전국 사찰 2011.05.29

고성 금강산 건봉사, 조선시대 전국 4대 사찰

고성 건봉사는 휴전선 부근 금강산 자락에 위치한 사찰로 조선시대에는 전국 4대 사찰의 하나로 세자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원찰로 지정한 사찰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건봉사는 신라 법흥왕 때 아도화상이 처음 창건했다고 하며,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실제로는 고려말과 조선초에 한국 불교에 큰 영향을 끼친 무학대사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나옹선사가 크게 중수하면서 건봉사라고 개명하면서 전국적인 규모의 사찰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선시대 선비들이나 지도층 인사들 사이에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금강산 유람길에 위치하고 있고, 왕실에서 후원을 받던 양주 회암사와 연관이 되고 있어서 왕실 인사들이 많이 방문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세조는 이 곳을 친히 방문하여 왕실관 관련된 원..

전국 사찰 2011.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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